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과 2002년 군산의 대명동과 개복동의 성매매 집결지 화재 참사로 꽃다운 그녀들이 이 땅과 이별을 고했을 때 우리 사회는 격한 분노와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렸다. 대명동과 개복동의 사건을 통해 경찰과 공무원, 포주와 폭력 세력들과의 강고한 유착 실태가 연일 언론에 보도되었으며 많은 시민들은 화들짝 놀랐다. 거대한 성산업 구조 속에서 힘없는 그녀들은 우리 사회 왜곡된 성문화의 참혹한 피해자였음을 이 사건들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왜곡된 성문화의 참혹한 속살이 성매매의 현장에서 가감없이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렇게 2004년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었다. 그녀들의 죽음 그 후 10여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우리 주변 환경의 변화를 통해
최근 보건사회연구원 보도자료에 의하면 자녀 한 명을 낳아 대학까지 졸업시키는데 약 2억6천만 원 정도의 양육비가 든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교육비를 포함한 양육비의 과도한 부담은 저출산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두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전적으로 동감하는 내용이다. 오늘의 화두는 자녀출산 이후 맞닥드려지는 영아기 양육비용에 관한 것이다. 앞의 보고서에 의하면 1~3세(만 0~2세)까지 영아기 동안 약 2천500만원이 드는데 평균적으로 연간 850만원, 1달로 계산하면 약 70만원 정도 소요된다. 2010년 경북지역 영아를 둔 취업모의 영아양육실태조사에서 1달 평균 72만3천원이 지출된다는 연구결과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 금액은 월평균 가구소득의 21.6%를 차지하고 있고 20~30대
신뢰는 미래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동력이다. 2011년 경영 키워드인 `사회적 자본`을 많은 전문가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우리사회가 함께 만들어야하는 소중한 무형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최근 G20 정상회의 개최이후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사회적 자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자본에는 상호신뢰, 질서의식, 규범, 네트워크, 협동심, 도덕, 존중 등 보이지 않는 자산이다. 이 중 기본 테마인 신뢰는 기업이나 국가가 신뢰를 구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그분의 얼굴을 보고 빌려주면서 안면이라고 얘기했다. 신뢰가 깊은 사람은 좋지 않는 소식이 들려도
얼마전 학생지도 프로그램으로 학생들과 함께 뉴욕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학생들과 세계미술의 현장 뉴욕을 탐방하면서 틈을 내어 학창시절 친구를 만났는데, 부부화가였던 시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시아버님은 식민지시대에 예일대학 미술대학을 수학하셨고, 시어머니께서도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하신 서양화가였다고 했다. 그순간 퍼뜩 떠오르는 대한민국 근대미술사에 그 유명하신 임용련 백남순 서양화가부부가 아닌가했더니 사실이었다. 친구 부군은 3·1독립운동, 시카고 미술대학, 예일대 미술대학을 수석 졸업하시고, 함석헌, 조만식에 영향을 준 개화인사, 민족주의자이신 임용련 선생님의 자녀였다. 평안북도 정주의 명문 오산학교에서 미술선생님, 영어 선생님으로 근무하시면서 이중섭의 미술적 재능을 발견하여 미술가로 키
우리지역에 기상관측 이래 최대 폭설이 쏟아졌다. 60년 만이란다. 쉴 새 없이 퍼붓는 순백의 시간, 그 낭만적 감흥도 잠시, 이내 도시는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치닫는다. 너무 많은 눈들은 제 갈 곳을 잃고 도시의 이곳저곳에서 패잔병처럼 널브러지거나 쌓여 있다. 새해부터 꼼짝 마라, 하고 한 사흘 견디는 신세가 되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이 갇힌 자유의 시간, 두 가지 잔상이 머리를 맴돈다. 아파트 양쪽을 둘러싼 산에 쌓인 눈들은 잘 그려진 풍경화처럼 마음의 서정을 일깨우는 반면, 언덕바지 대로엔 하 많은 눈을 미처 치우지 못해 옴짝달싹못하는 버스와 승용차가 비상등만 깜박인다. 창을 통해 내려다보면서 문득, 이 풍광이야말로 신이 미욱한 인간에게 마련한 고도의 깨우침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부산의 수은주가 기상관측이래 96년만에 최저기온을 기록했다고도 하고 포항기상대는 70년만의 폭설을 중앙뉴스로 전했다. 아직도 길거리 곳곳엔 언제 녹을지 모르는 눈더미들이 얼음이 되어 또아리를 틀고 있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져 지구촌의 어느 나라가 언젠가는 물에 잠기고 말 것이라는 예측은 은근한 두려움에 떨게 한다. 2010년 그린에너지 위원회의 기술세미나 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48%가 건축물에 의한 부하라고 한다. 내복과 운동화를 공동구매하고 전열기의 희망온도를 1도 낮추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건물 자체의 에너지 성능을 효율화시키는 것이 보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절감방안이라 하겠다.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국제적 화두에 부응하는 이러한 건축물관련 정책에 발맞춰 건
