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마바흐체 궁전 탁심 광장 근처 낡은 호텔에 짐을 맡긴 난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향했다. `돌마바흐체(Dolmabahce Sarayi)` 궁전에 도착해 표를 끊고 들어가려는데 패키지로 온 우리 나라 사람들이 앞에 서 있다. 8일 패키지로 터키 이스탄불, 그리스 아테네 즉 핵심적인 곳을 본단다. 여대생 세 명도 내 뒤에 서 있다. 그들은 배낭여행 중이란다. 40일 일정 여행인데 생각보다 지출이 크다고 걱정을 한다. 이미 이집트를 여행했단다. 이집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집트에선 입장료를 빼고 모든 값을 반으로 깎아야 해요. 기념품을 반값에 샀는데 다른 데서 더 싸게 파는 거 있죠. 속았다는 생각에 얼마나 화가 나던지.” 묻지도 않았는데 덧붙인다.
택시로 성모 마리아 집에서 성요한 성당까지 15분 걸렸다. 택시 기사는 셀주크 성요한 성당 정문에 나를 내려준다. 관광지 치곤 꽤나 조용하다. 사람이 없다. 대리석으로 쌓은 아치형 정문으로 들어가자 표를 끊으란다. 성 요한 성당 역시 폐허의 빈 건물이다. 받침돌과 돌기둥만 널려 있다. 규모가 대단하다. 성 요한은 우리가 알고 있듯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이다. 44년 유대인 왕 헤로데 아그리파의 박해를 피해 그는 에페소로 왔다. 에페소는 요한 세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한 지역이다. 그는 에페소에 머물며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를 끝까지 보살피기도 했다. 건물은 십자 형태지만 동서로 길게 지어졌다. 본관에는 6개의 돔이 천정을 받치고, 그 주변 부속 건물은 본관보다 낮
내가 묵은 쿠산다시는 에게해를 바라보는 항구도시다. 일어나 창 밖을 보니 구름이 끼었다. 8시30분 숙소에서 나와 20km 남짓 떨어진 에페소로 향했다. 셀주크에서는 3km 정도 떨어진 곳이지만 우리는 바닷가 쿠산다시에서 묵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택시 기사가 먼거리라 택시로 가야한다고 한다. 기사의 말을 무시하고 걸어서 간다. 나처럼 걷는 서양인이 저 앞으로 성큼성큼 걷는다. 기독교 신자라면 대부분 에페소를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성경 `에페소서!` 사도 바울로가 에페소에 사는 기독교인들에게 쓴 편지글 형태의 신약성경이기 때문이다. 성경학자들은 바울로가 에페소에 2년 이상 머물렀다고 한다. 에게해를 배경삼은 대극장… 반원형 구조에 2만5천명 수용
오후 8시 카파도키아 네이부쉐르에서 터키의 남서부에 있는 셀주크행 버스를 탔다. 짐칸에는 장거리 버스 특유의 여행객 가방과 배낭이 잔뜩 실렸다. 내 자리는 뒷자리 왼편 창가다. 버스는 9시 30분 휴게소에 잠시 멈췄다. 이후 나는 잠이 들었다. 새벽 두 시 버스는 `키르아즐리바체(KIR AZLIBAHCE)` 휴게소에 도착했다. 출발 후 6시간 후다. 몇 번 쉰 것 같은 데 잠결이라 쉬었다는 느낌이 없다. 기사가 바뀐다. 장거리를 한 사람의 기사가 운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곳 휴게소에서 다른 기사가 운전석에 앉고, 안내하는 차장도 바뀐다. 휴게실에 들러 차 한 잔 주문했다. 7시간의 한국과 시차를 따져본다. 한국은 오전 9시다. 출근을 마친 사람들이 일에 빠져들기 시작할 때다. 차는 다시 출
괴레메 박물관을 견학한 후 에센테페의 `부모자상` 바위를 찾았다. 이 바위는 카파도키아를 상징하는 대표적 바위다. 버섯바위 형태의 커다란 바위 두 개와 작은 바위 하나가 그림엽서 속에 자리를 튼다. 엽서 속에 쏘옥 들어가는 멋진 풍경이다. 컵 장식으로도 들어가고, T-셔츠 속에도 들어간다. 괴레메 마을을 배경으로 있는 이 바위를 사람들은 엄마 바위, 아빠 바위, 자식 바위라 일컫는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버스로 10여 분 달리자 `데브렌트`의 낙타봉이 나타난다. 응회암 바위들이 세월의 흐름에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변화시켰다. 가지각색이다. 낙타봉은 그 형태가 낙타를 닮았다. 돌아다니던 개 한 마리가 멈추자 낙타봉과 입 맞추려는 모습이 된다. 사진을 찍는다. 종종 사진은 현실보다 피사
두개의 성탑 사이에 우뚝선 `제국의 문` 1천200여명 조리사가 요리 하던 주방 오스만 제국의 위용 다시 한번 느껴 성 소피아 성당에서 나오니 오후 1시가 지났다. 으레 12시에서 오후 1시에 끼니를 해결했는데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난 것이다. 성 소피아 성당 주변에서 식당을 찾아보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세계 3대 미식국 중 한 나라라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점심을 굶는다는 것은 말이 아니다. 찾아보지만 식당은 보이지 않고 대부 분이 문화유적이다. 영국의 문명학자 토인비의 말마따나 그야말로 노천박물관이다. “다음 코스는 어디로 갈까?” 손 군과 오 군에게 물었다. “토프카프 궁전에 가요” 아야 소피아 성당에서 나온 우린 토프
6개의 첨탑(미나레, minaret). 술탄아흐메드 사원의 푸른 지붕 위 6개 첨탑이 블루 모스크임을 안내한다. 블루 모스크의 탄생은 그 앞에 우뚝 서 있는 성 소피아 성당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솔탄아흐메드 지역으로 이곳 모든 건축물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오스만 제국 14대 왕인 술탄아흐메드 1세는 성 소피아 성당보다 멋진 사원을 건축가 마흐메드 아가에게 짓도록 했다. 1609년 착공해 1616년 완공한 블루 모스크는 술탄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수많은 황금이 제공되었다. 그런데 황금(알툰 - Altun)과 6(알트-alti)란 숫자는 동음이의어로 건축가 마흐메드 아가는 첨탑을 6개로 지으라는 줄 알아들었다.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건축가의 의도적 오류였을까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한 해의 끝날을 나는 이스탄불에서 맞고 보낸다. 또 새 해 첫날을 동양과 서양을 잇는 이스탄불에서 맞고 보낼 것이다. 호텔에서 눈을 뜬 시각은 오전 3시다. 소변을 보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다시 눈 뜬 시각은 6시다. 불을 켜고 오늘 여행할 곳에 대해 책을 읽어본다. 사실 여행지에 대한 사전 공부가 부족했다. 바쁜 일정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사전 지식 없이 여행에 합류했다. 그렇다고 무지한 것은 아니다. 오래 전 학교 교육에서 배운 지식이 머릿속 어느 부분을 아직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은 크게 세 곳으로 나눌 수 있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그리고 아시아 쪽이다. 그 세 구역의 해협을 다리와 배로 잇고 있다.여행할 곳이 너무 많다. 지도상의 구시가 쪽을 훑어본다. 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