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드디어 학부모가 됐다. 마흔이 넘어서 얻은 딸이라 학부모가 된다는 게 감동 아닌 감동으로 다가와 한동안 설레기도 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드디어 학부모가 되었다”고 했더니, “난 큰애가 대학교 졸업했는데 넌 언제 키우니” 하며 으시댄다. 결혼을 일찍 하고 늦게 한 차이가 이렇게 큰 결과를 낳다니 하며 새삼 놀라기도 했다. 아무튼 난 학부모가 된 게 무슨 벼슬이라도 한 마냥 기뻤다. 아마 그 마음 한구석에는 딸아이가 유아기를 벗어났다고 하는 안도의 기쁨이 더 컷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고민거리가 쌓이기 시작했다. 학교 도서관 업무를 도와주는 어머니 도서도우미 신청에서부터 등굣길에 교통 지도를 하는 녹색어머니회, 학교 급식
신록의 물결이 넘실대는 5월. 아카시아향을 비롯한 봄꽃 향기들이 산천을 유영하며 나그네들을 불러 모은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간 곳은 울창한 숲이 있고 춘하추동 철따라 우리 꽃들이 다투어 피며 새들과 곤충과 식물과 인간과의 교감으로 낙원이라 불리는 기청산 식물원이다. 기청산 식물원은 내 여고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지금은 유명한 변호사가 되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친구의 고향이기도 한 포항 청하에 위치하고 있어 더욱 정감이 간다. 청하중학교로 들어서니 울창한 은행나무들이 어깨 터널을 만들어 초록 손을 흔들며 반겨주었다. 나무로 앙증스럽게 만든 안내판을 보며 들어가니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들어가는 길목도 아기자기해 벌써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이곳 식물원은
5월의 햇살을 닮은 미소를 가진 이가 있다. 그녀가 화사하게 미소 지을 때면 눈이 부셔 절로 웃음이 인다. 화려한 외모와 선한 심성, 남다른 인내심으로 모진 시집살이와 결혼살이를 이겨낸 그녀가 내게는 답답하기도 또 안타깝기도 하다. 내 엄마가 살아온 삶의 모습은 내게 있어 인내와 선함의 대명사이다. 모진 삶의 굴곡을 넘어오면서도 그 화사한 미소를 잃지 않고 간직한 그녀의 미소가 처연하다. 여성들에게 어머니의 삶은 그처럼 살아야겠다는 역할 모델이 되기도 하며 때로 그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는 역기능적 역할 모델이 되기도 한다.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릿한 상처로 남기도 하며 아들에 비해 대접받지 못해 원망스러운 애증의 대상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이름 앞에 한없이 숙연해지며 모성의 위대함을 뇌이는 남성들에 비해 여
예년의 4월과는 다르게 매서웠던 2010년 4월, 나는 환자의 신분으로 병원을 찾았다. 가벼운 감기와 같은 질환으로 병원을 찾을 때는 증상을 가라앉히고 싶은 욕구가 우선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가볍다할지라도 수술이라는 외과적 치료를 위해 향한 이번 병원행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심하게 엄습해왔다. 이처럼 통증은 있지만 병명을 명확히 알 수 없거나 혹은 가벼운 질환이 아닌 수술과 같은 처치가 필요해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환우들의 경우는 불안의 강도와 간절함이 절절하다. 때문에 하루에 한번 병실을 순회하는 주치의의 회진 시간은 환우들에게 완곡한 기다림의 순간이다. 단 1분의 만남일지라도 주치의의 미소와 한마디가 완곡한 기다림에 대한 충분한 보상임에 틀림없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사표를 던진 이
일본은 지금 황금연휴로 들떠있다. 지난 주 목요일인 4월29일은 쇼와(昭和)의 날이라고 해서 1926년 쇼와 시대가 시작된 날을 기념한 축일이고, 5월3일이 헌법기념일, 5월4일은 녹색의 날로 소위 식목일과 같은 날이고, 5월5일은 어린이날로 이번 주말까지 약 10일 이상의 연휴가 이어진다. 샐러리맨들한테는 그야말로 황금같이 귀중한 연휴인 것이다. 이 기간 내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평균 통계를 보면 국내외 여행객들이 약 2천만 명을 웃돈다고 한다. 이정도 숫자면 우리나라의 설날의 민족대이동을 방불케 한다. 만약에 학교에서 학기 중에 이렇게 긴 연휴가 이어진다면 무엇을 할까. 주어지지도 않은 연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달콤하다. 그런데 어린이날은 한국·일본 똑 같이 5월5일이다. 이에 대해서
