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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들판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비가 한바탕 쏟아지자사람이 어디서 나타났다.그 사람이 뛰어 갔다.참 조용하다.미루나무는 서 있을 테지만어디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뛰어간 사람이 여자였을까한 행으로 이루어진 1연이 시의 나머지 부분과는 외따로 떨어져 있다. “넓은 들판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것처럼. 그로써 고독하게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이 도드라진다. 그리고 비가 쏟아지고 여인일지 모르는 사람이 뛰어간다. 하지만 나무는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고 다만 “뛰어간 사람이 여자였을까”라고 중얼거릴 뿐이다. 저 홀로 서 있는
시
등록일 2022.05.12
게재일 202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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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가 사이에 시푸른 바다가 있다넘실대는 물결을 태양이 바라보고 있다물길을 가르며 정어리 떼가 태평양으로 가고 있다정어리 떼를 천천히 뜯어먹으려상어가 이빨을 빛내고 있다조국은 숱한 장벽으로 나뉘어졌고유배지는 통째로 절벽인데버림받음과 버림받음 사이에 바다가 있다바다는 폭발점을 품은 채적도 쪽으로 흐르고 있다국가가 태어나기 이전에이념보다 더 깊은 곳에이름을 가지지 않은 심해가 있다‘경계-장벽’은 삶을 분리시키고 고립시키겠지만, “통째로 절벽”인 “유배지”로 버림받은 사람들 사이에는 바다가 존재한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있는 “
시
등록일 2022.05.11
게재일 20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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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돌린 사람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준 벽지는등을 기대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흔한 아픔들을조용히 보았을 터이다들이닥치는 도배장이들처럼이별은 예상보다 성큼 온다한껏 누추한 표정으로잠시라도 바라보아주기를 바라는 벽지는이내 덮인다상처가 아물듯벽지의 한 생이 묻힌다.(부분)도배장이인 시인의 눈에 저 벽지가 시적인 의미를 띠는 것은, 그 벽지 자신이 “등을 돌린 사람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면서 숱한 삶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벽지에 시대의 흐름에 파묻혀 사라져야 하는 소외된 삶이 어른거리고
시
등록일 2022.05.10
게재일 2022-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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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론가 스며드는 일은조금은 비굴하게 흘러드는 일이고밤 불빛처럼 적요하게단단한 씨 하나로 뒤척이며 그럴수록 응고되는 것말없이 흘러온 길마다외투를 벗듯 쉽게 허물을 벗었나, 지금쯤똬리는 空을 품은 듯 틀었겠나, 겨울 길늦은 밤 희부연 차창처럼더듬이 하나 없이 견뎌온 길들남은 이파리 하나마저 털고자 호흡처럼 수천 번을긴 혓바닥 내민 채로 굳었지만그 바람소리를 깨우는 겨울나무 가지여(부분)생존의 압박으로 굴욕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들-우리’의 삶. 위의 시에 따르면, 그 ‘우리’는 “어디론가 스며”들어야 하기에 세상 속으
시
등록일 2022.05.09
게재일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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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어 담을 것과 남겨야 할 것의 구분도 잊은 채모든 것을 쓰레기차 톱니바퀴가 집어삼킨다지나온 바퀴자국을 쓸어 담기도 모자란 시간,떼어먹은 임금 돌려달라고 거리서명을 받으며스쳐 가는 바람같은 무심한 희망일지라도너무나 인간적으로 잡아보는 숨결들우리도 사람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어찌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이 있을까(….)공단이 주는 옐로카드를 면하기 위해가장 더러운 몸이 되어야 할 때, 지금 들에 핀땀꽃은 더 이상 아침길 위에서발에 모터를 달고 달리지 않는다(부분)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쓰레기차 톱니바퀴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세태를 상징한다
