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일은 여러 사람들이 얽혀서 진행되므로 각자가 그 일에 관여하는 과정이나 보는 관점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견(異見)이 나올 수 있다. 그 중 용서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갈등을 느끼면서 그것을 억누르는 과정을 말한다. 용서는 친밀감을 먹고 자란다. 용서를 주고받을 일은 거의 대부분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생겨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부부와 가족이다. 그래서 `너의 원수는 너의 집 안에 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이기심이나 자기중심적인 말에서 상처는 만들어진다. 서로 상처를 준다. 같은 것일지라도,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더 큰 충격을 느끼게 된다. 나와 먼 거리의 사람과는 문제가 거의 없다. 공통의 관심사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종류의 일도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보다, 믿었던
60이 넘은 나이에 과거를 회상해 본다. 학생시절 어느 날 거울을 보는 순간, 거울 속의 나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이 진하게 풍겨 나왔다. 풋내기 대학생인 나는 30~40대의 아버지는 이해됐으나 50~60대의 아버지의 마음이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때는 아버지와 대화하거나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나는 어려운 생활 때문에 아버지와 다투기도 했다. `아버지가 사는 모양으로는 살아가지 않겠다. 아버지 보다 성공한 사람으로 살겠다. 나의 자식을 위해, 나는 아버지가 나에게 해 준 것보다 더 많이 해 줄 것이다`고 다짐도 여러 번 했다. 여러 번 불만을 표시하면서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절대 권위는 인정했다. 그러나
12년전 나는 다니던 직장의 이동배치로 안동과의 인연을 갖게 되었는데, 도처에 산재한 유·무형의 인문적 자산과 가치는 객지생활의 여백을 넉넉히 채우고도 남을 만큼 내 마음의 정서적 반향을 불러 왔다. 4년 남짓 생활을 마무리할 즈음의 일이다. 내가 안동을 떠나기로 결정된 그날 저녁, 봄을 재촉하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평소 알고 지냈던 지인과의 송별저녁을 끝내고 막 골목길을 나서는 순간 낯익은 휠체어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의자에 앉은 아버지와 뒤에서 밀면서 따라오는 아들, 이들 부자는 오늘도 하루종일 길안으로, 반변으로 갑갑한 심신을 달래려 산천을 호흡하다가 날이 저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산도 없이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채 비를 맞으며 어두운 골목을 향해 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이번 올림픽 대회 경기를 보면서 운동시합은 인간 세상의 축소판이란 것을 절감했다. 매일 끊임없이 피나는 노력을 했으면서도 1등은 한 명 뿐, 나머지는 2등 이하로 몰려 버린다. 그리고 자기의 등수는 노력의 양에 비례하지 않고 오히려 행운과 불운 등이 얽히고 뒤섞여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변수가 혼재돼 있다. 함정, 그물, 악재, 우연, 올무 등이 우리들 생활 옆에서 항상 따라다니고 있다. 왕기춘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14초를 남겨두고 어깨 부상으로, 이번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메달을 놓쳤다. 펜싱의 신아람에게는 1초가 시간이 흘러도 계속 1초가 되는 모순의 희생양이 됐다. 아슬아슬하게 1등을 한 선수도 있었다. 기보배의 마지막 화살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상
사려 깊은 생각은 조용한 마음이 지속돼 내면을 안착시킬 때 비로소 가능하다. 평온하게 사람을 대하면 그는 자기 주위마저 평화롭게 만든다. 그러나 일상의 삶은 불안의 연속이다. 조용할 수가 없다. 그로 인해 심란할 때 사람들의 마음은 흔들린다. 사방에서 일어나는 여러 여건들이 우리의 마음에 풍파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평화를 바라면서도 마음속에는 탐욕과 증오심, 미움, 시기심 등으로 화평한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원한과 대결을 계속 부추긴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하면 영웅시하고, 세상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투사정신을 부추기고 있다. 과격함을 싫어하고, 평화를 지향하면 나약한 사람으로 몰아 부친다. 인류사에서 보면 평화를 주창하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죽임을
중세에 인간은 생활 전반에 걸쳐서 획기적인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증기기관의 발명, 프랑스 혁명, 가톨릭교의 변화, 시계의 발명 등으로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됐다. 사리판단을 내리는 새로운 가치는 `나(我)`로부터 출발하기 시작했고 가톨릭 교리의 자리에는 돈과 시간이 들어섰다. 사람은 자기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해서 자율성을 점차 갖게 됐다. 돈은 모든 것의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가 됐고 최근에는 거의 모든 기술들이 세계화됐다. 그에 따라 재화의 흐름은 무서울 정도로 빨라졌다. 조금 전 일어난 미국의 사건이 당일, 세계의 곳곳에 영향을 준다. 돈은 규모가 커져서 세계 속으로 아주 잘 흘러 다닌다. 그에 따라 돈을 쓰는 시간단위는 짧아진다. 경제적 성공을 위해서는 빠른 템포가 제일 중요한 열쇠다.
