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후반,“안녕(들)하십니까!”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형태의 대자보가 대학 캠퍼스 벽면을 장식한 때가 있었다. 학내의 불합리한 문제점에서부터 한국 사회의 다양한 구조적 병폐에 이르기까지 젊은이들의 시선에서 바라 본 세태에 대한 풍자와 일갈이 매일매일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전 군사정권 시절의 격정과 분노로 들끓던 격문과는 또 다른 느낌의 글들이었고, 이 시대 청춘들의 고민과 절절한 호소를 느낄 수 있는 내용이었기에 발걸음이 자주 멈추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 글들은 하나같이 우리들에게 현실의 삶이 `안녕(安寧)들 하신지`를 되묻고 있었다. 알다시피 `안녕하십니까?`는 문자적 의미 그대로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지극히 사적이고 일상적인 인사말이다. 어제 만나고 오늘 다시 만
30여년 전 파릇하던 초임시절, 시골의 작은 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는데, 그 당시 예능교과 교사들의 숙명이었던 상치과목 중 `교학상장`이라 배우며 가르치던 한문시간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당시 중학교 3학년 한문교과서에 `수욕정풍부지, 자욕양친부대(樹欲靜風不止 子欲養親不待)`라는 대목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중국 한나라의 학자 한영이 쓴 시경(詩經) 해설서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전해오는 구절이다. `나무가 고요하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부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라는 말이다. 부모님 생전에 효를 다하지 못한 한을 나무와 바람에 빗대어 풍수지탄(風樹之嘆)이니 풍목지비(風木之悲)니 하는 고사성어의 기원이
아마도 관공서, 공기업, 학교 등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긴급 국회`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요즘 들어 공문서 중에 어찌나 긴급이 많은지 공문서를 열기가 무섭다. 최근 국회의원들이 학교 등으로 보내는 공문서들은 거의가 `긴급 보고`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평상시에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 국회의원 공문서들이 2학기 들면서 봇물 터진 마냥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보고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여차 없이 교육청으로부터 질책 강한 독촉을 받는다. 잠들어 있던 국회가 오랜만에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 필자는 기쁨 마음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한다. 그리고 우리 교육계에 산재해 있는 긴급한 현안들을 조사하는 공문서가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공문서들을 접수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필자가 바라는 공문서는
입추, 말복, 처서의 순으로 절기들이 지나가더니, 이젠 자연들이 제법 가을빛을 내고 아침 저녁의 기온도 제법 서늘해지고 있다. 낮아지는 기온과는 반대로 한국은 지금`사과`라는 키워드를 두고 열기가 뜨거운 중이다. 사과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이처럼 사과에는 두 개의 단계가 있다. 우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단계와 그 다음으로 상대에게 용서를 비는 사과의 단계가 그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면 우선 자신에 대한 철저한 사유가 필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잘못했는지에 대한 반성적 사유말이다. 칸트에 의하면 `반성`은 대상 자신의 규정에 직접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우선 대상에 관한 개념에 도달할 수 있기 위한 주관적인 제약들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
늘 욕망으로 출렁이며 설렘으로 꿈을 꾸는 동해바다, 거친 파도를 헤치며 희망을 물질하고 삶의 노를 휘저어 가는 그 곳은 바다 사나이들의 청춘의 광장이요 생활의 터전이다. 천 길 물속, 칠 흙 같은 어둠의 바다 밑에서 돌장어를 잡아 올리는 우리의 아버지와 형님, 아우들의 거친 손과 때와 땀에 찌든 얼굴이며 피멍 든 몸은 차라리 눈물이다. 그렇다. 우리를 지탱해 온 것도 어쩌면 저 눈물 같은 이들의 사랑과 노고 때문이며, 뻘밭 같은 삶의 여정을 헤쳐 나온 목숨의 기록이 아닐까. 돌장어가 또 대박을 치며 영일대를 들썩이게 했다.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에서 열렸던 `제2회 포항영일만 검은 돌장어 축제`! 축제는 성황이었고 또, 대박이 터졌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행사장은 발 디딜 틈이 없
대구에는 현재 두 개의 기차역이 운영되고 있다. 사통팔달 교통망 구축으로 내륙교통의 요충지로 부상하고 있는 동대구역과 도심권 중심부에 위치해 편리함을 더해주는 대구역은 우리민족의 굴곡진 역사만큼이나 깊은 사연을 간직한 채 오늘도 수많은 여행객들의 왕래가 이어지고 있다. 1969년 영업을 시작한 동대구역보다 60여년 앞서 건립된 대구역은 일제강점기 우리의 아픈 역사만큼이나 힘겨웠던 사연들을 간직한 채 변모해왔다. 2003년 대구역은 민자 역사 개발계획에 의해 롯데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외지 유통업체에 의해 대구의 내수시장이 잠식된 첫 사례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에서 드러난 국내자본의 해외유출은 재계 순위 5위인 롯데백화점에 대한 인식 변화에 큰 영향을 줬다.
