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상에 이제 외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다. 내가 경험해 본 사람만 해도 필리핀 사람, 중국 사람, 네팔 사람, 태국 사람, 일본 사람 등 다종다양으로 많다. 이중에 특히 우리 피를 나눠 가진 사람들도 있으니 그것이 북한에서 이탈해 온 사람들과 이른바 조선족이라고 불리는 교포들이다. 이 조선족은 중국에서 한족을 제외한 소수민족들을 명명할 때 불리는 명칭일 텐데 이것이 그대로 한국 사람들도 사용하는 용어가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아니, 이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조선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에 걸쳐 한반도에서 만주로 이주해 간 우리 민족의 구성원들의 후예다. 그들은 가난과 굶주림을 피해,
윤동주가 영화로 나왔지만 아직 관람하지 못했다. 언젠가 꼭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그때가 되지 못한 것 같다. 심리적인 문제다. 영화로 윤동주를 볼 때 내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뜨겁고도 순결한 젊은이의 모습과 어긋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있다. 대신에, 며칠 전에는 윤동주의 누상동 하숙집을 찾아갔다. 누상동이라면 서울의 종로구에 있는 동 이름의 하나, 그 밑에는 누하동이 있다. 종로구는 아마 동 수가 전국에서 제일 많은 구일지도 모르겠다. 웬 작디 작은 동네가 그렇게 많은지, 체부동, 통인동, 옥인동, 당주동, 묘동, 부암동, 필운동…. 처음 들어보면 낯설지만 유서 깊은 종로답게 다 유래가 있고 내력이 있는 동들이다. 그 가운데 윤동주가 서울에서 연희전문 4학년 여름 한 철에
한나 아렌트는 사람이 하는 활동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노동, 또 하나는 작업, 마지막 하나는 일종의 정치다. 사람들은 먹고 살아가기 위해 노동하고, 남기고 기억하기 위해 학문과 예술활동 같은 작업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이냐를 결정하기 위해 모여 토론하고 투표를 하고 결정을 짓는다. 이 마지막 정치는 어떻게 하느냐? 바로 말로 한다. 서로 나와서 연설하고 동의하고 반박하고 투표를 한다. 이 말이 더 이상 효용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몸으로 벌이는 싸움이며, 살상무기를 서로에게 들이대는 전쟁이다. 그러니 말이 제 몫을 해내는 곳에 싸움과 전쟁이 있을 수 없을 테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 속담, 깊고도 큰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역시 언어적
4월 13일까지 공식적인 운동일은 2주가 채 안 되건만, 하루하루는 길고도 길었던 듯하다.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도 끝도 없으니, 국민의당이 더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올 때부터 생각해 보기로 한다. 새로운 정치 실험을 표방하고 탈당, 창당을 했지만, 주요 구성원들이 현역의원들이었다. 새로운 인상을 주기에 미흡함이 있었다. 더민주당에서 새 사람들 영입을 하루걸이로 발표, 빠르게 사태를 수습하는 듯했다. 하지만 연로한 비례대표 다선 인사에 국보위 참여 경력을 가진 비상 대표는`정통`야당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왜 안철수씨를 내보내고 그를 들여오는지? 패권 유지 방편이라 생각하지 않고는 이해 불가였다. 국민의당 화면에서 어느새 다른 유력 정치인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안철수씨 혼자만 부각되자 지지세가
때가 때이니만큼 누가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먼저 도움을 줄 만한 사람, 그러니까 `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도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누가 `나`의 도움을 얻을 만한 사람일까? 다시 말해`내`가 도와도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무엇보다 그 사람은`나`의 선의를 선의로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내`가 아무리 그를 도우려 해도 그는`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는 사람,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마음의 넉넉함과 상상력의 부족으로 말미암아`나`의 진의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도울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내`가 자기를
