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많은 집에서 바로 밑의 동생만 데리고 마실 나가려면 중간에 끼여 이래저래 푸대접받는 동생이 데굴데굴 구루면서 서럽게 울어 버리는 장면들은 지금은 아예 볼 수 없다. 지금은 자녀가 셋만 되도 천연기념물처럼 보인다. 이름 끝 자가 사내 남(男)자이거나 끝 말(末) 자가 붙으면 딸부자 집이다. 여섯 일곱은 보통이고 열 명이 넘어서도 아들 가지려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는 이웃집 할머니는 엷은 미소를 띠울 뿐이다. 지금처럼 천연기념물 보듯 한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장례문화가 많이 달라지기는 했으나 그 옛날 형제가 많은 집에서 상제들이 한목소리로 내는 애곡소리는 너무나 듣기 좋다. 그래서 애 경사에는 형제 많은 집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자녀가 많은 집 할머니의 존재는 어머니보다 애정
19세 성년이라하지만 인고력·지구력 ·담력이 없는 성년들이 거리에 넘쳐난다.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짊어질 나이가 되었지만 부모로부터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공부하다보니 부족함이 없는 세대들이어서 그런지 아낄 줄 모르고 배려할 줄 모르고 참는 정신은 거의 어린이들 수준이다. 일제시대 단발령이후부터는 상투는 틀지 않는 대신 천지신명께 어른이 되었음을 고유하는 성년식의식은 남아 있었다. 현실에 맞지 않는 의식이기는 했으나 성년으로 가늠하는 데는 그보다 좋은 통과관례는 없을 것 같다. 이른 아침 해가 솟는 시간, 외가닥으로 길게 땋아 내린 치렁 머리대신 상투를 틀고 탕건과 갓을 쓰는 관례(冠禮)를 혼인식에 앞서 치르면 성인이 된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남자 15살, 여자 14살로 정해져 있으나
오늘 만난 모든 사람들은 억겁의 세월을 건너 내게로 왔다. 끝이 없는 우주공간. 이런 우주 공간에 같은 시간대, 같은 땅에 살아가는 인연의 확률은 제로(0)를 초월하니 기적이상이다. 지난 생의 인연이 닿지 않으면 옷깃도 스쳐 지나갈 수 없다고 했다. 이보다 더한 인연과 인간 사랑의 표현을 없을 것이다. 우리민족에겐 `인연`이란 것은 인간 사랑의 지독스런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인연의 정신을 뛰어넘는 `이웃사촌`이라는 삶의 정서도 있다. 유럽과는 달리 `휴머니즘` 시대를 체험한 적이 없는 민족이긴 하지만 인연과 이웃사촌의 정신이 시대와 사람의 끈을 이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내 삶이 피로하고 고통스러운 건 놓아 버려야 할 것들을 잔뜩 움켜잡고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우린 간절한 소원이란 이름
우리나라 5월은 골프치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다. 일주일에 한번쯤 골프장 잔디를 밟는 것 같은데 싱글핸디를 유지하는 주말골퍼일 경우는 반드시 남이 하지 않은 준비물이 있다. 커닝페이퍼 같은 일기장을 갖고 있다. 티샷하기 전 그 골프장 18홀 코스의 특성을 깨알같이 적은 커닝페이퍼를 가슴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골프코스를 정확히 알고 공략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 그런 골퍼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프로 골퍼가 명언으로 남긴 골프격언도 줄줄 외우고 다닌다. “대지(大地)를 그립으로 생각하라”, “하늘 위에 떠있는 저 구름을 치시지요” 잔뜩 겁을 먹고 스윙하는 사람과 작전을 중요시 여기는 프로골퍼의 조언이다. 미국 LPGA투어에서 15년간 72승을 올린 애니카 소렌스탐은 “기록의 여제”로 불린다.