일본 유학시절 다회(茶會)에 초대되어 다도의 격식에 따라 차를 마신 적이 있다. 주인이 손님을 불러 다실(茶室)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다회(茶會)라고 한다. 차 한 잔을 마시는데 무슨 격식이 그리도 많은지 신선하면서도 그 독특한 문화에 감화를 받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다실 입구가 아주 인상적이다. 니지리구치라고 해서 가로 60cm, 세로 60cm 크기로, 이 작은 문을 통해 다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문을 작게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다실에 들어가면 누구나가 신분의 고저에 관계없이 대등한 자격으로 만나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계몽주의의 선구자인 몽테스큐도 자
모처럼의 휴일. 특별한 계획을 만들어두질 못해서 뭘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군요. 상영영화를 검색해보니 아이와 같이 볼 그럴싸한 영화가 눈에 띄질 않습니다. 궁리 끝에 배드민턴채를 찾아들고 아파트 마당으로 나섰습니다. 몇 차례 주고 받다보니 들어서는 자동차 한대가 길을 비키라는군요. 쫓겨 들어왔습니다. `시내나 나가볼까?` 딸아이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시내`라 일컬어지는 육거리 중앙상가를 동네 언니 손 붙잡고 가끔 나갔었죠. 쥐어진 만원짜리 한 장을 소비하기 위해서는 대형 팬시점 몇 곳이면 충분합니다. 치즈버거세트하나로 점심을 떼우고, 하릴없이 옷가게 들락거리다 돌아오는 것이 전부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엄마! 저 시내 나가게 용돈 좀 주세요`란 요구가 사라졌습니다. `컴게임 시간 30분만 더 늘여
삶을 한 편의 연극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극에 몰입해 끼와 신명을 신나게 펼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가정과 직장을 종종거리며 오가는 여유없는 30대를 보내고 있다보니 불현듯 내가 정말 주인공일까 하는 의문이 스치곤 한다. 가끔은 역할 따위 잊어버리고 무대를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도. 어렸을 적엔 30대가 되면 `안정된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뭔가 인생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그 속에서 나는 유유자적하고 있으리라고. 그간 고생하며 키워주신 부모님께 효도도 하면서. 그런데 막상 30대가 되고 보니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마냥 어렵고, 취업을 해도 평생직장이 되긴 어렵단다. 옛날 같으면 다 큰 아이가 있다
20대에 문학에 인생을 걸었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빠져들기 시작한 세계고전문학 섭렵에서부터 대학에 들어와서는 무슨 의무감에라도 사로잡혔는지 도서관에 진열되어 있는 서양철학사 시리즈를 1권부터 읽기 시작하였다. 당시 한국 사회상이라고 하면 정의와 이상에 불타오르는 젊은이들에게는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한 사회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일기 시작했다. 나는 문학 작품을 통해서 그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 문학 작품 속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펼쳐져 있고, 시대의 흐름과 함께 언제나 소외당하는 인간의 모습이 보여진다. 어디 이뿐인가. 폭력, 살인, 불륜 등의 소재로 엮어진 작품도 있고 환상적이고 감동적인 드라마도 있다. 이러한 작품을 읽으면서 상상을 하다 보면 어
얼마 전 생애 처음 베트남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이었던 그날 베트남은 습도가 높은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대형건설사 혹은 전문 건설사들에 의해 건축물이 설계되고 지어지는 광경이 익숙한 우리에게 스스로 벽돌을 쌓아올리고 도색을 하는 베트남 현지인들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정겹다. 우리의 60년대를 연상시키는 도시의 풍경 속에서 꽃을 파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의 모습이 빈번하게 스친다. 베트남의 사람들은 꽃을 주고받는 일을 즐겨하기에 이런 모습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이란다. 이렇게 꽃을 좋아하는 베트남 사람들 그리고, 베트남 여성들에게 매우 특별한 기념일로 꼽히는 날이 있으니 3·8세계여성의 날과 베트남 여성의 날이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는 남성이 자신의 연인에게 장미꽃 선사하는 일을 잊었
