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가 유근택 교수(성신여대)의 그림은 일상의 한 귀퉁이를 화면에 담아낸다. 세상에 빈약한 대상은 없다는 자각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그림은 우리네 삶을 함축적으로 압축한다. 알다시피 `일상`이란 화두(話頭)는 2000년대 우리 미술동네에서 즐겨 쓰던 화두(畵頭)이다. 20~40대의 젊은 작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하고 시도해본 주제다. 민주화와 전지구화라는 거대담론이 묵직하게 내려앉던 1980~90년대 미술계에서는 가급적 꺼려했던 소재, 설령 작품에 담는다 해도 키치적 방식을 가미하거나 입체설치-영상의 스펙터클한 방식으로 다뤘던 화제(畵題)를 그는 묵묵히 `한국화`에 포개어 나갔다. 비엔날레와 레지던시라는 현대미술을 상징하는 제도 속에서 큐레이터와 평론가의 시야에 포착되기 위해서는 `비` 일상적-서구적 작업
오늘의 작가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2천년대 한국문학에서 빠질 수 없는 이름이 된 정미경 작가의 신작 소설집 `프랑스식 세탁소`(창비)가 출간됐다. `프랑스식 세탁소`는 그가 5년 만에 선보이는 네번째 소설집이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7편의 단편을 통해 안온해 보이는 일상의 이면에 도사린 인간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한편 각자가 추구하는 아름다운 삶과의 괴리 속에서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때로 “설명할 수 없는 결정”(`타인의 삶`)을 하며 살아가게 되는 우리가 진정 “우리였던 순간”(`번지점프를 하다`)이 언제였는지를 사색하는 다채로운 인물들의 삶이 작가 특유의 단단한 문장과 깊은 성찰을 통해 펼쳐진다. 정미경 작가는 1987년 신춘문예 희곡
하위문화의 거칠고 생생한 시적 에너지를 이용해 고급문화를 기습하는 시인 황병승이 세번째 시집 `육체쇼와 전집`(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황병승은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에서 모호한 상징들로 주류 질서 바깥의 것들을 과감히 동원함으로써 문단으로부터 양 극단에 놓인 평가를 받았다. 호평과 혹평이 뒤엉켜 밀려드는 상황에서 나온 두번째 시집 `트랙과 들판의 별`은 문화라고 이름 붙은 것들의 토대가 얼마나 허약하고 덧없는가를 끈질기게 고발했다. 독자는 6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황병승 특유의 발칙한 화법을 한껏 만나게 된다. 그의 생생한 도발은 언제나 자발적 실패로 귀결되는데 이는 다시 한 번 기성의 질서를 통렬히 조롱하는 효과를 발한다. 총 46편의 시를 통한 황병승과 세계의 밀고 당
천재적인 기억술로 유명하며 두뇌 계발 강연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에란 카츠가 스토리로 들려주는 두뇌 계발의 기술 `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민음인)을 출간했다. 현재 이 책은 이스라엘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전작 `천재가 된 제롬` `슈퍼 기억력의 비밀`로 국내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던 저자는 그동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문화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번 책에서는 유대인의 지혜는 물론 아시아 문화의 아름다움과 지혜, 특히 한국의 우수성이 책 곳곳에 드러나며, 이야기를 통해 뇌와 마음을 위한 다섯 가지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저자는 유대 문화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문화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하는 잠재력을
`분노하라`라는 작은 책 한 권으로 세계인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깨뜨린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이 2012년 발표한 마지막 자서전이 출간된다. 지난 2월27일 향년 95세로 타계한 이래 전 세계적으로 그의 삶을 재조명하는 붐이 일고 있다.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문학동네)는 스테판 에셀이 세상을 떠나기 1년여 전인 2012년 프랑스에서 발표한 자서전으로, 원제는 `Tous comptes faits… ou presque(이제 모든 것을 말하지요… 거의 모든 것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책의 한국어판은 현재 파리에 살고 있는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목수정이 번역했다. 마치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진보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불꽃같은 신념으로 자신의 지난 삶을 낱낱이 회고한