지금 한국인의 70%는 부패를 걱정하고 있다. 법규는 많을수록 도둑이 들끓고 무기가 많을수록 사회적 불안이 더 커지고 만다.(노자 도덕경) 탐욕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귀신도 물리치지 못한다고 한다. 인간의 욕망이 지구창조의 원동력이긴 했지만 뿌리를 깊이 내리는 부패가 걱정스럽다. 조선시대 관리들이 뇌물을 받다 적발되면 중죄로 다스려 졌다. 뇌물이 엽전 1천냥 정도면 장(杖)70대를 맞아야 하고 엽전 40관이면 장 100대에 3년간 노역을, 80관이 넘으면 교수형(絞首刑)에 처했다. 뇌물을 받아먹다 처벌을 받으면 벼슬살이를 평생 못할 뿐 아니라 자손들의 벼슬길까지 막았다. 한번 걸리면 집안이 망할 만큼 가혹했으나 후기에 들어서는 많이 문란해져 흥선 대원군의 형인 흥인군(興寅君)은 권좌(權座)
8세기를 살았던 해동 신라인 김생(知瑞 711~791)은 동아시아에서 글씨하나로 정상에 올랐다. 청량산 인근에서 태어나 청량산 `김생굴`에서 10년 수련 끝에 해서(楷書)도 아니고 초서는 더더욱 아닌 독특한 서체를 득필 했다. 같은 지역에서 50년을 붓만 잡고 살아온 심천 한영구선생 역시 고졸하고 강건한 필체를 완성해서 새로운 서예시대를 열었다. 8세기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명필로 이름난 서예가는 당나라의 안진경체를 만든 안진경(顔眞卿·709~785)과 해동 신라가 낳은 김생 등 세 사람이었다. 글씨의 본 고장이라 할 당나라에서 붓을 잡고 글씨께나 삐치는 학인들조차 김생의 글씨를 볼 때마다 천둥 벼락이 치는 떨림 현상이 왔다고 전한다. 왕희지가 무릎을 꿇어야 한다면서 한수 얕잡아 보았던 반도출신 김생의
남자는 시계·만년필, 여자는 명품 백으로 완성한다. 신분제도가 없어진 뒤로는 몸에 지닌 장신구가 가치 측정의 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인들에게는 노출 빈도가 24시간인 시계나 자동차가 부의 필수품이어서 더 중요시 되고 있다. 한 때 가짜 명품 파동으로 잠잠했던 고급 손목시계판매가 다시 늘어나는가하면 가짜분위기에 휩쓸려 장롱 속에 넣어 두었던 고급시계를 다시 차는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다. 손목시계는 마주 앉은 사람의 시선을 단밖에 끌 수 있다. 손목시계가 지닌 시간·기능보다는 재력과 시기능이 더 효과적이다. 역사상 최고의 변치 않는 명품시계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이다. 금딱지도 아니고 손목에 찰 필요도 없다. 북두칠성의 여섯째와 일곱 번째 별이 시침(時針)역할을 한다. 옛 사람들은 밤하늘에
도시디자인이 정치 경제 사회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먹고사는 문제에 천착해왔던 사람들이 디자인과 문화 예술 등 삶의 질에 눈을 돌리면서부터 디자인은 곧 국가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아름다운 집 신(新)한옥플랜이 인기를 얻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잿빛대신 숲과 물이 살아 흐르는 공간이 `일등 경쟁력`을 만든다. 일본에서 도시 미관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요꼬하마시는 40여 년 전부터 도시 디자인 전문가를 별정직 공무원으로 채용했을 정도다. 지금은 14명으로 늘어난 도시 다자인 전담 공무원들이 여전히 요꼬하마시를 아름답고 인간과 호흡하는 도시로 가꾸고 있다. 1859년 개항한 요코하마시는 가스등과 돈가스, 아이스크림 등 외국문물을 가장먼저 받아들여 언제나 일본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도시다. 요코하마시의 도시미관
1980년대 일본 언론은 농촌 총각들의 국제결혼을 두고 `사진만 보고 돈으로 신부를 데려오는 인스턴트 결혼은 인신매매`라고 비판했었다. 우익단체들은 한발 더 나아가 야마토(大和)민족의 피를 더럽히지 말라고 공격했으나 지금 일본은 인구의 10%를 외국인으로 채워 저출산 문제까지 풀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도 그로부터 10년 후인 1990년 국회의원들이 7명의 조선족처녀 사진을 받아와 중매에 나서면서 신부수입이 시작돼 지금은 농촌총각 36%이상이 국제결혼을 해 단일민족 정신은 이미 깨져 버렸다. 정부수립 이후 우리나라에 귀화한 외국인의 수가 10만명을 넘어섰는가하면 다문화가구도 18만2천 가구에 이른다. 코리안 드림을 이루려는 귀화자의 수가 늘어난데는 높아진 국력 덕도 있다. 그 속에는 국제결혼을
원효는 200여 권의 저술을 남겼으니 단군이래로 한국지성사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위대한 철학자이자 저술가여서 해동의 성사로 추앙받을만하다. 또 화엄경을 완성시켜 해동불교를 의상대사와 함께 반석에 올려놓은 분이다. 화엄경은 인간 삶의 본질과 원인, 생사윤회, 돌고 도는 우주의 이치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하지만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아직도 그 깊은 신비는 다 밝혀지지 않고 침묵 속에 잠겨 있는 심오함이 들어 있다. 지금도 중국에서 원효의 화엄학을 연구하는 단체나 불교도들은 원효를 당대의 최고승으로 여긴다고 한다. 히말라야를 넘기에 앞서 둔황에서 몸을 추스르던 구도자(求道者)들이 즐겨 외웠던 원효의 `대승신기론소(大乘起信論疏) 필사본은 1300년이란 시공을 뛰어넘어 세상(2010)에 알려지기도 했다. 원효의
