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G. Orwell)은 1949년 ‘빅 브라더(big brother)’의 출현을 우려했지만, 우리는 지금 ‘탈진실(post-truth)사회’를 걱정하고 있다. 가짜뉴스가 판치고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는 혼탁한 세상이다. 노회(老獪)한 권력은 진실의 가면을 쓰고 거짓을 일삼고, 진리와 가치의 객관성을 포기한 정치적 광신자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나라의 사정이 이러한데 ‘진리의 최후보루인 지식인’은 어디에 있는가? 사회의 고민과 대안을 담은 지적 담론을 주도해야 할 지식인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물론 민주화시대의 ‘지사적 지식인’
정치인들은 흔히 ‘춘풍추상(春風秋霜·타인에게는 부드럽게, 나에게는 엄격하게)’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행태를 보인다. ‘춘풍추상’은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가 어렵고, ‘내로남불’은 남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자신을 반성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민주당의 경우 문재인정부가 약속했던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는 내로남불이었다. 조국 전 장관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문 대통령이 비서들에게 선물한 ‘춘풍추상 액자’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지금도 대장동사건을 비롯한 각종 의혹으로
동맹국을 도청한 나라의 ‘국빈 자격’ 방문외교라는 ‘이 웃픈 현상’은 힘과 국익이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동맹·도청·외교’의 공통점은 모두가 ‘국익을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동맹’과 ‘외교’는 합법적이고 ‘도청’은 불법적이지만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이러한 상황에서 동맹외교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북핵 고도화에 대한 실효적 대응, 중국 및 러시아 관련 이슈들에 대한 한미공조, 반도체법과 인플레감축법(IRA)의 해결, 도청의 재발방지 등 우리의 국익과 직결된 중대현안들이
유엔이 최근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WHR) 2023’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OECD 38개국 중 35위로서 최하위권이며, 조사대상 137개국 가운데 57위다. 세계 10위의 경제력, 1인당 GDP 3만3천 달러의 부유한 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불행이다.행복이란 “일상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심리적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행복은 ‘삶의 질적 만족도’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 평가’이다.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은 물질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가치관, 사회적 신뢰도, 정부의 청렴도, 사회적 관계 등 정신적 요인
우리사회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는 심각하다. 포퓰리즘과 진영논리, 편 가르기와 팬덤정치가 공동체의 지성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지성의 최후 보루인 언론과 지식인들까지 권력과 야합하여 반지성적 행태를 보이는가 하면, 반지성주의를 비판했던 대통령 자신도 언행불일치로 반지성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반지성주의 담론은 자기중심적 가치관과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고 있어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반지성주의’란 지성의 유무(有無)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의 작용방식이 ‘이성적·합리적 소통을 수용하지
정치의 암흑기에 시인 고영민은 ‘봄의 정치’라는 시에서 “봄이 오는 걸 보면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봄의 희망으로 국민의 분노를 위로했다. 독재에 대한 저항과 희생은 민주화시대를 열었지만, 권력정치의 퇴행은 또 다시 주권자의 봄을 빼앗아가고 있다.봄은 왔건만 우리네 삶은 여전히 춥다.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소명을 망각한 권력은 봄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권력이 봄으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면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 오관(五官)으로 봄을 접촉하지만 감각기관의 뿌리에 있는 마음으로
세계 최악의 출산율 0.78명, 이것은 청년들의 ‘고통’과 ‘가치관’을 반증한다. 취업·결혼·출산·육아는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정부는 출산율 제고에 16년간(2005∼2021) 280조를 투입했지만 완전히 실패했다. 돌팔이 의사가 중환자의 병을 진단·치료했기 때문이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성세대가 아니라 ‘청년세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결혼과 출산은 당사자의 생각이 중요하다. 취업난과 무주택 상황에서 결혼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결혼을 해도 출산과 양육에는 엄청난 돈·시간·희생이 요구된다.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일·
권력은 비정하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된다. 권력은 위선적이다.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다. 권력이 약속한 평등·정의·공정 등은 집권을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때문에 우리는 권력의 이중성, 즉 그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윤석열 정부의 핵심가치는 ‘공정’과 ‘상식’이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이고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공정과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를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지금 국민은 “공정과 상식은 어디에 있느냐?”고 대통령에게 묻고 있다. 도대체 정치를 어떻게 하였기에 집권초반에 벌써
‘전쟁 같은 정치’가 국민을 짜증나게 하고 있다. 집행권력을 가진 정부여당이나 입법권력을 가진 야당이나 하나같이 자기성찰은 없고 정적(政敵) 공격에만 혈안이다. 민생은 외면하고 ‘네 탓 공방’으로 날을 새고 있으니 ‘정치의 존재이유’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정권은 교체되었지만 정치인들의 오만과 독선, 확증편향, 선택적 정의, 내로남불 행태는 전혀 변화가 없다. 여야가 바뀌었을 뿐, 권력은 자기성찰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찰 없는 권력은 ‘편견과 독선의 괴물’로 전락함으로써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이 아니라 근심’이 되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당권에 도전한 후보들이 벌이는 ‘윤심 경쟁’은 꼴불견이다.공정해야 할 선거가 당 지도부의 경선규칙 변경, 윤핵관의 편 가르기, 대통령실의 개입 등으로 매우 혼탁해졌다. ‘당심’과 ‘윤심’이 과연 ‘민심’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민주정치는 정당정치이기 때문에 정당민주주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당민주주의의 핵심은 자율성·객관성·공정성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스스로 정당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했다.‘민심1위 후보’의 출마를 저지하기 위해 경선규칙을