시
등록일 2022.05.08
게재일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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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옆에 어깨 옆에 어깨 옆에 어깨를 걸치고 빈틈없이 깍지낀풀들의 머리에 납가루 폭탄이몽땅 구멍을 냈다납가루는 풀의 심장으로스물스물 기어들어가 석고처럼 굳은납가루 심장을 만들어냈다얼굴이 납빛으로 파리해진 풀잎들순식간에 살이 다 녹아내려헐거워진 몸으로 눈을 감는다그날땅에 있는 풀밭은 모오두우구멍이 뚫려 눈감은 풀의 머리가땅 밑으로 쓰러졌다땅은 벌집 같은 구멍투성이가 되었다.(부분)죽음의 이미지가 주조로 되어 있는 위의 시는 묵시적인 암울함으로 덮여 있다고까지 할 수 있겠다. 현대 물질문명의 생태 살육행위는 전쟁에서의 살육행위에 비유
시
등록일 2022.05.05
게재일 202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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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홀로 직선으로 허공을 오르지 못하자등나무는 그 푸른 힘을 밑으로 내려 퍼뜨린다.저 홀로 땅 속에 곡선으로 휘어 뻗은 뿌리는팔방으로 이리저리 퍼져나가다가불쑥불쑥 밭고랑에 새 가지를 돋아올린다.새 가지는 새순 내어 사방팔방을 더듬어보다가휘감을 나무가 없으면 구불구불 엎드린다.(부분)하늘로 오르려 했던 사람이 결국 오르지 못했을 때 얻게 되는 이미지가 이 휘어지고 엎드리는 나무 아닐까. 더이상 하늘로 오르지 못하면 반대로 삶의 힘을 밑으로 내려 지상에 퍼뜨림으로써 삶의 비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테다. 이 휘어진 등나무는 장년
시
등록일 2022.05.03
게재일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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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안 남자들은 난생설화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에배꼽이 없다그러니 탯줄 없는 남자들을 무슨 수로 잡아매나밤하늘엔 연줄 끊어진 연들처럼 별들이 떠돌고우리집 나그네,라는 우리 친척 여자들의 말 속에는모계사회의 전통가옥과 거미줄과 삐걱거리는 툇마루뿐(중략)배꼽이 없는,그래서 세상에 아무 인연도 까닭도 없이엄마는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피똥 싸듯 나를 낳았다어서어서 자라서 훨훨 날아가라고 서둘러날개옷 같은 하얀 배냇옷 한 벌을 지어놓았다서른일곱에 정착도 못하고 나는 지금도 어딜 싸돌아다닌다“우리 집안 남자들은” 난생이어서 탯줄이 없다. 그
시
등록일 2022.05.02
게재일 202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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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붓한 산길마다바람이 휘돌아오면기진한 플라타너스 손들이 땅에 나뒹군다햇살을 담아 한철 그늘을 짓던푸른 손들찬바람에 물기가 말라버린갈색 손들이 버석버석 소리를 지른다바람을 다독이며햇살을 담아내던 중노동으로나무를 놓친 손등이 거칠하다시인은 저 플라타너스 낙엽에서 노동하는 삶의 운명을 본다. 흥미로운 것은 ‘이파리’에서 삶의 핵심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파리는 나무의 끝에서 자라나는, 삶의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부의 존재처럼 여겨진다. 인간의 육체에 비기자면, 머리도 아니고 심장도 아닌 손에 해당하는 존재. 그러나 일하기 위해 쓰이는
시
등록일 2022.05.01
게재일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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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는 심심한 족속,수염을 기르고 있다.풀을 뜯던 염소가 이따금 공중을 올려다보는 건구름을 씹는 일구름을 씹으며 눈을 감는 건눈을 감고 실없이 웃는 건수염을 다듬는 일, 구름을 달고 있는저 근엄한 턱에서검은 똥이 나온다.수염은 독선의 정체, 적당한 그것이스스로를 길들인다. 그러므로혼자 있는 염소는 묶지 않아도 된다.수염 때문에 달아나지 못한다.저 심심한 족속인 ‘염소’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식인’들 아닐까? 염소가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수염에 “구름을 달고” 그 “구름을 씹”고 있는 염소는 시인에게 풍
