지난 몇주간 필자는 캐나다 몬트리올과 토론토, 싱가포르와 홍콩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필자는 많은 것을 흥미있게 보았고, 깨닫기도 하고, 앞으로 연구해야 할 숙제들도 모아서 돌아왔다.각 지역을 며칠간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방문했지만 필자의 눈에 보인 이 세 사회의 공통점들과 차이점들을 독자들과 나누면서 그 의미들을 간단히 살펴보려 한다. 이 세 사회의 공통점으로 두드러진 것은 모두 소득이 높다는 것이다. 즉 물질적으로 ‘선진사회’다. 깨끗한 길과 건물들이 현대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디자인과 양질의 재료로 세워져 있고 튼튼하게 보
일반적으로 30대에 결혼한 지 15년에서 25년 지나면 자녀들이 고등학생으로 성장하고 대학생 또는 사회의 새내기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그때 부모들은 인생의 가을에 깊이 들어와 흔히 50대 중년시절에 접어들고, 크게 세 가지 이슈에 직면하게 된다. 부부간의 관계, 법적 성인이 되었고 아마도 이미 자신의 가정을 이룬 자녀들과의 관계, 그리고 10여 년 후에 시작되는 내 자신의 노년 또는 은퇴시기를 위한 준비이다. 첫 두가지 이슈는 인생의 가을만 아니라 일생에 걸쳐 논의해야 할 성격이므로 후에 따로 논해 보고자 한다. 오늘은 노년 또는 은퇴시기를 위한 준비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전통적인 대가족 생활 풍습 하에서 노부모들의 준비는 자녀들이었다. 특히 큰아들이 노부모를 보시는
한국에서 가르치기 위해 지난 2010년 한국에 올 때 필자에게 풀리지 않는 질문들 중 하나는 ‘한국에서 왜 흔히 50대 중반에 정년 퇴직하는가?’였다. 필자의 학교 친구들이 50대 중반에 이르렀을 때, 퇴직하고 백수로 지낸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평상적으로 6일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하루에 12시간 또는 그 이상 일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50대 중반에 퇴직을 하는가?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우연히 찾았다. 어느 기관의 총책임자가 새 사람으로 바뀌게 됐다. 그러자 그 아랫 사람들도 다 갈릴 것이라는 말을 어떤 사람에게 들었다. 나는 ‘대부분 능력있고 일을 잘해 오고 있는데 왜 모두
9월이다. 가을이 시작되었다. 평균 수명이 80을 넘은 현재의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면, 인생의 가을은 40대 초반부터 60대 중반에 해당할 것이다. 여름에 벼가 힘차게 자라고 이제 무르익어 가면서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인생도 비슷하다. 인생의 가을은 사회인으로서 가정에 대한 책임을 가진 자로서 수행할 일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은퇴 후의 인생의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다. 인생에 중요한 기로점의 하나이다. 40∼60대에 큰 변화들이 가속적으로 일어나므로 오늘은 40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청년기 20∼30대에 무쇠같이 일하고 뛰었는데 인생의 가을에도 여전히 뛰기는 하지만, 40대에 들어서 육체적인, 감정적인 변화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자신 속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자연의 신묘막측함과 웅장함은 상상을 불허한다. 지난달 알래스카를 약 3주간 여행하면서 그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아인슈타인은 인간 사회의 하나님은 부인했지만, 자연과 우주의 신묘막측함과 웅장함을 인정하고 창조자를 인정했다. 먼저 캐나다 밴쿠버에서 3일간 시내와 강변을 구경했다. 현대식 건물들이 빼곡히 늘어져 있어 그 지역의 물질적 부유함을 증거하고 있었으나, 저녁이 되니 길가에 히피같은 걸인들, 걸인같은 히피들이 줄줄이 길가를 차지하고 있어 인간 사회 내의 큰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밴쿠버 북쪽으로 약 150km 외곽지역을 달리면서 그 지역에서는 높다고 하는 산에 올라가 보기도 했다. 여름에도 눈에 덥힌 멀리 보이는 더 높은 산봉우리들을 감탄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그 산속을 한 시간 이상
