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기림의 날’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억하자는 날이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실명 증언한 날을 기념하여 2017년 12월 이날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다. 지난해에 이은 기념식 행사 장면을 보니 여성가족부 장관과 정치인들이 참석하고 아직 생존해 있는 피해 할머니도 여러 명 참석하였다. 낯익은 얼굴의 이용수 할머니가 소복차림으로 앞줄에 앉아 눈물 짓는 모습도 보였다. 일본 군속명부에 정식 등재되어 있는 김복동 할머니도 올해 세상을 떠났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 조
세습(世襲)이란 권력이나 재산, 신분, 직업 따위를 가족이나 친족끼리 승계하는 것을 말한다. 개방된 민주사회에서는 특권, 재산, 권력, 명예이든 어떤 것이든 세습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재산의 세습을 막기 위해 최소 50%에서 최대 65%까지 상속세를 부과하여 부의 불평등을 막으려고 한다. 자유 민주 사회는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 경쟁이 이루어져 모든 사람은 출발에서부터 과정, 결과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분단의 세월 70여 년, 같은 민족인 남북은 추구하는 정치 이념에 따라 사회의 구조와 관행도 상당히
일본의 8·2 경제 보복조치는 아베의 오만한 식민사관에서 비롯되었다. 아베는 1997년 12월 중의원 역사모임을 결성하고 사무총장직을 맡는다. 아베는 신도(神道)정치 의원모임 등을 통해 자신의 역사 인식의 토대를 굳건히 하였다. 아베는 이 모임을 통해 그의 극우 군국주의적 신념을 전파하였고, 일본 역사 교과서 개정운동도 동시에 펼쳤다. 이들의 ‘역사 교과서의 의문-젊은 의원들에 의한 교과서 문제 총괄’이라는 보고서는 일본 역사 교과서의 개정의 지침이 되었다. 아베의 패권주의적 군국주의적 시각은 일본 국익 팽창에는 기여했겠지만 우리
아베의 극우 정치가 한일관계의 균열을 초래하고 있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절반의 승리를 차지한 아베는 그의 정치노선을 더욱 강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집권 이후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하고 있다. 그는 일본 헌법 9조의 무력행사와 군사력 보유 금지 조항을 개정해 자위대 증강을 합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2006년 관방장관 시절부터 야스쿠니신사를 은밀히 참배하면서도 야스쿠니 참배가 결코 군국주의 강화는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것은 국가를 위해 희생된 사람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며 국민의 권리와 의무라고 주장한다
정치평론가 정두언이 자살로써 생을 마감하였다. 우리나라는 1년에 1만4천명이 자살하고,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이 26.5명으로 세계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자살자 중에는 노인, 인기 연예인, 유명 정치인도 포함된다. 검찰의 조사 과정에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성완종 전 의원, 노회찬 전 의원의 자살은 우리 사회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이번 정두언 전 의원의 자살은 검찰 조사와는 상관없는 일이어서 그의 자살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인기 정치평론가로 신망을 받아온 그가 당일 오전 방송에 출연하고, 오후에 유서 한
러시아의 고려인을 현지에서는 까레이츠키라고 부른다. 이들 고려인 55만 명은 우즈베키스탄 19만, 카자흐스탄 10만,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5만, 사할린 4만, 이곳 연해주에 4만 명이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1937년 10월 스탈린이 연해주 고려인 17만2천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결과이다. 스탈린은 연해주 고려인들이 일제 첩자가 될 것으로 우려해 멀리 중앙아시아로 쫓아버렸다. 세계 이민사에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을 독재자 스탈린이 저지른 것이다. 연해주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명령 하나로 이틀분의 식량만 걸머메고 이