학부모는 현재 자기들의 사회적 위치는 젊었을 때의 교육 정도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즉, 부모들은 대학이란 자녀들의 안정된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의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대학은 취업을 위한 자격증을 따는 곳이 됐고, 취업학생 수의 다소(多少)가 그 대학의 사회적 평가의 기준이 됐다. 그러나 요즘은 대학도 학생 수가 줄어듦에 따라 그럴 듯한 말로 학생들을 유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학문 연구와 교육을 위한 기관이라는 원래의 사명에서 점차 벗어나 일종의 마케팅을 하는 학교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교실에서는 전체 학생들을 선생님께 향하게 해 두고 정신없이 일방적으로 주입만 시킨다. 학생들이 알려고 하는 것이 뭔지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시험에 합격하면 교육은 완성되고 교양인의 기초를
어떤 모임에서든지 큰 소리를 치는 사람은 대부분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이 나서 입에 거품을 문다. 그런 사람은 돈을 비교적 많이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남다르게 관심을 가진 결과였다. 재물이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재물을 탐한다. 인간의 생리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한다. 돈 없이 가난하게 살아보면 많은 불편을 느낀다. 큰 소리를 한 번도 쳐 보지 못한다. 가장은 권위가 서지 않고 부인은 물건을 사려고 시장으로 나가기가 싫다. 아이들은 먹고 싶은 것을 사달라고 보채고 집안 분위기는 짜증으로 가득 찬다. 누군가가 그에게 “돈이란 많이 가질 필요는 없다”고 하면 그는 화가 난다. 돈이 없어서 쩔쩔매는데 적당
`희생 나눔 봉사`라는 교훈을 가진 어느 장애인 학교. 교회에서 지도층으로 봉사하고 있는 노련한 교장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사건이 영화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십자가 배지를 달고 음흉한 생각을 가진 교장, 그의 악행을 도운 직원들, 뒷돈 받은 경찰, 전관예우의 변호사, 판사의 왜곡된 판결, 이 모두는 함께 어울려서 한 편의 영화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냈다. 선(善)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모순과 부조리로 꽉 채워진 영화였다. 애플의 창업주, 세계적인 기업가,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았던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저서는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이다. 그는 시리아 출신의 아버지가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 중에 태어났다. 그리고는 그는 양부모 밑에서 자라나는 모순과 부조리의 역사를 가지고
우리는 우주를 `무한대로 크다`고 말한다. 우주가 언제 어떻게 생성됐는지를 인간은 모른다. 그들은 작은 머리로 생각해 우주의 시작으로 빅뱅설(big bang theory)을 주장하기도 한다. 지금도 엄청난 속도로 커지고 있다고 하나 이것은 유력한 학설 중 하나이다. 또 우주에서 시간은 스스로가 우주와 함께 존재할 뿐 인간은 시간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한다. 시간은 원래 태양계에 속한 것이 아니고 무한대의 전체 우주를 이루는 하나의 속성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시간이란 신이 창조한 우주의 특성이며 그 시간은 우주가 시작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조시대에 관리이자 지식인이었던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성인 공자가 240년간의 역사를 정리해 이름을 춘추라 했지만, 모든 일은 곧 한 가지(
남녀 간에는 만나자말자 눈에 또는 서서히 사랑에 빠져 들면 장래의 행복을 생각하게 된다. 둘은 함께 새로운 지평을 향해 박차고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드려 한다. 그 사람들은 늘 기쁘고 명랑하며 행복해 보인다. 웃음 띈 얼굴로 매사에 자신감을 갖는다. 젊은이는 부모를 떠나서 상대자와 함께 살면서 스스로가 만족한다. 