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가려 변장을 하거나 방호하기 위해 쓰는 조형물을 가면이라 한다. 머리와 얼굴 또는 온몸을 가리는 경우도 있으나 단순히 면(面)이라고도 하며 한국 속언으로는 탈이라고 한다. 탈춤은 한 사람 이상의 연기자가 가면으로 얼굴이나 머리 전체를 가린 채 다른 인물이나 동물 등의 역할을 맡아 극적 장면을 연출하는 형태를 일컬으며 `탈놀이`라고도 한다. 이 놀이는 고대에는 유흥적 놀이로서의 성격보다 제례를 위한 가무로서의 성격이 보다 강했다. 한국 탈춤은 대체로 삼국시대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며 부여의 영고나 고구려의 동맹과 같은 국가적 행사와 함께 고구려의 무악, 백제의 기악(伎), 신라의 처용무 등 규격화된 놀이문화가 우리 정서에 맞게 고쳐진 것을 그 기원으로 하고 있다. 가면이 갖는 은폐성,
사계 김장생의 후손으로 영조 때 대사간을 지낸 석당 김상정(1722~1788)이 지은 `석담유고`에 `치재설`이 실려 있다. 즉 사람으로 태어나서 잘못된 행실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석당 선생은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시초를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있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하였다. 맹자가 `사람으로서 크게 중요한 일은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라고 한 말과 `부끄러운 마음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부끄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한 말을 부연해서 설명한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가면서 어느 누가 부끄러운 행실이 하나도 없을 수 있겠는가. 잠시나마 스스로의 행실을 되돌아보면서 부끄러운 마음을 다잡아 행실을 고쳐나가다 보면 부끄러운 행실을 조금이나마 줄여
어린이는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이 성인과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3세 이전의 경험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렇다고 3세 이전의 경험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는 단편적인 사건은 잊혀 지지만 그때의 감정은 무의식에 남기 때문이다. 학대받은 어린아이가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후유증을 앓는 이유가 이것이다. 어린아이는 사건을 잊는 대신 감정을 기억한다. 성인은 이와 반대로 사건을 기억하는 대신 감정을 망각한다. 큰 슬픔이나 분노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심히 괴로워하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 남는 것은 감정의 흥분이 소거된 사건 그 자체에 대한 기억뿐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1681~1763) 선생은 `성호전집, 습망재기`에서 망각의 중요성
조선은 고려의 대간(臺諫)제도를 계승하면서 대간의 위상을 훨씬 강화시켰다. 조선의 대간은 여론을 근거로 왕의 잘못이 있으면 목숨을 걸고 직언을 했다. 한 번 해서 듣지 않으면 두 번 세 번 계속했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스스로 사직했다. 대간의 탄핵을 받은 정치 관료들은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 일단은 사직서를 내야 할 만큼 그 위력은 대단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1690~1756)의 `택리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삼공육공을 두어 여러 관청을 통솔하게는 했지만, 대간을 중요하게 여겨 거기에 많은 권한을 주었다. 그리하여 풍문(風聞: 직접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정보를 가지고 공격하는 것)과 피혐(避嫌: 공격받은 사람이 혐의를 피해 사표를 내는 것), 그리고 처치(處置
비트코인은 지폐나 동전과 달리 물리적인 형태가 없는 온라인 가상화폐(디지털 통화)다. 젊은 세대가 노동의 가치를 버리고 한탕주의에 빠졌다. 2030 젊은 세대의 비트코인 열풍에 일부에서는 걱정과 탄식이 터져 나온다. 정부는 강력한 규제로 거래소를 폐쇄한다고 발표했으나 반대를 원하는 청와대 청원이 20만 명이 넘었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 화폐에 빠져드는 현상이 그만큼 강력하다고 보겠다. 이런 투기현상의 원인은 무엇인가. 지난달 27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청원이 올라왔다. `저는 문재인 정부를 뽑을 때 드디어 사람답게 살 수 있겠구나, 가슴이 부풀었지만 여전히 겨울 되면 보일러 비용 아끼려 전기장판 틀어야 되고 여름 되면 에어컨 비용 아까워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부디 대한민국에서 처음 가져본 행복
