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 모아 기도를 한다. 간절하고 절실한 바람이다. 손짓으로 부른다. 내게로 와 달라는 애절함이다.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한다. 만남의 기쁨이고 친근함의 증거다. 손을 흔들어 배웅한다. 이별의 슬픔이고 다시 만날 기약이다. 새끼손가락 걸어 약속한다. 법보다 더 무거운 계약이다. 글을 쓴다. 말로 차마 하지 못하는 감정 표현이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진심이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다. 슬픔이고 다짐이다. 손으로 턱을 괴는 것은 사색이다. 때론 고심이고 때론 공상이다. 움켜쥔 손은 욕심이다. 물욕이고 탐욕이다. 손가락질은 분노다. 결국,
달려드는 자동차를 피하기 위해서 취하는 일종의 자위 수단이다. 대부분의 차량은 서행하며 조심을 하나 일부는 출근길이 바빠서도 그렇겠으나 막무가내로 달려들며 심한 경우 손이나 옷이 스치게 되는 경우까지 있어 호미를 들되 도로 쪽으로 향한 손에 적당하게 벌려 들고 흔들며 촌놈 행색으로 휘적휘적 걸어간다. 달려들면 제 차에 흠집이 생길 것이므로 모두 조심하나 가끔 나팔을 울리며 조바심을 치는 경우도 있으나 깡그리 무시하고 그대로 걸어간다.다리 끝부분에는 좌우로 밭이 있다. 왼편에는 만해 형님 밭이고, 오른편에는 이화씨의 농장이다. 제멋에
깨끗하게 껍질을 벗겨 씻어 놓은 양파는 말갛게 투명한 우윳빛을 드러내듯, 빨리 요리에 써 달라고 단단하게 주먹 쥐며 아우성치는 듯이 느껴진다. 햇살을 받으며 스테인 채반에 얹혀 있는 양파는 보기만 해도 요리 본능을 자극한다. 양파의 장점은 어떤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고기 요리나 야채 볶음이나 생선조림 그 어디에 넣어도 아작아작한 식감과 달큼함이 때론 요리의 주된 식재료보다 더 맛있게 느껴질 때도 있다.단호박 수프를 좋아하는 나는 양파와 단호박으로 수프를 자주 해 먹는다. 초록색의 단단한 겉껍질 속에 숨은 속살을 웬만해선
가을에 접어들면서 일교차가 커지고 있다. 추석이 지나면서 낮과 밤의 일교차가 10℃ 이상으로 커지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졌다. 진돗개의 공격을 피해 라일락 나무 옆 담장 위에서 먹고 자던 고양이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가지러 가려고 현관문을 열면 늘 먼저 야옹 하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발레리나처럼 몸을 늘려 스트레칭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고양이는 7년 전 어미젖을 덜 뗀 듯 눈매가 희미하고 털이 보송송한 모습으로 우리 집과 인연을 맺었다. 사람들 왕래가 뜸한 아파트 뒤쪽에서 비틀거리며
쇼핑을 즐긴다. 눈으로 즐기는 걸 더 좋아하지만, 가끔 보기에 좋으면 그냥 사버린다. 볼펜, 수첩, 티셔츠. 사놓고 한 번도 쓰지 않은 것들이 많다. 예뻐서 사고 특이해서 탐이 난다. 그래서 문구점에 가서 한나절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자주 가는 편집숍에는 엔틱한 소품이 많아서 주인장과 그 사연에 대해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한아름 결재하는 나를 보기도 한다.하지만 코로나19가 찾아온 이후로는 현장에 가서 무엇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조심스러워서 망설여진다. 책은 온라인 숍에서, 옷은 홈쇼핑에서 읽어보지도 못하고 입어보지도 않
어릴 때 동네 어귀에 살던 새순 오빠네 집은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둘렀다. 오래전이라 동네 오빠 이름은 맞는지 확신이 없지만 탱자 울타리의 가시는 눈에 선하다.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가려면 삼십여 분이 걸렸다. 옆집 미정이를 집 앞에서 먼저 만나고, 순연이 집 앞에 가서 학교 가자고 큰소리로 외치면 얼굴이 유난히 하얗던 순연이는 책보를 가녀린 허리에 매고 달려 나왔다. 우리 셋은 서너 번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살았기에 학교 가는 길도, 하교 후에 짜개놀이, 숨바꼭질 같은 놀이도 같이했다.순연이 집 근처가 마을 어귀였다. 그 옆집