때로는 지금까지 사회에서 통용되던 활동 한계를 좋은 기분으로 넘어 서기도 하면서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자기는 그 행동을 용기로 여기지만 주위 사람들은 종종 조금 과격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들은 살아가면서 상대에게서 어떤 특징을 발견해 좋아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상대에게 기쁨과 찬사를 보내고 인정해 줌으로써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서로 사이에는 생각의 방향,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면 의당 나약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손해를 봐도 웃기만 하는 또는 겸손해 다른 사람에게 굽신거리기를 잘하는 자로 치부해 버린다. 여성이 온유하면 좋은 사람으로 여긴다. 그러나 남자가 온유한 성격이라면 고분고분하고 그냥 착하기만 한 자를 연상한다. 더러는 무능한 자 또는 뼈대 없는 자로 연체동물과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 반대로 성공적인 사람은 터프한 성격으로 강인하고 거만한 성품을 가진 자들로 인식한다. 때로는 무서울 정도로 무자비하거나 폭력이나 복수심도 가지고 있는 자로 여긴다. 그래서 현 사회에서는 온유한자란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 무시당하거나 짓밟혀도 저항을 못하는 자로 본다. 그 반대로 성공한자는 자기주장이나 개성이 강한 자들을 연상한다. 이런 사람은 모든 전리품을
행복해 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기원을 신에게 아뢰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을 침묵 속에 놓아두고 명상에 잠기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큰 바위 같은 위압적인 형체물에 빌기도 하면서 소원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온갖 곳을 기웃거려 본다. 그러나 우리는 외부의 힘을 빌리기보다는 스스로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 만들 수 있다. 행복을 위해서는 긍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불안과 우려의 마음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면서, 불행을 만드는 대장장이가 돼 버린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금방 왔다가 속히 사라지는 특성이 있다. 그럼 누가 더 크고 오래 지속되는 행복을 느낄까? 어떤 사실에서 기쁨 등을 많이 느낄수록 그는 더
죽음은 누구에게나 시점은 다르지만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된다. 이 사실로 볼 때 우리는 인간 모두가 동일한 조건에 놓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나 같은 곳으로 간다. 장례란 모든 인간이 하나로 되어지는 절차를 말한다. 죽음은 자연스런 것으로 연습할 수 없고 또 피할 수도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죽음과 동반한다. 죽음은 삶 속에 항상 있다. 하루를 살아가면 하루만큼 살 수 있는 기간이 줄어든다. 사람은 자기가 느끼는 고뇌와 아픔, 상황에 대한 무력감, 일상에서 당하는 좌절, 노쇠나 질병에 의한 쇠잔함 등으로 죽음과 이미 접촉하고 있다. 그래서 죽음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만 대면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높고도 험한 파도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고난을 주지만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는 성경을 읽기 위해 촛대를 훔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소설에서는 어디까지가 절도행위인지에 대해 기준과 범위가 헷갈릴 때도 있다. 선과 악이 같은 장면에서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훔친 물건은 훔친 것이다. 그것은 장물에 속한다. 경전을 읽기 위해 훔친 절도행위나 굶주린 아이의 배를 채워 주기위해 빵을 훔치거나 사흘 굶어 눈이 뒤집혀서 식빵을 훔치든 정황참작은 될 수 있으나 절도 행위는 틀림없다. 절도 행위는 주로 가난한 자의 행위다. 사회에서 가난함은 약자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들의 가난함은 자신들의 능력 부족이 원인일 수 있지만 가진 자들이 행하는 권력의 부당한 행위 때문인 경우도 더러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줄어들고 있지만 그들이 빈한한 자의 노동의
