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는 찻집이 있다. 집 가까이 있어서 걸어가면 좋은 거리이다. 가게 안 곳곳에 주인장이 오래전부터 하나씩 간직해 온 애장품이 가득하다. 아기자기한 소품을 구경하는 데만 한참이 걸린다. 그 물건이 태어날 때는 소소한 쓰임새였지만 오래 간직하니 이제는 다시 구하기 힘든 귀한 보물이 됐다. 향이 좋은 홍차를 주문해 놓고 새끼손톱만 한 나무로 만든 직인부터 다리가 달린 오래된 소형 텔레비전, 벽에 붙은 기하학적인 무늬의 욕실 발 매트, 창가에 꽃병인가 하고 다가갔더니 책으로 변신하는 팝업북, 이런 소품을 보다 보면 자리로 차가 배달된
선물이 도착했다. 산타할아버지 같은 친구가 멀리서 보내온 보따리를 풀었다. 참하게 포장한 반짝이는 리본을 풀자니 아까울 지경이다. 손편지까지 써서 실어 보낸 것이라 친구의 마음을 열어보는 기분이다. 이십 대 청년이 된 아들 둘의 어린아이 모습까지 기억할 만큼 오래 이어진 인연의 끈이다.오래된 끈과 띠를 모아 국립대구박물관에서 한국의 복식 특별전을 한다기에 길을 나섰다. 포항과 대구를 잇는 긴 띠인 고속도로를 달려가니 한 시간 조금 더 걸려 도착했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때 닫힌 공간이라 걱정했는데, 그 넓은 곳을 돌아보는 내내 박물관
경주라는 이름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신라가 끝날 때이다. 경순왕이 서라벌을 떠나 개성에서 항복하면서 신라의 천년 사직이 끝나고 도시 이름도 서라벌(금성)에서 지금의 경주로 바꿨다고 한다. 천년을 간직한 이름이다.천 년을 견뎌낸 유적과 갓 백 살을 넘긴 건물을 만나러 갔다. 천 년이라는 세월을 펼쳐보기 전에 짧은 시간을 살아낸 경주역을 미리 만나보기로 했다. 곧 폐역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와서 먼저 그리로 발걸음을 옮겨 눈도장을 찍고, 고려 시대에 토성으로 태어나 조선 시대에 석축으로 변신하였다가 일제강점기에 성벽 50m만
제사 지내고 돌아오는 길, 먼 산 위에 달이 떴다. 나물을 다듬고 탕국을 끓일 초저녁부터 우리 동네를 서성이다가 음복이라도 하고 가라는 소릴 기다렸는지 반쯤 감긴 눈으로 우리를 내려다본다. 달을 향해 달리다 상에서 내린 술 몇 잔에 취기가 오른 옆지기에게 저 달 좀 올려다보라 권했다. 달을 보니 요 며칠 퇴계 이황의 시선집의 목차를 어루만졌더니 시 한 수 읊고 싶은 밤이라 읊조렸다.퇴계에서, 도산 달밤에 매화를 읊어, 어제 농암 선생을 뵙고 물러 나와 느낀 바 있어 두 수를 짓다, 조사경이 병 때문에 청량산으로 가자던 약속을 지키지
가을이 겨울을 위해 붉은 등을 켰다. 동네가 환하다. 수백 년 전부터 바알갛게 불을 밝힌 만 그루의 나무 곁에 십만 그루가 가로등처럼 꽃불을 켜서 마을 전체가 환하다. 의성 사곡면 화전리로 들어서는 순간 어찌나 동네가 붉은지 ‘산수유 마을’이란 별칭이 꼭 맞아떨어진다. 지난봄, 입구에서부터 버스 정류장에도 산자락에도 어김없이 산수유꽃이 노랗더니 지금은 붉은 물감을 칠해 새로운 겨울 축제를 열었나 싶다. ‘영원불변한 사랑’이라는 꽃말처럼 300년 넘게 오래도록 마을을 밝힌다.산책로에 들어서니 발밑에 빨간 열매가 떨어졌다. 학창시절 국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붉게 물들어 타는 저녁놀~.” 1984년 어린이날 MBC동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우리에게 다가온 ‘노을’이다. 아이들이나 부르던 동요가 전국 길거리에서 울려 퍼지도록 유행한 것은 이 곡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싶다. 노을 하면 바로 노랫말이 저절로 입안에 맴돈다.내가 사는 포항은 일출로 유명하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첫해를 보겠다고 호미곶 근처에 방을 잡고 새벽잠을 포기하며 마중을 한다. 그 틈에 한 번도 낀 적이 없는 이유는 일출보다는 저녁밥 짓
늘 지나쳐 가기만 했었다. 경주 산림연구원에서 통일전으로 달려가다 보면 헌강왕릉이란 표지판이 휙 다가왔다 사라진다. 산기슭으로 오르면 능이 있을 거라고 알려주는데 매번 모른 척 지나왔었다. 오늘은 사람 없는 조용한 곳으로 산책가자 하니, 그곳이 떠올랐다.역사 선생이란 이름으로 평생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린 남편에게 헌강왕은 신라 몇 대 왕이냐 물었다. 검색해 보아야 안다고 하니, 역사무지랭이인 나와 다를 바 없네 하고 놀리니,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중요한 업적도 없는 왕까지 어찌 아느냐고 받아친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신라의 왕이
