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마다 사무실 입구에서 하는 일이 있다.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지만 벌써 몇 년째다. 명함전단지(名銜傳單紙)를 한쪽 구석으로 모으는 일이다. 보통 네댓 장, 많은 날은 여남은 장이 될 때가 있다.보기 지저분해 처음엔 투덜대며 어쩔 수 없이 손으로 일일이 주워 사무실 쓰레기통에 버렸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버려진 명함전단지만 줍는 연로한 분들이 생겨났다. 그 후부터 한쪽 구석진 곳으로 모아둔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어떤 날은 손으로 주워 한곳에 모아두거나 어느 날은 발로 툭툭 차 한곳에 모이게 하기도 한다. 점심때 나가면 명함전단
5월 학교에는 소설보다 시와 수필이 더 융성했으면 좋겠다. 학생들의 마음엔 시적 감수성이 가득한 시(詩)가, 교사들의 마음엔 깊은 관조(觀照)가 있는 수필이 가득했으면 좋겠다.학생의 마음에 꼭 시의 강이 흘렀으면 좋겠다. 그 강에서 잃어버린 오감을 되찾아 오월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겨낼 행복 가득한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아빠, 느티나무는 늙은 티를 내는 나무라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 봐요.” 필자는 지난주 사전답사로 백두대간 수목원을 다녀왔다. 거기에는 자연과 교감을 나누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 많
필자가 고등학교 때 국어책에 ‘신록예찬’이라는 수필이 있었다. 시험에도 잘 나오는 작품이었다. 그때는 시험공부였으니 그게 어떤 의미인지를 몰랐다. 그냥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생각했다.어떤 계절을 좋아합니까? 누가 필자에게 물으면 필자는 봄 또는 가을이라고 대답하지 않고 신록의 계절이라고 말할 것이다.30대와 40대는 미친듯이 수업만 하다가 60살이 되던 어느날 벚꽃이 너무 아름답다고 느꼈다. 선배들한테 물어보니까 주변의 자연경관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나이 먹은 것이다. 50대 이후부터 필자는 1년 중 바로 지금, 신록의 계절을 가장
내연산은 동해안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고찰 보경사가 있고, 삼십 리에 이르는 긴 계곡을 따라 발달한 12폭포와 선일대를 비롯한 빼어난 경승지가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내연산보경사를 찾아가다 보면 보경사군립공원이란 표지판을 만난다. 사람들은 이 표지판을 보고 포항시가 군(郡)이 아닌데, 웬 군립공원이냐고 의아해 한다.보경사가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38년 전이다. 당시 연간 30만 명 이상이 찾을 만큼 동해안 최대의 관광지였던 내연산보경사는 1983년 10월 1일 영일군에 의해 군립공원으
수많은 기업들의 흥망사를 분석했던 지브랏(Gibrat)은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생존의 비결은 바로 유연한 적응력, 즉 변화라 했다. 대다수의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과 도약을 위해 우수기업의 혁신활동을 벤치마킹하기도 하고, 전문 컨설턴트를 초빙하여 변화를 시도하지만 무늬만의 혁신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변화와 혁신은 기획하고 추진하기는 쉬워도 꾸준히 실행하여 열매를 맺기가 만만찮기 때문이다.최근의 산업현장은 잦은 인명사고에 따른 부실한 안전관리와 환경사고에 따른 문제 등으로 상당히 심각한 선결과제로 대두되고 있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수식어가 주렁주렁 달린 5월이다. 그래서인지 5월만 되면 설렌다. 이런 필자를 보고 지인들은 5월을 탄다고 놀린다. 다음은 필자의 마음과 똑같은 마음의 시다.“5월엔, 왠지 집 대문 열리듯/뭔가가 확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그곳으로/희망이랄까 생명의 기운이랄까/아무튼 느낌 좋은 그 뭔가가/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5월엔, 하늘도 왕창 열려/겨울 함박눈처럼/만복이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 든다/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5월엔, 천지를 가득 채우는/따사로운 햇살에/오래 잠겼던 마음의 문
국어사전에 캥거루가 미숙한 상태의 새끼를 낳기 때문에 다른 짐승에게는 없는 주머니 속에 새끼를 넣어 젖을 먹이고 보호한다고 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대학을 졸업해 취직할 나이가 됐어도 취직하지 않고 부모에게 얹혀살거나 취직을 했더라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에게 의존하는 청년들을 캥거루족이라 한다.우리나라가 IMF 때 대학가에서 신조어로 유행하던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젊은 미혼 30대가 50% 이상이 캥거루족으로 부모와 함께 산다. 이들은 직장이 없는 미취업자다. 당연히 집을 구입 할 돈
