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로 웅성거리던 자리에 먼지가 내려앉았다. 번화했던 거리의 가게들이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았다. 가까운 은행도 이 환난을 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예전처럼 붐비지 않는다. 은행을 찾기보다는 집에서 손가락으로 인터넷 뱅킹을 이용했고 그 편리함으로 인해 은행을 찾는 횟수는 차츰 줄어들었다. 그래서일까. 영업이 어렵다던 은행은 결국 쇠문을 굳게 닫았다. 한여름 절규하듯이 우는 매미소리가 오히려 적막하게 들린다.몇 년 전, 병원 일층에 있던 은행이 길 건너편으로 이전을 했다. 큰 도로 하나를 건너야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감수할 정도의
입구에 녹색으로 된 숫자 ‘1’위에 힘차게 달리는 사람이 있다. 건강한 삶이 일등이라는 의미인지 조깅하는 사람을 연상시킨다(원제 ‘세계로 미래로’). 왼쪽에는 방문자를 흐뭇한 미소로 반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장승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할머니가 족두리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진다. 오른쪽에는 송도 송림테마거리 지도와 주요시설, 이용수칙이 있다.거리 탐색을 나선 탐정마냥 꼼꼼히 살핀다. 거리에는 조형물이 여럿이다. 대부분은 스틸아트페스티벌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여름’이라는 작품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아이가
간절히 기도하며 염원을 새기는 이의 마음 깊이는 어느 정도일까? 가늠하고 또 가늠하면서 암각화를 찾아 집을 나선다. 포항에는 암각화가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는데, 그 중 칠포 암각화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게 분포되어 있다.1985년에 처음 발견된 암각화는 기계면 인비리에 있다. 기북면 초입에 늘어선 고인돌 중 하나에서 확인되었는데, 고인돌 덮개돌의 남면에 석검과 화살촉 모양을 새긴 것이 세 점 나왔다고 한다.내가 오늘 찾아간 것은 1989년에 발견된 곤륜산 중턱 모래암석에 새겨진 암각화다. 그림은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다. 석검 손잡
전화벨이 한여름 매미가 한꺼번에 울어대듯 울린다. SNS로 노쇼(no show)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의 전화다. 한 사람 분량의 백신을 올렸다가 병원 업무가 20분간 마비되었다. 노쇼 예비명단을 A4용지 열장 가까이 갖고 있다. 외국으로 나갈 학생이나 무역업무가 관계된 사람들은 백신이 시급하다. 오죽하면 백신을 맞을 수만 있다면 한달음에 달려오겠다고 통사정을 할까. 서울에서 경주까지 KTX를 타고 온 예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유분이 많지 않다.근래엔 코로나예방주사로 병원이 예외 없이 붐빈다. 환자의 치료와 간호,
이삿날을 잡았다. 날은 자꾸 가는데 마음만 분주할 뿐 몸이 선뜻 움직이질 않는다. 창고를 열어보고 방마다 기웃거린다. 자리를 차지한 물건을 보고 엄두가 안 나서 다음으로 미룬다.창 너머 펼쳐진 바다를 본다. 윈드서핑을 하는 사람이 많은지 점점이 하얀 돛이 남실댄다. 푸른 바다와 흰 돛이 어우러진 풍경은 나를 먼 나라의 호수로 데려간다. 햇살은 조각조각 부서져 내리고, 백조가 솔솔바람이 수면을 미끄러지며 만든 물결을 타는 모습이 숨 막히도록 고요하다. 곧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고대하며 지켜본다. 자꾸 손에 힘이 들
비 개인 해수면은 평온하다. 비바람과 씨줄날줄 설피창이로 엮였던 그 많던 빗방울들은 다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물의 윤회 속에서 어쩌면 지금 내가 바라보는 바닷물로 거듭 되풀이 되었을 수도 있으리라.빗물에 사라진 길의 경계를 더듬어 걷다가 등대박물관에 다다른다. 그 곳에서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젖어 있는 등대를 만난다. 호미곶등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등대로 1908년에 신설 점등되었다. 등탑은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붉은 벽돌만으로 조적된 팔각형으로, 18세기 중반 르네상스식 건축물이다.포항에 살면서 자주 찾아가는 것이 등대다. 무
열어둔 창으로 빗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누워 빗소리를 들으면 잠마저 촉촉해진다. 우물 속을 바라볼 때처럼 아득하고 깊다. 세상을 찬찬히 적시다 내게 다가와 손길을 서서히 뻗어 쓰다듬듯이 낭창하게 마음속으로 어둠에 섞인 비를 뿌린다. 어느 유년의 한때 미루나무가 제 그림자를 뻗어내던 가로수의 그림자를 밟고 걸었던 시간과 오버랩 된다.바야흐로 번성의 계절이다. 덩달아 봄꽃 사라진 자리로 소소하게 금계국이 피고 석류꽃이 피어난다. 무논에 모내기 끝낸 자리로 자욱하게 개구리소리 요란하다. 온몸으로 울어대는 개구리의 떼창에 여름 더위가 깊어