타오름달답게 정말 대한민국이 활활 타올랐던 8월이 가고 맺음달이 왔다. 8월의 이글거리던 태양을 한껏 삼킨 사과나무들이 가지마다 태양보다 더 붉은 결실을 준비 중이다. 개망초에 둘러싸인 달맞이꽃은 마치 결실의 계절을 축하하기 위해 봄이 미리부터 준비해 둔 꽃다발 같다. 결실의 계절은 자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고등학교에서도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 온 교육활동이 결실을 맺는 계절이 있다. 그런데 이 계절은 자연과는 다르게 너무 혹독하다. 그것은 바로 고입, 대입으로 불리는 입시철! 입시 지옥이라는 말처럼 당사자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피를 말리는 입시! 모든 수험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합격의 문을 꼭 열기를 기원한다. 필자가 있는 산자연중학교도 고등학교 입시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원서를 낸 곳
한여름의 무더위가 점점 기세를 높여가던 8월 초 북한군에 의해 매설된 것으로 추정된 목함지뢰의 폭발로 우리의 젊은 병사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아직도 병상에 누워 있다. 비록 사건이 발생된 시점보다 일주일이나 지나서 국민들에게 알려지긴 했지만 이때부터 우리 정부의 대응 수위도 점차 높아져 급기야 북이 그토록 민감하게 생각하는 대북방송이 재개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후 우리 측의 대북방송장비를 향해 발사된 북의 포격과 이에 맞대응한 우리 군의 포격으로 남북 관계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았다. 다행히 장시간의 회담을 통해 남과 북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고 이제야 한숨을 돌린 듯하다. 이번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 흥미로운 장면이 몇 가지 있다. 예전 같으면 어김없이 `사재기`열풍
사람의 일생에 대한 연구 중 흥미진진한 연구들이 많이 있다. 여러 연구들 중에서 필자는 사람들이 일생 동안 쓰는 시간 비율에 대한 연구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 마이클 포티노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70년을 산다고 가정할 때 사람들이 잠을 자는 시간은 23년, 일하는 시간은 18년, 욕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7년, 식사하는 데 쓰는 시간은 8년, 줄서거나 기다리는 시간은 5년, 화를 내는 시간은 2년, 그리고 웃는 시간은 대략 89일 정도라고 한다. 물론 개인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이 통계가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특히 웃는 시간을 보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참 씁쓸하기까지 하다. 고작 89일을 웃기 위해 아등바등 산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시간 비율 중 특
요즘 공중파, 케이블 가릴 것 없이 채널을 돌리면 여기저기서 `지지고 볶느라` 난리다. 지지고 볶는다고 하니 언뜻 부부싸움을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말 그대로 불 위에서 온갖 재료를 지지고 볶아 언뜻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고 입 안 가득 군침을 돌게 만드는 음식의 향연이 화면 가득히 펼쳐진다. 이른바 `쿡(cook)방`, `먹방`이 대세다. 덩달아 쉐프(chef)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하얀 옷에 앞치마를 팽팽히 두르고 번뜩이는 칼로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펼칠 때 모두들 넋을 놓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어느 순간 일상의 식사는 뭔가 특별한 문화로 둔갑했고, 그냥 주방장으로 대수롭잖게 여기던 직업이 `요리사`, 혹은 `쉐프`로 불리며 전문가 냄새를 풀풀 풍긴다. 그런데 이러한 먹방, 쿡방 전성시대에 오
얼마전 서울 덕수궁 미술관에서 마련되고 있는 `이쾌대 회고전`을 보고 왔다. 20년만에 접하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그동안 기억 속에서만 가물가물하게 남아있던 그의 작품들을 새롭게 각인할 수 있는 뜻 깊은 전시회였다. 필자와 이쾌대와의 인연은 20여년전인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 방송사의 개국 기념 특별전 기획 의뢰를 받고 제일 먼저 추천했던 작가가 이쾌대였다. 지역을 대표하는 근대작가로 전혀 손색이 없다는 점과 88년 월·납북 예술인 해금조치 이후 국내에서는 이렇다 할 회고전이 마련되지 못한 터라 대구에서 꼭 한번은 내손으로 마련하고 싶었던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전시 기획에 따른 모든 여건들이 요즘처럼 넉넉하질 못했다. 대형전시에 따른 예산과 운반차량, 장비, 복원기술 등