이른 봄꽃이 필 무렵부터 시작하여 산천에 녹음이 짙어진 지금까지 주말마다 대구에 다녀오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 피치 못할 일로 가는 먼 길이지만 고속도로 주변은 넘쳐나는 연초록의 물결로 ‘신록예찬’이 절로 떠오르는 황홀한 풍경이라 이를 매주 감상하는 것은 행운이다. 돌아오는 길, 무심히 차창 밖을 보다 깜짝 놀랐다. 온통 누렇게 색이 변한 대나무 숲을 만났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도 변함없이 푸름을 자랑함으로써 군자의 절개를 상징하여 사군자의 하나로 불리는 대나무가 이 초록의 계절에 어찌 저리 되었는가.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백년에
해방 이후 한국사회는 엄청난 정치적 변화를 겪었다. 분단과 6·25 전쟁, 군부 독재와 민주화, 민중 항쟁과 촛불혁명은 오늘의 분열된 정치 지형을 낳았다. 흔히 우리는 아시아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공한 국가로 평가를 받는다. 샤츠 슈나이더가 말하는 정당간의 정권 교체로 아시아 최고의 정치의 발전을 이룬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아직도 상호 부정과 거부라는 독특한 갈등 구조를 갖고 있다. ‘문빠’와 ‘태극기’라는 사이비 보수와 사이비 진보간의 왜곡된 이념 갈등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소위 보수를 자처하는 태극기
“선생님, 저 영어 90점 맞을 거예요! 이거 복사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서울에 사는 학생이 월요일 등교하자마자 영어 선생님을 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그리고 종이 파일을 건네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부탁한다.“90점! 그래, 열심히 해봐. 그런데 이번 시험 쉽지 않을 거야. 괜찮겠어.”“그럼요, 걱정 없어요. 주말 동안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이게 그 증거에요.”영어 선생님께서는 학생이 건넨 종이들을 찬찬히 살펴보셨다. 종이가 넘어갈 때마다 선생님 얼굴에는 미소가 피었다. 그리고 몇몇 부분을 수정해 주셨다. 학생은 선생님 말씀에 더
코로나19로 3분의 2만 등교를 한다. 필자의 학교에서는 놀라운 일이 생겼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학급별 축구대회를 실시했다. 물론 코로나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진행됐다.점심시간과 저녁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축구를 한다. 이 시간을 기다리는 선수들 모두 이기려는 의지가 모두 강하다. 하지만 한 팀은 이기고 한 팀은 반드시 져야만 한다. 모두 경기를 하는 팀은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승리하는 팀은 한 팀뿐이다. 운동장에서 체조를 한다. 사진도 찍는다. 추억의 한 페이지를 남긴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엄청난
잊지 말자고, 잊지 않겠다고, 잊어서는 안 된다고 몸부림치던 4월 학교 이야기!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으며, 또 얼마나 그때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기념일이 야속하다 못해, 원망스럽기 그지없는 4월.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기념일들은 정치인들의 생명 연장 수단이 된 지 오래다. 파란 지붕 집에 들어가는 사람의 색깔에 따라 기념일 색깔도 달라지는 이상한 나라의 기념일! 그런 기념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모든 기념일의 대상은 피해자다. 기념일은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다. 이유 없는 무
오늘이 곡우이다. 곡우는 24절기 중 여섯 번째 절기이다.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는 음력 3월, 양력 4월 20일경이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된다. 곡우 때쯤이면 봄비가 잘 내리고 백곡이 윤택해진다. 그래서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즉 ‘그해 농사를 망친다’는 말이 있다. ‘곡식을 깨우는 비’로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하는 시기를 의미한다.곡우의 곡은 ‘기르다. 양육하다’ 뜻이다. 곡우는 ‘씨앗 비’라는 말과 함께 ‘곡식을 살리는 비’‘곡식을 기르는 비’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한 치 밖에 있는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기 이전에는 우울, 불안,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전혀 없어야만 좋은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이런 부정적인 감정도 인간의 적응에 필요해서 우리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몸도 환경에 맞게 적응해가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적응에 도움이 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공황증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상담센터에 와서 공황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은 우울, 불안, 분노를 호소하는 내담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빈도가 낮다. 그것은 아마도 약물치료를 좀 더 선호해서일 수도 있