사람들은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생각에 잠겨 걸어가는 노인을 볼 때 지혜 있는 노인이 우아하게 산보하는 것으로 여긴다. 노인은 연령이 깊어 갈수록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된다. 그로인해 개인이 가지고 있는 편견은 줄어들면서 지혜의 양은 점점 늘어난다. 지혜로운 노인이란 인생에서 겪는 어려움에 잘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방법을 습득한 어른을 말한다. 이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과 인내로서 자기 억제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때를 의미한다. 또 어떤 일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진행방향을 잘 예견함으로써 항상 마음속에 미소가 넘치는 노인을 말한다. 그들은 매사에 긍정의 힘을 가지고 점점 더 현명해지고 젊을 때보다 나이가 들수록 더 행복해 진다. 노화를 사람들은 신체의 퇴화과정으로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일이며 그 중에서 가장 긴요한 것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일 것이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천륜이요, 인륜의 대사이며,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이 아닐 수 없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새삼 말할 필요가 없지만 예로부터 자식이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불효가 하도 막심하여 성현들의 관심사 가운데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문제가 바로 부모에 대한 효(孝)의 문제였다. 불교의 `부모은중경`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여러 스님들과 함께 사위성 밖 남쪽으로 가다가 해골 무더기를 보시고는 오체투지(五體投地)하여 절을 하셨다. 이 모양을 본 아난존자가 “부처님은 삼계(三界)의 큰 스승이시고 사생(四生
근래에는 여러 학교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소식을 자주 들었다. 그들은 폭행을 당하거나, 또는 많은 학습량에 심리적 압박을 감당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육체는 녹초가 돼 버리고 정신적인 면도 허물어져 내리는 것 같았을 것이다. 지금의 학교에서는 오로지 지식축적만을 강조한다. 달달 많이 외우면 된다. 회사의 직원 채용에도 인격의 성숙도나 인간성, 그리고 학문의 전공분야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현실사회에서는 학벌이 제일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건강하게 커야할 청소년이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혹사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학교에서 놓친 부분은 학원 등 사교육으로 메워 나간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이다. 때로는 고뇌 때문에 폭행으로 빠져 드는 것 같다. 안타깝다. 자
약 30년 전에 강원도 산악지역에서 보이스카웃 잼버리 대회가 있었다. 주위가 절벽인 고지대에 있는 평지에서 언론의 관심 속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그러나 환경운동가들은 동물들의 이동 통로를 막고 있었으므로 항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야간에 서울에서 영남지역으로 오는 기차를 타 보면,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는 전깃불이 켜져 있다. 불빛이 화려하다. 이런 형태로 생태계가 변해버린 곳에 과연 짐승들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조국 분단이라는 지극히 불행한 일로 생겨난 DMZ에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것이 동물의 입장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다. 통일이 된 후 공업지대에서 만들어진 생산품들의 가치와 자연 보존 어느 것이 미래를 위해 더 효율적일까? 인간은 머리가 좋다. 그래서 인망으로 고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청년들은 보기에 좋다. 땀으로 적셔진 런닝셔츠가 몸에 착 달라붙은 모습은 젊음의 상징이다. 젊음은 힘을 하늘로 솟구치게 하고, 그 힘을 자기가 추구하는 곳에 오롯이 부어 넣을 수 있는, 인생의 최고봉 시기이다. 젊음의 시절은 삶을 가장 사랑하는 때이다. 사랑하면 즐겁고 근심이 없다. 세상은 사랑하는 자의 것이다. 신록을 사랑하면 그 아름다움은 그의 것이고 산을 사랑하면 그것도 그에게 속한다. 즐거움으로 넘쳐난다. 그는 열정으로 모든 것을 자기 소유로 만든다. 그래서 삶을 사랑하고 즐기고 긍정하면, 튼튼한 자기 인생이 만들어지게 된다. 열정과 고난은 같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어로는 이 둘을 똑 같이 passion이라고 한다. 일생에는 위기와 고난이 있다. 그것은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