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부적절한 행동은 지금까지 논란이 된 `갑질`의 완결편이었다. 이젠 성추문 본질은 물론이고 귀국 과정을 둘러싼 진실 공방까지 벌어져 호사가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직접 사과 요구까지 나오면서 국격 논란으로 확산되니 청와대로서는 방미 성과 자랑은커녕 사태 수습이 발등의 불이 됐다. 갑의 도를 넘는 불법적 횡포는 을의 대응에 따라서는 이렇게 한 방에 추락할 수도 있음을 실증한 셈이다. 남자접대부, 이른바 호스트바가 처음 생겨난 것은 여성 손님이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식 접대문화에서 언제나 을로서 남자 손님의 비위만 맞추던 여성들이 이른바 고객으로 신분 상승한 것이다. 언제나 을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강요당했던 여성 고객이 갑으로서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곳이
산골마을 청송의 한 초등학교에서 주차장을 만들어놓고는 학교 통학버스로 주차장 입구를 꽉 막아버렸다. 학교 통학차량과 교직원만 이용토록 하기 위해서란다. 특히 야간에는 통학버스 4대만이 덩그러니 주차장을 지키고 있는데도 주민들의 주차장 이용을 막아 교육기관답지 않은 용렬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난도 사고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 롯데호텔에서는 입구에 주차한 60대 제빵사 회장이 간 크게도 차를 빼달라는 호텔 지배인의 뺨을 지갑으로 때렸다나 어쨌다나.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은 그는 사과하고는 빵 공장 문을 닫아 버렸다. 졸지에 종업원들만 실직자가 돼 버렸다. 차만 세워두면 주차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골이나 도시 할 것 없이 주차 문제는 이제 모든 장소 입지 조건의 첫 번째가 됐다. 사무실 근처 도심
대통령과 악수할 때, 손을 가볍게 내밀어라. 힘주어 잡지 마라. 그냥 악수하는 시늉만 하라는 거다. 처음으로 대통령과 악수했을 때의 경험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유권자들과 악수를 너무 많이 해서 손에 붕대를 감고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니 대통령의 손을 꼭 잡지 말라고 다그치던 수행원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을 만난 그 기쁨과 감격을 간직하려는 국민의 간절함을 4천만명중의 한 명으로 치부하고 건성으로 대하려는 대통령도 야속했다. 그런 대통령을 너무 가볍게 대했다는 인사가 나타나 세계 매스컴의 비난을 사고 있다. 빌 게이츠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이사장 겸 에너지 벤처기업 테라파워 회장이 한 쪽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박근혜 대통령과 악수한 때문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만났을
대학에 조직폭력배가 침투했다는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 검찰 수사로 밝혀졌다. 폭력배들이 김천과 구미지역의 대학 총학생회를 접수하고 교비를 횡령하는 것은 물론 영세업소들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는 양아치같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폭력배라고 이름표를 달고 다니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폭력이 대물림되도록 대학 당국은 몰랐다는 것인가? 이런 범죄행위가 주변의 적극적 협조는 아니더라도 방조 또는 묵인한 탓은 아닌지 꼼꼼히 들여다볼 일이다. 영화 신세계에서 경찰 이자성은 기업이 되어버린 범죄조직 골드문에 위장 잠입한다. 목숨을 건 그의 조직 침투는 사실 경찰에서 범죄조직을 와해하기 위해 만든 작전이었고 그는 용병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는 조직에서 보스의 죽음으로 벌어진 피의 후계자 다툼에서 내부의
TV에서 농촌드라마 전원일기가 끝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TV속 농촌은 일용이와 응삼이가 등장하는 김회장님 동네다. 기웅아재와 단비가 주말이면 경북지역 동네마다 찾아다니며 고향 소식을 전해주는 프로그램도 그렇고 늙은 뽀빠이가 일요일 아침마다 전국의 농촌을 찾아 어르신들의 애환을 들어주는 프로그램도 비슷하다. 이들이 찾아가서 연출하는 TV 프로에 등장하는 농촌은 낭만을 넘어 다분히 신파적이다. 반세기 전 배곯던 옛날로 되돌아가면 며느리를 학대하고 일만 시키는 가난한 시어머니가 있고 노름판과 술판을 전전하는 사내가 남편으로 등장한다. 그러고는 고생담이 이어지고 그 모진 세월 속에 훌륭하게 키워낸 자식들이 부모의 원수(?)를 갚는다. 해피엔딩이다. 그런 프로들이 직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베이비부머에게