소록소록 자란다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 숲이다. 매일 오르내리는 숲일지라도 어느 것이 얼마나 자랐는지 알 수가 없다. 식물이 자랐을 높이를 눈대중으로 짐작하여 고개를 갸웃거린다. 숲은 고요히 키를 키우고 품을 넓힌 탓에 어느 순간에 나무가, 꽃이, 풀이 자랐음이 확 다가온다.사람들이 숲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쉬고 싶어서 오거나 맑은 공기 마시고 건강해지려고 오고, 추억을 쌓기 위해서도 찾는다. 숲을 걸으며 마음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흙탕물이 아니라 밑바닥에 고인 앙금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숲이 주는 푸르름이 마음
이른 아침, 집 옆의 산책로를 따라 호젓한 탑산을 걷는다. 여기 탑산에는 포항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이 있다. 전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을 6월, 호국의 달이 되니 전보다 자주 찾아간다. 오늘도 이슬 젖은 흙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전승기념관에 들렀다 올 요량으로 길을 나선다.울울창창한 소나무 숲 옆 계단을 내려가면 전승기념관이 있다. 6·25전쟁 당시 포항지구 전투에 참가했던 학도 의용군을 기리는 곳이다.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펜 대신 총을 잡고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자진 참전했다. 세상에 남겨진 숱한 흔적들 중
카톡이 날아왔다. 열어보니 어머니가 살림에 필요한 물품을 올려놓으셨다. 띄어쓰기는 없고 연이어 붙인 낱말들이 긴 연의 꼬리처럼 느껴진다.작년 초 어머니는 글을 배워보고 싶다고 하셨다. 연세가 여든 가까운데, 괜한 고생을 하신다 싶었다. 가까운 곳에 한글 가르치는 장소가 있다는 현수막을 보셨던 모양이다. 흔쾌히 문해학교에 등록하신 후 배우러 다니셨다. 어머니는 보고 읽는 것은 되지만 글자는 발음대로 쓰셨다. 글자 하나하나가 삐뚤빼뚤하게 늘어졌다. 두 글자가 써진 단어를 쓰며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으셨다. 아이들 한글 깨치기와 비슷했
바닷가를 걷는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사람들이 제법 있다. 물빛은 코발트로 반짝이고 밀려오는 물결은 다정한 속삭임처럼 정겹다. 모래밭 위에는 갈매기와 비둘기가 엇갈려 날고 있다. 가만히 지켜보니 갈매기가 비둘기에게 먹이를 빼앗기고 있다. 비둘기가 떼로 몰려서 먹을 것을 에워싸자 갈매기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면서 뒷걸음을 한다. 제 터전을 내어준 갈매기의 눈빛에는 미련이 가득하다. 이곳도 세상의 흐름, 약한 자가 설 곳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장단을 맞추고 있나 싶어 심란하다.내게는 고향의 품과 같은 곳이다. 열일곱 나이에 처음 만난
자리돔은 대방어를 잡기 위한 미끼로 쓰인다. 방어가 특히 좋아하는 먹이이기 때문이다. 바늘을 살아 있는 자리돔의 배에 꽂아 물속에 넣으면 자리돔은 해류를 타고 활발히 움직인다. 방어를 잡기 위한 눈속임이다. 어부들은 그것으로 방어를 불러들이지 못하면 유인책으로 잡아놓은 자리돔을 양동이에 담아 바다에 흩뿌린다. 그러면 식탐이 많은 방어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자리돔을 쫓아 죽을 자리로 들어온다.물고기는 작을수록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종을 보존하기 위한 계책인 듯싶다. 바다에는 덩치가 크거나 사납게 생겨서 먹는 양이
예천 용문사는 소백산의 깊은 품속에 자리 잡고 있다. 바람의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단풍나무 사이를 걸으며 생각의 깃을 세운다. 나직이 속살거리는 나무의 이야기를 음미하다 보니, 어느새 회전문 앞이다.용문사에 도착하면 할머니는 곧장 대장전을 찾았다.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전각으로 그 자체가 보물이다. 대장전 안에는 4개의 보물이 모셔져 있다. 손 회전식 경장인 윤장대 2좌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용문사에만 남아 있고, 목각후불탱,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목각탱화다.법당에서 만