한국소설의 참신한 상상력을 발굴하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창비장편소설상의 6회 수상작 김학찬 장편소설 `풀빵이 어때서?`가 출간됐다. `풀빵이 어때서?`(창비)는 소재에 대한 장악력, 생생한 인물 묘사, 깔끔한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며 재치있는 발상과 기발한 화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는 평가를 받았다.(`심사평` 196~97면). 작가 김학찬은 진중하면서도 균형 잡힌 문제의식으로 현실세계를 진단하고 이를 재기 발랄한 이야기로 재창조해내는 귀한 재주를 가진 신예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뛰어난 구성력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솜씨는 앞으로 그가 펼쳐갈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가볍고 경쾌한 문장, 영상을 보는 듯 생생한 묘사, 태연한 말장난과 은근한 농담까지. 소개팅 현장을
1999년 `진주신문` 가을문예와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소설가 원종국의 두번째 소설집 `그래도`(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하나의 모티프를 다양하게 변주해가며 탄탄한 이야기 위에 통통 튀는 상상력을 선보여온 원종국의 14년간의 시도와 실험이 고스란히 담겼다. SF적 상상력과 실험적 기법을 동원해 생명 복제와 이를 둘러싼 철학적 문제를 선구적으로 다루며 지속적으로 발표된 `믹스언매치` 연작 3편을 비롯한 총 8편의 단편이 이 소설집에 수록됐다. 이 책은 어딘가 한쪽씩 고장 나고 쪼그라든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그래도”의 가능성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한다. 멋진 해결이나 대단한 해소 없이도 자조와 좌절에 파묻히지 않는 `그래도`들의 이야기가 읽는 이들의 마음 한편에도 작게나
“말들이 징검다리고 밥이고 우주고 엄마고 바로 당신이었던 그 무렵, 낙오된 귀를 열어젖히는 한없이 낯선 소리, 에르호 에르호….” -오은 `그 무렵, 소리들` 중에서 (`에르호`는 `나`라는 뜻을 품고 있다.) “한국 시에서 소홀히 취급되었던 언어유희의 미학을 극단까지 몰고 간다”(시인 정재학), “스스로 생장한 언어의 힘으로 새로운 시적 규율을 만들어가는 시인”(시인 이재훈), “언어가 구성하는 사회적 조건과 가치를 의심하고 질문하게 한다”(평론가 허윤진)는 평을 받으며, 한국 시의 또하나의 `스타일`로 자리매김한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2002년 `현대시`를 통해 만 스무 살 나이로 등단한 오은 시인의 첫 시집이었다. 그가 4년 만에 58편의 시를 들고 돌아왔다. 시
“지옥 그림은 항상 그려졌어요. 사는 게 고통 아닌 때가 없었나보죠.”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이 말했던가. 최은미의 단편들을 읽고 나면, 문득 이 말이 다시 떠오른다. 고단한 일상의 한순간에 희망의 메시지처럼 붙들고 싶기도 했던 저 말이, 그러나 다시 보니, 더욱 서럽다. 멀리서 바라보는 코미디만큼 서글픈 것이 또 있었던가. `희망`이라는 말처럼 허망한 것이 또 있었던가. 그 안에 파묻혀 있는 이들에겐 더없이 고통스러운 날들의 연속이지만 한 발짝만 물러나도 한 편의 소극(笑劇)이 되어버리는, 그래서 더욱 서글픈 삶의 모습들. “어떤 곳을…. 지옥이라고 하나요.” (….) “사방이 막혀서 빠져나갈 기약이 없는 곳. 문헌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무
역사상 최고의 전기 작가이자, 심리소설의 대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생전에 완성한 유일한 장편소설 `초조한 마음`(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오스트리아 빈의 유복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츠바이크는 역사적 통찰력과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심도 깊은 해석으로 발자크·스탕달·톨스토이·에라스무스 등의 전기를 쓰며 세계 3대 전기 작가로서 명성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인간 심리와 무의식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묘사가 담긴 소설로 필력을 인정받았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유럽 최고의 작가로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였다. 