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큰 사건도 없다면 없다. 정당별 지역구 의석수, ‘더민’이 163, ‘미통’이 84석이다. 비례대표는 더불어시민당이 17, 열린민주당이 3, 합계 20에, 미래한국당은 19란다.지도를 보면 면적으로 보면 핫핑크도 강원도 인근까지 제법 넓어 보이지만 파랑은 인구밀집 지역인 서울과 경기를 전부 도배하고 충청, 호남, 제주까지 ‘일통’했다.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옛날에 민자당이라는 게 생겨서 DJ 호남만 빼고 나머지 전부를 차지했던 일. 나는 충청도 사람이지만 정말 안 좋아 보였다. 이제 근 20년만에 영남만 빼고 나머지 전부를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너는 온다. (….)”과연 여기서 ‘너’는 누구일까, 또 무엇일까? 사람마다 마음속에 이런 ‘너’ 한 명, 또는 하나는 꼭 있다. 인용 글은 이성부 시인의 ‘봄’의 일부이다. 시인의 시상처럼 산을 옮겨놓아도 깨지질 않을 정도로 얼음이 꽝꽝 언 강에도 봄은 얼음을 달래어 버드나무를 타고 온다.곡우(穀雨)가 지난 자연과 들판에는 봄이 한창이다. 봄이 지천인 산과 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분주함이다. 철없는 인간 세계와는 달리 자연은 절기(節氣)에 맞는 일을 하느라 분주하다. 그 모습은
드디어 그 ‘무서운’ 선거가 끝났다. 민주주의 국가의 축제라고들 한다. 그런데, 사실, 어지간히도 으르렁들 거렸다.우리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트럼프가 대통령 되면 이민 가겠다는 사람들 그렇게 많았단다. 또 일본처럼 평생을 살아도 제 손으로 대통령 한 번 못 뽑아보는 세상도 있다.그래도 선거라면, 지금보다 좀 더 재밌었으면 한다. 싸우는 재미 말고 누가 누가 잘하나 경쟁, 현안을 놓고 깊고 넓게 생각하는 재미, 그런 선의의 다툼, 승자와 패자가 함께 웃는 선거 말이다.아직은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참된 정치 지도자가 없어서
은평구는 서울에서도 변두리 동네로 취급되는 곳이다. 그렇지 않다고, 이 동네 사람들 아이디어 짜내고 한국문학관 유치하고 정지용 거리 만들고 등등 애들을 쓴다.서울역에서 통일로 문산 가는 길 따라 독립문 지나고 홍제동 지나고 외길로 한참을 나와야 은평구라는 곳인데, 동네 가까운 곳에 이르면 벌써 북한산 남다른 기운이 밀려들어 서울 딴 곳으로 옮겨온 것 같다.그래서 그런지 연서시장이니 대조시장이니 전통시장도 많은 이 동네는 여전히 예스러운 풍취가 느껴진다. 서울 다른 데보다 확실히 정감 넘치고 물가도 싸다.나 잘 가는 연서시장에 ‘똑순
지난 24일 하루 76명 증가, 확진자는 총 9천37명. 며칠 사이에 코로나19 감염 증가세가 확연히 둔화 되었다.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프랑스, 미국 등등 한다 하는 나라들이 다들 나가떨어진 사이에 한국만은 대폭발에서 비껴 난 듯한 느낌이다.천만다행이다. 하루에 몇백 명씩 사망자가 나는 참극은 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우리는 사재기도 없고, 총을 사두려는 사람들도 없고, 종교적 신념만을 내세우는 사람도 없다. ‘공동체’를 지키려는 마음에서만은 모두들 ‘하나’다.섣부른 전망일지 모르지만 코로나19는 앞으로 모든 것을 바꾸
단도직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나가자 호남민들은 깊은 소외감에 사로잡혔다.훌륭한 경세가 DJ의 정신이 응집된 당은 ‘구민주’ 세력과 ‘노통’ 세력으로 분할되었고, 그로부터 한나라당, 새누리당의 오랜 ‘치세’가 이어졌다. 선거가 스물 몇 번 있었는데 분할된 ‘민주’ 세력은 늘 참패를 면치 못했다. 정동영 후보의 ‘어마어마한’ 득표 차 패배는 그 정점을 보여준 것이었다.DJ 민주당의 구민주 세력에게는 버려졌음으로 해서 명분이 있었다. 호남들은 따라서 둘로 나뉘었고 약자에게 기울기 마련인
코로나19는 바야흐로 ‘팬데믹’, ‘세계적 대유행’에 들어갔다고 한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국장의 선언은 벌써 늦었다는 비판과 함께 뉴욕증시를 다시 한 번 폭락시켜 버렸다. (이 분 국적은 에티오피아라던가. ‘다음’ 포털에 들어갔더니 사람들은 국적이 그렇게 궁금했던 모양이다.)이 와중에 한국은 다 알 듯 벌써 확진자 8천 명을 넘겼다. 그래도 이탈리아의 걷잡을 수 없는 상황, 일본과 미국의 ‘검사 안 하기’ 전략과는 달리 열심히 방어하고 있는 중이다. 진단 숫자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고 사망률도 다행히 아직
