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소를 돌아 구룡포로 향했다. 근대문화역사거리에 자리한 ‘우전’ 향이 좋은 찻집으로 가는 여정이다. 봄비가 내리는 곡우 즈음 딴 첫 잎을 비가 주인공인 여름에 천천히 우리기로 했다. 호미곶 둘레길은 드라이브하기에 아름다운데 7월이 시작될 때 특히 어여쁘다. 노란 부채 같은 꽃을 한껏 펼쳐 든 모감주나무 가로수 덕분이다. 장맛비가 활짝 핀 꽃잎을 떨구어 길이 노랗게 물들었다. 모감주 군락지 위로 보슬비가 오락가락하니 물안개도 피어오른다.근대문화역사거리의 밤은 고요하다. 낮 동안 사람들의 수런거림이 어스름이 내려앉을 때 함께 썰물처럼
무엇이든 오래된 곳으로 가자 하니 잠시 생각하던 남편이 알겠다는 듯 차를 몰았다.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에 찍힌 목적지는 감포항이었다. 이 사람이 내 마음을 꺼내 보았나? 어제, 그제 나는 감포항을 그린 그림을 보고 왔다. 경주예술의전당에 화가 손수택이 그린 ‘감포 풍경’이 전시 중이다. 고흐전을 보러 갔다가 맞은편 전시실에 또 다른 전시회가 있다 해서 우연히 옮긴 발걸음 끝에 발견한 작품이었다. 초가지붕이 바닷가 산자락으로 다닥다닥 붙어선 1958년의 감포항이 나를 그림 앞에 한참 머물게 했다. 그때도 사람이 많이 모여들었던 번
밤마실을 다녀오는 길, 신항만 도로에서 우리 동네로 내려서자 하늘이 잘 보였다. 핑크빛 달이 둥실 떴다. 오늘이 보름이었지. 브레이크를 살짝 밟으며 차의 속도를 줄였다. 아파트 가까이 갈수록 달이 건물 사이로 숨어버린다. 도시인들을 낯설어하는 어여쁜 달을 조금 더 보고 싶어 길가에 차를 세웠다.달에 취한 건 나뿐이 아니었다. 집에 들어와 핸드폰을 열어보니 톡방마다 달 사진이 올라왔다. 망원렌즈로 가까이 당겨 찍었는지 토끼들이 밟아놓은 자취가 선명한 분홍 달이 수다방마다 휘영청 떠올랐다. 스트로베리 문이라 이름 붙여진 달이다. 여러
어머~스앵님~, 그랜드캐니언 갈 필요 없겠어요. 여기 너무 멋져요! 미국 여행을 다녀온 영어 선생님이 해파랑길 15코스 중 발산리 근처 길을 걸으며 쏟아낸 탄성이다. 파도치는 그랜드캐니언은 없을 테니 여기가 더 아름다운 풍경일 거라며 나도 웃으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이 코스는 길이 바다를 품은 것인가 하노라면 어느새 바다가 길을 품고서 파도를 밀어와 발길을 움켜잡는 곳이다. 찰삭이는 파도가 발길에 닿을까 말까 하는 구간, 굽어지는 길에 커다란 바위가 있어 저기를 돌면 무엇이 나타날까 궁금하게 만들어 걷는 이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곤
“아우 보래이/사람 한 평생/이러쿵 살아도/(중략)/그렁 저렁/그저 살믄/오늘같이 기계(杞溪)장도 서고, (중략)/그저 살믄/오늘 같은 날/지게 목발/받쳐 놓고/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한잔 술로/소회도 풀잖는가”- 박목월 ‘기계 장날’주말마다 남편과 길을 나선다. 내가 어디라고 콕 집어 가자 하기도 하지만 오늘은 남편이 길을 잡았다. 목월 시인이 노래한 기계장터로 차를 밀어 넣으니 장날도 아닌데 사과 상자를 펼쳐놓고 아주머니가 흥정 중이었다. 손가락을 다친 것인지 깁스를 하고서도 사과를 팔려고 내게 맛을 보라고 권했다. 그 마음