미국 특허등록 22년간 랭킹 1등 기업인 IBM은 특허 자산을 재정비한 후 라이선스 수입이 연간 10억 달러 이상이며, 심지어 TI의 경우는 공격적인 라이선스 정책으로 40억 달러 이상의 로열티를 벌어들인 사례가 지식재산의 가치를 여실히 증명해준다. 땅이나 주택과 같이 부동산을 담보로 받았던 대출과 같이 특허를 담보로 하여 대출을 받을 수 있듯 지식재산 즉 IP를 중심으로 거래되는 각종 금융 활동을 IP금융이라고 한다. 크게 보면 특허 전문기업에 의한 재무적인 투자도 IP금융에 포함된다. 전자는 기업의 재무 여건이 열악하더라도 우수한 특허를 보유한 중소기업에게도 IP를 평가하여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금융을 의미한다. 후자는 기업이 관련 지식재산을 아예 펀드에 넘겨서 펀드가 지불한 자금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학교들이 불볕더위 여름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했거나, 준비 중이다. 개학(開學)을 사전에서는 “학교에서 방학, 휴교 등으로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수업을 시작함”이라고 정의한다. 방학이 사전의 의미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면 개학은 “다시 시작함”이라는 사전의 의미를 잘 지키고 있다. 유난히 뜨거웠던 올 여름을 이겨내고 학생들은 다시 학교로 보였다. 개학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개학을 검색하다 놀라운 책을 발견했다. 제목은 `신 나는 개학 날`. 당연히 우리나라 책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아마 이런 제목으로 책을 냈다가는 분명히 학생들로부터 돌팔매를 맞거나 좀 지나치면 허위사실 유포 죄로 고발을 당할지도 모른다. 학생, 학부모, 더군다나 교사들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개학이 이 나라 교육
그늘이 아프게 품고 있는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이들의 삶은 얼마나 질퍽할 것인가? 최근 한 무명 연극배우가 단칸 고시원 방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며칠 동안 그 죽음이 방치되었다는 사연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어느 집단이든 누군가 희생양이 되어야만 그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나고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사회라곤 하지만, 최소한 인간의 존엄성까지 버리고 매일 소주로 비루한 삶을 위로해야 했던 한 예술가의 죽음은 한쪽으로만 쏠려 있는 자본주의의 시선에 혐오감을 느끼게 한다. 생각 없이 내뱉는 `예술가는 가난해야한다`는 근대적 경구가 공허하게 들리는 순간이다. 그 가난의 이름은 몸의 가난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 가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예술의 창조성에서 기인한다. 그러기에 가난의 아름다움은 예술이라는 진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일컬어져 왔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이렇게 불리기를 즐겨했었다. 그런데 굳이`즐겨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못 박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과거에 비해 이 표현을 입에 오르내리는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강해서이고, 또 하나는 지금의 우리 모습들이 과연 `예의`를 입에 올릴 상황인지가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예의에서 벗어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저질러질 뿐더러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예의에 벗어난 일인지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감각이다. 이로 인해 일상에서는 사소한 다툼으로 낯을 붉히는 일에서부터 법적 다툼으로까지 비화되는 심각한 상황까지 벌어지기 일쑤다. 이런 지경이니 어찌 동방예의지국을 쉽사리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우리 민족을 동방예