올해는 3·1 운동 100주년이며 상해 임정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연해주의 임시 정부인 대한국민의회는 상해임정보다 한 달 앞서 설립되었다. 그래서 올해는 연해주 항일 운동 발자취를 찾는 사람도 많다. 독립운동 정신계승 사업회 소속인 우리 일행은 3박4일 일정으로 지난달 28일 연해주로 학술 탐방을 떠났다. 대구 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3시간도 안되어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했다.우리나라는 러시아 입국 비자가 면제되었고 입국신고도 자동으로 처리되었다. 내가 자주 다녔던 10년 전보다 입국 수속이 훨씬 간편해진 것이다. 당시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 노딜(no deal)회담으로 끝나버렸다. 트럼프보다는 김정은의 충격이 더 컸을 것이다.트럼프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프로그램을, 김정은은 영변핵시설의 폐기만으로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북미는 종래와 달리 상대에 대한 비난이나 책임전가는 전혀 하지 않았다. 양 정상은 언론을 통해 상대에 관한 호의적 입장을 표출하며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갔다.트럼프는 지난달 29일 G20정상회의에서 트위터를 통해 29~30일 방한 기간 중 방문하는 비무장지대(DMZ
이번 홍콩 시민 200만 명이 참여한 우산 혁명은 세계인들의 관심을 다시 촉발하고 있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된 홍콩에서 대대적인 반정부 불길이 타올랐기 때문이다.시위에 참여한 검은 옷의 홍콩 시민들이 한국의 시위 현장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을 중국어로 불렀다고 한다. 한국 광화문 촛불 혁명 때처럼 그들은 촛불 대신 우산을 들고 저항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국의 방탄소년단과 같은 한류가 세계를 흔들더니 이제는 홍콩의 시위에도 ‘정치 한류’가 등장한 것이다. 물론 정치 문화는 비교되지 않지만 그들이 우리의 ‘광장 정치’를 벤치마킹하
김원봉(1898∼1958)의 서훈 문제는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얼마 전 임정 100주년 기념 토론장에 참석한 옆 자리 여고학생에게 김원봉의 서훈문제를 슬쩍 물어보았다. 의외로 그는 김원봉에게 서훈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의 항일 운동 업적을 보니 정부가 서훈하는 것은 마땅하다는 것이다. 대체로 보수층에서는 북한 정권에 참여한 그에 대한 서훈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진보층에서는 그의 항일 애국 활동에 초점을 두어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그의 서훈 문제는 정부가 서훈 계획이 없다고 발표하여 일단락된 듯하다.차제
한인들의 연해주 이민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다. 1863년 함경도 무산 최운보 등 13가구가 크라스키노로 집단 이주한 것이 최초 이민이다. 연해주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애국지사들의 망명지가 되기도 하였다.이상설, 최재형, 안중근, 홍범도, 문창범 등은 이곳에서 활동하였으며 이름 없이 죽어간 지사들도 상당히 많다. 조선에서 온 이주민들은 초기에 포시에트 부근 지신허(地新墟)에 첫 정착지를 마련하였다. 후일 이들은 우수리스크나 블라디보스토크로 진출하여 1930년대에는 이주민이 20여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신한촌을 중심으로 학교
우리가 흔히 연해주(沿海州)라고 부르는 곳은 러시아의 프리모르스키(Primorskii)지역이다.연해주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에 접하고 중국과는 방천에서부터 맞붙어 있다. 우리 선조들은 1863년부터 이 지역으로 13가구가 처음으로 이주하였다.하산에서 가까운 지신허(地新墟)가 함경도인들이 처음으로 정착한 마을이다. 일제의 침탈 전후 애국지사들은 나라 잃은 설움을 이곳에서 달래면서 항일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한 곳이다.남북관계가 비교적 좋았던 시절 필자는 이곳을 자주 찾은 적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동북 쪽 아르촘에는 진기한 체육
사회주의 국가의 개혁·개방은 체제 변화의 청신호이다. 그들이 경제 정책을 바꾸고 대외 개방을 하면 할수록 체제 변화가 따르기 때문이다. 소련은 고르바초프의 소련식 개혁·개방인 페레스트로이카와 그라스노스트의 와중에 소연방이 붕괴되었다. 오늘의 푸틴의 러시아를 사회주의 체제로 보는 사람은 드물다. 중국도 등소평 이래 과감한 개혁·개방을 추진하여 오늘의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로 나아가고 있다. 베트남 역시 미국과 수교하고 도이 모이를 통해 초보적 시장경제로 가고 있다.‘민족 자립 경제’라는 명분으로 문을 걸어 잠근 북한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북미 하노이 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독일은 벌써 30년 전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성취했는데 우리는 아직도 분단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흔히들 우리는 독일 통일 과정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 통일 경험을 그대로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독일은 통일 당시 환경면에서 우리와 다른 점이 너무 많았다. 독일 통일은 그들 내부 통일 역량과 국제관계라는 외부 환경을 잘 조율하고 관리하여 이룬 성과이다. 