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주거, 도로, 상하수도 등 물리적인 요소들의 발전과 경제산업, 사회문화활동 등의 지속적인 향상 내지 정비가 필요하다. 이러한 요소들은 서로 연계되어 장기간에 걸쳐 함께 상향이동하며 도시가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발전과정은 단독적이 아닌, 주변 그리고 국내외 상황과 크게 연계되어 있다. 내 고장의 발전전략은 복잡다단한 주변과 국내외적인 요소들의 종합적인 분석 하에 도출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해결전략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포함해야 할 요소들이 많고 예측불가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산속 외진 곳에 독자적인 유토피아의 건설이 가능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아니다. 우리는 복잡계 속에 살고 있고 그 안에서 무언가 유토피아를 이룰 요소 내지 패턴을 지속적으로 찾아내고 추진해야만 한
영국의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는 제목 자체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으로 1516년에 발간되었다. 당시 유럽사회는 근대화 바람이 불며 귀족들의 부가 크게 늘어났으나 농민들이나 도시노동자들은 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모어는 이러한 사회상을 보면서 새로운 사회인 유토피아를 그려내었는데 그곳에는 사유재산제 폐지, 공평한 노동과 분배의 경제체제, 교육과 종교의 자유 등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이러한 이상사회(理想社會)는 모어 개인만이 아니라 르네상스시대 인문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동경했던 사회이기도 했다. 20세기 미국의 위대한 휴머니스트로 알려진 루이스 멈퍼드의 `유토피아 이야기(1922)`가 있다. 그는 도시학자, 역사학자, 문예비평가, 건축비평가 등으로 활약하면서 현대인에게
요즈음 매주 토요일 아침 30여분을 운전하여 한 이웃 도시를 방문하고 있다. 예전에도 가끔 들러보던 이 도시는 한 도농통합시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는데, 필자에게는 평범한 소도시라는 인상 이외에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토요일, 좀 천천히 차를 몰아가며 사방을 보니 이 지방에서 보기 드믄 넓은 들에 산줄기가 삼면을 에워싸고 있는 지세 좋은 곳으로 보여 졌다. 이날따라 약간의 안개가 끼어 신비해 보이는 이 벌판을 운전해가며 이 소도시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지리적으로는 `명당`같이 보여지는 이 소도시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은 주변의 광역도시들에 밀려 고속화된 교통로상의 한 작은 마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도심이 작은 구릉이나 녹지대 없이 너무 밋밋한 것,
얼마전, 반년 만에 베트남의 호치민시티를 다시 방문했다. 한국은 늦봄 내지 초여름이라 하더라도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차갑게 느껴져 꼭 겉옷을 입어야 하는 시기이지만 호치민시티에 내리니 더운 기온이 확 느껴진다. 호치민시티는 인구가 900만명이나 되는 대도시인데 고층건물이 드물고 대개 3~4층의 작은 건물들이 끝없이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다. 오래된 프랑스풍의 건물들이 많고 대개가 주상복합의 형태로서 1층이 가게이고 2~3층은 주거인 경우가 많다. 낡은 건물들이지만 이색적인 빌딩 화사드, 주변의 큰키나무, 그리고 발코니의 식물들로 인해 멋진 도시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10여년 전 베트남에 왔을 때는 아침식사와 커피 한잔을 핑계로 시내에 나가도 크게 갈 곳이 없어서 시장통 칼국수 집에서 손짓발짓으로 며칠
얼마 전 필자의 사무실 인근에서 며칠간 하수관 공사가 진행되어서 목련, 철쭉, 유채 등 활짝 핀 꽃들과 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가 연출되었었다. 며칠이 지나 냄새가 다 가셨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4일 외국에서 방문한 분들 몇몇이 무슨 냄새인지 궁금해 한다. 분명 평소에 맡아보지 못한 역한 냄새라고 생각 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도시들이 건물이며 도로가 잘 건설되어 있지만 심한 하수구 냄새는 아직 고쳐지지 않은 것들 중 하나이다. 대부분 우수와 오수관이 분리되어 있고 폐수처리 시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완전하지 못한 탓도 있겠고 폐기물을 길거리나 우수구에 함부로 버리는 경향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봄이 되면 특별한 냄새 때문에 며칠을 불편해 하던 기억이 있다. 이는 필자만이 아니라 주변에