코로나 19로 온 나라가 난리가 났다. 오늘로 벌써 확진자가 5천명을 넘어섰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니 조만간 1만명은 채울 것 같다.마스크가 딸려‘금스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판이요, 정부가 마스크 때문에 사과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정부가 노력은 안 하는 게 아닌데 정부든 야당이든 너무 세게 ‘때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안 드는 것은 아니다.이 와중에 ‘국민의 당’ 안철수 대표는 의사 가운을 입고 대구로 내려가 자원 봉사 활동을 벌였다. 언론에서도 모처럼 호의적인 반응들을 보이고 네티즌들은 난리들이 났단다. 보기 좋아
대구 사는 박 시인은 내 절친 중에서도 절친, 그래 2월 말에 서울에서 한 번 꼭 만나자고 했다. 한 해 두 해 살아가면서 친구는 점점 더 없어지고 새로 사람 사귀는 일 어려운 것 모르는 사람 없다.만나는 김에 그와 같이 책 쓸 때 함께 했던 황 모도 보자고, 그럼 참 재밌겠다고 해서 우연히 마주친 황 선생에게 약속도 받아냈다.날이 갈수록 사람 사는 일은 점점 더 재미 없어지니 이렇게 세 사람이 서울 은평 하고도 연신내 연서 시장에서 만나 서대구이에 막걸리 한 잔 하면 좋을 것 같다. 거기 똑순이 아주머니 손맛으로 김 구워서 밥도
백제 31대 마지막 왕 의자왕은 젊어서 아주 어진 임금으로 해동 증자라고까지 불렸다고 했다. 이 어진 임금이 나중에 주지육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나라를 망하게나 한 것처럼 알려져 온 것은 쓰여진 역사의 허망함을 말해준다.연구자 이도학이 쓰신 ‘백제장군 흑치상지 평전’에 따르면 항복한 의자왕이며, 백제부흥운동을 이끌던 흑치상지며, 연개소문의 두 아들이며 모두 낙양 북망산에 묻혔는데, 묘지석들을 보면 그들의 사연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옛부터 배신하는 자, 모반을 꾀하는 자, 숨어 음모를 꾸미고 해괴한 참언을 퍼뜨리는 자는 끝내 파멸해
지난 2월7일 중국 후베이성 병원 의사 리원량이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풀려난 후 코로나19 환자들을 치료하다 본인도 감염되어 급성 폐렴을 앓아 왔다고 했다.10일자로 중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4만171명을 기록했다고도 한다. 사망자는 908명에 달한다고도 하고. 하지만 이렇게 홑단위까지 정확하게 나오는 숫자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코로나19 감염자는 그러고 보면 놀라울 정도로 적다고나 할까. 12일 현재 ‘물경’ 28명이나 된다고 하며 그
춥다. 서울의 겨울이 추워졌다. 요즘 겨울은 겨울도 아니라더니 어디 한 번 겨울맛을 보라 한다.겨울을 좋아하던 나인데 디스크를 앓으면서 몇 년씩 겨울이 무섭다가 최근 들어 겨우 겨울이 좋아졌다. 몸이야 아프든 말든 손가락 관절이 쑤시든 말든 겨울은 역시 상쾌한 계절이다.그래도 연로하신 부모님은 걱정이 아니될 수 없다.서울, 대전 사이를 돌아온 탕자처럼 왔다갔다 하다보니 끼니를 제 때 찾아 먹기 어려운 때가 많다.가만 있자, 뭐 먹을 만한 게 없나? 대전역사 안에 성심당 분점이 있지만 맛있다는 튀김소보로도 하루 이틀이지 오늘은 다른
한밤에 찾아 들어간 대전 집은 아버지 혼자 지키고 계셨다. 어머니가 척추 디스크 수술로 입원하신 지 두 주째다.여러번 문을 두드려도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는데, 귀가 안 좋아 못 들으신 것이었다. 결국 내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고서야 문은 열렸다.간단히 씻고 건넌방에 눕는데 전등 둘 중 노란 보조등 하나만 켜졌다. 발밑 쪽을 비추고 있어 그닥 부담스럽지 않았다.고향에 돌아온 탕자 같은 심정으로 전전반측 이런저런 상념에 시달리다 겨우 잠이 들었다.새벽부터 건넌방 바로 앞 주방 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잠 없어진 아버지가
설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설이라고 해도 어렸을 때 같지는 않아서 나이가 들수록 즐거움보다는 의무감이 앞선다.가만 있자, 내 나이가 얼마나 되었더라? 하고 생각하니 실로 어마어마하다. 수십년전 대학원에 들어가 무서운 선생님 연세가 얼마나 되셨나? 했을때 바로 그 분이 지금 내 나이셨다.그러니 내 아버지, 어머니는 지금 얼마나 연세가 드셨을까. 아버지 서른두살, 어머니 스물일곱살에 결혼해서 이듬해에 내가 세상에 나왔다. 나오기는 부모님 덕분에 나왔는데, 그후로 부모님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나이 들어서도 내