진보정권에서는 진보를 비판하고, 보수정권에서는 보수를 비판하는 당신은 도대체 ‘어느 편이냐’고 묻는다. 편 가르기 좋아하는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모양이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언론이나 지식인은 정권·이념·권력의 편이 아니라, 정의·진실·국민의 편에 서야 한다”는 사실이다.자유·정의·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념적 프레임’에 갇히는 ‘편 가르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보수 또는 진보라는 프레임은 정치이념이 반영된 ‘선택과 배제’의 결과물이다.정치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자유인의 사고는 유연성을 잃고 정신적 노예로 전락한다. 옳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에서도 우리의 정치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정치의 실종은 권력의 위기이고, 권력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를 의미한다. 집행권력을 가진 여당이나 입법권력을 가진 야당이나 권력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여야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약하기 때문이다.정치인들은 ‘권력의 획득·유지·확대’를 위해 수많은 거짓말들을 한다.이 가운데에는 ‘용서받은 거짓말’도 있고, ‘용서받지 못한 거짓말’도 있다. 미국의 트럼프(D. Trump) 전 대통령은 4년 동안 ‘3만573번의 거짓말’(워싱턴포스트)을 하면서도 임기는 채웠으
한국정치는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이라는 점에서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다.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될수록 양당 내부에서는 강경파가 득세함으로써 대결은 더욱 치열해진다. 겉으로는 서로의 증오가 폭발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호 이익을 지켜주는 ‘은폐된 공생관계’에 있다.‘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적대적 공생은 특수한 한국정치문화의 산물이다. 정치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정당체제는 보수와 진보의 전통을 잇는 양대 정당의 독과점 정치구조이다. 한 때 유력한 정치지도자를 중심으로 제3당이 부상한 경우도 있었지만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헌법에는 국가의 최고의무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하지만 이태원에서 10·29 참사가 일어났을 때 국민은 “압사당할 것 같다”, “살려 달라”고 절규했는데, 국가는 응답이 없었다. 무책임한 국가를 믿었던 순진한 청춘들의 비극이었다.이번 참사와 관련하여 고위공직자들이 보여준 행태는 개탄스럽다.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행안부장관), “국정상황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대통령 비서실장), “핼러윈은 축제가 아니라 현상”(용산구청장)
오름의 왕국, 제주도에는 368개의 크고 작은 오름이 있다. 제주 사람들은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필자도 수없이 올랐던 ‘새별오름’에 매혹되어 올해도 어김없이 또다시 찾았다. 오름의 서쪽, 경사가 가파른 길로 정상에 올라서 360도 파노라마 풍경을 감상한 후, 경사가 완만한 동쪽으로 내려왔다.만추의 새별오름이 가르쳐주는 정치철학적 함의는 크다. 멀리서 보는 새별오름은 민둥산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억새꽃들이 춤추고 있다. 오름의 정면에서는 억새들만 보이지만, 오름의 후면에서는 작은 나무들과 넝쿨이 빽빽이 엉켜있는
철학의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인생도 가을을 맞으면 생각이 깊어진다. 권력·재산·명예도 모두 한 때일 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우리의 삶도 끝없는 세월의 변화 속에 존재하는 찰나(刹那)에 불과하다. 젊은 시절에 외면했던 죽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야 철이 드는 모양이다.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이 라틴어 격언은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고대 로마에서는 개선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고, 중세의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2항).고 했으니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 권력을 잡은 여당은 물론, 권력을 잡으려는 야당도 명심해야 한다. ‘군주민수(君舟民水)’이니 배(대통령)를 띄우는 것도 물(국민)이요, 그 배를 전복시키는 것도 물이다.윤석열 정부에 대한 여론은 어떤가? 새 정부가 출범한지 5개월에 불과한데 민심은 싸늘하다. 기대가 컸으니 실망도 큰 것일까? 최근 여론조사(한국갤럽, 10월 2주차)에 의하면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63%)가 긍정평가(28%)의 2배를 넘는
21세기의 문명국가,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부족전쟁’이 한창이다. 부족전쟁을 이끌고 있는 각 진영의 지도자는 물론, 그 진영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 부족 구성원들 간의 대립도 심각하다. 전선(戰線)은 내정과 외교를 가리지 않는다. 정부여당은 전 정권에 대한 ‘신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그리고 야당은 현 정권의 ‘편파적 수사’를 이유로 부족의 사활을 걸고 전쟁 중이다.예일대 에이미 추아(Amy Chua) 교수는 ‘정치적 부족주의(political tribalism)’에서 “부족본능은 소속본능인 동시에 배제본능”으로서 “부족주의자들이
대학은 ‘진리탐구의 전당’이고, 교수는 ‘가치’와 ‘당위’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대학과 교수들이 권력의 눈치를 봐서야 되겠는가? 김건희 여사의 학위논문 표절과 관련하여 해당 대학과 교수들이 보여준 정치적 행태는 매우 실망스럽다.국민대는 2008년 김건희 여사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했는데, 이미 2007년 국민대 연구윤리위원회는 “타인의 아이디어나 연구내용 등을 인용 없이 도용하는 행위를 표절”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국민대는 최근 표절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에서 “베꼈다 해도 연구내용의 핵심 부분이 아니면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 ‘권력’인가 ‘국민’인가.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시작도 방향도 목표도 국민”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집권당에서 계속되고 있는 권력싸움은 “시작도 방향도 목표도 권력”때문이 아닌가.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표리부동의 전형이다.‘백언불여일행(百言不如一行)’이라고 했다.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대통령의 말은 ‘정치적 수사(修辭)’일 뿐이다. 대통령은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철학자’가 아니라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는 공직자’이다. 대통령의 ‘국민만 보고 가는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