8·15가 종심(從心)을 맞이한다. 70년! 공자는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이대별로 성취해야 할 일들에 대해 설명해 놓았다.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고(志學), 30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而立), 40세에는 미혹됨이 없었고(不惑), 50세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으며(知天命), 60세에는 귀가 순하여 남의 말을 듣기만 하여도 이해하게 되었고(耳順), 70세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從心).” 종심을 어느 책에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또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여도 어떤 규범이나 법도·제도·원리 등을 벗어나지 않는 상태`라고 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행하든 일정한 법도가 있다는 뜻이니, 바로 유교(儒敎)에서 말하는 성인지도(聖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입추(立秋)를 기점으로 적은 양이지만 소나기가 내려 뜨겁게 달아오른 대지를 약간이나마 식혀주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더위 사이로 미국에서 발생하는 페스트와 레지오넬라균 감염자들의 사망 소식은 전염병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현생 인류에게 적지 않은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겨우 메르스 확산의 위기를 피해갔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기에는 세계인의 교류가 너무 활발하고, 이에 따라 전염병은 일 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인의 공통된 고민거리임이 자명한 사실이 되고 있다. 지난 달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캠프장을 다녀간 한 소녀가 페스트균에 감염됐다가 회복됐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에서 9년 만에 페스트 감염 사례가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한 국가나 기업이 성장 발전함에 있어 성장률곡선이 일직선으로 우상향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어떠한 형태로건 일시 변곡점의 국면을 맞게 된다. 이는 국가나 기업 모두 어느 정도 성장하게 되면 그때까지 성장을 견인해왔던 경제 사회적인 제도적인 틀이나 성장방식이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국가나 기업은 성장세가 꺾이게 되는데 최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선진국이나 세계적인 대기업들은 이러한 난관을 슬기롭게 해결해온 셈이다. 한국경제도 요소지향형 경제에서 혁신지향형 경제로 이행하기까지 기존의 `구조`를 새롭게 전환하는 `구조조정`을 추진중에 있다. 특히 최근과 같이 중국의 중속성장의 `뉴노멀`시대 진입, 미국의 금리정상화 임박 등 세계경제의
요즘 방송을 보면 한 사람을 자주다 못해 일상적으로 보게 된다. 예능, 광고 등 방송에서 이 사람이 빠지면 이야기가 안될 정도다. 이런 사람을 흔히 대세남이라고 하는데, 그 주인공은 집 밥의 백종원씨이다. 수더분한 외모와 친근감 있는 말투 등으로 집 밥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백 선생. 그의 요리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가 보여준 공유(共有) 정신이 그를 대세남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가 보여주는 간단하고 쉬우면서도 맛있는 요리는 복잡하고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오아시스가 되기에 충분하다. 집 밥 바람을 타고 요리사, 셰프들이 방송계의 대세가 되고 있다. 방송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아마 이연복, 최현석, 쌤킴 등의 이름은 한번 즈음은 들어봤을 것이다. 연예인
지난 두 달 가량 바이러스 공포로부터 우리나라를 거의 마비시켰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이제 종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치료제와 백신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공포와 위협의 대상이 되었던 이번 메르스 사태는 변이에 의한 신종바이러스의 확산이 생물학적으로 얼마나 큰 문제가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로 여겨진다. 그리고 안일한 초기 대처와 허술한 정책 수립은 질타와 질책이라는 사회의 반응을 넘어서서 우리나라를 구성하는 각 분야 전문분야에 대한 원론적 불신으로 확대되어 체제의 전복으로까지 이어질 수는 위협을 안겨 주었다. 마지막 격리자가 이제 27일 자정을 기해 격리에서 해제가 되며, 20일째 신규 확진자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메르스에 감염된 후 현재 입원 치료 중인 환자는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