자주 찾는 회사 근처 작은 식당의 입구 문틀위에 빨간 부적이 붙어 있다. 재물과 보화와 사업운과 세간 출세운을 불러 들인다는 내용이다. 부적 한 장으로 그런 운을 기대하는 식당 주인의 소박한 꿈이 보이는 것 같다. 그 부적 한 장으로 식당뿐아니라 식당을 드나드는 고객들 모두에게 그런 운이 따라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치 우리 정치에서 보는 수많은 슬로건처럼.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개념을 구체화한 슬로건이다. 그 슬로건이 어려우면 `거시기`가 된다. 5.16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들을 단합시키고 허리띠 졸라매게 만든 것도 바로 그 슬로건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슬로건을 통한 이념적 결속을 가져온 천재였다. 재건으로 시작해서 건설, 자립, 증산, 민족중흥, 새마을 운동 그리고는
수십 년만에 만난 어릴적 고향 친구가 건네준 명함에는 이학박사 XXX라고 뚜렷이 박혀 있었다. 그가 한의약계통에 종사한다고 들었는데 느닷없는 박사라서 그의 명함과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가 구태여 박사 학위를 고집하는 이유를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 사람을 상대로 신뢰를 줘야 하는 그의 사업을 위해서라는. 배우 김혜수씨와 방송인 김미화씨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을 놓고 세간의 뒷담화가 무성하다. 김혜수씨는 2001년 성균관대 언론대학원의 `연기자의 커뮤니케이션 행위에 관한 연구`에 대해 표절을 인정하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김미화씨는 2011년 같은 대학원의 석사논문 `연예인의 평판이 방송 연출자의 진행자 선정에 미치는 영향`의 표절 논란에 대해 “심각성을 간과했다”면서도 “트집잡기 위한 것”이라 항변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결국 물러났다. 38일 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관진 국방부장관을 유임시키는 선에서 물러섰다. 그러면서 스스로 세운 원칙을 무너뜨렸다. 정치철학을 달리하는 이명박 정부 각료와는 함께 일 할 수 없다며 이용걸 차관을 국무회의에 출석시켰던 박 대통령이었다. 이쯤되면 박 대통령도 스스로의 인사스타일을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과 야당의 충고를 반영해야 한다. 벌써 6번째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두 아들의 병역비리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지명 닷새만에 사퇴한 데 이어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후보자, 그리고 성접대 파문으로 물러난 김학의 법무부차관 후보자,여기에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까지. 하나같이 임명 전 검증 단계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못한 때
지금 포항은 도시 전체가 우울하다. 포항의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포스코의 경기가 예전같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을 배출했던 도시로서의 영광은 잠시였고 대통령 임기 가 끝나면서 승자의 저주 후유증이 만만찮다. 무엇보다 실세였던 형님을 비롯, 주변 인물들이 영어의 신세로 전락했다. 더구나 그 형님의 지역구 후임자가 상처투성이로 국회에 입성하더니 아예 식물 국회의원이 돼 버렸다. 지역 입장을 대변할 대표조차 유명무실해졌다. 지금 포항의 무기력증은 바로 정치력 부재에서 출발한다. 최근 포항에는 큰 산불이 났다. 불이 나자 박승호 포항시장은 물론 이병석 국회부의장까지 급히 현장으로 나와서 주민들을 위로하고 피해 복구와 지원책을 짜내느라 지혜를 모았다. 그런데 난리통 어디에도 김형태 의원의 모습은 보이지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시점에서 국회는 움직이지 않고 미래부를 둘러싼 정부 조직 개편안 논란과 혼란 상황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고 했던 저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며 “제가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켜내기 어려웠다”고 했다.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주 국회에서 가진 사퇴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이다.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고 했던 꿈?`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고귀한 분의 자기 희생이자 봉사를 스스로 내팽개친 꼴이다. 그럴까. 장관이라는 자리, 명예와 부(엄청난 연봉과 또 경제적 이득 및 이권에 관여할 수 있는 권리) 권력까지 갖는 자리다. 그것은 개인의 영광에 그치는 자리가 아니다. 김 전 후보자의 능력은 알려진 것만으
