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성(先聖)에게 빛을 던져 선성의 학(學)을 후학의 사람들에게 베푼 동방의 나라에서 오직 한 분` `주자(朱子)의 직제자(直弟子)와 다름없다.조선의 일인(一人)` (일본 기몬학파 창시자 야마사키(山崎暗劑)> `아득하셔라 이부자(李夫子)님이시여,당신은 성인(聖人)입니다` 조정 부름 수십차례나 고사, 고향 안동서 학문·제자훈도 임진왜란때 문집 반출… 日 주류사상계에 독보적 영향 묘비문 과장·왜곡 우려, 자신이 직접 96자로 직접 지어 더 이상의 극찬은 없다. 한국이 나은 최고의 사상가이자 학자이며,조선 3대 석학인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두고 동양권 학자들이 뱉은 말이다. 동양 3국의 도의철학(道義哲學)의 건설자이며 실천자
우리나라 전쟁 `영웅(英雄)`을 꼽는다면 으뜸이 신라 김유신(庾信) 장군이다. 김유신 장군은 한반도를 영역으로 한 우리나라를 최초로 통일국가를 이룩한 주인공이다. 전쟁사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약소국이면서 적대국가를 무찌른 것은 강력한 지도력과 국민 근성이 함께한 합작품이다. 특히 왕(王)이 아니면서, 죽어서 왕(王) 칭호를 받은 유일한 이가 `유신`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치군인이란 비판도 있지만 투철한 국가관의 소유자여서 현재에까지 그의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 몰락한 가야왕조 후손… 전쟁 공로로 입지 구축 김춘추와 연합해 정국 주도하는 핵심 실세로 부상 죽어서 `왕` 칭호… `유신참마` 등 많은 일화 전해져 김유신은 경주(慶州) 김씨(金氏)가 아닌 경남 김해 지
“네가 당나라에 가서 10년 내에 급제하지 못하면 나의 아들이라 하지 마라.나도 아들을 두었다 하지 않을 터이나 아무쪼록 부지런히 공부하여 이 아비의 소원하는 바를 잊지 말고 꼭 공을 세우도록 하라” 이 말은 신라의 최고의 천재이자 문장가 그리고 유불선 통합을 주창했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이 나이 12세 때 당나라로 유학 떠나기 전 아버지 견일(肩逸)이 아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당나라로 유학, 18세때 외국인 대상 `빈공과` 장원급제 육두품이지만 신라 기성세력 견제로 초야에 묻혀 중국 평가는 최고… 기념관 건립·업적 소개 등 추앙 한국 교육 열이 높다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도 아는 사실이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도 한국 교육열과 풍토에 대해 극찬을 하는 등
몸에 비늘 등 신비한 탄생설화 지닌 파평윤씨 시조 왕건 아들 혜종 견제로 경주 대도독 부임, 30년 선정 잉어와 얽힌 전설 유명… 포항 묘터 최고명당 꼽혀 파평윤씨(波平尹氏) 시조(始祖) 윤신달(尹辛達). 그는 신라 천 년 사직이 기울고 후삼국의 격동기에 왕건(王建)과 함께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창업에 훈공을 세운 `개국공신`이다. 이어 그는 태자를 교육시키는 태사(太師) 봉해지는 등 고려 초기 대표적인 인물이다.또, 그는 문무를 겸해 인의지도(仁義之道)를 제창했다. 특히 그는 고려 개국에 따른 민심수습(民心收拾) 일환으로 왕건에게 국정운영을 인의(仁義)와 도덕(道德)으로 해야 한다고 주입시키는 등 멘토인 왕사(王師) 역도 했다. 그의 탄생 과정은 신비하다. 신라 진성왕 7년(
8·15 해방 이후 국내 정치가 안정적이었던 때는 별로 없다. 특히 해방 후 유입된 좌익세력이 국내 정치에 일정부분을 차지하면서 진보층으로 고착화됐고, 이후의 기성 정치권 또한 영·호남을 기반으로 보수세력화되는 등 이분구조로 뿌리를 내려버렸다. 현재의 정치도 그저 혼란스럽기만 하다. 국가나 국민을 위한다고 밝히고는 있으나 늘 양측이 대립각을 세우면서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한 실정이다. 통일신라 이후 고려, 조선까지 당시 시대 정치 상황도 현재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권력 수성이냐`, `쟁탈이냐`라는 두 가지 핵심 문제도 여전히 치열한 진행형이다.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돼야 한다는 국민적 기대 속에 옛 사람들의 정치형태를 6회에 걸쳐 재조명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