난 아직도 2009년도의 연장선상에 서있다. 백호의 기상이 깃든 2010년이 힘차게 시작 될 때에도 새로운 해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때는 구정을 쇠고 나면 새해 기분이 나겠지 했는데 구정이 지난 지 한 달이나 넘었는데도 아직도 2009년도 범주 안에 있는 것 같다. 개구리가 놀라서 뛰어나온다는 경칩이 지났는데도 2009년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글을 통해 2009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2010년을 구상하고 싶다. 늘 한해가 지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때는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지난 해를 잘 정리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게도 2009년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왜 일까? 흔히 남녀가 사귀다가 헤어질 때도 빨리 잊기 위해서는 빨리
한국 빙상의 아들딸들이 자신들의 의지와 열정으로 엄청난 훈련을 견뎌내고 그들의 꿈을 밴쿠버에서 실현시키고 돌아왔다. 동계 올림픽 기간 동안 먼 바다 건너 밴쿠버에서 금비를 타고 행복의 메신저가 다이도르핀을 싣고 날아와 우리는 정말로 행복했었다. 다이도르핀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감동을 받았을 때 우리 몸에 생성되는 `감동 호르몬`이다. 우리가 흔히 즐겁게 웃거나 신나할 때 우리의 몸에서는 `엔드로핀`이 나온다고 한다. 엔드로핀이 면역성을 가지고 있고 우리 몸에 좋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실이다. 다이도르핀은 엔드로핀보다 5천배나 강력한 호르몬이 들어 있다고 한다. 온 국민이 동계 올림픽 동안에 메달 소식을 전해준 우리 국가대표들과 천상의 연기로 역사를 뒤바꾼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는 우리들의 가슴에 행복
서귀포시교육청에서 5일간 주최하는 2009 겨울방학 독서논술학습교실인 `초·중학생, 선생님, 학부모가 함께하는 독서여행` 프로그램에 먼 육지 사람인 필자도 `자연과 시`에 대한 주제로 문학 특강을 하러 가게 되었다. 저녁 늦게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새하얀 눈보라가 바람과 손잡고 휘몰아치며 마치 강아지가 손님을 반기듯 얼굴을 사정없이 어루만져주었다. 아름다운 도시 서귀포에 도착하니 허덕희 장학사님께서 마중을 나왔다. 너무나 오랜만에 만나 반가움과 설렘에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서귀포 명승지인 쇠소깍, 돈내코, 새연교를 다니기로 하였다. 서귀포는 겨울에도 따뜻하여 눈이 잘 내리지 않는데 이런 멋진 날 맞춰 오기 정말 힘들다며 육지 시인이 눈을 몰고 왔다고 모두들 좋아하셨다. 검은 밤을 수놓은 눈꽃을 바라보며 쇠
새벽 안개를 가르며 오늘도 시퍼런 군함 같은 청소차가 동네 골목을 빠짐없이 찾아갑니다. 세찬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군 차량 위에서 보초 서듯 차 끝에 매달려 꼿꼿한 자세로 서 있다가 차가 서면 재빨리 내려와 쓰레기를 거두어 가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들. 그들이 있어 오늘도 우리의 골목길은 쓰레기 냄새에서 벗어나 숨을 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철퍼덕 신문 떨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면 어둠을 가르고 집집마다 소식을 전해주는 신문 배달원의 씩씩한 발자국 소리. 건강한 아침을 위해 신선한 우유를 돌리는 요구르트 아줌마의 분주한 소리가 들립니다. 이들이 있어 우리는 오늘도 새벽 단잠에서 깨어나 행복한 하루를 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여름 서울 딸 집에 갔었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집까지 가는
`아직도 그대로 있겠지`하며 아침마다 지나는 이면도로에는 얼마 전 파란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랗게 변하고 있어서 이제 가을이 오는구나 싶었는데 언젠가 조금씩 떨어지던 것이 하루하루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었다. 오늘은 얼마나 수북이 쌓였는지 한번 밟아 보고도 싶은 마음이다. 순간 생각해 본다. 왜 겨울이 되면 나뭇잎들이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 것일까? 나무들도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수분을 줄기에 머금고 잎을 말려 떨어지게 해야 잎에 수분이 없어져 추위에 얼지 않고 견딜 수 있을 테니까…. 가로수들도 겨울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에는 거기에 새로운 잎을 돋게 하기 위하여 준비를 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저기에 하얀 눈도 덮일 것을 생각하니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은행나무 밑을 마음