남편이 퇴직한지 9개월째다. 우리는 작은 텃밭을 함께 가꾸며 지낸다. 의기투합할 때도 있지만 가끔씩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토닥토닥 다투기도 한다. 둘 다 농사에는 젬병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잦다. 기쁨도 주고 실망도 주던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열거하자면 웃픈 사연이 많다.지난봄에 수박 모종 몇 포기를 사서 심었다. 모종만 사다 심으면 저절로 크는 줄 알았지만 경험자들은 순지르기를 잘해줘야 한다고 했다. 실한 수박을 위하여 열다섯 번째의 아들 줄기 아래로 순 자르기도 했다. 길고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수박과는 다
어촌 마을의 한적한 골목길은 존재와 부재에 대한 사유의 장소로 내가 즐겨 찾는 곳이다. 간혹 마주치는 할머니께 인사를 건네면 사진은 왜 찍냐고 물으신다. 나는 습관처럼 “보려구요”라고 대답한다. 대부분의 할머니는 못 알아들으셨는지 알아들으시고도 관심 없으신지 “뭐 찍을 거 있다고….”하시곤 가시던 길을 가신다. 할머니의 전부인 그 터전에서 보고 또 보고 사유하려는 나의 존재는 그 할머니에게 무엇이며 또 나에게는 무엇일까? 끊임없는 사유의 늪은 그렇게 깊어간다. 그렇게 보고 또 보고 사유하며 관계 맺음하고 있노라면 그 대상과 하나가
박완서 선생님의 ‘솔잎에 깃든 정취’란 수필을 읽었다. 사변 중에 맞은 추석에 다른 음식은 몰라도 송편만은 꼭 빚으셨던 박완서 선생님께서 솔잎이 없어 송편의 정수가 빠진 것 같아 괜찮다는 시어머니를 뒤로하고 집을 나서셨다. 전시라 지뢰가 있을지도 모를 정릉까지 사촌들과 먼 거리를 걸어가 솔잎 한 소쿠리를 따왔노라는 이야기였다. 이 글을 읽고 나니 엄마의 추석 음식이 떠올랐다.우리 집도 제사를 지내지는 않는지라 명절 음식이 넘쳐나지도 않았고, 입도 짧고 기름진 음식을 잘 못 먹는 식성이어서 튀김류나 전을 많이 부치지는 않았다. 대신
골목길은 놀이터였다. 학교를 파하면 책가방 던져놓고 숨겨놓은 보물단지에서 구슬이랑 딱지를 꺼내 챙기곤 꼬랑지에 불이 나게 달려 나갔던 골목길이었다. 옷소매는 까맣게 때가 묻어 반질반질 빛이 났고 바지는 무릎이 살이 보일까 말까 해어져 이리저리 나뒹굴어도 티 날 리 없는 그때 그 골목길이었다. 자지러지게 웃는 개구쟁이들의 장난기 어린 웃음소리와 토닥토닥 뒤엉켜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왁자지껄한 골목길이었다. 지금처럼 과속 방지턱이나 주차 금지 푯말이나 주차된 자동차를 피해 몸을 돌려가며 비좁게 다니던 골목길이 아니었다. 마을회관 앞마당보
우리가 아는 대표적인 겨울 철새 기러기는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날아가 추운 겨울을 보낸다.해마다 생존을 위해 수만 킬로가 넘는 엄청난 거리를 날아야만 한다. 목적지를 향해 높은 산을 넘고 끝모를 벌판을 가로지르는 기러기 떼의 날개짓은 인간의 멀고 험한 인생 여정을 연상케 하고 무엇보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리더 기러기의 희생적인 모습은 우리에게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힘이 센 수컷의 리더는 상승기류가 없는 V자 대형의 맨 앞자리에서 공기 저항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수천마리의 기러기들의 나갈 방향을 지휘하는 리더 기러기의 막중한 책임
코로나로 일이 없는 날이 많다. 마음은 편하지 않지만 몸은 편하니 산책을 가기로 했다. 친구에게 수목원으로 소풍을 가자고 했다. 사람이 많은 커피숍보다는 낫겠지 하며 간식을 싸서 나섰다. 주왕산에 숲속 도서관이 생겼다고 반가워하는 나에게, 누군가 포항 연일중명자연생태공원에도 도서관이 있다고 했다. 그럼 오늘 오후 산책은 거기로.갈 때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는 산, 길도 더 넓어지고 꽃의 키도 식구 수도 늘어났다. 한참 숲을 둘러보아도 도서관은 못 찾았다. 하지만 오늘 또 달라진 것 발견. 이름표를 새로 만들어 달았다. 내가 퀴즈
수평선에 공장의 불빛들이 스며든다. 이곳은 어촌풍경과 도시의 풍경들을 사진에 담을 수 있어서 자주 찾게 된다. 포항시 북구 여남포구는 바다 끝에 산이 있고 산 끝에 바다가 맞닿아 있다. 방파제 등대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집들이 위치한 산의 모양은 꼭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는 듯하다. 해질녘 불이 켜지면 옹기종기 앉아 있는 불빛들이 물고기 비늘같이 반짝인다. 밤이 깊어지면 산도 헤엄쳐 바다로 가는 꿈을 꾸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포구에는 풍랑을 피해온 배들이 정박해 있다. 파도와 맞서고 삐걱거렸을 배들은 포구에 안긴 듯 편안해 보인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주방에서만 걸음이 늦었던 나는 대단한 결심을 하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이 집을 떠나 있다는, 회식이 잦은 남편 때문에 한걸음 뒤에 두었던 냉장고를 털기로 했다.앞치마를 두르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채소 칸에 쟁여 놓은 한 보따리의 욕심이 가득하다. 싱싱하다 싶으면 사고 일대일 행사제품을 보면 왠지 남는 장사라 싶어서 산 것이다. 비닐에 싸인 봉지를 꺼내 식탁에 쌓았다. 쿰쿰한 냄새를 품은 봉지가 식탁에 가득하다. 한 봉지를 열어 보니 호박들이 뒤엉키고 짓물러 서로 붙어 있다. 겨우 하나를 살리고