시
등록일 2022.04.28
게재일 202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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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쳐서 회전하는저 새들은 언제 하나의 깃털을 떨어뜨리는가.벌레들이 파먹은 뼈들공중에서 움직이지 않는 바퀴들태양을 좀먹는창문들이태양을 일제히 인쇄하는 아침지문 없는사람들이한 방향으로 손을 섞는 아침흩어져서 대열을 이루는저 뿌리들은 언제 나무를 쫓아내는가.이 시는 ‘아직’의 시간에, 하지만 곧 닥칠 전조의 시간에 놓여 있다. 무엇인가 곧 일어날 것만 같은 시간이 바로 이 시가 놓여 있는 ‘아직’의 아침이다. 그런데 그 일어날 사건은 불길한 무엇, 즉 추락이며 추방이다. “지문 없는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추락할, 그리고 땅으로부터 추방될
시
등록일 2022.04.27
게재일 202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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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고장이 날아들고집 나갔던 자식들이 빈손으로 돌아와어미애비를 파냈다집이 무너지자生死苦樂이 뿌리박았던 자리가폐허로 변했다굴착기가쓰러진 기둥에 飯哈을 떠 넣고 있다파골하고 있다어둠 속에서유골함에 날아드는 진눈깨비가 분분하다빈집이 무너진 자리,어느 별의 지붕이자세상의 가장 밑바닥인 그 자리에서몸을 잃은 사람들이모래알 같은 생쌀을 씹는다.알다시피 철거는 그곳에 뿌리박고 살고 있었던 사람들을 알량한 보상금을 쥐어주고는 “生死苦樂이 뿌리박았던” 그 땅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살고자 하는 힘과 죽임의 권력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지만
시
등록일 2022.04.26
게재일 202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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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가을의 노래 사이를 망설이며 날다가끝내 입을 다물고 날아가 버린다바람은 철망에 매달려 간신히 꽃을 피운 늦장미와또각또각 걷는 여자의 치마 사이에서 길을 잃고햇살은 나팔꽃 줄기에 머물러 씨앗을 먼저 터뜨릴까마타리의 몸 끝에서 꽃의 눈자락을 틔울까 망설인다망설임, 비는 여름비와 가을비 사이를 망설이며 내린다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갈 때열기와 서늘함이 서로를 슬쩍슬쩍 건드리며닿았다 풀려갈 때나는 망설인다마음속의 마음을 전할까, 감출까무엇인가 망설인다는 것은 사랑에 지금 막 빠졌다는 징조다. 사랑에 빠졌기에 ‘나’는 “마음속의 마음을
시
등록일 2022.04.25
게재일 202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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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화면이 풀죽처럼 흘러내린다술 취한 밥상이 아버지를 뒤엎고값싼 본드를 마신 아들이날개를 자르고 내려와 공터에서 헐떡인다더 이상 철거되는 걸 기다릴 순 없다다짐을 덧칠한 벽엔 금이 가고기둥은 토박이 정신을 버린다연탄가스가 독 오른 살모사처럼 기어오를 때상속권 없는 저녁별이 떠오른다불 꺼진 골목과 낙오자의 방21세기가 급하게 채널을 돌린다(부분)위의 시가 보여주는 희망 없는 철거지에서의 삶의 모습이 21세기적 삶의 현 주소 아니겠는가. 파괴된 철거 지역에서, 상속권이 없어 갈 곳 없이 여전히 삶을 연명해야 하는 사람들, 그 ‘낙
시
등록일 2022.04.24
게재일 202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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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수많은 저녁 중에가장 포근한 저녁은황혼인지 샐녘인지 분간 못하게어슴푸레한 미명이었다어서 일어나 학교 가거라부시시 깨어 듣는 어른들 말씀이한바탕 웃음 끝에거짓말이 되는 순간이었다낮잠 자는 나를 놀리자고누군가 일부러 지어낸 말인 줄을알아차린 그 다음부자가 된 듯한 동안이었다우리가 부자였던 ‘순간’-‘동안’-이 있었던가. 있었다. 어른들의 놀림에 자신도 배시시 수줍게 웃던 유년 시절의 순간이 바로 그때다. 그 유년의 시간을 지금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저 흐릿하고 어두운 기억 창고 이외엔 없다. 유년을 기억하는 몽상-미명-
시
등록일 2022.04.21
