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 나도 자연인이 되고 싶다. 나도 고향 예산 덕산 가까운 산골에 들어가 계곡물로 세수를 하고 더덕을 캐고 버섯을 따고 뜨는 해 지는 해 보며 황토방 오두막에서 자고 싶다.텔레비전은 지난 십 년 동안 아예 담을 쌓고 지내다시피 했다. 뉴스라는 건 이쪽 저쪽 다 어찌나 잘 ‘만드는지’ 진실 쪼가리 캐는 데 지칠 대로 지쳤는데 요즘에는 유튜브도 범람 지경이 되어 이상한 좌우 자처하는 세력들의 ‘손님끌이’ 장사가 되어버린 느낌이다.며칠 전 경향신문 11월 21일자 1면에 오늘도 세 사람이 퇴근하지 못했다고, 신문 전면을 하단 광고
‘민족’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다 보니 나의 눈은 다시 신채호로 향한다. 옛날부터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은 외로웠던 모양이다. 단재 신채호는 선생이라 불러 마땅한 선배 선각자였다.‘민족’이란 서양에서처럼 근대에 들어서나 자본주의 상품이 미치는 단위를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 양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달리 신채호는 아주 오래 전부터 형성, 발전되어 온 민족사를 규명하려 한 학자였다. 황당한 역사를 주장했던 사람이 아니요 민족의 이상을 품고 있었고 가려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 투쟁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그는 확실히 잃어버리고 잊
담양 가서 가사문학 얘기 하는데, 공부도 공부지만 김학성 선생 만나 객지 잠 못드시는 이야기 듣고, “암만” “암만”하는 사투리도 듣고 박현수 ‘5촌 조카’광주 문흥지구까지 나가 무등산 막걸리도 한잔 걸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무주로 올라와 김환태 평론상 수상자 최명표 선생 일하느라 생고생 이봉명 시인 만나 네 시간 넘어 걸려 상경 하노라니 일요일에 천근만근 비가 오려는지 왼쪽 목 어깨며 등이며 고질병이 도져 아침에도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 스마트폰 알려주는 일정표 따르면 김흥식 샘‘ 이기영 연구’일천오백 매 원고 떠들어 봐야 할
유튜브가 세계로 향하는 창이 되어버린 요즘이다. 티브이는 보기 싫고,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혼자 돌아가게 하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문득 보니 브루나이 국왕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국왕이냐 하면, 현명하고도 자애롭고도 검소한 국왕이다.작가 김성한은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시지만 의미 있는 우화적 소설들을 세상에 남긴 작가였다.그분의 소설들을 가지고 석사논문의 일부를 삼았던 나는 나중에 그분께 전화를 드리기도 했는데, 그때는 일본으로 떠난 작가 손창섭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당신은 몸이 아프시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
권필이라는 조선 중기 때 문인이 있어 벼슬에 나가지 않고 평생을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나는 그를 한문소설 ‘주생전’의 작가로 먼저 알았다.박희병 선생 등의 논의에 따르면 16,17세기에 한문 단편소설의 큰 변화가 일어났으니,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대규모 전쟁이 삶의 변화를, 그리고 연이어 소설의 변화를 야기한 탓이다.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는 광해군 때 자신이 쓴 시가 문제가 되어 해남 땅으로 귀양 떠나던 중에 길가의 사람들이 건네주는 술을 너무 마셔 이튿날 그만 세상을 떠나버렸다고 한다.과연 일세의 풍류객이었듯
현대 지식 상황의 특징 하나는 지식의 범람일 것이다. 어느 쪽으로도 찾기만 하면 얼마든지 충분한 양의 지식 정보가 넘쳐난다는 것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자본주의 메커니즘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 할 때 자본 쪽을 옹호하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지식들을 찾아 나설 수도 있고, 반대로 노동 쪽을 강조하는 지식들을 선호할 수도 있다.두 방향 다 지식은 넘쳐난다. ‘내’가 어느 방향으로 공부하든 그 선택을 위한 공부거리는 널려 있다. 어느 방향이든 상당한 수준까지는 논리를 구축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은 제공되는 것이다.같은 이야기를 식민지 근대