입춘을 맞은 농가에서는 보리 뿌리를 캐어 그 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쳤다고 전한다. 단번에 뽑아 올린 보리 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이 들고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여겼다. 지난 겨울은 눈이 유난히 많이 내렸다. 보리밭에 내린 눈은 두터운 이불구실을 하고 뿌리주변 흙이 눈 속에서 잘 발효돼 풍년이 예고되었던 시절이 불과 반세기 전이었다. 조정에서도 입춘 날 신하들에게 색종이로 만든 채화(菜花)를 임금이 내리면 이를 관모에 꽃고 나라의 안녕을 빌며 봄맞이를 했으니 태평성대를 바라는 마음은 고금(古今)이나 지금이나 같다. 고려 말로 거슬러 올라가면 관청에서는 토우(土牛)를 빚어 밭가는 시늉을 하는 봄맞이 행사도 있었다. 진흙대신 갈대나 짚, 두꺼운 종이로도 춘우(春牛)를 만들어 내놓는 것이
생명이야말로 지순 지고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출생률은 세계 최저이지만 자살률은 세계에서가장 높다. 파브르는 사람을 빼놓고는 자살하는 생물은 없다고 했다. 포항과도 인연이 깊은 일본의 저명한 사회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는 일본 쇠락의 원인은 `대중영합주의 정책과 저출산 문제`에서 찾고 있다. 놀랍게도 요즘 우리나라 언론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사회적 이슈도 `오마에` 교수가 일본 쇠락의 원인으로 꼽는 것과 같다. 바로 무상급식과 저출산 문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지금 굶는 아이들과 홀로 사는 노인 문제를 풀지 않고 부잣집 아이들까지 먹는 초· 중등학교 무료급식에 매달리고 있다. 보다 시급한 문제를 시원스럽게 풀지 못하는 위정자를 두고 올바른 정치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미국은 선진국
지난 시대(家父長) 아버지는 불가사의했던 존재다. 아버지는 늘 멀고 어렵고 말 부치기가 힘들었다. 어머니는 자당(慈堂)이라는 별칭이 있는 것처럼 자애롭고 따뜻했지만 아버지는 엄친(嚴親)이라는 말대로 평생을 두고 자식이 잘못 가는 길을 놓치지 않고 꾸짖는다. 가장(家長)의 장(長)자를 파자해보면 숭고한 뜻이 숨어 있다. 수염과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글꼴이다. 어른이자 맏이의 표현이지만 높고 넉넉한 크기의 의미를 아우른 것 같다. 저절로 가장이 되는 게 아니어서 가장은 가족의 일상과 더 많은 행복을 빈번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평생을 보듬는 든든한 울타리다. 우리사회는 IMF는 가도 이내 닥치는 경제위기 등 눈물겨운 치다꺼리로 긴 세월을 넘긴 이 시대의 가장은 나이 들고 지
지금 경주는 한수원 본사가 앉을 자리를 두고 찬성과 반대하는 시민들로 인해 매우 뜨겁고 여론도 둘로 갈라져 대립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한수원 본사 자리가 어디에 앉느냐에 따라 기존시민의 생존권까지는 몰라도 주민 생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어 마치 생명줄이 걸린 것처럼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다. 경주시민들은 이쯤에서 둘로 갈라져 대립만 할 것이 아니라 과거 사례에서 슬기롭게 답을 찾아냈으면 한다. 상당수 경주시민들은 지난날 KTX 역사가 내남 이조에 들어서고 서남산을 비껴가면 무슨 절단이라도 나는 것처럼 극렬하게 반대를 해서 결국 지금의 역사와 노선으로 변경하게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더욱이 울산에 빌미를 주어 15분 거리에 울산역이 생기게 되어 독점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지난해 11월 서
도로위의 무법자가 너무 많다. 기동력이 생명인 현대사회에서 자동차는 문명의 이기다. 그렇지만 배려를 모르는 운전자들이 많으면 끔직한 흉기로 돌변한다. 지난해의 통계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동차 1만대 당 교통사고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단연 한국이다. 교통사고 사망자도 터키· 슬로바키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국가가 됐다. 한해 동안 교통사고로 숨진 사망자는 5800명이 넘는다. 10여 년 전보다는 줄었지만 자동차 1만대 당 사망률 2.8명은 여전히 OECD 국가 평균치인 1.4명보다 두 배나 높다. 경찰에 접수된 교통사고는 20만 건(2009)이 넘었고 신고 되지 않은 건수를 합치면 80만 건이 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현 정부 출범당시 “교통사소