농사를 짓다 보면 생각만큼 쉽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직장 생활이 힘들거나 하던 일이 잘 안 풀리면 ‘고향에 내려가 농사나 짓지 뭐’하고 씹던 껌 버리듯 무심코 말을 내뱉지만 농사야말로 그 어떤 일보다 많이 생각 해보고 결정을 내려야 될 일이다.남편이 정년퇴직을 앞두고 퇴직 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무료한 시간을 보낼 겸 소일거리로 할 수 있는 조그만 농장을 하나 샀다. 뜻하지 않게 나를 동참시키는 바람에 얼떨결에 남편이랑 같이 농사를 짓게 되었다. 산비탈 들쑥날쑥한 땅을 포크레인으로 고르게 평탄 작업해 놓으니 땅 모양
초가을 햇살이 눈 안에 반짝인다. 녀석은 순하고 따뜻한 성격이다. 태풍 두 개가 지나갈 때도 잘 참고 작은 박스집을 의지 삼아 잘 견뎌 주었다. 내 곁에 온 두 살배기 라마스테다. 녀석의 고향은 스코틀랜드라 했던가. 이억만 리가 고향인데 어떻게 한국의 땅 경주까지 왔을까. 인연법이란 참 묘하다.나름대로 사랑을 독차지한 녀석에게 어느 날 이변이 생겼다. 인연이련가. 다른 절에서 키우던 집고양이 자몽이 4개월 정도에 인연 따라 여길 왔다. 여동생이 생긴 셈이다. 녀석의 눈치를 보니 처음에는 서로가 경계하는 듯하더니 어느새 어린 동생을
우리는 지금 사진의 숲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진이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인터넷 광고는 물론이고 심지어 음식점의 맛있는 음식도 사진으로 찍어 SNS로 보내는 실정이다.그럼 어떤 사진이 잘 찍은 사진이고 못 찍은 사진인지 평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잘 찍은 좋은 사진일 수도 있고 잘못 찍은 나쁜 사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고 잘 찍은 사진은 아름답거나, 다른 사람에게 감명을 줄 수 있는 사진, 작가의 생각과 느낌을 잘 나타내야 좋은 사진이라 할 수 있다
시작은 이랬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안에서 먹는 식사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메뉴도 바닥나 도서관에서 요리책을 빌려왔다. 근래에 만들어 먹은 적이 없는 유니 짜장이 맛있어 보이길래 춘장과 필요한 재료들을 사 왔다. 마침 돌아오는 주말에 남해 지인댁에 감자를 캐러 갈 일이 있어 거기도 들고 갈 겸 짜장을 넉넉히 만들 생각이었다. 먼저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춘장을 볶기 시작했다. 다 볶아진 춘장을 기름과 분리하고 간장으로 간을 해 두었다. 이것을 냉장고에서 하룻밤 숙성시키고, 다음날 야채를 다지고 다짐육을 넣어 볶은 후 춘장과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한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다시 재 확산되고 있다. 1948년 세계보건기구(WHO) 설립 이후 세 번째 팬데믹(Pandemic) 공포가 전 인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나는 친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소에 참석하는 것조차 불편해지고, 고인에게 지상에서의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보내는 쓰라린 슬픔을 겪었다. 고인의 장례식에 참석을 하지 못하고 집콕하며 가슴 아파하던 중에 어떤 글귀가 나에게 왔다.“No man is an island.”(존던, John Donne)해석을 하면 “인간은 섬이 아
용기내서 고백할게요. 저는 사람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편입니다. 물론 요즘처럼 마스크로 무장하고 다녀서 그런 건 아니에요. 코로나 전염병이 돌기 전 부터 그랬으니까요. 특히 첫 만남이거나 한 번에 여러 사람과 악수로 인사 한 다음에는 어김없습니다. 어디에선가 불쑥 나타나 반갑게 눈길을 건네는 분들을 제가 몰라보는 것입니다. 게다가 저는 곧장 되묻습니다. 우리 언제 만난 적이 있던가요. 저를 아시나요. 어떤 분들은 까르르 웃습니다.게다가 취약하게도 저는 얼마 전까지만해도 사람뿐 아니라 곤충도 잘 알아채지 못하는 어른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