바람이 서늘도 하여 걷기에 참 좋다. 여름부터 포항 여기저기를 찾아 매일 아침 걷기 시작한 것이 가을이 깊도록 이어졌다. 철길숲의 맨 끝 지점인 효자교회에서 유강까지 가는 코스를 걸었다. 가장 최근에 꾸미기 시작한 길이라 미완성이다. 유강에 이르러서는 흙길이라 걷기엔 폭삭해서 좋은데 비 오는 날엔 질척거려 신발에 진흙이 다 달라붙었다. 가로수는 덜 자라 햇볕을 다 가리지 못한다.그래도 새길을 걷는 맛이 있다. 지나는 이도 다른 길에 비해 적어 소란스럽지 않아 가을 아침 공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기찻길 옆으로 코스모스가 남은
해가 뜨기 전 직지사로 향했다. 두 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거리라 새벽부터 서둘렀다. 어느 절이나 산사를 제대로 보려면 방문객이 적은 시간에 가야 고즈넉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입구에 차를 세우니 서늘한 아침 공기만 일주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직지’라는 절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다. 지난해 이맘때 즈음, 구미의 도리사를 찾았더니 산책로 끝에 전망대에 오르니 아도화상이 태조산에 절을 짓고 난 후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똑바로 가리키며 저곳에도 좋은 절터가 있다 하여 직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한 가지이다. 또
독서모임에서 박웅현의 ‘다시 책은 도끼다’를 읽고 느낌을 나눴다. 밑줄 친 문장 중에 풍류에 대해 정의를 해 놓은 부분이다. 그림 설명해주는 손철주님은 봄이면 탐매하러 가자고 지인들에게 연락한다. 몇 날 몇 시에 모여서 2박 3일 일정으로 매화 향기를 느끼러 가니 참석하라고 말이다. ‘탐매’라는 낱말이 국어사전에 나온다. 탐매하다, 탐매객, 이런 표현이 있을 정도이다. 그렇게 매해 탐매를 떠난다고 하니 그게 바로 풍류라고 한다. 그럼 나도 풍류객이다. 계절마다 피는 꽃을 찾아 나서니 말이다.지금은 가을, 오늘은 구절초를 보러 갔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사라졌다.20년 넘게 초등학교 옆에 살았다. 아이들이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학교가 있다는 것에 무조건 이사를 결정했었다. 부엌으로 난 작은 창문을 열어두면 쉬는 시간 아이들의 뜀박질 소리가 그 문으로 들어온다.하지만 이맘때 들려오던 운동회 소리가 코로나 때문에 끊겨버렸다. 날이 정해지면 한동안 운동장에서 매스게임 연습하느라 선생님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날아오고, 행진곡이 배경음악으로 쉴 새 없이 동네를 들썩거렸었다. 그런 소리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마스크에 묻혔는지 초등학교 옆이란 게 느껴지지 않
동네 어귀에 살던 새순오빠네 집은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둘렀다. 어릴적 기억이라 동네 오빠 이름은 맞는지 확신은 없지만, 울타리의 가시는 눈에 선하다. 남후초등학교까지 가려면 어린 내 걸음으로 삼십여 분이 걸렸다. 옆집 미정이를 우리 집 앞에서 먼저 만나고, 순연이 집 앞에 가서 학교 가자고 큰소리로 외치면 얼굴이 유난히 하얗던 순연이는 책보를 가녀린 허리에 매고 달려 나왔다. 우리 셋은 서너 번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살았기에 학교 가는 길도, 하교 후 ‘짜개놀이’와 ‘왼발은 뛰어도 관계없어요’, ‘숨바꼭질’도 함께 했다.순연이
쇼팽의 ‘녹턴’을 들었다. 빗소리클래식이라고 제목을 붙여 비 오는 오후에 친구가 배달한 음악이다. 피아노 소리에 빗소리를 더한 앙상블이 듣기 좋아, 해질무렵부터 틀어놓았더니 두 시간이 후룩 지났다.빗소리 듣기에 좋은 곳을 다녀왔다. 대구의 도동서원이다. 조선의 성리학자 김굉필을 기리는 곳으로 건축미가 돋보이는 곳이다. 특히 중정당의 기단이 압권이다. 돌의 크기와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이라 마치 몬드리안이 무채색으로 무늬 꾸미기를 기단에 그려 놓은 듯하다. 멋진 그림에 취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사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침 우