몇 달간 정성스레 준비한 연극공연을 앞두고 아이들의 얼굴에 홍조가 가득하다. `천천히`를 주문하는 연출 선생님의 말씀대로 절로 빨라지는 말의 속도를 즉각적으로 조절하는 아이들에게 그들만의 순수함이 묻어난다. `나는 3개월을 섞지 않고 살 수 있다. 누구는 5년을, 누구는 또 500년을 썩지 않고 살 수 있다`를 자랑처럼 내뱉는다. 그리고는 지구를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한번 쓰고 버려지는 쓰레기를 줄이자며 우리를 독려한다. 연극이 끝나고 난 후 사람들이 무심코 쓰고 있는 스티로폼 도시락과 나무젓가락, 종이컵을 보며 아이들은 `어~ 이거 쓰면 안 되는데~ 이거 500년 동안 썩지 않아요.`라며 우리에게 눈치를 준다. 부끄러움에 절로 얼굴이 붉어지는 순간이다. 무언가를 배우면 바로 그렇게 실천해야만
일전에 일본 출장길에 `책이 죽으면 폭력이 발생한다`라는 책을 구입했다. 이 책은 미국에서 1994년에 발행되었고 일본에서는 1998년에 번역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번역 소개되지 않은 것 같다. 일본에서는 당시 꽤나 화제에 오른 것으로 기억된다. `책이 죽으면 폭력이 발생한다`라는 책 제목이 하나의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제목만 들어도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감이 잡힐 듯한 제목이다. 부제로 `전자 미디어 시대에 있어서 인간성의 붕괴`로 전자 미디어의 위험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주된 내용은 TV에서부터 컴퓨터에 이르는 전자제품은 젊은 세대들을 사로잡아 문자, 언어, 사고력 등을 빼앗아버려 그것이 점차 폭력으로 이어져 간다는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지혜를 만들어 내는 도구임에도 불구하
신종플루가 전국을 불안하게 함에도 주말의 백화점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수선을 맡길 것이 있어 그 북적임 속을 헤매던 내게도 화려한 조명 아래 상품들은 매혹적이다. 오래된 지갑과 뒤축이 닳은 구두를 상기시키니 구두와 지갑 등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이것저것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는 내게 내 안의 내가 끊임없이 질문한다. `필요(need)한 거야? 원하는(want) 거야?` `구두의 뒤축이 닳아서 다리가 불편하니 구두를 새로 사야지. 그럼 필요한 거 맞지?` 내 안의 내가 소비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며 필요(need)임을 열심히 피력한다. 그러나, 아직 많이 헤진 것도 아니고 비 오는 날 비도 새지 않으니 사고자 하는 욕구는 필요(need)가 아닌 원함(want)으로 봐야 한다. 그러니 미련 없
3년 전 60이 훨씬 지난 나이에 많이 망설이다가 어느 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에 등록했다. 막상 등록을 마치고 나니 두려움이 슬며시 생긴다. 지금에 와서 아이들이 다니는 대학교 교정을 밟으면서 무언가 배울 수 있다는 게 과연 잘하는 것일까. 무엇을 얼마나 가지게 될 수 있을까. 이미 대학을 졸업한 지 38년이나 지났고 나이 60이 훨씬 지난 내가 젊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가 있을까 깊이 걱정이 되었다. 수업 첫날 역시 가장 연장자이고 어색하기 짝이 없이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현재에서 도태된다는 평소 생각에 한번도 결석 없이 지각없이 1년을 보내고 당당하게 모범생으로 졸업하게 되면서 졸업식날 훌륭한 “송사”를 읽어 내려가는 것을 끝으로 박수를 받으며 과정을 마칠
직업 관계상 매일 인터넷으로 일본 사이트에 들어가 뉴스를 본다거나 필요한 자료를 찾는다거나 한다. 그런데 최근에 자주 눈에 띄는 글이 `한국은 성범죄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어느새 우리 한국은 성범죄 국가가 되어버렸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일어난 천인공노할 아동 성범죄 사건은 딸 가진 부모들을 경악에 빠트리고 말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분노와 슬픔에 가슴이 떨린다. 무서운 세상이다. 아니, 미친 세상이다. 해마다 발생하는 끔찍한 아동 성범죄는 우리 사회가 아주 특별하게 위험한 사회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특별하게 위험한 사회라고 하는 것은 이런 천인공노할 범죄가 발생하는 그 자체뿐만 아니라, 이런 끔찍한 범죄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