우선 한반도의 통일 환경이 독일과 다른 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여전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북한의 인권문제나 식량문제에는 관심이 부족하다. 북미 하노이회담 결렬 후 북한은 최근 두 번이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북한은 방어용 훈련이라고 하지만, 북미 대화 촉진을 위한 방책이라고 볼 수 있다.그에 앞서 북한 당국은 그들 특유의 자존심을 버리고 유엔 등 국제기구에 식량지원을 요청하였다. 북한 인구 2천500만 명이 배불리 먹으려면 600만t의 식량이 요구되는데 북한은 지난해 더위와 재해로 식량생산이 460만t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이 스스로 ‘핵 보유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당선만 되면 엄청난 예우를 받는다. 한국고용정보원 공식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평균연봉 1위인 1억4천만 원, 보좌관과 비서 9명을 둘 수 있다. 재임 중에는 해임될 걱정이 없고 몇 개월만 재직하면 연금이 보장된다. 회기 중 면책특권이 보장되고 어딜 가나 ‘갑’이 될 수 있는 정치인이다.그런데도 이 나라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무너져 있다.우리 국회가 식물국회라는 비판을 받은 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식물국회란 호흡만 하고 누워있는 식물인간처럼 우리 국회가 정상적 기능을 행사치 못함을 빗대는 말이다. 우리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김정은에 대한 평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독재자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마두로를 독재자라고 표현하면서 김정은도 같다는 입장이다. 북한 당국으로는 그의 이 같은 발언이 그들의 최고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로 단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북한 당국이 폼페이오를 북미협상 창구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정은을 몇 차례 독대한 미국의 협상 창구인 폼페이오의 교체를 요구한 것은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북한 당국은 수령의 절대적 권위를 손상하는 그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회담 결렬의
지난달 3·27 하노이 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기대했던 북미 회담은 노딜(no deal)로 끝나 버린 것이다.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 1차 회담은 그런대로 공동 선언이라도 발표되었지만 하노이 회담에서는 아무런 합의문 없이 끝나 버렸다.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은 여전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FFVD)를 우선 요구했으며, 북한은 미국에 대해 대북제재 해제를 우선 요구한 결과이다.미국은 북 핵의 완전 폐기와 제재해제라는 빅딜을 원했고, 북한은 핵 폐기만큼의 스몰딜을 원할 만큼 회담의 목표, 내용, 방식이 사뭇 달랐다. 그러나 북미
지난 4월 11일은 상해 임정 수립 100주년 되는 날이다. 올해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임정 기념식을 거행했다.상해 임정은 1919년 3·1 독립운동의 연장선에서 출범해 자주 독립과 민족해방의 견인차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지난주 미국 상하원에서도 임정이 한국 민주발전의 토대가 되었음을 결의안을 통해 재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국내의 3·1 운동은 잘 기억하면서도 같은 해 설립된 임정의 역사는 망각하고 있었다. 다시 2019년, 임정 100주년을 맞이해 우리는 임정 26년의 민족사적 함의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 행보는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그는 북한의 선대 정권과는 달리 대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우선 ‘경제 발전’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우고 민생 현장을 찾아 나섰다. 수시로 생산 현장을 찾아가고 지난 4일에는 삼지연 건설현장도 방문하였다. 대외적으로는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비핵과 ‘경제 건설’을 앞세우고 있다. 5개의 경제 특구와 19개의 개발구를 선포한 후 해외 투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과거 김정일 시대의 은둔과 폐쇄 이미지 대신 인민들 앞으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그러나 이를 보는 외부의 시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