사람이 술을 먹다 술이 사람을 먹는 단계에 이르면 조심해야 한다. 헛소리가 들리고 헛것이 보이기도 하니, 정신을 놓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소주 같은 독주는 가급적 삼가고 먹어도 막걸리나 맥주 같은 저알코올을 찾을 것이며, 음주운전 따위는 아예 멀리하도록 경계해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둘로, 셋으로 보이지 않도록, 여기도 들리고 저기도 들리지 않도록 정신 차려야 한다. 옛날에 내 먼 친척 한 분은 겨울날 집앞에까지 다 오셔서 초인종을 못 누르고 그냥 눈을 맞아 돌아가셨다고 하며, 나만 해도 15년 전쯤 집 앞 골목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다짜고짜 맥주 캔을 집어 던지는 조폭 선생을 만난 적도 있다. 대리운전으로, 콜을 해서, 돌아올 때도 행여 운전하시는 분 비위를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성한이라는 작가가 계셨다. 1919년에 세상에 나서 2010년에 세상을 뜨셨다.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세상을 우화적으로 풍자하는 소설 작품을 여럿 남기셨다. 이 분 생전에 전화를 드린 적이 한 번 있다. 아마도 2010년 다 됐을 무렵일 것이다. 그때도 나는 일본으로 가 행방이 묘연하던 작가 손창섭에 관한 소식들을 얻고 싶어 했고 그게 이 분께 전화를 드리는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이때는 이 분께서도 몸이 아주 편찮으셔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계셨으니, 몸이 안 좋아서 손 작가 일에 관해서 얘기해 줄 수가 없다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씀해 주시는 것이었다. 나중에 신문으로 이 분의 부고를 전해 듣고 어찌나 괴롭고 죄송스러운지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이
알파고 소동이라고 하면 과장이 될까? 세상은 선거다 공천이다 해서 시끌벅적 소란하기만 한데 한편으로 이세돌 선생과 알파고 씨의 세기의 대결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텔레비전 뉴스를 안 봐서 모르지만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알파고 이야기가 아홉 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악했다고도 한다. 알파고와 대결하기로 결정된 날이 닥치자 이세돌 선생은 자신이 한 번이라도 지면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호언장담은 언제나 금물이다. 알파고 씨가 세 판을 내리 이기는 동안 인간들은 `기계`와의 대결을 둘러싸고 유머러스한 이야기 만들기에 열을 올렸다. 당장 중학생을 둔 엄마들은 알파고가 도대체 어디 있는 학교냐고 물어들 댔단다. 또 노인 분들은 알파고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나 했더니 저렇게 생겼구만, 하고 대신 바둑 두는 아
인터넷을 뒤져 보면 초소형 국가라는 말이 나온다. 혹은 초미니 국가라고도 하는 이 나라들은 국민이 100명도 채 안 되는 나라들이지만 지구상에 약 400개나 존재한다고 한다. 국민, 영토, 주권이 국가의 3요소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이 초소형 국가들은 국민은 수십 명 수준이 대부분이고 무슨 시설 따위를 영토로 삼을 정도로 빈약하며 가장 큰 문제는 도대체 주권 국가로 아무데서도 공인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이제 텔레그래프 지가 소개하고 세계일보의 명민한 기자님이 추려낸 그 국가들의 이름을 나열해 보면, 카리브해의 레돈다 왕국, 영국 남바다의 시랜드 공국, 미국 플로리다 주의 콘치 공화국, 미국 네바다주 사막 지역의 몰로시아 공화국,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 외곽의 우주피스 공화
얼마 전 뉴스 기사를 보니 `혈의누` 초판이 경매에 나와 장장 칠천만원에 낙찰을 보았다고 한다. 또 작년 말에는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의 초판본이 일억삼천오백만원에 결정을 보았다고도 한다. `혈의누`를 쓴 이인직이라면 천하에 다 알려진 `친일파`인데, 그래도 `최초의 신소설`이라는 딱지 값은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김소월처럼 요절의 `영예`를 안은 이나 백석처럼 눈부시게 하얀 문학세계를 가진 시인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유감도 없다. 한 때 나도 헌책을 좋아해서 찾아다닌 적이 없지 않다. 그 덕에 지금 어디에 박혀 있는지는 잘 몰라도 분명히 내 소유권 안에 들어있는 일제 강점기 소설책 등속을 몇 권 가지고는 있다. 지금도 헌 책을 좋아하는 취미는 버리지 않았지만 값이 이렇게 천정을 모르고 솟아