새해 달력을 펼쳐 보았다. 주일과 평일 공휴일, 의미 있는 날들 한 장 두장 넘길 때 짧은 시간에 만감이 교차한다. 근로자들은 휴일이 몇 개가 되는지 국경일은 어느 요일인지 연달아 쉴 수 있는 날이 몇 개나 되는지 등 아마 고용주는 영업을 할 수 있는 날은 며칠이나 되는지 휴일이나 공휴일이 주 중에 있는지 주말에 끼어있는지 먼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일과 공휴일사이에 평범하게 빼곡히 박혀있는 평일, 마치 늘상 먹는 된장이나 김치처럼 평범한 일상이 새롭게 다가온다. 1년이란 한 단위이지만 평일과 공휴일을 포함한 365일이란 시간의 결합체이다. 오늘이 있기에 내일이 있고 평일이 있기에 특별한 날이 더욱 돋보이고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유몽인(柳夢寅·1559~1623)의 `어우야담(於于
김춘추가 고구려에 사신으로 갔다. 왕이 춘추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자 거절하여 옥에 갇혔다. 그때 고구려 신하인 선도해가 김춘추에게 넌지시 들려주는 이야기가 바로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조에 전한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즉 귀토지설(兎之說)이다. 문헌에 전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토끼 이야기이다. “토끼와 거북의 이야기를 아세요? 동해 용왕의 딸이 병이 들었어요. 의사가 토끼의 간이 명약이라고 하자 거북이가 토끼를 구하러 뭍으로 갔죠.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려가서 간이 필요하다고 하자 토끼가 말해요. `나는 신명의 후손이라 종종 간을 꺼내어 말린답니다. 다시 돌아가서 간을 가지고 오도록 하죠` 어리석은 거북이 뭍으로 토끼를 데려오자 토끼는 거북을 놀리며 달아났대요. 어때요? 이 이야기를 들으니...”
벌써 2010년 한 해가 다 지나가고 있다. 정말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말 그대로 쏜 화살처럼 빠르다는 이야기 일거다. 올 해가 가기 전에 다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약 3개월 동안 틈틈이 시간만 나면 읽은 책이다. 바로 요즈음 화제가 되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40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으로 정의와 철학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읽었다는 것은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독자들의 지적 수준이 높아졌다고나 할까, 아니면 누군가가 지적했듯이 정의로운, 바르고 의로운이라는 이 당연한 말이 가치를 지니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의 사회가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우리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불만과 사회적 정의에 굶주려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이 지구상에 냉전체제는 그 발을 붙일 곳이 없어지리라 예측했으며, 이는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해소하는 주요한 기회로 작용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일게 했었다. 그러나, 냉전 체제가 해소된 지 10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이념과 체제를 이유로 같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아 있다. 그 화근이 그리고 그 아픔이 느낌과 감성으로서가 아닌 실재하는 위협으로 우리의 일상을 옥죄고 있음을 연평도는 피로써 증명하고 있다. 북측의 연평도 도발 사건 이후 청와대와 국회, 우리 사회 일부에서 일고 있는 호전적인 반응을 지켜보자니 어린 시절 경험했던 공습경보훈련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대응사격, 적의 미사일기지 타격, 강력한 응징~” 연평도 도발 당시 대