숲에서 듣는 빗소리는 녹색 소나타이다. 올해는 며칠에 한 번씩 비님이 오시니 푸른 연주를 듣기 위해 내 발길이 자꾸만 숲으로 향한다. 첫 방문 때 보이지 않던 나무가 두 번째엔 눈에 띄었고, 맑은 날에 미미하던 으름덩굴 꽃 향이 빗소리에 묻어오니 더 진했다. 며칠 전 찾아간 가로숲은 미나리냉이가 입구까지 마중을 나와 초록 융단에 별을 박은 듯했다.‘의로운 성’이라 이름할 만큼 의로운 선비가 별처럼 많았던 곳이 어디일까? 바로 의성이다. 남부의 반촌이라 불리는 산운마을이 있는가 하면, 북부의 반촌으로 알려진 안동 김씨, 안동 권씨,
꽃 한 송이를 선물 받았다. 환하게 피어난 함박꽃이다. 이슬이 송글송글 맺힌 꽃에서 봄 향기가 묻어났다. 결혼하던 해 봄, 시댁에서 잠을 깬 아침이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새벽 밭일을 나가신 어머니가 돌아오시기 전에 아침밥을 준비 중이었다. 아버님이 “아가~”하시며 뭔가를 들고 부엌에 들어오셨다. 함지박처럼 크게 웃으며 피어난 작약꽃이었다.시댁 마당에는 작약이 두 무더기로 핀다. 분홍 잎 속에 하얀 솜털 같은 잎이 보송한 꽃은 대문 옆에, 보라색 모란을 닮은 작약은 거실 앞마당에 심었다.이웃에서 한 뿌리씩 얻어와 꾸미신 정원이다.
“쌤, 우리 아파트에 라일락이 피었어요. 놀러 오세요~.” 동료로 만나 친구로 지내는 E선생님이 보낸 사진과 인사말이었다. 사진을 클릭해서 보니 라일락이 아니라 등꽃이었다. 내가 보기에 등나무꽃처럼 보인다 하니 몇 년을 잘못 알고 있었다며 웃었다. 보랏빛처럼 맑은 사람이다.‘흰눈’이라는 시가 있다. 공광규 시인이 봄꽃을 노래한 것을 그림책 작가 주리가 콜라보로 만나 시를 그림으로 피어나게 했다. 겨울에 내리다 못 다 내린 눈이 매화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못 다 내린 눈이 벚나무, 이팝나무, 아까시, 산딸나무, 쥐똥나무 울타리와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시인이다.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그 순간 멀리 사는 할머니를 불러오고, 과묵한 할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게 만든다. 온 가족이 자신을 향하게 해 놓고 옹알옹알 시를 뱉어낸다.아이들의 몸은 이야기 가득한 언어의 창고다. 수많은 낱말이 뒤섞여 복잡하기만 한 저장고에서 매주 한 편의 시를 끄집어내 주는 일이 내 몫이다. 아이들이 교실에 도착하기 십 분 전에 미리 칠판에 초성 찾기 할 자음 두 개를 적어준다. 잠시도 가만히 있기 힘든 2학년과 힘이 넘쳐나는 3학년 친구들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집중력을 발휘한다.