초등학교 즈음엔가 이순신 장군의 위국충정을 이야기하면서 등장하는 시조를 배울 때다.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에서 `일성호가`는 무슨 뜻이며 `애를 끊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지금이야 인터넷 검색만으로, 또는 한자 뜻풀이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이 시조를 배울 때는 그러질 못했다. 한 줄기 슬픈 피리소리쯤으로 해석되는 `일성호가`의 의미는커녕 분위기를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선생님도 몰랐던 것은 아닐까. 기도를 유지하라. 군 훈련소에서 응급처치를 배우면서 기도를 유지하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내가 알고 있는 기도는 손바닥을 모으고 간절히 바라는 기도에서 단 한 발자국도 진전되지 않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 기도 유지라는 것이 음식물이 식도를 타고
1천824일 남았다. 오늘 취임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남은 날수다. 취임식날 퇴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고 마뜩찮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삼가하고 자신에게 엄격함으로써 국민들의 존경받는 성공한 대통령을 담보하는 부적으로 삼기를 바라는 뜻에서 충언으로 박근혜 대통령님의 취임을 축하드린다. 오늘같이 기쁜 날. 어찌 새 내각이 대통령 취임을 함께 하지 못하고 지난 정권의 장관들과 어색한 동거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선거에서 진 야당이 용심을 부린다고 탓할 일만은 아닌 것이, 패배자를 보듬는 승자의 여유를 볼 수 없었기에 하는 말이다. 승부에서 졌고 그래서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야당에게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빼앗겠다는 승자의 오만이 조직개편의 실패를 불러온
`7번방의 선물` 감독 이환경이 한 방송과 인터뷰하는 걸 듣고는 무릎을 쳤다. 그렇다. 예승이 역을 뽑는 오디션에서는 갈소원의 점수가 꼴찌였다. 그런데 감독은 이 꼴찌를 선택했다는 것 아닌가. 그의 천진함 때문이란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 그 `아이다움`이 예승 역으로 선택된 배경이다. “무서운 이야기를 잘 한다길래 시켜봤더니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렇다. 어린이란 저런 것이다.” 이 감독의 설명이다. 아무리 연기를 잘 해도 실제 상황보다 더 리얼하게 연기할 수는 없다는 것을 감독은 갈소원 어린이에게서 확인한 것이다. 뻔한 이야기. 여섯 살 예승이가 흉악범들과 함께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는 신파다. 이 영화에서 바보 용구는 오로지 딸 예승이만 생각하는데 그렇게 둘의 천생 궁합에는 예승이의 천연덕스러움
청문회에 불려갈 기회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필부지만 남 평가하는 데는 이골이 난 대한민국 보통사람들이다. 예전 같으면 “자신의 평가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선거에 출마해보라”는 항담이 있다. 요즘 같으면 “세상의 평가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청문회에 서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물론 청문회에 설 정도의 깜냥이 되어야겠지만. 경북 어느 지방의 실제 상황이다. 아버지는 지역사회에서 유지로 행세하면서 몸집을 불려왔다. 아무도 그의 능력이나 인격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는 지방의 준공무원격인 조합의 말단 간부였다. 그가 나이가 들어 은퇴한 뒤 자신의 우산 아래에서 자란 2세도 지역사회에서 업을 영위하게 됐다. 그의 아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를 `존경`하고 `예우`해 주는데 고무돼 스스로도 자신의 신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즈음의 얘기다. 홍콩 여행을 갔을 때 가이드는 홍콩의 여러 관광지들을 주마간산식으로 이동하고는 우리 일행을 면세점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아무도 불만이 없었다. 화장품이며 핸드백이며 양주에다 악세서리까지, 세계 유명 브랜드의 소위 명품들을 원 없이 구경할 수 있는데다 가격 또한 시중보다 싸다지 않는가. 모두가 쳐다보고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눈 호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지난 해 경주에서 중국의 경제인과 언론인들을 초청해 한중경제포럼을 열었을 때였다. 참석한 경제인은 물론이고 취재 온 기자들조차 경주에 면세점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에게 경주에 면세점이 없고 가까운 면세점이라야 70km 쯤 떨어진 부산에 있다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면세점에 쇼핑하러 갈 수 있도록 일정을 단축하