“에미야, ○○이가 아직까지 집에 안 들왔다. 전화도 안 받고, 니가 함 알아봐라~” 퇴근이 늦어지고 있는 내게 어머님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6학년인 딸이 밤 9시가 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7시에 수업이 시작되는 영어학원이 8시쯤에는 마치기 때문에 친구들과 조금 놀다 온다 해도 9시를 넘기는 것은 너무 과하다. 휴대폰도 연결이 되지 않고, 학원에서는 벌써 나갔다고 한다. 급하게 ○○이와 함께 다니는 친구들의 연락처를 입수한 후 전화를 끊고 바로 연락을 시도했다.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온갖 가지 흉한 장면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뉴스와 드라마, 영화 속에 등장했던 아동들을 상대로 한 갖가지 학대와 폭력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가슴이 심히 두근거린다. 설마 괜찮겠지 스스로
가을을 왜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을까. 일본에서도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독서의 계절로 겨울을 꼽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농촌 아이들의 배움을 위해 농한기인 겨울에만 열리는 서당 같은 것으로 동학(冬學)이라고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을 독서하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우리나라나 일본은 가을이 책을 읽기에 좋은 날씨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을이 결실의 계절로 독서를 통해 마음의 양식을 풍요롭게 하자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나는 책이 있는 곳이면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책으로 가득한 연구실에서 하루 종일 있어도 지치지 않고, 어느새 서재로 변해버린 우리 집 거실은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장소다. 엄마가 늘 책을 읽기 가까이 하자 딸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 아침에
이번 추석 연휴 동안에 푹 빠져서 읽은 책이 있다. 지난달에 출판사에 다니는 후배로부터 전해들은 책으로 추석 연휴 때 읽으려고 주문해서 사둔 책이었다. 아메리카에서는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책이고, 게다가 영화로도 제작되어 얼마 안 있으면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된다고 한다. 바로`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책이다. 제목으로 봐서는 영 끌리는 책은 아니었는데 자꾸 되새겨 보면 볼수록 묘하게 끌리는 힘이 있다. 서울 올라가는 KTX 안에서부터 읽기 시작해서 틈만 나면 읽었다. 저자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이 책은 자서전적인 이야기다. 8년 연애해서 결혼 6년차인 저자에게는 1년 전에 장만한 허드슨 밸리에 멋진 집이 있고, 맨해튼에는 아파트가 있으며, 집에는 여덟 개의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고, 주말
현존하는 일본 현대 작가 중 이츠키 히로유키라는 작가가 있다. 이츠키는 1932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났으나, 태어난지 얼마 안 되어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다. 처음 정착한 곳은 논산이었고, 아버지가 자주 전근을 하여 초등학교 시절에는 4번이나 전학을 했다. 1945년에 아버지가 평양사범학교 교원으로 부임해 가자, 평양 제1중학교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정착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해 8윌 일본이 패하자 일본 황국사상 신봉자였던 아버지는 허탈감에 빠져버렸고, 소련군이 진주한 9월에는 소련군에 의해 어머니가 사망하고 만다. 1946년 여름, 이츠키는 무기력에 빠진 아버지를 대신하여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결국 소련군 트럭을 매수하여 집단탈출을 꾀하지만 운전기사에게 속아
소위 경제적 상위 국가들로 이뤄진 OECD 국가들 중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가장 낮은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합계출산율은 1.19로 세계 평균 출산율인 2.54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수치이다. 이러한 이유는 지난 40년간 우리나라 국가와 국민 모두 현재지향적 달리기 코스만 경주해 온 결과 미래를 대비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전쟁이란 대재난 이후 국가는 재건이라는 과제를 극복해야 했고, 가족은 모양새를 갖추며 베이비붐을 일으켜 집집마다 5~6명의 자녀을 두게 되었다. 