빨강 머리 앤 카페에서 모였다. 오늘 토론할 책이 ‘빨강 머리 앤’이기에 이리로 정했다. 월포해수욕장에 자리 잡은 이 카페 이름은 ‘커피선’이지만 가게 안에 온통 앤의 굿즈들이라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입구부터 여행 가방을 든 앤의 까만 실루엣이 우리를 반긴다. 가방 안에 커피콩이 가득 들었다.빨강 머리 앤 애니메이션은 나보다 열 살 어리다. 캐나다의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1908년에 글로 탄생시킨 것을 일본 후지 TV에서 그림으로 우리에게 펼쳐놓았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주인공의 모습을 삽화로 책에 그려 넣어 출판했기에
봄꽃들이 이어달리기 중이다. 매화가 첫 스타트를 끊자마자 살구꽃도 바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누군가 골목길에 하얀 꽃잎이 떨어져 있어서 벌써 목련이 피었나 싶어 달려가 보니 프링글스였다고 해서 웃었더니 며칠 뒤 목련이 담장 위로 새처럼 날아올랐다. 그 뒤를 이어 벚꽃이 뭉싯뭉싯 길거리를 누비는가 했는데 사과꽃이 뒤를 쫓았다.봄꽃 이어달리기의 최고 유망주는 참꽃이다. 그 꽃을 품은 곳, 몇 년을 벼르다 또 코로나가 느닷없이 닥쳐 며칠 더 고민하다 찾아간 곳이 비슬산이었다. 산 정상이 참꽃 군락지라 우리 동네 뒷산의 진달래보다 몇 주는
쑥전을 부쳤다. 남편의 도시락에 넣어 보낼 반찬이다. 쑥이 넉넉하니 쑥국도 같이 끓였다. 집안 가득 향기가 번진다. 어제 진평왕릉 나들이에서 건져 올린 전리품이다.벚꽃의 찬란함을 시기한 봄비가 밤새 내리더니 아침 하늘엔 구름이 가득 폈다. 능선이 낮아 하늘 보기에 안성맞춤인 경주로 소풍을 나갔다. 경주 사는 단영 언니를 카톡으로 불러냈다. 자신이 자주 가는 곳이 있으니 그곳에서 보자고 한다. 마침 백률사에서 아침기도를 끝냈다며 절 앞 사거리쯤에서 기다릴 테니 어서 오라며 전화를 했다. 언니는 통행이 많은 길에 차를 세우고 비상등을
‘겉바속촉’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그런 사자성어가 어딨냐고 따지고 덤비는 이가 없길). 튀김이나 마카롱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는 뜻인데, 봄은 겉촉속촉이다. 가지 끝에 물을 올리는 버드나무도 말랑해졌고, 따스한 기온에 몸을 부풀어 올린 꽃들도 한껏 물을 머금었다. 거기다 몇 주째 주말마다 봄비가 내려 더 촉촉해졌다.비가 부슬거리는 지난 주말에는 의성 산수유 마을에 갔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던 노오란 길을 우리도 거닐어 보기로 했다. 영화 속에 흐르는 마을의 사계절이
하루를 꽃그늘 아래서 보냈다. 목월 시인의 ‘4월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노랫말처럼 목련이 키를 한껏 키운 곳으로 소풍을 갔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가 열심히 수 놓은 꽃잎들이 봄기운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 목월 시인이 이것을 보고 썼구나. 이 그늘 아래서 젊은 베르테르가 쓴 편지를 읽고 있으면 새의 날개옷 같은 하얀 꽃잎이 편지처럼 나리겠지.불국사 주차장에서 동리목월문학관으로 가는 길, 연못 위로 다리 하나가 놓였다. 입구에 자목련 세 그루는 아직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사진관에 맡겼다. 큰아이 백일 즈음부터 촬영한 홈비디오 카메라가 어느 날부터 작동이 멈춰버렸다. 20년이 지나니 고장이 난 것이다. 새로운 영상을 찍을 수도 없지만 가장 큰 일이 아기 손바닥만한 8mm 테이프에 담아 둔 큰아이의 추억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까운 방송국에서 CD로 구워준다는 소식을 나중에야 듣고 문의했더니 기간이 끝나버렸고 어쩌나 하며 시간만 더 흘렀다.지난 여름, 자격증 시험을 치는 아들이 증명사진이 필요해 집 주위 사진관에 갔더니 문을 닫았다. 그 많던 사진관이 사라지고 없었다. 다섯
