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국제로타리 3630지구 북포항, 은하수, 동해, 청운, 울릉로타리클럽 회원들이 3만 달러를 들여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흑인 거주 지역에 일리샤 어린이 집을 짓도록 주선해준 인연으로 그곳 포인트 로타리클럽 가빈(66) 회장과는 친구가 됐다. 지난 연말 연평도 포격전을 걱정, 한국이 하루빨리 남북대치 상황에서 안정을 찾았으면 하는 안부 메일을 보내온 가빈에게 통일로 가는 값비싼 대가로 생각해 달라는 답을 보냈다. 한반도는 지구 전체면적으로 보면 0.1%에 불과한 작은 땅덩어리. 이 작은 땅덩어리가 반으로 갈라져 66년째를 맞았다. 먼 훗날 통일 국가의 후손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한 민족끼리 적이 되어 살았던 이같은 분단체제를 두고 남북시대로 부를 것이다. `동양의 블랙홀` 이라 할 중국에
동·서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평화 공존 무드가 강화되면서 잊혀져갔던 화약 냄새를 올해는 몇 차례나 맡았다. 반세기 이상 분단 휴전국 이란 처참한 상황에 놓였지만 우린 경제 선진국만 되면 더 행복하게 살듯이 보인 그 남쪽 땅에 북은 포연이 자욱한 해로 만들었다. 또 연일 으르렁거리니 뭔가를 또 날리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로 인해 우울한 송년분위기가 되고 만다. 돌이켜보면 금년은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종합 2위를 차지했는가하면 전 세계를 지배하는 20개 강대국의 수장들이 서울에 모인 G20회의는 역사적인 일이었다. 이 회의는 경제 강대국 중국·일본도 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는 처음이고 신흥 개발국에서 열린 최초의 회의였기 때문이다. 역사의 연표(年表)만으로 보
왕희지와 왕헌지는 중국 서예 역사에서 2왕(二王)으로 불린다. 재주가 뛰어났으나 놀기를 좋아했던 헌지는 어느 날 큰대(大)자 한자만 써놓고 동무들과 놀이를 나가 버리자 아버지 왕희지가 한 점을 더 찍어 태(太)자로 만들었다. 헌지의 글씨를 본 어머니는 “가운데 점획을 잘 찍었다”고 칭찬했다. 어머니의 말에 자극을 받은 헌지는 그길로 용맹 정진에 들어가 마당에 둔 18개의 항아리 물을 먹물 가는데 다 쓰고 나니 붓 길이 제대로 보이드라고 했다. 왕희지를 평생흠모하고 그 필체의 비법을 알기위해 수 천 자루의 붓이 닳도록 글을 쓴 석봉 한호(韓護)가 남긴 일화도 예외가 아니다. 세 살 나든 해 아버지를 여의고 떡 장사를 한 홀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자란 석봉은 종이가 없어 땅바닥과 가랑잎 위에 습자를 했다
축제 가운데 춤은 하늘에 바치는 사람의 몸짓이다. 그런 순수성이 사라진 축제에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가 한해에 쓰는 예산이 무려 7천억원에 이른다. 전국 시·군·구에서 열리는 축제가 1천178개에 이르니 하루 3.2건 꼴로 열린다. 지방자치제 실시 전만 해도 지역축제는 280개에 불과했으나 그 사이에 폭발적(890개)으로 늘어났다. 자치단체장들이 저마다 업적 과시용으로 양산하기에 바빠 지역과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조차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축제가 만들어 졌다. 결국 소재가 비슷비슷한 붕어빵축제가 여기저기 생겨난 것.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축제의 경우 한산대첩축제, 거북선 축제 등 무려 9개에 이르는가하면 영화축제는 20여개, 쌀 축제는 이천·당진 등 10여 곳이다. 치적 홍보가 판을 친다. 꽃 축
우리에게 천원은 시내버스조차 탈 수 없는 적은 돈이다. 이 돈을 기부를 한다고 가정하자. 아프리카의 내전지역 어린이 10명이 한 끼 식사를 해결 할 수 있다. 1달러면 네팔에서는 한 가족이 마실 우유를 살 수 있으며 우리 돈 만원이면 아시아· 아프리카 난민 160명이 예방 접종을 받을 수 있는 큰돈이다. 미화 100달러면 탄자니아와 잠비아 어린이들이 꼭 필요한 모기장 50개를, 천 달러면 흙탕물을 마시는 아시아·아프리카에 우물을 파줄 큰돈이다. 세계는 지금 6초마다 어린이 한명이 숨진다. 아프리카는 15억명이 살지만 세계의 빈곤 70%를 갖고 사는 가난한 땅이다. 지난해 1월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등에서 1%쯤 남아 인류를 괴롭히는 소아마비 100%박멸을 위해 3억5천5백만 달러를