전쟁의 사투에서 살아남은 남성가족부양자는 또다시 온 몸을 다 바쳐 늘어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산업전선에 뛰어들어 먹거리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의 앞세대는 국가재건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눈부신 아침햇살에 함초롬이 이슬 머금은 무궁화가 허들어지는 계절,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나라꽃, 우리 민족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무궁화가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는 즈음, 무궁화를 생각하면 왠지 애국가와 태극기, 그리고 가슴 뜨거운 태극전사들의 `대~~한민국 ! 짜자~짝 짝짝!` 응원하는 소리가 귀에 선하다. 얼마전 미국 UC버클리 대학 연수를 갔을 때의 일이다. 그때마침 남아공 월드컵 16강전 우루과이전이 있었고, 우리 한인들 수십만이 태극기와 붉은 티샤츠를 입고나와 응원을 함께 했는데, 머나먼 이국에서의 민족애가 또 다른 감회를 불러 일으켰다. 그야말로 가슴이 뭉클하고, 저절로 뜨거운 애국심이 용솟음치고 눈물이 나오는, 실로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나할까. 애국자가 되려면 외국여행을 해보라고 누가 말했던가,
입술을 앙다문 그의 두 눈엔 눈물이 가득하다. 우리 강토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을 듯한 그의 외모와 울음 속엔 치유하지 못한 상흔을 간직한 우리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굴곡 많은 우리 근현대사의 상처가 그의 다부진 어깨에 모두 실린 듯 아릿하다. 1989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냉전시대의 마침표를 찍은 이래 지구상에서는 유일하게 이념과 체제가 다르다는 이유로 분단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각성하게 하는 눈물이다. 같은 민족, 다른 국적, 다른 이념과 체제 사이에서 어디에도 확실히 속하지 못한 경계인 정대세는 한국전쟁 발발 60년째를 맞이하는 2010년 6월, 다분히 상업적인 월드컵을 통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분단의 아픔을 화두로 던지고 있다. 현대사회를 다양성의 사회라 한다. 그
녹음이 푸르른 6월 나는 성폭력을 화두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말하기를 접하게 되었다. 피해자의 말하기는 독립영화이며 다큐의 양식을 띤 `버라이어티 생존 토크쇼`를 통해, 가해자의 말하기는 성폭력행위자 프로그램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개별상담이 아니라 영화라는 대중매체를 통해 다른 이들 앞에 자신을 올곧게 드러낸 피해자들의 말하기는 특별한 에피스드가 없이도 충분히 눈물샘을 자극하고도 남았다. 그녀들의 말하기에 등장하는 가해자들의 모습은 검은 그림자처럼 두려운 실루엣으로 등장하기도 하며, 실재하는 위협으로 그녀들과 우리들의 일상을 공포에 떨게 하기도 한다. 그녀들에게 있어 그들은 사람으로 불릴 수 없는 악의 상징이다. 세상을 향해 맘껏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고 말하며 치유받지 못했던 그녀들이 많은
최근 3개월 출산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두 여성에게 백일 된 아기를 누가 돌봐주고 있는지 물었더니 한 여성은 어린이집 영아반에 맡기고, 다른 여성은 친정어머니에게 맡긴다고 하였다. 전자의 여성은 부모님과 같은 지역에 살고 있지 않아 맡길 수 없는 형편이기에 출퇴근 시 아이를 맡기기 쉬운 장소에 있는 어린이집 영아반을 택했고, 후자의 여성은 가까이 살고 있는 친정어머니께 신세를 진다고 하였다. 흔히들 후자의 경우를 최상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일하는 많은 여성들은 위와 같은 두 가지 형태의 고민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절대보육을 필요로 하는 영아를 엄마처럼 키워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친정어머니께 신세지고 시어머니에게 아쉬운 부탁을 하게 된다. 부모님이 가까이 계신 경우는
모자를 깊이 눌러쓴 그녀는 우아한 자태의 딸 그리고 그녀의 남편과 함께 입실했다. 긴장감이 느껴지는 가족이다. 각진 외모와 우렁우렁한 목소리의 그녀 남편에게서는 군인의 냄새가 난다. 그녀의 남편이 전직 군인이었음은 다음날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러 왔는데 당췌 병실이 있어야지. 어쩔 수 없이 병실이 없어서 딸네 집에 갔었잖겠수. 근데 사위가 장인어른 오셨다고 대접한다고 노래방을 갔었던 모양이더만, 근데 장인 어른 대접한다며 노래방 도우미를 불렀던 모양이라. 잘 놀았으면 됐지. 항암치료 받으러 온 나한테 계속 그 노래방 도우미 여자가 결혼을 했겠나 안했겠나 하면서 계속 중얼거리잖겠수. 내 기가 막혀서” 입원절차를 위해 그녀의 가족과 함께 한 약 30여분의 시간 동안 제3자인 나의 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