나이 때마다 인생에 대한 느낌이나 인상은 아주 달라지는 것 같다.스무살 때 같으면 사람은 결코 죽음에 순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될 때가 많다. 젊음이, 생의 기운이 몸과 마음 안에 가득차 흐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으랴.삼십대때야말로 한국인들로서는 가장 의미심장한 시절이라고 생각된다. 십대 때까지는 학교에서 철학조차 가르치지 않으니 이십대 들어서 겨우 인생에 눈뜨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삼십대 되어야 이제부터 진짜 인생을 살기 시작하는 때문이다.꿈과 욕망은 큰데 자신의 현실적 위치가 그에 상응하지 않아서 괴롭디 괴로운
경자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돼지해가 가고 쥐의 해가 돌아왔습니다.쥐하면 저에게는 썩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옛날에 아주 어렸을 때 학교에서 돌아오니 안방에 쥐가 한 마리 들어와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쥐였는데, 우리네 생활에서 쥐란 크든 작든 환영을 받지 못했지요. 저는 어떻게든 이 쥐를 잡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쥐를 한 구석으로 몰았습니다. 저는 이 쥐를 겁도 없이 손으로 잡으려 했습니다.‘아야!’ 하고 비명을 지르는 순간, 저는 쥐한테 넷째 손가락을 물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살갗이 찢기고 피가 났습니다. 아무리 약한 쥐라도 함부로
후배가 2년 뒤로 하나 있어 어제는 베트남 가기 전에 한번 만나기로 했다. 요즘 베트남 특수라고 거기 일이 많다는 것이었다. 대학생 시절 이후 그와 나는 오래 못 만났다. 말수 적기는 옛날 그대로, 그때는 ‘노선’이 달라 같이 얘기하기도 힘들었건만 지금은 옛날 정이 새로 돋는 듯하다. 한번은 일 삼아 나를 만나러 학교에 오기도 했다.ㅡ학교 올라가느라 마을버스 탔는데 왜 그렇게 조용한지 정나미가 떨어지드만요.정 많은 사람은 버스도 시골 할머니들 왁자지껄버스가 맘에 드는 격이다. 둘러보니 모두들 핸드폰에 코를 박고들 있었다 한다.ㅡ어디
내가 알고 있는 단 한 가지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지혜라는 것은 그러니까 내가 아는 것을 믿고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데 있지 않겠지요. 모르고도 따라할 수 있고 따라갈 줄 아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것이겠지요.궤변일까요? 하지만 저는 요즘 갈증이 심합니다. 무엇을, 어느 분을 믿고 따라야 할지 모릅니다오늘은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집에는 나와 내 고양이밖에 없습니다. 캄캄할 때 집을 나설 때는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제 삶은 늘 길 위에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집
요즘은 몸이 좋았다 나빴다 한다. 몸이 큰일은 큰일이다. 가뜩이나 목 디스크에 통풍인데, 관절도 하루하루 안 좋아지고 있다.그렇게 좋아하던 막걸리, 뚜껑이 흰 마개로 된 장수 막걸리는 파란색 뚜껑보다 거금 200원이나 비싼데도 많이 마셨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사양이다.이번 학기 끝이 불과 두 주도 안 남았는데 이렇게 허덕일 수가 없다. 사실, 대학 선생들 방학 얘기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눈코 뜰 새 없다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있었으면 싶다. 바쁘기로 말하면 재벌 반열에 들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학교까지 줄잡아
스무 살 무렵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가장 버겁게 느껴졌던 것 하나가 계단이었다. 국문학과가 있는 1동 계단은 그런 대로 견딜 만 했다. 정말 적응하기 힘든 것은 도서관 쪽 5,6층 사이 계단이었다. 열람실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이었다.처음에 생각하기로는 설계가 잘못된 게 아닌가 했다. 나라마다 각각 사람의 체형에 맞는 계단 높이라는 게 있다. 혹시 설계자가 한국사람 키높이를 몰랐던 게 아닐까?달리, 혹시 뭔가 장중한 느낌을 주기 위해 일부러 한 계단 높이를 약간 높게 설계한 것은 아닌가 하고도 생각했다. 1975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