산촌의 새벽, 동이 트기 전에 부지런히 마당을 쓸어놓고 간다. 아침잠이 없는 나이 든 주인이 이를 보고 머슴을 불러 마당쓸이를 한 이웃에게 먹을 양식을 내려 보낸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이 땅에는 이런 풍속이 남아 있었다. 춘궁기를 보내는 이웃이 마당을 쓸어주고 가면 주인은 그 집에 양식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마당쓸이와 같은 생활경제 유통 풍속으로 인해 춘궁기란 절대빈곤 시기가 1960년대 초까지 200여 년간 지속됐으나 요즘처럼 각박하다는 말이 별로 나돌지 않았다. 마당쓸이로 춘궁기를 잘 넘긴 이웃은 그집 애상길일(哀喪吉日)을 월력에 칠해 두고 그날이 오면 메밀묵, 두부, 감주 동이를 날라 보답을 하거나 시키지도 않은 논둑 풀을 베고 김을 매놓고 간다. 이집 저집들은 작은 나눔을 몸으로 보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캐나다 밴쿠버는 다민족· 다문화 사회다. 캐나다 사람 말고도 유학생을 포함한 한국인 7만명을 비롯해 중국· 인도· 베트남· 필리핀인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흔히들 꽃다발 사회라고 불리지만 피부색과 언어, 문화의 차이로 인해 말썽이 된 적은 없다. 단일 민족을 고집하는 우리에겐 아직 꽃다발 사회가 되는 데는 멀긴 하지만 우리 역시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살 수 밖에 없다. 이미 이 땅에도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 문화가 다른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120만명이 넘게 살고 있다. 조선족은 우리아이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우리가 입을 옷을 만들어 주고 캄보디아인들은 포항 앞바다에서 고기잡이 그물을 걷어 올린다. 필리핀· 네팔 인도 청년들은 울산· 포항 공단에서 배를 짓고 철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어둠사리가 내리는 것처럼 감실이 연출된 공간에 그림 한 장에만 조명이 떨어진다. 관음보살이 사는 곳은 기암절벽 전단향나무 숲속이다. 이런 관음이 인간 세상에 관음 화신으로 나타나셨다. 위로는 깨달음을 추구하고 아래로는 고통받는 중생을 구하려는 물방울 관음보살이 슬픈 듯, 우수에 젖은 눈빛이지만 발속에 가려진 모습만은 한없이 자애로운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다. 바위에 걸터앉은 종래구도와는 달리 일본 도쿄 센소지(淺草寺)가 소장한 “수월관음도”는 물방울모양의 광배(光背)안에 서있는 자태를 그려 `물방울 관음`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경주에 상주하면서 신라불적을 그리는데 평생을 몰두하는 소산 박대성(朴大成)은 화백은 물방울이란 별칭보다는 연꽃을 형상화 시킨 광배라고 했다. 손
일본에 가서 한국인들이 놓치지 않고 볼 역사적 배경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왜의 한반도 침략사와 전래 받은 문화를 세계문화로 발전시킨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다. 나당(唐)연합군의 백제 침략이나 조선과 명이 함께 대응했던 임진왜란, 청일 전쟁 등은 조선을 무대로 삼은 중요한 동아시아 전쟁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사카 성이 그렇다. 유적 뒤에 숨어있는 쓰라린 고통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한· 중· 일 3국이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과거는 어떤 형식이든 되풀이 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사진구(宇佐神宮)는 천황, 무사, 신(神)과 함께 철의 신을 모시는 곳이다. 인류의 대량 살상 시점이 철의 발견 이후로 보면 일본은 가야로부터 야철 기술을 전수받은 이래 가장 많은 변화를 겪는다. 일
죽어서도 놓지 못하는 것이 명예욕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의 행적과 이름을 후세에 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은 같다. 오석에 갓을 얹고 평생의 치적을 새기는 묘비는 한(漢)나라 이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거유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숨지기 나흘 전 조카를 불러 자신의 묘 앞에 세워질 4언(言) 24구(句)로 평생의 삶을 정리한 묘비명(墓碑銘)을 유언으로 남겼다. “크게 어리석었고 병이 많았네 중년에 들어 부터 어찌 학문을 좋아하게 됐고 말년엔 외람되게 벼슬이 높았네... 근심 속에 즐거움 있고 즐거움 속에 근심 있네 생을 마감하는데 다시 무엇을 구할 것인가.” 당대의 유학자가 남긴 자명(自銘)으로는 소박하고 삶에 감사했던 마음가짐이 나타난다. 이 글로 보면 퇴계는 살아생전 제자들이 올린