노인들은 고단하다. 자살하는 노인들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4배나 많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노인들의 삶도 갈수록 팍팍해져 간다. 이미 상당수 농어촌 지역은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인구 10만명당 노인 자살은 2001년 14.4명에서 10년만인 2011년 31.7명으로 2배도 더 높아졌다. 더욱 기가 막히는 사실은 일하는 노인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가장 늦게까지 일해야 만 살아갈 수 있는 현실, 노인들이 일자리에 내몰린다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복지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한 때 우리사회의 주축이었던 지금의 노인들, 오늘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온 몸으로 일구어낸 주인공들. 그들의 스산한 노년은 길거리에 팽
책 읽기의 좋은 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중 덤으로 따라오는 건, 남의 잘 쓴 글을 읽다 보면 어떻게 쓰면 되는지 그 방법을 덤으로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피지기해야 백전백승하는 건 글쓰기에도 통용된다. 물론 방법을 아는 것과 실천하는 건 별개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잘 쓰기 위해선 잘 읽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고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너무 많은 답이 있어 답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건 `읽기`이다. 소설가 이승우 역시 `잘 읽어야 잘 쓴다`고 했다. 그처럼 잘 쓰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읽는 것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그들은 `글 쓰는 법` 등에 대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묻지 않는다. 이미 책 속에서 답을 얻었기 때문에 물을 이유가
올처럼 눈이 자주, 또 많이 내리는 겨울이면 일본 영화 러브레터 속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가 잘못 보낸 연애편지가 내게 올 듯 해 괜히 여러 연하장들을 이리 저리 훑어본다. “잘 지내세요? 나는 잘 지냅니다” 첫사랑처럼 새콤달콤하고 슬프면서도 아련한 그런 추억을 담은 편지. 새해 눈 속을 뚫고 생각도 않던 소식이 불쑥 찾아올 것 같은 그런 새해 아침이다. 비록 답장을 쓰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 버렸지만 그런 편지라면 원하지 않은 편지라도 괜찮겠다. 반가운 소식이 날아 들었다.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로 전하는 어느 선배의 아들 결혼 소식이다. 명절이면 손자 손녀를 데려와 한바탕 재롱을 피웠다는 친구의 자랑을 부러워하면서 정작 자기 아들은 도무지 결혼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며 속상해 하던 선배였다. 그 소식을
눈이 내려 도시 전체가 눈 속에 파묻혔다. 도로는 주차장이 됐고 차 속에 갇힌 시민들은 대구시의 준비되지 않은 제설행정을 비난했다. 그런다고 길이 뚫릴 리도 없지만 욕을 퍼부어서라도 가슴 속 분이라도 풀어야겠다는 듯. 그래도 곳곳에서 모범운전사를 비롯한 용감한 시민들이 나서 염화칼슘을 뿌리고 제설작업을 하는 모습은 성숙한 우리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듯하여 흐믓했다. 우리네 일상사도 언제나 뒤처리를 깨끗하게 해야 도로가 도로로서 제 기능을 하듯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눈 속에서 깨우친다. 혼자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은 단연 식사 문제다. 익숙해지면 괜찮아 지겠지만 혼자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 식사하는 그 멋쩍고 허허로움이라니. 아침부터 식당을 찾을 수도 없고 보니 혼자 식사하는 싱
“어머니, 좋으시겠네요?”- “무슨 소리냐, 그게?” 대통령 선거 개표가 끝나고 당선인이 확정된 날 아침 식탁에 앉으며 하는 아들의 심드렁한 비아냥에 어머니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투표에서 각각 지지하는 후보를 찍고,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상식 아닌가. 어머니는 장성한 아들에게 특정 후보를 찍으라고 권유하기는 커녕 심지어 누구를 지지한다고 표시낸 적조차 없다. 개표방송이 끝나고 소위 정치 전문가라는 인사들이 TV에 등장해서는 이번 대통령선거의 표를 분석하느라 분주했다. 대부분 보수층의 결집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중도 사퇴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TV 토론에서의 막말이나 젊은 층으로 예측되는 진보진영의 “세상을 바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