최근 세태를 보면 인텔리겐차(intelligentsia)는 설 자리가 없다. 옛날에는 지식인 대접을 그래도 좀 했던 것 같고 받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절대 아니올씨다, 다.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다. 먼저, 돈, 자본, 금권이 옛날보다 훨씬 더 세졌고, 이에 따라 지식, 지식계급, 지식인은 이것을 치장하는 용도 같은 것으로 떨어져 버렸다. 지식은 큰 회사 사장 집무실 뒤 서가의 금장 책들처럼 금권을 더 빛나게 하는 장식품 같은 것이 된다.다음으로, 권력이 옛날 같지 않다. 옛날 옛적에는 ‘삼고초려’하는 것이 있어 어디 훌륭한 사람
문득 생각 나는 말. 이렇게 버티다 갈 때 되면 가면 되지. 이 말씀은 대장암 4기를 앓고 계신 어느 선생의 말씀이다.이 말씀이 두고두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시대와 상황에 대한 감각을 공유하며 지냈던 분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계신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가슴 아프기 그지없다.세상 사는 일 본래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것을, 힘들다, 힘들다 탄식해 오기를 십 년, 앞으로 십 년은 힘들다 소리 안 내고 참고 참으며 힘있게 살아가기 기약해 본다. 내게 그 십 년이 허용된다면 말이다.삶의 더할 수 없는 무게에 비추어 보면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이 생각난다. 세월이 빠르다더니 벌써 이 년하고도 반이나 흘렀나보다. 돌이켜보면 어지럽기도 어지간히 어지러운 시간이었다. 대통령이 탄핵되던 그 겨울에 우연히 SBS 8시 뉴스를 보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 이름이 열 댓명 이름 속에 들어 있었고 그것도 지금은 작고한 비평가 황현산 씨 옆에 두 번째로 등장하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블랙리스트라는 것이었는데 무슨 무슨 심사위원장을 맡겨서는 안 되는 사람들 목록이라고 했다.온갖 블랙리스트들에 없던 내 이름이 8시 뉴스에 등장한 일은 기이하고도 소름끼치는 경험이었다.
요즘 매일같이 조국 교수 얘기가 방송 화제다.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는 일도 따로 없을 것 같다.사실 나는 요즘 정치라는 것에서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 한다. 뉴스도 자세히 보려 하지 않아서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어제는 옆 방 계신 선생님이 무슨 시국 성명을 같이 하자고 하시는데, 깊이 생각해 보겠노라 답하고 나왔지만 이런 성명까지 하다가는 내 이름이 얼마나 닳아 버릴지 알 수 없어 그럴 생각도 없다.며칠 전 청문회라는 것을 할 때가 생각난다. 그날 텔레비전 방송이래야 우연히 보게 된 것뿐이다. 하루 종
이 현재의 삶에서 훌륭한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어딘가에 그런 분들 계시겠지만 텔레비전, 인터넷에 오르내리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가히 모래밭에서 겨자씨 찾기다.이광수에서 안창호로 옮겨가고, 다시 안창호에서 신채호로 옮겨간 끝에 이번에는 백범 김구에 이르렀다. ‘민족의 죄인’ 이광수가 해방 직후에 백범의 일지를 정리하여 ‘백범일지’로 남겼는데, 여기에 얼마나 어떻게 그의 생각이나 판단이 개입해 있는지가 따져볼 일이다.김구는 해주 사람, 김자겸의 후손으로 양반이 몇 대를 내려온 끝에 상민이 된 집안에서 났다.‘백범일지’에 상민의 자식
캘리포니아 주에서 네바다 주로 넘어가 들어간 곳은 라스베이거스, 도박의 도시였다. 우리가 머무른 곳은 피라미드 모양을 흉내낸 호텔, 그래서 그런지 안에서 길 잃어버리기 딱 좋았다.강행군 여행 탓에 내일이면 당장 애리조나 그랜드 캐년으로 떠난다니 여기서 ‘한 재산’ 날릴 기회는 오늘밖에 없었다.도박도 재미없고 마굴 구경도 재미없고, 그래도 낮밤이 뒤바뀌어 잠은 않고, 새벽에 억지로 일어나 도박장에 내려가 룰렛 게임 구경하다 심심풀이로 울긋불긋 동그란 원판이 돌아가는 기계 앞에서 손가락 튕기다 아침을 맞는다.버스는 또 다시 광야를 달린
우리 일행은 오십 명 넘게 들어가는 긴 버스에 올랐다. 이제부터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지나 애리조나 주 그랜드 캐년까지 가는 2박3일 여정을 시작하려는 것이었다.전전날 우리는 팜프스링스라는 곳에 가 문학캠프를가졌다. 나는 ‘기미년 삼일운동과 안창호’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핫스프링스라는 별명답게 팜스프링스는 밤 늦게까지 뜨거움이 가시지 않았다.다음날은 이십 년 전부터 알던 김준철 시인 안내로 산타모니카 지나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의 안창호 하우스에도 가고 말리부 해변까지 나갔다 돌아와 저녁에는 대한항공 73층에서 도시를 내려다 보았