두어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신랑 신부의 첫날밤 훔쳐보기 같은 독특한 마을 풍속이 있었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한지 창에 구멍을 내고 온 동네 사람들이 들여다보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어린 신랑 신부의 첫날밤은 동네사람들에게 신선한 웃음꺼리를 선사하고 짝을 맞이하는 인연에 대한 주변의 각별한 관심이 모아진 현장이었다. 생활이 어려웠던 당시로서는 한두 살 터울로 줄줄이 늘어선 자녀를 출가시키는 것이 한 입이라도 덜게 되는 딱한 형편이었으니 어린 새 각시가 숱했다. 전쟁의 뒤끝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군에 입대해서야 내의를 처음 입어보고 세끼 쌀밥을 먹어본 장병들이 수두룩했던 시절이었다. 50년 전 삼류 극장은 영화 두 편을 잇달아 트는 동시 상영관이었다. 필름이 낡아 스크린엔 비가 줄줄 내렸고
티끌 한 점 없는 한지 같은 마음을 만들고 싶다면 차(茶)를 마실 줄 알아야 한다. 차를 마시는 생활 습성이 몸에 익으면 한없이 맑고 깊은 내면의 심연이 형성이 되니 생활의 여백은 절로 생길 것이다. 차는 목마름을 해결하기위한 물이 아니다. 멋과 풍류, 소통을 시키는 한쪽으로는 현대인들이 놓치기 쉬운 예(禮)와 도덕(道德)이 살아나고 정신의 갈등까지 풀 수 있다. 우리 차 역사는 의외로 오래됐다. 자생설의 어원이 가야의 허황옥이라면 삼한(三韓)시대까지 끌어 올릴 수 있다. 차 문화가 풍성했던 신라·고려를 지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차를 불교문화유산으로 여긴 선비들로 인해 잠시 구박을 받긴 하지만 그 자리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고려가 끝나고 유교를 국교로 삼은 조선시대 초에도 차 문화는 있
불가에서 말하는 선경(禪境)은 심신이 하나가 되는 경지다. 선경에 이르는 수련과정이 좌선(坐禪)인데 좌선의 기본자세가 되는 결가부좌(結跏趺坐)만 하면 잠(睡魔)이 쏟아진다. 수마를 쫓는 방편으로 수행자들은 열기가 넘치는 음식들을 피하는 대신 카페인이 주성분인 녹차를 마시게 돼 차와 절이 어우러졌다. 차를 마시는 것이 단순히 잠을 깨우는 기호 음식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심신을 맑게 가는 지름길로 여겼다. 한국의 차밭이 절 주변에 많은 원인이다. 불교사의 수수께끼 인물은 선종(禪宗)을 연 초조(初祖) 달마대사(達磨大師)이다. 달마와 양 무제(武帝)간에 나눈 대화는 더 유명하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을 강의하고 숱한 불사(佛事)을 일으켰던 무제가 자신의 불교 경력을 들추면서 “어느 정도의 공덕(功德)이
신라승 혜초(慧超· 704~787)가 727년에 저술한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 1283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국립 중앙박물관은 4월3일까지 `왕오천축국전` 등 중국 신장(新疆) 간쑤(甘肅) 닝샤(寧夏) 등 3개성에서 가진 실크로드 관련유물 220여점을 한 곳에 모은 기획전시를 연다. 8세기 인도· 중앙아시아의 경제· 문화 등 사회풍습을 알려주는 세계 4대 최고(最古) 여행기가 된 두루마리 형태의 `왕오천축국전`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요청에 따라 원본은 60cm만 볼 수 있고 다른 부분은 복제본을 펼쳐 두었을 만큼 귀한 유물이다. 삼한시대부터 도전정신이 강한 해동의 젊은 인재들이 중국을 건너갔고 중국에서 학문적· 종교적 한을 풀지 못한 인재들은 파미르 고원을 수없이 넘었다. 이들은 고향 계림
“동쪽에 뜨는 해가 서쪽으로 넘어간다.그 사이 살고 있는 우리 땅이 중심이라 옛 다산 정약용이 남기신 말씀 그 속뜻을 알겠네.” 원로 문학 평론가 구중서의 시조 `다도해`의 연작시 마지막 글이다. 다산이 벼슬길에 있었던 시절 가까운 친구 한치응이 중국 사행(使行)길 서장관(書狀官)에 발탁돼 얼굴에 뽐내는 빛을 보고 다산은 `우리 땅이 중심이라`는 송별사를 지었다. 사행길 선비들로서는 문명국 중화의 수도를 직접 볼 수 있었으니 여러 의미가 겹쳐 우쭐한 생각을 지닐 만 했지만 실학자 다산으로서는 오랜 세월 벗어나지 못했던 사대주의 미망에서 민족주체성에 눈을 뜨려던 시기였으니 그 같은 글을 남겼으리라. 연암 박지원이 중국을 열망하는 당시 지식인들에게 남긴 오망론(五妄論)은 지금도 가슴에 새겨야 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