게재일 202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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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동백, 그 상처 붉게 붉게 절며 당도하는 곳가마미 바닷가에 한 사내 서 있었네.가마미 바닷가에 폭설이 있었네.폭설이 있었네. 그렇듯 죄 말하고 나서저 긴 수평선, 긴 수평선에 걸쳐 오래 자고 있네.폭설과 잠 사이, 발언과 침묵 사이의 가늠하기 힘든 시공간 속에 시가 놓여 있다. 의미와 무의미, 시간(역사)과 무시간 사이에서 이 시는 진동한다. ‘한 사내’, ‘폭설’, ‘가마미 바닷가’와 그 ‘수평선’은 실제 대상이 아니라 시의 시공간 속에, 즉 행의 발언과 행간의 침묵 사이에 존재한다. 하여, 그것들은 무로부터 드러나는 존재
시
등록일 2022.04.20
게재일 202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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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모두 접혀 있는 건너편 언덕 밑에는울타리가 있는 집을 두 채 그려 넣는다조금 더 안쪽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와그늘을 펼쳐 그려 넣는다(….)나는 천천히 그 사이로 난 길을 걸어지금의 느티나무의 그늘을 한쪽 어깨에 걸고 있다산을 너무 멀리 그려 두었나?산으로 가는 길이 곳곳에 끊겨 있다(부분)상상으로 그려진 시의 세계인만큼, 시인 자신이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할 법이 없다. “시인은 천천히 그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이때 시 쓰기의 아이러니가 발견되는데, 내가 구축한 세계 속에 내 자신이 들어가 걸어갔을 때, 비로
시
등록일 2022.04.19
게재일 202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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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 앞으로 집을 짓는다바람이 잘 통하고자줏빛 그늘이 진다귀가 없는 새가 와서여기저기 기웃거린다보고 싶은 사람이 온다기에막 피어난부용꽃 꽃잎으로 또 한 채집을 짓는다무엇인가 귓전을 매암돌다멀리멀리 너울져간다종소리 모양의장맛비가 저만치 오고 있다.시인은 상상의 힘으로 집-시-을 짓는다. ‘부용꽃 꽃잎으로’ 만들 수도 있는 비현실적인 집. 이 집은 상상의 시공간에 존재하기에 소리 없는 세계다. 그래서 귀 없는 새가 와서 자신의 집으로 삼을까 기웃거리는 집이다. 하지만 이 집의 바깥 세계에서 나는 장맛비 소리가 이 상상 세계 안으로
시
등록일 2022.04.18
게재일 202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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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을 타고서 휘돌아온 바람이물고기의 몸 흔들 때마다얇아질 대로 얇아진 몸추녀 끝에서 펄럭이던, 하지만 방향도 없이찰랑 차르르 바람 속을 헤엄쳐 나가는물고기의 몸 이미 있어도 없는소리뿐인 몸이었네계단 끝 텅 빈 마루방 하나,이른 새벽 바람이 씻어내고 있었네(부분)목어가 찰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시인은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 삶은 흔들리며 헤엄치는 소리만으로 존재한다는 깨달음. 그 소리는 보이지 않는 바람의 존재 역시 알려줄 터, 바람에 깎이고 휘둘려온 목어-삶-의 몸은 “얇아질 대로 얇아”져 있다. 시인은 저 소리가 가져온 깨달음
시
등록일 2022.04.17
게재일 2022-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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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가 돌무더기에 흰 끄나풀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뱀허물이다 머리를 땅에 박고,이리로 저리로 요렇게 조렇게 들어가셨소내가 그 증거요!온 허물로 가리킨다이건 단순한 허물이 아니라뱀에 의한,뱀이 썼던 허물이 분명하다한 마디로, 이 안에 뱀이 있었다는 것저 안 어디쯤진짜가 있다는 것울고불고 마지막까지뒤집어쓰고 살아온 시를 놓아주고생것이 사라져간 쪽을 향해입 꽉 다물었다시는 뱀이 쓴 허물이다. 진짜 생것은 “저 안 어디쯤” 사라져갔다. 시는 껍데기일 뿐이다. 하지만 시는 껍데기긴 껍데기이되, ‘생것’의 흔적으로 남아 있으면서 생것의 존재를
시
등록일 2022.04.14
게재일 202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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