츠바이크는 시, 중·단편 소설, 전기, 희곡 등 여러 장르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으나 장편소설은 많지 않다. 그나마도 다른 작품은 사후에 유고 더미에서 발견되어 출간된 것이고, 츠바이크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는 진솔한 언어와 빼어난 감수성으로 전통 서정시의 감동을 수많은 독자들에게 선사해온 김용택 시인의 신작시집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창비)이 출간됐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사라지는 것들과 곁에 남아 있어주면 좋겠는 것들”(이철수, 추천사)을 애틋한 그리움으로 노래하며 자연의 숭고한 아름다움과 그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삶의 존귀함을 일깨운다. `섬진강` 연작 4편 새롭게 수록 하찮은 존재들의 무한한 가치 노래 한국문학 기념비적 성과로 평가 우주적 질서를 관조하는 고요한 사유의 세계와 물질적 욕망에 포섭돼 삶의 진정한 가치와 참된 행복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이 시대를 통렬하게 일갈하는 우수 어린 목소리는 김용택 시의 새로운 진경을 이룬다. 우선 눈에 띄는 점
신화와 이성은 원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됐다. 플라톤 이후 둘은 대립관계에 놓였고, 서양철학은 로고스의 역사로 이행했다. 신화를 지워낸 공백에 써내려간 이 역사는 어쩌면 말소의 역사요 왜곡의 역사다. 그러나 예술의 토양이 신화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예술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신화적 흔적을 가리키는 또다른 이름이 될 것이다. 하이데거는 그 흔적이 오히려 지금까지 역사를 가능하게 한 근원이라는 것, 또한 역사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심연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유를 전회하며 또다른 시원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이 심연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새로운 철학의 가능성은 바로 이 심연 속에서 찾아야 했다. 신화의 흔적, 예술은 `존재의 흔적`이 새겨진 철학의 마지막 가능성이었다. 하이데거에게 예술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의 작품은 국내에 10종이 소개됐고, 그 책들은 모두 이난아(터키 문학 박사, 한국외대 강사)가 번역했다. 그녀가 10여 년간 파묵의 책을 번역하고 연구하고, 또 그와 교류해 온 결과물로, 파묵에 대한 국내 최초의 연구서를 펴냈다. 오르한 파묵은 세계 문학에서는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전 세계 문학계의 거물로 우뚝 선 인물이다. 이난아는 `오르한 파묵-변방에서 중심으로`에서 그의 데뷔작인 `제브데트씨와 아들들`에서부터 최근작인 `순수 박물관`, 그리고 그의 에세이`이스탄불·도시 그리고 추억`까지, 그의 모든 작품을 심도 깊게 분석한다. 또한 이스탄불이라는 도시가 만들어 낸 작가, 그 작가가 펼쳐 보이는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파묵이 살아온
우리의 고단한 하루를 버티게 하는 마음의 힘은 무엇인가. 지난 10년간 열세 권의 책을 내며 대중과 활발하게 소통해 온,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이 열네 번째 책 `예능력`(민음사)을 펴냈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문화현상을 통해 도시인들의 심리를 살펴보거나, 소설 형식의 심리 치유서를 쓰는 등 매번 새로운 소재와 형식으로 대중 심리서의 새로운 장을 열어 온 저자는 이번에는 텔레비전 속 예능 프로그램 분석을 통해 예능에서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의 심리 구조`를 밝혀내고, 그 심리 구조를 어떻게 우리 일상에 적용해야 인생을 즐길 수 있는지 알려 준다. 일상 속에서 그저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삶을 점검하고, 나를 돌아보며, 삶의 변화를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저자는 멘토와 힐링을 멀리서 찾지 말라고 말한다.