일본군 최악의 전투 가운데 임팔 전투라는 것이 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가던 무렵 일본이 기울어가는 전세를 만회하고자 한 것이다.때는 1944년 3월부터 7월까지. 장소는 지금 미얀마에서 인도 쪽으로 넘어간 곳.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 개전 초기에 싱가포르를 3개월만에 함락시키는 등 영국군을 손쉽게 밀어붙인 기억이 있었다. 태평양 일대에서 미군에게 밀리고 밀리던 끝에 생각해낸 전세 역전 방법이 미얀마 쪽에서 성공을 거두자는 것이었다. 그런 연장선에서 영국군이 주둔해 있던 임팔을 공략해서 인도 쪽으로 진격해 들어가자는 발상을 한 것이다
아침부터 마음 바쁘다. 오늘은 학술대회가 열리는 날. 하루하루 일수 찍듯 살지만 오늘은 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 먼저 도서관에 가서 오후에 잠깐 인터뷰할 소설부터 찾아읽고. 하근찬의 ‘삼각의 집’과 정한아의 ‘할로윈’. 정한아 작가는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복사하고 읽고 하는 사이에 시간은 금방 흘렀다. 아홉시 사십분. 손님맞이에는 늦었다고 봐야 한다.서둘러 행사장으로 가니, 원탁회의식 구상과 달리 책상들이 전부 앞을 향했다. 독일, 중국, 한국, 일본 국기도 어디 갔는지 없다. 파스쿠치에서 커피는 가져온 상
두 주 동안 서울 가까운 곳에 가 갇혀 있었다. 시험문제를 내는 일이었는데,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것은 물론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었다.건물 바깥으로도 나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건물 중앙의 창으로 보이는 뜰에도 출입할 수 없는 ‘감금’은, 몸 아픈 사람의 ‘휴양’에는 더 없이 좋은 약이었다. 아침이 오면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문제를 내다 보면 금방 점심 때가 되고 오후는 조금 더 길게 느껴졌지만 아무 나갈 일도 없고 연락올 데도 없는 두 주일이란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던가! 바깥 소식은 오로지 텔레비전으로만 접할 수 있었으니, 이
한 달쯤 전부터 한 동안 버틸 만하던 목 디스크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지간하다’라는 충청도 말로도 다 표현하기 부족한 것이 바로 이 고질병. 한 칠팔 년 전 앉지도 서지도 못하게 한 허리 디스크에서 겨우 회복되었더니 삼사 년 전부터는 목 디스크가 대신 들어와 기승을 부렸다.급기야 두 해 전에는 수술은 무섭고 시술이라는 것을 받았다. 영 못 버틸 것 같은 급박감에 속된 말로 당일 입원, 당일 퇴원 같은 플래카드를 내건 병원 같은 곳에서 순식간에 받았던 것. 그렇데 예후가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며칠 지나 조금씩 차도가 보이
한 나흘 걸려 창고 치우는 일을 하다 보니 일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자기랑 삶이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아주 좋은 일이다.첫날 만난 일하는 분은 연세가 일흔은 족히 넘어 보이는데, 몇 살처럼 보이느냐 하기에, 글쎄요, 육십은 넘어 보이십니다, 했더니 기분 좋아 하신다.하루 일이면 오전 여덟시부터 저녁 대여섯 시까지인데, 이런 일에는 손에 익지 않으신지 유리를 조각내 자루에 담는데 오전 내내 보내고도 아직도 다 못 끝냈다. 나중에 자원 처리 사장님이, 바닥에 유리가루를 잔뜩 남겨 놓았다고 흉을
아주 가까운 분이 세상을 떠나신지 7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그분 계시던 곳 물건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벼르기만 했지 정말 몸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사람의 일생이 담긴 ‘유산’들을 정리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생각되어 결국 폐기 처분해야 할 것들을 시간을 내어 정리하기로 했다. 그 물건들은 생전에 그 분이 운영하던 공장 안과 공장 뜰에 가득 차 있었다. 보기에도 물건들은 무척 많아서 손이 몹시 많이 가야 할 것 같았다.내 손은 보기는 뭉툭해서 막일 깨나 할 것 같지만 언젠가부터는 책이나 보고 글이
여행에서 돌아오는 건 좋은 일이다. 모든 게 달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옛날에 한여름의 일본 도쿄에 가서 주택가 골목을 걷다 절망 같은 것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곳에 가득한 정적은 일본은 한국과는 다른 사회라는 것을 실감케 한 것이다. 말하자면 NHK 밤 뉴스 앵커의 전언이 한국 앵커들과 달리 마치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도 같았다. 상황은 그러나 상대적이다.이번에는 여행에서 돌아오자 한국의 서울은 정적의 도시 같다. 차들은 경적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내가 신호 없이 차선을 바꾸자 뒤에서 속력을 내며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