조선 전기의 문신인 최보(1454~1504)는 `금남집, 동국통감론`에서 고구려 제9대 임금인 고국천왕이 시행한 진대법(賑貸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제 고구려의 왕이 굶주린 백성들을 보고 그 의식을 지급하고, 나아가 온 나라의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염려해 마침내 진대법을 시행했으니 그는 이른바 백성을 구휼하는 정치에 대해 아는 자일 것이다.` 이 진대법이란 보릿고개 계절에 곡식을 빌려줬다가 가을에 추수한 뒤에 돌려받는 고대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제도였다. 양식이 없어 굶어 죽거나 몸을 팔아 남의 종으로 전락하는 일을 막는 효과도 컸다. 그래서 그는 고국천왕이 정치의 요체를 잘 안다고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반면 제나라 환공이 외유할 때, 한 노인이 헐벗고 굶주리는 것을 발견하고
교수신문은 한국 교수사회를 대변할 신문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창간을 논의해 한국 지성의 정론지를 표방하며 1992년 4월에 창간됐다. 이 신문은 2001년부터 연말이면 우리나라의 한 해 동안에 일어난 사회상을 특징짓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한 사례로는 2008년에 선정된 호질기의(護疾忌醫)다. 중국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가 통서(通書)에서 마치 병을 숨기듯 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꺼리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했다. 당시 교수신문은 `국민들의 비판과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 정치권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 선정 이유를 전하면서 정치권이 미국 쇠고기 사태와 촛불시위, 글로벌 경기침체의 대응방식이 미흡했다고 비판했다. 2009년 중국과 미국의 전략경제 대화 중에 오바마 대통
손자병법은 춘추시대 제나라 낙안 사람으로 손무(생졸미상)라는 한 학자가 그가 살던 시대의 사상적 성격이 깃들어있다면, 병법 36계는 작자미상으로 당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차도살인(借刀殺人)은 `주역, 손괘`의 손익영허(損益盈虛)이론에서 나온 것이다. 손은 음 익은 양에 해당한다. 손과 익은 음양이 그렇듯이 서로 덜어내면서 더해주는 관계에 있다. 상대적인 개념인 까닭에 익과 손은 사물의 안팎을 총체적으로 고찰해야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이를 병법에 적용한 것이 바로 36계의 제3계인 차도살인 계책이다. 이 차도살인은 친구를 끌어들여 적을 제거한다는 뜻으로 달리 풀이한 것이 인우살적(引友殺敵)이다. 요체는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는 부자출력(不自出力)에 있다. 차도살인 계책은 기본적으
공부를 한다는 것은 대개 `힘들고 어렵다`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공부의 길은 무척 고단하다. 고등학생만이 아니라 부모들 욕심은 초등학생에서부터 오직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아이들이 싫건 좋건 애를 쓴다. 학생 자신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관여해 그야말로 온 집안이 `힘듦`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총력을 기울여 좋은 대학을 들어가게 되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대학생들은 입학할 때부터, 더 나은 조건의 안정적인 직장을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듯 공부를 한다. 그렇게 공부를 하여 사회에 진출하고서도 그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직장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여전히 생존하기 위하여
여말선초의 문신인 이첨(1345~1405)은 우왕 1년(1375) 조정의 전권을 쥐고 전횡을 일삼던 권세가 이인임을 탄핵하다 겨우 목숨을 건져 변방 해안가에서 10년이나 귀양살이를 했다. 유배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구설에 오를까 염려한 그는 자신의 집을 `눌헌(訥軒)`이라 이름 짓고 신중함을 강조하는 `명`을 지은 것으로 보아 젊은 혈기에 권력자에 맞섰던 자신의 경솔한 언행을 후회하고 자숙했던 것 같다. 동문선(東文選)에 전해지는 눌헌명의 구절은 `말을 삼가기를 옥을 손에 쥐듯, 가득찬 물그릇을 들듯이 조심하라`는 내용이다. 즉 혼란한 세상에서도 해야 할 말은 하되 좀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자 역시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행동은 준엄하게 하되 말은 낮춰서 해야 한다`