문학평론가이면서 출판인, 저술가이면서 독서가로 출판 기획에서 교정 실무까지 `책`과 `글`에 있어 명실상부 `전인(全人)`이라 일컬을 수 있는 김병익의 산문집 `조용한 걸음으로`(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오랫동안 세상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찬찬히 써온 글들을 묶어낸 이 책은 문학과 세상에 대한 에세이들, 동료 문인들에게 보내는 축사와 추모사, 근래 읽은 책들에서 연유한 소감으로 크게 세 개의 부로 갈무리돼 있다. 젊은이들이 품은 절망이 자산이 되고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글로 문을 열고, 이제 벤치에 앉아 쉬며 인생의 허망함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며 안식을 취하겠다는 글로 책을 닫는 가운데 1부 `돌아보며, 바라보며`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반기고 변화된 분위기들의 낯섦을 차분하게 짚어가는
2009년 2월 첫 출간 이후 200만 미국 독자들에게 사랑받으며 3년 넘게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켜온 `눈물의 아이들`(전 2권, 원제 Cutting for Stone, 문학동네)이 한국에서 출간됐다. 스탠퍼드 의대 종신교수인 작가 에이브러햄 버기즈는 `나의 나라`(1994)와`테니스 파트너`(1998) 두 편의 에세이를 통해 인간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과 생에 대한 따뜻한 긍정을 보여주며 이미 논픽션 분야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그럼에도 그는 소설이라는 전혀 새로운 성격의 글쓰기에 도전했고, 놀랍게도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보여주며 단번에 픽션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눈물의 아이들`은 종교인의 금지된 사랑과 한 가족의 파란만장한 운명을 다룬 대하소설이라는 점에서 콜
`낙타` 등 5편의 시로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충규 시인. 사물이 풍기는 죽음의 냄새와 고통의 미학을 치열하게 그려온 그가 2012년 3월18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아직 갈 길이 멀었던 그의 나이 마흔일곱이었다. 출판사 `문학의 전당` 대표를 역임했고, 계간 `시인시각` 발행인으로 바쁜 삶을 살면서 시쓰기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시인 김충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일 년 후, 그가 남긴 마지막 시들을 모아 유고 시집을 내놓았다. 그가 이제 세상에 없다는 사실 때문일까. 시 곳곳에서 발견되는 죽음과, 그 이후에 관한 이야기가 유독 마음을 건드린다. 저렇게 살다 죽더라도 바람이 묘비명을 남길 일은 없듯 내 가련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힘든 시기다. 대인 관계도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힘들다. 이럴 땐 한 발자국 물러서서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명리연구원 희실재 하국근 원장의 `내 삶의 그릇은 뭘로 채울까`(깊은솔)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직설어법으로 건네는 삶의 지침서가 될 만한 책이다. 우리는 누구나 희망을 가슴에 안고 삶을 이어간다. 그 희망이 현실로 나타나든 그냥 꿈으로 남겨지든, 현실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픈 마음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평범한 염원이다. 어떤 과정을 밟아서 나갈 것인가는 자신이 잘 알고 있겠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자신은 막상 깨닫지 못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사주`다. 사주를 통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있고, 그렇
시대의 폭력에 짓밟힌 여성들의 삶을 강렬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낸 공선옥의 신작 장편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창비)가 출간됐다. 소외된 주변부의 삶에서 눈을 떼지 않고 함께하며 이야기로 그들을 끌어안았던 공선옥의 작가적 역량은 이번 작품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역사에서 소외되고 세상의 광기에 희생된 그녀들은 공선옥의 소설에서 비로소 꽃피웠다. 이 작품을 주목하고 작가 공선옥을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는, 곯아가는 세상에서 여전히 문학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봄날, 우리를 대신해 울어주던 여자가 있었다. 소설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시골마을에서 시작된다. 투전판에서 돈을 몽땅 잃고 일자리마저 잃은 아버지는 정애에게 언어장애를 가진 엄마와 동생들을 맡기고 외지로 떠난다.
“독특하고 기괴한 설정에 있어서 카프카를 능가한다는 평을 받았는데 소설을 읽다 보면 카프카의 `변신`이 자꾸만 떠오른다.” `침대`를 번역한 정회성은 `옮긴이의 말`에서 이런 감회를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맬컴은 20년이 넘도록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어른이 되는 것이 특별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평범해지는 것임을 깨달은 그는 스물다섯 번째 생일 다음 날 침대로 올라가고, 7484일 후 기중기가 침대와 한 몸이 된 그를 들어 올려 집 밖으로 옮길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대신 천천히 `죽어 가는` 것을 선택한 맬컴과, 그런 그를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의 이야기. `침대`는 성장을 거부한 남자 곁에서 성장해 가는 가족들을 그리고 있는 독특한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