인생의 여름은 20대 초부터 40대 중반까지 약 20여년 간의 기간인데, 이 시기에 중요한 일은 장래 진로를 단단히 닦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독특한 재능과 관심, 그리고 가치관에 맞는 진로를 선택해야 하듯이 결혼하는 두 사람의 개성과 관심이 서로 조화되고 보완적이어야 좋다. 행복한 결혼과 가정은 무엇보다 서로 진정으로 아껴주고자 하는 태세를 갖는데서 출발한다. 결혼은 젊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부모가 하는 것이 아니므로 결혼식에 가족, 친척은 물론, 결혼 당사자들의 친구들이 조촐하게 모여 실용적이고 의미있게 진행하도록 필자는 지난 글에서 권했다. 오늘은 결혼생활에 대해 생각해 본다. 먼저 결혼생활에서 남녀 동등권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한국의 전통과 반대이다. 필자가 자랄 때, 어
여름이 본격적으로 무르익어 간다. 여름은 인생으로 말하면 20대 초부터 40대 중반까지 약 20여 년 간일 것이다. 이제 어엿한 성인(成人)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자리잡기 시작한다. 결혼도 하게 되고, 자녀를 포함한 가족 부양도 하게 될 것이다. 오늘은 결혼과 결혼식에 대해 생각해 본다. 먼저 결혼은 개인적인 선택이며, 제3자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할 수 없음을 우리는 먼저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결혼 상대를 구하는 첫 관문인데 바로 이 시작점부터 문제가 걸린다. 지난 칼럼에서 돈, 명예, 어떤 타산에 끌려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배우자를 찾으라고 필자는 권하였다. 부부는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벌써 여름이 되었다. 이곳 저곳에 꽃들이 우리 주위를 아름답게 수놓고, 나뭇잎들은 점점 진한 녹색으로 변하면서 생기(生氣)를 뿜어내고 있다. 여름은 인생으로 말하면 20대 초부터 40대 중반까지 약 20여년 간의 기간일 것이다. 이제 어엿한 성인(成人)이다. 신체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성인의 자유와 특권을 누린다. 동시에 책임도 따른다. 기로(岐路)에 놓인 시기이다. 사회인으로서 자리잡기 시작해야 한다. 결혼도 하게 되고, 자녀를 포함한 가족 부양도 해야 할 것이다. 내 집도 장만할 때이다. 내 부모는 곧 연로과정을 시작할 것이다. 오늘은 새내기 사회인으로서 커리어(career)를 어떻게 쌓아갈 것인지, 그리고 일생의 반려자와 결혼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필자는 3개월 전에 인생의 봄철에 대해
1970년대 초 미국에 이민와서 45년 이상 살고 있는 어느 지인 부부와 당시의 이민 이야기를 지난주에 서로 나누었다. 남편과 두 어린 자녀는 한국에 남겨놓고 여자분이 먼저 600달러(지금 가치로 약 4천달러)를 들고 단신으로 미국에 왔단다. 그분은 갖고 온 돈이 달랑달랑 할 즈음 겨우 거처를 마련하고 직업을 구해 가족들이 오게 된, 절망적이기도 했고 가슴 조이게 하는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나도 그 때쯤 미국으로 먼저 떠난 아내와 합류하기 위해 200달러를 들고, 600달러하는 편도 비행기 값을 후불로 갚기로 하고 미국에 도착하였다. 나는 모든 것이 생소한 곳에서 원주민들 보다 3∼4배의 시간과 땀을 흘리며 공장에서 서투른 노동부터 시작하였다. 한국인의 이민은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증가
벌써 5월이 되었다. 봄이 무르익고 있다. 주위가 꽃동산이 되었고, 이제는 나뭇잎들이 진한 녹색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번 두 칼럼에서 ‘인생의 봄, 즉 태어나서 대학생활까지 인생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인생의 봄은 교육과 배움을 통해 내 인생의 뿌리를 내려야 할 시기라고 필자는 주장했다. ‘어떻게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릴 수 있는가?’도 논했다. 두 가지의 뿌리가 필요하다. 즉 인성(人性)과 전문성. 인성? 아무리 혈기와 지능이 있어도 인성이 없다면 망조(亡兆)가 나게 된다. 전문성? 사회 환경을 전혀 무시하지 않으면서, 나의 재능, 나의 관심, 나의 가치를 중심으로 나의 전문성을 키워 나간다면, 나의 경쟁 상대는 남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나의 재능