“속보입니다. 학생 여러분은 지금 바로….”갑작스러운 속보 소식에 제일 놀란 것은 필자이다. 산자연중학교 방송반 학생들은 하루에 3회 정기방송을 한다. 방송 시간은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시간부터 그다음 수업 시작 예비 종이 울릴 때까지이다. 요일별로 특집 방송 프로그램은 있지만, 속보는 한 번도 없었다.필자는 교무실에서 아침 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속보 소식에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방송에 온전히 귀를 기울였다. 뭔가에 그렇게 집중하기는 오랜만이었다. 방송반이 활동을 시작하고 처음 있는 일이라 궁금하기도 했지만, 걱정이 앞섰
지난달 4일, 갑작스레 사임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2019년 7월 25일,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라는 수식어를 달고 제43대 검찰총장에 취임한 후 사퇴하기까지 1년 8개월, 역대 검찰총장 중 이 사람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총장직을 수행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아 임명됐음에도 임명의 이유이기도 했던 바로 그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때문에 문재인 정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혀 재임 기간 내내 권력 핵심과 대립했고, 종종 직무에서 배제되거나 사퇴 압력을 받았다.그러다가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에
[코로나속보] 2020년 3월 1일 오전 9시 기준 국내 총 확진자 3천526명(하루 새 +595), 사망자 17명(+1) 2020년은 학교가 참 어수선한 한해였다. 코로나19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21년 4월 11일 확진자 614명 서울 2단계 지방 1.5단계를 유지하고 있다.일선 학교에서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을 한다. 원격수업의 장기화로 학생들의 교육격차가 심화되고 학생들은 밤과 낮이 바뀌어 생활하는 문화가 생겼다. 학교의 담임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가정의 학부모님은 학부모님대로 어려움을 겪는 이중적 고충을
평일 오전 도서관에 갔다. 코로나로 전면 개방은 되질 않지만 대출, 열람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도서관 로비에 전시된 책 한 권 집어 들고 로비에 띄엄띄엄 배치된 소파에 잠시 기대앉았다. 유리천장으로 해가 쏟아낸 빛물이 그대로 쏟아져내려와 나의 무릎과 어깨 그리고 머리가 투명하게 젖어가는 듯 했다. 불쑥 보르헤스의 말이 떠올랐다. 만약 천국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도서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라는.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책을 천천히 들어 올려 더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그렇게 조금씩 더 깊게 책에 집중할수록 눈앞에
“내 4월은/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3월에 피었던 꽃향기와/4월을 기다렸던 꽃향기 고스란히 내 안으로 스며들어/눈빛에도 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향기를 나누며/향기를 즐기며/아름다운 4월을 만들고//싱그러운 5월을 맞을 수 있게/마음을 열어 두어야겠어요//4월에는/한 달 내내 향기 속의 나처럼/당신에게도 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마주 보며 웃을 수 있게/그 웃음이 내 행복이 될 수 있게” (윤보영, ‘내 4월에는 향기를’)최근 필자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 시이다. 중간에 생략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어 전문을 인용한다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라는 표어가 생각난다.실패한 정책이다. 2020년 ‘출산율 0.84명’이란 충격적인 저출산 통계를 발표했다. 대한민국이 2045년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인구가 감소하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도된 바도 있다. 같은 시기에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늙은 나라’라는 이름이 붙여진다.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저출산 추이가 계속 현재와 같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도 결혼 건수가 갑작스럽게 추락하고 경제를 이끌어 가는 주체의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