가야지 가야지 하며 못 가 본 곳이었다. 경주에 터를 잡은 선배를 만나러 갔던 날, 늦은 점심을 먹고 어디로 갈까 하길래 관광객은 모르는 곳에 데려가 달라 했다. 그랬더니 데려간 곳이 선도산이었다. 꼬불꼬불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는 동네 골목길을 따라 오르니 도봉서당이 나타났다. 오후의 햇살이 산으로 둘러싸여 우묵한 곳에 자리한 탑을 비춰 주고 있었다.주차장 위로 닥나무가 훤칠하니 서 있었다. 그 옆에 삼층석탑이 우두커니 섰다. 문화재에 대해 모르는 이가 보기에도 탑의 모양이 어딘가 이상했다. 문화재 안내판의 내용을 읽어보니 통일신
관동팔경을 돌아보는 것은 선비들의 버킷리스트였다. 조선 시대 사람들이 꼭 가고 싶었던 곳이라 만 19세가 되면 짐을 꾸려서 강원도로 향했다. 젊어서 못 떠나면 40대 중반의 문인이 되어 길을 나서기도 했고, 그때도 못 떠나면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구경을 했다고 한다. 그 길에 나도 서 보았다.관동이란 대관령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큰 고개를 넘어 여행하는 선비들이 챙겨 갔던 것은 해시계와 나침반과 작은 지도였다. 그리고 멋진 경치를 보고 그림과 시를 써서 친구들에게 보내야 하기에 여행용 문방구류도 필수였다. 한양에서도 걸어서 한 달 이
인터넷 서점에서 시집 한 권을 샀다. 시집이 딱딱하다. 책이 고체이니 딱딱한 게 당연하겠지만 손에 딱 잡히는 시집들과 다르게 유독 뻐덕했다. 책장을 넘기기도 쉽지 않았다. 글도 딱딱한데 글을 안고 있는 종이가 더 단단해 양손으로 버텨야만 했다. 종이책은 눈으로 한 번 읽고, 손끝으로 또 읽는다. 느껴지는 촉감과 넘길 때마다 ‘사락사락’ 방안의 공기까지 넘기는 그 맛이 전자책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할 맛이다.동네 서점에 가서 손으로 펼쳐보고 사야 실패가 없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서점을 다 잃어버려서 직접 손맛을 보고, 서문 한 구절
플라타너스는 가지가 잘려 나간 자리에 흉터를 만들지 않는다. 안으로 상처를 말아 넣어서 잘린 단면이 사라지게 한다. 흉터를 볼 때마다 떨어져 나간 가지가 생각나 가슴 아플까봐 그러는 것 같다. 자신의 상처를 쓰다듬듯 플라타너스는 어린 시절 내게 위로가 돼주었다.방송반이던 나는 매일 아침 명상시간에 읽을 내용을 그 전날 한 편씩 일지에 옮겨 적었다. 그날은 담임이 세 편이나 쓰게 했다. 청소 당번 아이들이 검사를 맡고 교실을 떠났고, 친구 미정이만 복도에서 내가 다 옮겨 적고 나오길 기다렸다. 어슬렁거리지 말고 집에 가라는 선생님의
오후 4시, 홍차를 주문했다. 홍차 세계에 오래전 입문한 S가 문외한인 나에게는 스리랑카에서 자란 우바를, 함께 간 M에게는 중국산 기문을, 자신은 인도산 다아즐링을 시켰다. 이렇게 세 가지 세계 3대 홍차를 우리에게 소개했다.홍차 전문 카페답게 실내는 앤틱하게 꾸며 놨다. 주문한 차가 나오기 전에 손님이 우리밖에 없기도 해서 돌아다니며 소품들을 구경했다.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그린 그림, 노란 조명이 켜진 장식장, 차가 담긴 모양이 다양한 틴 케이스가 한쪽 벽면을 장식해서 하나하나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했다.그러는 사이 따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