조선시대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는 반관(反觀)이라는 풍조가 유행하였다. 반관은 반관내성 또는 반관내조를 가리키는 단어로 즉 돌이켜 보고 안으로 살핀다는 뜻으로 유가에서는 사물을 대하는 수양법에, 불가에서는 좌선하는 방법에 쓰는 말이다. 속박과 규범을 싫어하는 젊은이들은 반관의 뜻을 구실로 삼아 외모 수식하는 것을 가식이라고 지탄하고 마침내 기본적인 예의범절까지 무시하면서 멋대로 행동하는 일이 많았다.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먼저 외모부터 수습해야 비로소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다`라고 교훈을 내리고 있다. 이 내용은 다산 선생이 강진의 유배지에서 생활할 때 유배지로 20세를 갓 넘긴 장남 학연이 찾아왔는데 아들은 옷깃도 잘 여미
조선 전기 문인인 이륙(1438~1498)은 그의 `청파집`에 `의견설(義犬說)`을 싣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여 들여다보면 선생이 집에서 기르던 흰 개가 주인의 뜻을 잘 알아차리며 다른 어미가 새끼를 낳고 죽자 그 새끼들을 데려다 힘들게 젖을 먹여가며 잘 키워 신통하다는 줄거리다. 가축인 개는 주인과 객을 분별할 줄 알고 어미와 새끼를 구별할 줄 알아 그 성품이 가장 지혜로우니 개 중에서도 의로운 녀석이라는 것이다. 지금 세상의 처들이 남편의 전실 자식을 남 보듯이 하고 심한 경우에는 원수처럼 여겨 사납게 물어뜯기를 짐승처럼 하니 이들이 이 의견의 소문을 듣는다면 어찌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 `의견설`을 짓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개가 지닌 도적지능과 인간이 지닌 도덕지능은
구차(苟且)라는 용어는 원래 구저(苟苴)에서 파생된 말이다. 후세로 오면서 풀초를 빼고 구차로 전한다. 구저란 신발 바닥에 까는 지푸라기를 말하는 것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게 되는 의인을 살리기 위해 천리 길을 가는데 그의 신발이 닳아서 발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너무나 애처로워 볏짚을 모아 그의 신발에 깔아주었다. 이 일을 보고 구차하다는 말은 `모멸을 감수하고 적은 동정을 받는다`는 뜻으로 안영(BC.578년 ~ BC.500)의 `잡상편`에 기록돼 있다. 구차함이란 버젓하지 않거나 번듯하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무엇이 구차함인가`하는 용어에 대한 경계는 경전의 여러 곳에 나타나는데, 그중 순자는 `영욕`에서 `살기에 급급할 뿐 앞날의 재앙을 알지 못하는 구차한 자들은 자기가 아무것도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하거나 망한다는 말이 있다. 권력을 잡게 되면 권력에 도취되어 남의 충고나 비판은 멀리하고 꺼리게 되며 그 자리에는 아첨하여 자기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로 채운다. 그래서 권력은 부패하게 되고 마침내 망하게 되는 것이다. 즉 견제 받지 못하는 권력은 스스로 무너진다는 것이다. 고려와 더불어 조선이 중국에도 실질적으로 없던 500여 년의 왕조를 이어올 수 있었던 토대는 대간제도를 건전하게 적극적으로 활용한 데 있다. 조선시대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장치로 설치한 대간제도는 왕권과 신권을 동시에 견제했다. 대간이란 백관들의 감찰임무를 맡은 사헌부의 대간과 국왕에 대한 간쟁의 임무를 맡은 사간원의 간관을 합친 말이다. 이 대간이 절대 권력을 견제할 수 있었던 배경은 활발한 언론활동
역사의 흐름은 문자와 철기를 가진 사회나 국가가 그런 편리하고 강한 힘을 발휘하는 이기(利器)를 갖지 못한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거나 멸망시켰다. 미개에 대응하는 개념으로서 진보된 인간 생활의 총체를 문명이라고 볼 때, 이러한 사회발생의 징표로 문자와 청동기나 철기의 사용을 들 수 있겠다. 상고사에서는 비록 원시적인 부족국가이지만 철의 생산과 확보가 곧 한 나라의 국력과 결부된다는 중요성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고대 춘추오패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초나라 장왕이 주나라 사신에게 구정(九鼎)이라는 솥의 무게를 물어본 유명한 일화는 당시 장왕이 구정을 빼앗아 자신이 천자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동정(銅鼎)은 중국의 상나라나 주나라 이래로 사용된 중요한 예기의 하나로서 신분을 나타내고