스님들은 공양을 받을 때마다 “당신이 있어 내가 더 행복합니다” “삼라만상의 맛을 다담아 내 주세요”하고 마음 속으로 빈다. 음식을 내는 공양주도, 상을 받는 스님도 모두가 행복하다. 사찰음식엔 드러내지 않는 3원칙이 숨어있다. 17세기 고승들의 글을 모은 치문경훈(緇門警訓)에서 나온 “청정(淸淨) 유연(柔軟) 여법(如法)”이 갖는 가르침을 따른다. 청정함은 조미료나 방부제를 쓰지 않는 채소로 맛을 내는 것. 육물은 물론 젓갈, 파, 마늘, 달래, 부추 등 세속인들이 신체의 힘을 돋우기 위해 즐겨 쓰는 이른바 오신채(五辛菜)를 쓰지 않는다. 오신채는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열물(熱物)이란다. 열물은 익혀 먹으면 음란한 마음이 일고 날로 먹으면 화내는 마음이 수시로 일어난다 해서 수행자들은 의도적으로
계곡에 앉힌 안양교에는 여전히 물안개 피어오르건만 세심수행(洗心修行)에 들려는 나그네는 찾기 힘들고 어떤 것이나 지나가버리면 처음과 같은 실존을 찾는 것 역시 여간 어렵지 않다. 토함산 해맞이로 아침을 여는 경주 동남산의 작은 절집이 이육사(李陸史)와 짧은 인연을 가진 옥룡암이다. 이 절 한쪽 허름한 요사채에 독립투사요. 민족적 저항 시인이셨던 육사가 한동안 머물며 시(詩)작 활동에 몰두했던 곳이다. 당시 곤궁했던 육사의 처지를 후원했던 분은 경주 교육의 선구자이신 이규인(수봉재단 설립자)이다. 수봉의 족질이 되시는 이식우(경주중학교 교장 역임) 선생은 부친이 내린 돈과 생필품을 남몰래 전달하려 옥룡암에 들릴 때 청포도 초고를 앞에 두고 사고하는 육사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이같은 사실은 5년 전에
합종연횡설로 유명한 전국시대 재상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귀곡(鬼谷) 스승에게서 동문수학한 친구사이로 그 우정은 중국역사에 기록됐을 정도로 두터웠다. 스승에게 배울 때는 장의가 공부를 더 잘했지만 입신양명은 소진이 먼저였다. 소진은 조· 위나라 등 6국을 찾아다니며 전국시대를 끝내려는 진나라의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 합종연횡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여섯 나라에서 재상 노릇을 했다. 반면 집안이 가난했었던 장의는 재상으로 이름을 날리는 소진에게 가 도움을 청했지만 소진은 거지를 대하듯 푸대접했다고 한다. 분개한 장의가 진나라로 떠나는 것을 본 소진은 급히 하인을 불러 돈과 의복을 주며 동문수학한 친구가 성공할 때까지 도우라고 몇 번이고 당부 했다. 진나라에 간 장의는 6국을 격파할 전략을 진왕에게
원효대사(元曉大師·617~686)는 한국불교가 낳은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자 저술가· 성자· 실천가이다. 원효의 대사상은 중국 둔황에서도, 일본에서도, 석가모니가 불법을 완성한 인도에까지 영향을 끼쳤으며 국내보다는 나라 밖에서 연구가 더 활발하다. 타클라마칸은 위구르어로 해석하면 `들어가면 되돌아 나오지 못하는 땅`이다. 너무 넓고 험한 사막이여서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쪽으로 가든 목숨을 걸고 걸어야 하는 곳이다. 둔황은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힘들다는 거친 사막 타클라마칸을 건너기 앞서 여장을 점검하고 체력을 추스르는 마지막 휴게소 같은 곳이었다. 수도승(修道僧)들은 석가모니가 태어나고 불법을 편 땅, 천축으로 가는 머나먼 구법(求法)여행에 앞서 둔황에 묵으면서 원효가 지은 `대승신기론소`를
1975년 경주 양동을 방문한 노벨상 수상작가 펄벅은 부엌에서 무채를 써는 것을 보고 저건 요리가 아니라 한옥에 담긴 예술이라고 극찬했다. 죽기 전에 한옥에서 한번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시멘트와 철근 벽돌 등 공해덩어리가 뭉쳐진 아파트는 이미 집이 아니다. 오직 화폐의 가치로 상징되는 부동산으로 전락된 지 오래고 아파트 공화국이 된 원인이다. 편리성과 부동산 가치의 대부가 된 아파트는 이미 우리주변의 필수품이 되어서 60%이상을 차지해 버렸다. 한옥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와 슬기는 뾰족집, 상자집, 아파트에 묻혀 버렸다. 한옥은 어머니의 품속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나 개발이라는 물결을 견디지 못하고 밀려났으며 1980년 이후부터는 뭉그러지듯이 사라졌다. 나무와 흙 종이로