바라던 대로 서울 날씨가 며칠 사이에 다시 추워졌다. 외갓집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으니 날은 날대로 춥더라도 다행이다. 겨울이 오면 덕산 북문리 외갓집 동네에는 눈이 쌓인다. 어린 소년의 무릎까지 차도록 눈이 쌓이면 마당에도 눈, 대문 바깥에도 눈, 동구밖에서 저 너머 `읍내`로 통하는 고갯마루까지도 눈, 경운기나, 차나 한 대 겨우 다닐 만한 길 양쪽 옆 논두렁 밭두렁에도 눈. 눈천지 세상이 되면 아침부터 가래로 눈 치우는 소리가 난다. 외할아버지도, 외삼촌도, 외사촌형도 눈을 밀고 쓴다. 매일같이 눈만 내리지는 않으니까 아이들은 다행이다. 겨울에 제일 신나는 건 썰매를 타는 일. 외갓집 동네에는 여름에 연꽃이 열리는 방죽도 있고 동네 바깥으로 물을 가둬 얼려둔 얼음판도 있다. 집집마다 나무
어제, 오늘 서울은 몹시 춥다. 며칠 포근하고 따뜻해서 이대로 계절이 바뀌어 봄이 오나 했는데. 역시 착각이다. 그렇게 쉽게 오는 봄이 아니다. 개구리가 튀어나왔다가 맹렬한 추위에 얼어죽을 지경이라는 소식까지 들린다. 오슬오슬 떨면서 왔다갔다 하다 보니 마음이 몹시 시달린다. 뭔가 따뜻했던 일을 떠올리려 해 보니, 갑자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무슨 일일까. 오래 잊고 지낸 분들인 것을. 외할머니나 외할아버지나 무척 부지런한 분들이셨다. 덕산 하고도 북문리, 면사무소, 덕산 국민학교 옆으로 난 샛길로 접어들어 야트막한 고갯길을 넘어들면 아늑한 북문리 동네가 눈에 든다. 얕기는 얕아도 여우가 나온다는 고개, 밤 늦어 뭐라도 사러 `읍내`로 들어갈 때면 귀밑이 쭈뼛해지는 고개. 그걸 넘어 내
한국에서는 새해 하면 뭐니뭐니 해도 설이다. 한때 신정이라 해서 양력설을 지냈지만 일제시대 유습일 뿐이요, 음력 설날을 대신할 순 없다. 양력이니 음력이니 하는 것은 단순한 과학의 문제가 아니요 농본주의 민족인 한국인들의 전통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 이상이 도쿄에서 1937년 초에 보낸 편지를 보면 `오늘은 음력으로 제야입니다. 떡이며 너비아니며 수정과며 그 모든 기갈의 향수가 못살게 굽니다` 하고 도쿄 이민족들 속에서 홀로 설을 맞이하는 외로움을 절절하게 피력했던 것이다. 설 하면 뭐가 생각날까? 우선 떡국이요, 차례상이요, 식혜요, 쇠고기 산적 같은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술, 이 술 저 술 다 합쳐서 술일 것이다. 왜냐? 정든 식구들, 고향
읽고 있는 책에서 좋은 구절을 찾아내는 기쁨,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안다. 그러면 또 그 구절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알 것이다. 다음에 인용하는 문장들은 내가 최근에 읽고 있는 소설에서 밑줄을 그은 것이다. 인용이 길다고 나무라시지나 않았으면. “웃음은 왕처럼 행동한다네. 자기가 원할 때,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온다네.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적절한 때를 골라서 오지도 않네. 그는 그저 `나 여기 있다`라고 말할 뿐이네. (중략) 이상하고 슬픈 일들이 많은 세상일세. 불행과 번민과 고통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네. 그러나 웃음의 왕이 오면 그가 연주하는 곡조에 맞춰 그 모든 것들이 춤을 춘다네. 피 흘리는 심장들도 공동묘지의 말라빠진 뼈들도, 뺨을 타고 내리
날은 춥고 눈은 내리고 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때다.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을 한겨울에 읽으니 좋다. 톨스토이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먹히던 해에 세상을 떠났고, 그보다 한 십 년 전에 이 `부활`을 썼다. 그는 이 소설을 십 년 정도에 걸쳐 여러 번 고쳐 썼고, 그래서 깊은 그의 생각이 작품에 나타난다. 창녀인 스물일곱 살 카튜샤는 어떤 상인을 독살한 누명을 쓰고 시베리아 유형을 가게 된다. 이를 그녀의 첫사랑이었던 네흘류도프 공작이 알게 된다. 그녀를 구원하기 위한 그의 기나긴 노력이 펼쳐진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 속에서 무엇을 말했나. 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느냐다. 무슨 권리로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그런 질문을 우문으로