`이어도`는 섬 이름이면서 시, 소설, 연극, 영화, 대중가요 등 수많은 예술 장르의 주제이기도 하다. 옛 제주도 사람들은 이어도를 어부들이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섬, 어부들이 죽으면 가는 환상의 섬으로 믿고 있었다. “한 어부가 배를 타고 폭우가 쏟아지는 바다에서 방향을 잃었다가 처음 보는 작은 섬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무릉도원이었다.” 이어도는 이러한 설명과 함께 제주인들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은 미지의 이상향이었다. 예로부터 제주도 사람들은 어업에 종사했다. 남자들은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고, 여자들은 근해에서 미역 등을 따면서 생계를 유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폭풍이 불고 파도가 세니 어선들이 난파되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흔했다. 이 제주여인들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올 연말이면 포항에도 KTX가 들어오고 서울까지 2시간 정도에 연결된다. 지금은 승용차로도 1시간~1시간반을 달려 신경주역이나 동대구역으로 가야함에 비하면 아주 획기적이다. 이론상으로는 신경주며 동대구가 멀지 않아 보여도 실제 이용하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은 거리와 시간인데 포항에 KTX가 들어온다는 것은 시민들의 편의가 대폭 증가됨과 동시에 포항의 경제발전의 기회가 더욱 커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도심에 있던 포항역이 이제는 교외지역인 흥해읍 이인리로 옮겨가게 되는데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이라 지금의 포항역 보다는 주차편리 등을 고려하면 이용이 더욱 편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서울을 가게 되면 택시나 버스를 타고 잠깐사이 포항역에 가서 KTX를 타면 된다. 포항역에 도착하는 경우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와 그 내각의 극우적인 성향이 한국과 중국을 주축으로 한 동북아의 불안을 조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한국계라고 할 만한 근거가 적지 않다. 물론 한국인인 필자의 경우에도 700여년전 몽골족의 흥기를 피해 이주해온 북중국 장수가 선조로 되어 있으니 수백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며 누가 중국계이고 한국계인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냥 재미로 자료를 뒤져보았더니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의 제 56, 57대 총리대신을 역임했으며 그의 친동생인 사토 에이사쿠도 제61, 62, 63대 총리대신이었다. 그런데 사토 에이사쿠는 자신이 한국 출신임을 숨기려 하지 않았고 임진왜란 이후인 30
한동안 베란다에 키울 유카나무를 찾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많이 보아온 나무인데 막상 구하려니 쉽지 않았다. 어릴 때 부모님이 앞마당에 키우던 유카나무는 실유카로서 잎은 풍성하나 나뭇가지가 길게 자라나지 않는 것이었다. 실유카 잎 가장자리에서 실이 풀려 나오는데 중남미에서는 이 실을 이용하여 직물을 짜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찾는 것은 가지가 높게 자라는 실없는 유카나무로서 어찌 보면 야자나무와 비슷하다. 미국에 유학 갔을 때 세 들었던 2층집 뜰에 커다란 유카나무가 있었는데 나무 자체가 2층 창문 높이까지 자라고 여름이면 긴 꽃대에 하얀 꽃들이 만발하여 매우 보기 좋았다. 이 식물의 뿌리에서는 독특한 냄새의 추출물이 나오는데 이를 섞으면 물질들이 잘 보존된다고 하여 차, 의약품, 화장