흰 구름 따라 고향 길을 가장 걷고 싶은 시기가 추석 무렵이다. 어머니와 마실 나갔던 뒷산은 새소리 곱고 녹음은 여전히 아름다운데 세상살이는 늘 평화롭지 못하다. 지금은 송편 빚는 집도 많지 않고 따로 명절빔 사 입히는 집 역시 드물다. 귀성이 거듭될수록 고향집 가족과 이웃집이 줄어들어 차례자리에 서 있어야할 부모, 형제, 자식의 그림자가 그립기만하다. 나이가 들어 그런 것이려니 생각해도 허전하기는 마찬가지다. 징검다리 연휴가 낀 추석이면 으레 여행을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올 추석연휴는 잘만 활용하면 일주일이상 놀 수 있어서인지 유난히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이제는 내놓고 “조상님 여행 잘 다녀 오겠습니다.” 새로운 세시풍조로 인해 큰 집에 가족들이 모이고 차례를 지내
아침 예불을 올리는 스님은 꼭 향 한 개비만 피운다. 요즘 향은 향이라기보다는 그냥 의식용이어서 밀폐된 공간에서 마시면 해롭다. 재료가 나빠 눈이 맵고 목이 답답해지기 일쑤다. 중국 사찰 마당에서 피우는 향은 매연 수준이다. 부처님 전에 올리는 향으로는 침향(沈香)을 최고로 친다. 침향은 베트남 북부지역에서 자라는 열대나무 아퀼라리아(Aquilania)에서 나오는 나무 기름 덩어리다. 무심하게 보면 세월이 묻은 나무토막처럼 보인다. 아퀼라니아의 몸에 상처가 나면 상처부위를 치유하기 위한 기름덩이가 생기고 온갖 해충이 응어리져 커진 자리에 천년 세월이 들어가야만 명향(名香)이 탄생된다. 천년 세월을 머금고 딱딱한 고체 덩어리로 화한 것이라면 명품이다. 베트남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가격은 kg
조선시대의 거유 퇴계 이황 선생은 처신만큼 입성이 단정 했다고 하며 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입성을 흐트리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선비들의 옷차림은 늘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공자도 옷차림에 남달리 많은 신경을 썼던 것으로 유명하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시종이자 오피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우스의 입을 빌려 길 떠나는 아들에게 “형편 닿는 한 잘 차려 입으라”고 당부했다.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옷은 시대를 표현하는 언어가 돼버렸다. 공항검색대를 통과할 때도 옷이 허름하면 괜히 걸릴 확률이 높다. “옷이 날개” “입은 거지”라는 말이 고전이 된지가 오래며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더하다. 여성이 입는 옷은 신체에 쓰인 언어와 같기 때문이다. 대충차려입고 백화점 명품가게에 들렸다간 종업원으로
요동 벌로 첫 발을 내디딘 연암 박지원(1737~1805)은 하늘과 땅으로 끝없이 펼쳐진 벌판을 보며 내 지른 일성은 “좋은 울음 터다. 한바탕 울만 하구나” 였다. 일주일을 내처 걸어도 지평선에서 해가지고 떠는 요동벌이다. 연암은 조선에서는 금강산 비로봉과 황해도 장연 금사산(金砂山)꼭대기 정도가 한바탕 통쾌하게 울만하다고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썼다. 좁은 조선 땅에 갇혀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갈리고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아웅대고 살아가는 처지를 어찌 생각하지 않았으리. 연암은 `열하일기` 호곡장론(號哭場論)을 통해 울음에 대한 글을 장강대하와 같이 토해 냈다. 지난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프리 스케이팅을 마친 후 울음을 터뜨린 김연아 선수의 심정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동계 스포츠의 변방
벚꽃이 일본 천지를 휘날리던 봄날 교토 등 우리 과거사가 유독 아프게 서린 몇 군데를 아들과 함께 둘러봤다. 교토에 위치한 일본 임제종 대본산 동복사(東福寺)를 비켜가는 곳에 일본식 정원 형태가 고스란히 보존된 영운원(靈雲院)이 있다. 1390년에 조성된 영운원은 일본의 고대 건축양식이 잘 보존되기도 했지만 정원이 더 아름답다. 외부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좋은 영운원 한쪽 관월정(觀月亭)은 도쿠가와 바쿠후 시대를 종결시킨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 利通)와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등 메이지유신을 성공적으로 이끈 근왕파들이 정한론(征韓論)을 논의했던 곳이다. 사이고가 정한론을 강력 주장했던 반면 오쿠보는 일본 국내개혁과 성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역설, 1894년까지는 이 입장이 고수됐다. 사이고는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