얼마전, 유튜브로 수건춤을 보았다. 백년욱은 진분홍치마에 색동저고리를 입고 춤을 추었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춤은 거미가 집을 짓듯이 조용했다. 다시 무겁게, 큰 획을 긋듯이 춤추며 수건과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 하얀 수건을 들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보여주는 춤사위에 삶의 희로애락이 묻어났다.도심의 골목 공사현장 구석에 일꾼이 쓰다 만 수건이 땀으로 찌든 채 버려졌다. 수건 가장자리에는 모 초등학교 동기회, 모년 모월 모일이라고 새겨져 있다. 올은 낡아 납작해지고 새겨진 글자도 흐릿해진 채 바닥에 나뒹군다.공사현장 옆, 식당 주변
공원에 운동을 갔다. 어느새 철쭉이 활짝 봄을 맞이하고 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건너가는 잎들의 부지런함이 어여쁘다. 봄물을 길어 올린 싱그러움에 취해 걸음에 봄바람이 실렸다.맞은편에서 오는 부녀와 스쳐 지났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해서 걷는 방향을 바꾸어 두어 걸음 뒤에서 걸었다. 귀를 쫑긋 앞으로 모았다. 드문드문 들리는 내용은 딸이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 읊으면 아빠는 적당한 추임새를 넣었다. 별거 없구나 싶어 앞질러 가면서도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부러웠다. 부러움이 커질수록 아픔으로 피어
벚나무 꽃자리마다 초록빛이 시(詩)처럼 흩날리는 봄날이다. 나는 도서관을 향해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강의실로 들어가기 전에 책과 먼저 눈인사를 나눈다. 정갈하게 정리된 서가 사이를 오가며 서너 권의 책을 꺼내 들면, 작가의 소중한 글을 제각각의 공법으로 알차게 꾸민 출판사의 노력이 표지부터 물씬 전해진다.책을 펼치면 주옥같은 언어의 황홀경이 펼쳐진다. 인생의 세밀한 구석들을 명증하게 들추어내는 책을 들여다볼 때면, 수필을 쓰는 나로서는 자극을 받을 때가 많다. 나도 우리네 인생사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깊은 울림을 주는 문체를
창밖으로 황룡사지(皇龍寺址)가 보인다. 드넓은 터에 청보리가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커피를 한잔 들고 밖으로 나오니 가슴이 탁 트인다. 너른 들판과 나지막한 산자락으로 하늘이 높게 보인다. 그 아래 80여m 높이의 탑과 불국사의 여덟 배 크기의 절이 있었다니 그 크기를 상상하기 힘들다.들어서는 길은 보도블록을 깔아두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라고 네 개를 깔고 중간은 비워두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간격이 필요한 것인지, 바람이 지나가는 길인지, 자전거라도 지나다니라는 길인지 길게 뻗어있다. 백제의 장인 아비지에 의해 만들어진 구층
누가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다. 살아있는 모자이크다. 한데, 만드는 이가 안 보인다. 나풀나풀 하늘에서 흰 나비 날개들이 내려올 뿐이다. 아마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업을 하나 보다. 삼월 말, 수난(受難)주간 마지막 날 성당 가는 보도(步道) 위다.다른 나무들은 벌써 신록을 연출하기 시작한다. 벽돌 담장 위에 얼굴을 빼꼼히 내민 장미 아가씨의 새순은, 어느새 길이가 한 뼘은 되어 보인다. 잎 사이에 꽃망울도 품었다. 꽃샘추위가 다 가시지는 않았지만, 바야흐로 봄이다. 기후 변화로 많이 앞당겨진 봄…. 봄은 내게 언제나 불쑥 나타났었다
민들레는 할머니와 나의 추억이 담긴 꽃이다. 사물은 사연이 담기는 순간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된다. 그런 연유로 해마다 나의 봄은 민들레가 필 무렵 시작된다. 민들레를 보아야 마음에서 진정한 봄을 받아들인다.돌아가신 할머니는 봄날 입맛이 없을 때 뒷산을 찾았다. 민들레로 밥상을 차리기 위해서였다. 민들레를 캐고 난 뒤, 집에 돌아와 민들레밥과 민들레된장국을 상 위에 정성스럽게 올렸다. 된장국을 숟가락 가득 입안에 떠 넣으면 민들레 특유의 은은한 향이 온몸 가득 퍼졌다.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었다.봄비 그친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는
떡을 만든다. 쌀가루, 소금, 검은콩을 준비했다. 정확하게 그램을 맞춘다. 맵쌀가루를 채에 문질러 두 번을 내렸다. 쌀가루를 만지자 폭신폭신 카스텔라처럼 부드럽다. 오늘은 콩설기 떡을 만든다. 냄비에서는 서리태가 익는 중이다. 콩 색깔을 닮아서 물색도 검다. 다 익은 콩을 채에 한 번 내려 마른 수건으로 툭툭 쳐서 콩의 물기를 뺀다. 쌀가루에 소금을 적당히 뿌렸다.평생교육원에 떡 만드는 과정을 등록했다. 열두 명을 뽑는데 이곳에 들어오기는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지만 운이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들뜬 마음으로 떡을 만든다.찜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