인도 비하르주에 다녀온 몇몇 지인들이 그곳 사람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었다. 그곳 주민들의 생활이 아프리카 주민들보다 못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의 극심한 빈곤과 지역격차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지난 수 십년 동안 각 국가는 물론이고 많은 나라들이 함께 힘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여전히 문제를 풀어내지 못함에 대한 해석도 다를 수 있다. 인도는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고, IT분야의 전문가들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고, 국토가 넓고, 자원도 많고, 역사가 긴 나라이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빈곤함과 함께 카스트제도 등 전근대성이 큰 나라이고, 이러한 어려움들을 스스로 풀어내지
1960년대 이후 우리 한국이 성공적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리더십, 연속적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수행, 수출주도형 경제 정책의 수행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난 10여년에 걸친 반복적인 국내외 불황으로 우리네 삶이 그리 녹녹치 않음도 사실이지만 지금도 많은 국가들이 우리 한국을 부러워하고 있고 배우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삶의 질이 다른 많은 나라들보다 더 낫다 하기 힘든 경우도 많은데 그 이유는 삶의 질 향상 내지 사회발전을 경제발전 내지 소득의 향상만으로 규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발전이란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상향이동 함을 뜻한다. 이는 의식주 해결은 물론이고 자기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 남녀 혹은 계층 간에
봄이 오는 듯 하면서도 아직 추운 날이 많다. 몇 주전 인근 시골마을을 방문했을 때 나물 캐는 아주머니들을 본 것 같은데 동네 공원의 잔디밭은 아직 푸른 싹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여름에 동네 빈터를 가득 채우던 억새며 잡초들이 말라버리니 보이는 것은 크고 작은 쓰레기들이다. 빈터만이 아닌 골목길에도 라면컵, 빈 플라스틱 병 등 버려진 것들이 많다. 큰길가는 좀 덜하지만 조금만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쓰레기 천지인 이곳이 교외의 신시가지이다. 상가 골목 안은 주차문제가 심각하다. 세울 곳을 찾기도 힘들고 교행도 힘들다. 새로 세워진 건물들이고 신시가지인데도 주차시설이 제대로 준비되어있지 않음이 안타깝다. 일보러 잠시 동네 인근에 나올라치면 마주치는 이러한 풍경들이 우울함을 준다. 분명 고
같은 역사와 정체성을 지녔던 대구와 경북이 다른 광역자치단체로 나누어지면서 대구시내에 있던 경북도청을 경북도 영역으로 이전작업이 추진되었다. 어디로 이전할 것인가가 큰 과제였는데 도청이전추진단, 후보지선정위원회 등의 활동으로 2008년에 안동과 예천 중간지점에 계획인구 10만명의 도청신도시를 건설하기로 결정되었다. 교통편리성, 중심성, 대지의 입지 및 규모, 낙후지역 개발 등이 경북도에서 수립한 평가지표로 기억된다. 그때 필자는 포항유치위원으로서 `국제성` 내지 `항만 및 공항 접근성` 등을 지표에 포함하자고 주장했었던 기억이 난다. 현재 신도청사는 2014년 말을 목표로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도청의 고유기능에 입각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함께 추진되어야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도민
1995년에 포항시와 영일군이 합해져 통합시가 된 이후, 포항시의 면적은 20배로 늘었다. 인구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지만 도시화지역은 크게 확산되고 있는 반면 도심은 공동화를 겪고 있다. 소득의 상승과 생활양식의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시장경제의 대응은 자연스러운 것이나 현재시대는 모든 것을 시장경제에 맡겨두고 있지 못하다. 도시들은 도시행정을 통해서 개개인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고 있다. 개개인의 이익추구가 존중되어야 할 중요성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공공성 유지에 문제점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적인 도시행정의 화두는 지속가능한 도시 내지 환경친화적인 도시의 건설이다. 따라서 압축도시의 형성, 공공교통 체계 수립, 도심재생 등이 그 실천을 위한 목표이자 전략들인 것이다.