`곽우록`은 성호 이익(1681~1763) 선생이 지은 정책제안서로 국가의 정책전반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밝힌 책이다. 곽우록이란 뜻은 콩잎 반찬 먹는 사람의 근심을 기록했다는 말이다. 콩잎반찬이란 고기반찬에 대응하는 말로서 신분이 낮은 백성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천한 백성이 정치에 간여해야 하는 당위성을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이 곽우록의 서문에 `정치인들이 잘못하면 국민들은 간뇌도지 당한다.`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간뇌도지는 죽임을 당하여 간과 뇌가 으깨어져 땅바닥에 뒹군다는 뜻으로 참혹한 말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 첫 번째는 `나는 천한 사람이다. 천한 사람의 근심은 백묘(정전법에서 일부(一夫)가 받는 땅으로서 여기서는 농사지어 먹고 사는 농부)의 밖을
역사는 반복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정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최소한 역사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의 향배를 가늠할 수는 있다. 식민사관의 폐해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많은 국민들은 조선조 중후기에 있었던 당쟁의 폐해를 잘 알고 있고 또 그로 인해서 조선이 패망했다고 굳게 믿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불행히 지금도 망각하며 부정적인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윤추(1632~1707)는 윤선거의 아들이자,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의 아우이다. 선조 때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져 형성된 당파는 숙종 때에 이르러 극에 달한다. 인현왕후의 폐위를 둘러싸고 남인과 서인이 엎치락뒤치락 정권을 차지하는 이른바 환국(換局)이라는 것이 몇 번이나 있었다. 서인은 다시 남인에 대한 처벌 여부를 둘러싸고 강경파인 노론과
전통사회에서의 과거시험은 국가에는 좋은 인재를 선발하는 장치이며 응시자에게는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해 관직으로 진출하는 통로이다. 그러나 권력이 비정상적일 때는 과거 시험의 공정성이 무너짐으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변질돼 백성의 신뢰를 잃게 되며, 공적 제도가 아닌 개인의 사유물로 전락돼 세력을 형성하는 데에 이용되고 온갖 부정부패의 중심이 됐다. 윤선도(1587~1671)의 `고산유고`를 보면, 그는 몇 해 전 사마시를 통과하고 관직 진출을 꿈꾸는 이른바 사회초년생이라 할 수 있는 그의 나이 30세에 인생의 일대 전환기를 맞는 `병진소`를 올렸다. 이 상소로 인해 윤선도는 37세까지 8년간이나 죄인으로 귀양살이를 했다. 이 시기는 광해군 8년으로 이이첨의 권력이 극에 달했을 때인데, 이이첨이 모든 요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기정진(1798~1879) 선생의 `노사집`에 안윤극이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글의 서두에서 이른바 책기(責己)의 자세를 강조한 구절이 적혀있다. `성인의 도는 자기를 탓할지언정 남을 탓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애써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십상인데 노사선생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돌아보고 책임질 수 있어야 이른바 전인으로서의 인격체를 실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스스로를 책망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러한 책기를 나름대로 잘 실천해 나아갈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있다. 중국 송나라의 학자인 충선공 범순인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몹시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남을 탓하는 데에는 명석하고, 아무리
요즘 우리사회는 갑의 횡포가 분야를 초월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동안 을이 마땅히 하소연할 길이 없었던 사회구조에 드러나지 않다가 지금에야 인권의식이 고취되면서 `을의 설움`이라는 사회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갑과 을의 관계는 무조건 일방적인 것은 아니나 갑의 프리미엄도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갑의 횡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공직사회에서나 민간부문에서 업무협의를 하는 상대에 대한 무례함, 폭행, 폭언, 무리한 요구까지도 서슴없이 해 댄다. 내면세계가 유교윤리에 기반을 둔 선조들은 관리들의 갑질을 무척 경계했다. 그 하나의 예를 보면, 주세붕(1495~1554)선생은 `무릉잡고, 송정흥덕지임서`에서 `현감이 비록 낮은 직책이지만, 한 고을의 주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