지난 칼럼에서 `인생의 봄, 즉 태어나서 대학생활까지 인생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또 인생의 봄은 교육과 배움을 통해 내 인생의 뿌리를 내려야 할 시기라고 필자는 주장했다. `어떻게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릴 수 있는가`도 논했다. 두 가지의 뿌리가 필요하다. 즉 인성(人性)과 전문성. 지난 칼럼에 먼저 인성교육에 대해 논하면서 “아무리 에너지, 지능이 있어도 인성이 없다면 망조(亡兆)가 나게 된다”며 그 인성을 정직성으로 필자는 축약했다. 오늘은 뿌리의 다른 면, 전문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전문성이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 전문성은 영어로 `professional expertise`라고 표기된다. 영문 표현의 두번째 단어는 특정 분야에서의 지식과 기술을 말한다. 첫번째 단어
봄이 되었다. 봄은 사계절(四季節)의 시작이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가꾸고, 가을에 결실을 거두고, 겨울에 수확한 것들을 즐긴다. 각 계절마다 할 일들이 많고, 즐길 것들도 많다. 모든 계절이 중요하지만 생각해 보면 봄이 사계절 중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봄은 사계절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고 생명의 시작이요 동물들도 동면(冬眠)에서 깨어나 활발히 움직인다. 이 기간에 우리들은 씨를 널리 뿌리고,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리도록 물도 때 맞춰줘야 하고, 신경써 햇빛 조절도 해줘야 한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농경(農耕)의 상대적 중요성이 인간 사회에서 작아졌지만, 여전히 봄에 우리들은 일년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일한다. 학교도 봄에 새 학기가 시작되고, 텃밭도 봄에 가꾸기 시작한다. 그뿐이
과거 왕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유교사상에 젖어와서 그런지 공복(公僕)인 한국 관료들의 권력이 막강하다. 그에 따른 폐해가 크다. 개인들과 단체들도 이에 책임이 있다. 개인들과 단체들은 정부에서 정책을 내릴 때까지 좀처럼 솔선하여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정부가 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위한 프로포절(proposal)을 모집하면 이전 관심도 경험도 없이 벌떼처럼 너도 나도 응모한다. 그들에게는 오직 돈만 보이고, 공복인 정부와 관료들에게 목을 매고 사는 것 같다. 정부가 솔선해서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까지 프로젝트에 관심도 없었던 사람이나 단체들이 응모 조건에 맞추어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고 응모하고 그제야 사람들을 모을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문제이다. 정부는 평상
하루는 대기업에서 대형 버스를 몰고 와서 교수들을 데리고 공장을 견학했다. 아침에 출발하면서 참석자 이름을 기업 직원이 체크하기 전에 사과를 구했다. 교수들을 잘 몰라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순으로 호명해야 하는데 가나다 순으로 호명하겠으니 양해해 달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기업체에서는 직위 별로 부르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것이다. 단체에서 야유회를 할 때도, 흔히 직원들이 먼저 나와 야유회 시설들을 설치하고 준비한다. `상사`들은 나중에 나타나 뒷짐지고 구경하거나 평상 서로 대화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만 한다. 야유회에서도 `상사` 부인들과 직원 부인들이 쉽게 어울리지 않는다. 상사는 야유회에서도 상사이고, 상사 부인은 부인들 사이에서도 상사 부인이다. 한 번은 기업의 남자 임원과 그
한국에서 쇼핑을 하던 어느 날 미국과 다른 것을 발견하였다. 미국에서는 점원이 계산대에서 계산을 마치고 물건을 쇼핑 봉투에 넣어 손님에게 건네줄 때, 서비스를 받은 손님은 물건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점원에게 “땡큐”라고 흔히 말한다. 점원은 “유 워 웰컴(천만에요)”라며 자연스럽게 대응한다. 손님이 점원에게 “땡큐”라고 말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나는 한국에서 쇼핑 중에 손님들이 물건을 건네받으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이 일반적인 관례인지, 예외적인지 확인하고자 그후 쇼핑할 때마다 계산대 줄에 서서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관찰한 바로는 손님이 물건 받으면서 점원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손님이 서비스하는 점원에게 왜 “땡큐”라고 하지 않