대마도에 놀러가자고 몇 사람이 굳게 약속을 했던 것이 무산되고 말았다. 그랬더니 이번에 시인들끼리 포항 구룡포에 원박투데이(1박2일)로 단체여행을 하는 김에 하루 더 놀다오자고 했다. 객지에서 노는데 웬만하면 하루면 됐지 무슨 이틀씩이나 하면서도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그러자고 했다. 세월이 빠르다보니 금방 날짜가 닥쳐 여행 때가 되었다. 서울에서 포항까지 직접 가는 케이티엑스가 생긴 게 엊그저께니 그걸 타도 좋겠다. 하지만 시각이 여의치 않다. 신경주역에서 내려 구룡포 가는 마이크로 버스를 탔다. 25인승 차가 경주포항 간 국도를 달려 처음 당도한 곳이 구룡포 항구다. 바다, 하고 말하면 마음은 벌써 바닷빛이 된다. 그곳에서 옛날 일본 신사와 적산가옥들이 늘어선 골목을 둘러보고 추억의
대학은 겨울방학이다. 방학 때도 하는 수업이 있는데 계절학기 강의라고 한다. 이번 겨울에는 오랜만에 이 계절학기 강의라는 것을 맡았는데, 과목 이름은 `창작의 세계`다. 대학의 교과목에는 교양 과목과 전공 과목이 있음은 많이들 아는 일일 것이다. 이 강의는 교양 과목이고, 창작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스무 명 남짓 수강한다. 처음에는 스물다섯 명이 넘었지만 도중에 수강신청 취소라는 것을 다섯 명 정도가 하고 나니 스무 명이 조금 넘는 정도다. 적당한 숫자인 것 같다. 그보다 많으면 창작물을 읽고 같이 토론하고 또 자기 작품도 써보는 수업의 취지에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실제로 시나 소설을 써보는 것이 주된 수업 목표인 때문이다. 본격적인 수업 첫날부터 작품을 놓고 토론을 하자고 하니 학생들은 적
국문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큰 논란 거리 가운데 하나는 근대화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것이다. 사실, 근대화라는 말은 지금의 시점에서는 고색창연하게 들리기 때문에 용어를 현대화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둘다 영어로 모더나이제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에서도 고전문학이 있고 근대문학 또는 현대문학이 있으니, 고전에서 현대로 나아온 과정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문제도 될 수 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나아가는 시기에는 사회혁명을 꿈꾸는 사람도 많았다. 소련 등 현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진 이후 진보주의라는 것에도 오명이 씌어졌기 때문에, 지금 진보를 말하는 것은 욕 먹을 각오쯤은 되어 있다고 선언하는 셈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는 그렇지 않은 면이 존재했다. 현실 사회주의의 추악
서울은 지금 눈이 내린다. 오후에 비가 내렸는데 저녁으로 바뀌면서 눈송이가 맺혔다. 하루가 몹시 짧아진데다 날이 찌푸리다 보니 여느 때보다 더 빨리, 더 깊게 어두워졌다. 이제 한 해가 곧 저물게 되니, 세상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파리 테러다.`이슬람 국가`에 소속된 테러리스트들이 공연장 같은 곳에서 보통 사람들을 수백 명씩 살상을 했다. 기독교 대 이슬람이라는 대결 사상은 기독교에도, 이슬람교에도 깊이 스며들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의식이 세계를 지배하는 듯하다. 파리의 울부짖음은 그러나 그곳만의, 유럽만의 것이 아니요, 언제라도 우리들 자신의 것이 될지 모르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우리가 국가의 이름으로 이 대결의 한축임을 표방한다면
유미리라는 재일 한국인 작가를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고 대담한 성품의 소유자인 것 같고 자신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과정 자체를 문학으로 승화시켜 왔다. 그녀의 처녀작은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라는 것인데, 이 자전적인 소설이 출판되자 소설 속 등장인물의 실제 모델로 추정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이 작품을 사생활 침해와 명예 훼손으로 문제를 삼았다고 했다. 작가의 자유가 선행하는 것일까, 작가가 모델로 삼은 사람의 인권이 선행하는 것일까? 나는 처음부터 작가의 자유 쪽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작품이 실제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면 작가는 작품의 모델을 그릴 때 간단히, 부주의하게 처리할 수 없다. 이 재판은 꽤나 유명한 사례를 제공했고, 8년이나 끈 재판 끝에 유미리는 작품을 고쳐 쓰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