경북도는 동북아자치연합 사무국을 운영하고 있다. 포항시는 2012년 1월`환동해 허브`정책을 선언하는 등 환동해권 지자체간의 교류와 협력을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아직은 만족할만한 수준에 이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 그 이유는 국가 간의 역사적 갈등, 지역적인 낙후, 인프라 부족, 지자체들의 정치적 한계 등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지자체들의 차원에서 중요하면서도 비교적 용이하게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은 항만물류라고 본다. 대구경북의 관문항인 영일만항도 일본, 중국, 동남아 항만들만이 아니라 환동해권 항만들과 항로개설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화물들을 TSR을 통해 유럽전역과 연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개항한지 얼마 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영
최신 핸드폰임에도 소리가 고르지 못해 일찍 퇴근하여 서비스센터에 들렸더니 기기고장이 아닌 프로그램상의 문제라서 잠깐 사이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어정쩡 남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하나? 아 그렇다. 미술관에 가자. 그리 멀지않은 도심해변 인근 공원 안에 위치한 포항시립미술관에 들렀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그 넓은 공원 안에 몇몇 외에 인적이 드물었다. 미술관 안도 그런 면에서 적막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러한 적막함을 즐기는 것 같다. 적막함이라기 보다는 고급스러운 어두운 회색톤, 간결 속의 고고함을 주는 듯한 건물 내부에서 때로는 소박하고, 때로는 화려하며, 때로는 알 듯 말 듯한 그림이며 조형물들을 감상하며, 숨겨진 내 자신의 순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필자는 그래서 이
며칠 전 지역의 한 대학총장 이·취임식이 있었다. 이 대학은 개교 20년이 채 안되었지만 혁신적인 교육프로그램 등으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지닌 학교로 발전했다. 이날 행사에 인근 지역의 대학총장들, 지방자치단체장들, 그리고 많은 지역유지들이 참석했었다. 이 학교에 몸 담고 있는 필자도 당연히 이 행사에 참석했다. 초대총장으로서 지원기업 없는 소규모 지방사립대학의 경제사회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명망있는 대학으로 키워낸 분의 은퇴식으로서 이 행사는 소중했다. 그리고 학교 구성원들 모두가 오랫동안 찾고 기대하던 신임총장의 취임식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소중한 자리였다. 하지만 이날을 더욱 의미 깊게 했던 것은 지역 지자체장 및 관련 인사들의 색다른 축사였다. 보통 때라면 써온 것을 낭독하거나 말 그대로
포항에 살면서 영일만항에 대한 관심이 없을 수 없다. 더구나 영일만항 언저리에 직장과 거처를 지니고 있는 필자로서는 그 관심이 좀 더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수업시간에 관련 사안들을 언급하기도 하고 외국인 학생들을 대동하고 견학을 가기도 한다. 이 영일만항이 이 지역 모든 이들의 자랑이면서 이 지역을 먹여 살릴 성장동력임을 크게 기대하고 있다. 영일만항은 우리나라 대여섯 번째의 컨테이너 부두를 지닌 길이 1km, 폭 600m, 3만t급 4척이 동시 수용 가능한 국제항만이다. 2013년 영일만항의 물동량이 14만3천866 TEU이며, 2014년에는 19만5천 TEU를 목표로 삼고 있고 장차 50만 TEU 정도를 연간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대구 경북지역의 물동량 확보라고 한다.
오랫만에 LA 코리아타운에 들렀다. LA를 떠난지 20년이 되어가기에 방학 중 가끔 들러보게 되면 감개가 무량하다. 코리아타운은 올림픽가에 몇 개 중대형 건물들이 들어선 것 이외에는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코리아타운에 오면 한국인 대형마켓에 가서 과일, 채소, 김치 등을 사고 건너편 한국인 빵집에 들러 빵도 사고 커피도 마신다. 자주 들러 점심을 먹는 곳은 한국식 중국집, 설렁탕집, 순두부집, 베트남 쌀국수집 등이다. 점심때 제자를 만났는데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미국에 와서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은 몇 년째 미국인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영주권이 없기에 보험도 없이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했었는데 이제 영주권이 나와 제법 살만해 졌단다. 이제는 몇 년 안으로 건축사시험을
남북으로 긴 캘리포니아는 지역마다 기온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겨울에도 온화한 편이다. 특히 필자가 휴가 중 머무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은 더욱 온화한 편이라서 밤에는 기온이 5~10도로 내려갈지언정 대낮기온은 20~25도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겨울은 우기라서 무더운 갈수기의 여름 보다는 정원의 나무며 풀들이 더욱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여름에는 스프링클러로 물을 자주 주어도 잔디밭이 말라버리기 십상이지만, 겨울에는 땅속에 잠자던 수선화 같은 알뿌리식물들도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앞뜰에 있는 3그루의 야자나무는 수 십년째 같은 모습으로 넓은 잎을 펴 보이고 있다. 현관입구를 둘러싼 동백나무들도 윗가지를 쳐주니 높이가 1m 남짓이지만, 이 집의 나이만큼이나 60~70년의 수령을 자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