필자는 지난 칼럼에 새해에 개인들이 각자 자주성(autonomy)을 넓히기로 결심하면 좋겠다고 썼다. 이는 자신을 위한 새해 다짐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오늘은 개인의 자주성을 보완하는 하나를 추가하려 한다. 새해 다짐으로 내가 속해 있는 사회와 조직을 항상 염두에 두는 `시민 정신`을 새해에 기르면 좋겠다. 시민정신에 대해 필자가 지난 칼럼들에 언급한 문구들을 여기에 엮어 본다. 우리 경제가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하는 동안 시민의식, 주인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몸은 커졌으나 사고방식과 행동은 어린이 같은 격이다. 시민의식은 먼저 시민이자 주인으로서 권리와 자유를 행사하는 주체성을 갖춰야 하며, 동시에 스스로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지는 윤리적 태도와 행동을 기
새해 초에 우리는 흔히 새해 목표를 세운다. 한국 사회가 새해 목표로 하면 좋겠다고 필자가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본다. 먼저, 개인들이 각자 자주성(autonomy)을 넓히기로 결심하면 좋겠다. 자주성을 넓히기 위해 자신의 발로 스스로 서야 한다. 어떻게 스스로 설 수 있을까? 각자가 자신의 재능, 자신의 관심사, 자신이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추구하자. 이렇게 하면 나의 독특한 위치를 개발하게 되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 보다 일이 더 쉽게 성취되고, 더 행복하게 느낄 수 있다. 이때 나의 경쟁자는 나 자신 뿐이다. 내 업적은 내가 얼마나 남보다 더 잘했는가 보다는 얼마나 내 재능과 잠재력을 충분히 개발했느냐에 의해 측정된다. 내 자긍심은 내 관심사에 얼마나 내 열정을 쏟
필자의 지난 칼럼들은 사회적인 측면과 사회 문화에 초점을 두었다. 오늘은 필자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눌까 한다. 필자는 올해 초 `은퇴`하기 전까지 필자의 대학시절이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했었고, 그 때로 돌아가서 영원히 머물러 있고 싶어했었다. 대학생은 법적인 성인의 특권과 자유를 누리면서도 성인들이 짊어지는 가족이나 자신을 부양해야 할 의무에서도 면제되어 사는 것을 즐기고 싶은 `얌체`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은퇴하고 보니 훨씬 더 좋은 황금기를 즐기고 있음을 발견하였고 지금 시점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자유 때문이다. 이제는 내 자녀들도 성장하여 독립했으니 자녀 양육의 짐에서 벗어났고 국가 사회보장
역사적으로 많은 개혁들은 기존하는 부조리를 뜯어고치고자 하는 목적으로 출발했다. 기존 질서와 문화가 개혁의 온실이었다. 마틴 루터는 500년 전 당시의 기존 교회에서 행해지는 부조리를 뜯어고치고자 행동을 취하였고, 그 운동은 프로테스탄트교 또는 개신교를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때까지도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인 성서를 당시 상용언어로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번역하는 사람들을 화형에 처하기까지 했고, 악명 높은 면죄부를 판매하고 있었고, 교황과 왕들 간에 끊임없는 권력 투쟁 등 세속적으로도 수치스러운 행위를 자행하고 있었다. 19세기에 칼 마르크스가 유물론 사상과 공산주의 이론을 전개한 것도 당시의 두가지 기존 체제이었던 중세 교회와 봉건제도에 대한 도전에서 싹튼 것이다. 교회의 부조
지난 2010년 미국생활 35년 만에 한국에 와 보니 내 눈에는 그동안 강산이 서너 번이 아니라 수없이 변했다. 한자(漢字)도 사라지고, 새로운 단어들도 못 알아듣겠고, 한국화된 영어를 한국어로 표기하니 읽고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역이민 생활을 하는 셈이었다. 특히, 돌아다니려면 길도 서툴고, 새 지역도 많이 생기고, 서울에선 전철 버스 노선도 하도 많아, 미국 와서 어리둥절 하던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때마다 지나가는 분들에게 묻곤 했는데, 하루는 세 분이나 친절히 시간 내어 가르쳐 준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오전에 서울 동쪽 지역에 소재한 대학을 방문 후, 학교 정문 앞 거리에서 인천 송도로 가기 위해 인근 전철 정거장을 찾고 있었다. 마침 길을 건너기 위해 기다리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