보금자리를 옮겼다. 나는 한 곳에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거처를 옮기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살던 집이 하천 확장 공사로 잠기게 되어 어쩔 수 없었다. 주변에 살던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같은 동네로 함께 가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었다.조용한 시골 동네에 살다가 도시로 나왔다. 이사 할 집의 위치가 기찻길 옆이란 소문을 듣고 왔는데, 와보니 숲이었다. 도시숲이라 산속 깊은 곳처럼 새소리 물소리 가득한 곳은 아니지만, 가까운 산에서 산비둘기가 날아와 가지에 앉아 울어 주니 조금은 위로받는다.새로 자리 잡은 동네는 나루끝이다. 포
해가 뜨기 전 출발했다. 고요한 숲에 우리 발소리만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이 일찍 잠을 깨웠다. 아직 잠이 덜 깬 7번 국도를 달리니 바다에 아침노을이 붉다. 동해에 잠겼던 해가 몸을 막 건져 올려서인지 바다와 주위의 구름까지 물들여 놓았다.가을 여행길에 어울리는 곡을 틀었다. 어제 음악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노래다.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우~돌아선 그 사람 우~생각나네~’ 정경호의 ‘회상’이 차 안에 울려 퍼진다. 떠나버린 여자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을 읊조리듯 부른다. 진짜 노래를 잘 하는 가수가 부르는 열창이 아닌, 배우
자두가 맛있는 계절이다. 물렁한 것보다 단단한 식감이 취향이라 과일가게에 가면 주먹만 한 자두를 골라 바알간 부분 한 입 깨물어보고 산다. 새콤한 맛이 입안에 번진다.어릴 적 내 고향 안동에서는 자두를 자두라 부르지 않았다. 우리 집 담장에도 이웃집 미정이네 마당에도 한 그루씩 있던 추리나무, 누구보다 봄을 부지런히 준비해 잎보다 먼저 하얀 꽃을 피웠다. 후루룩 봄바람 따라 꽃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 꽃잎 대신 초록색의 열매를 내민다. 새끼손톱만 하던 초록색이 하루하루 옅어지다 연두색이 될 즈음 우린 나무를 흔들어 추리를 따먹었다.
친구가 보내온 사진 한 장, 이태리타올에 ‘다 때가 있다!’라는 글귀가 적혔다. 몸에 끼인 때와 삶에 걸쳐진 시간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말이라 슬쩍 웃음이 난다. 때는 때 맞춰 씻어내야 하니 더 적절한 표어 같다.시시때때로 꽃이 핀다. 대한민국은 꽃공화국이라고 할 만큼 일 년 내내 다른 도시에 뒤질세라 꽃축제가 이어지고, 카페도 커피 맛보다 정원에 핀 꽃이 더 손님을 불러들인다. 수국 맛집, 야생화 맛집, 해바라기 맛집에서 찍은 사진들이 sns를 통해 내게 당도한다. 꽃공화국 시민답게 보는 즉시 길을 나선다.꽃의 절정을 보러 갔다.
옛날 옛날에, 스님이 끼니때마다 바위에서 한 알씩 나오는 쌀을 받아서 모아 한 그릇의 밥을 지어서 먹었다고 한다. 어느 날, 욕심이 생긴 스님이 더 많은 쌀을 얻으려고 바위를 파 보았더니 쌀은 없고 물만 나왔다고 한다. 어머님이 남편 어릴 적에 들려주신 이야기(사실은 임중리의 국구암의 “쌀바위 전설”이다.)이다. 시댁 근처에 이 전설을 간직한 절이 있다. 그 절에 화장을 곱게 했던 부처님도 있다고 했다.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한다. 립스틱 바르는 것이 화장의 시작이자 끝인 나는 뭐가 왜 중요한지 잘 모른다. 친
블로그에 무궁화 꽃이 피었다. 3년 전, 7년 전 오늘 일기를 다시 보여주는 블로그의 서비스 덕분으로 같은 날에 쓴 대여섯 개의 오늘 일기가 떠올라 잊고 있던 그 날의 이야기에 또 한 번 웃을 수 있어서 좋다. 12년 전 이맘때도, 우리 동네에는 무궁화가 화려한 외출을 했다.2009년 7월 오늘, 안동에서 외할머니가 오셨다. 연세가 많으셔서인지 집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셔서 겨우 모시고 온 길이었다. 손녀인 내가 꽃구경 가자니 이 나이에 꽃은 봐서 뭐하냐고 안 간다고 손사래 치신다. 힘드시면 업어드릴 테니 가자며 억지로 모시고 기청
영일대로 걸었다. 저녁을 먹고 나온 산책길, 북부 바닷가에는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붐볐다. 장미정원 가까이 무대에서 행사진행자의 마이크 소리에 따라 함성이 오르내렸다. 광장에는 농구공을 튕기는 아이들, 더운 날씨와 상관없이 다정하게 어깨를 맞댄 연인들, 강아지에게 이끌려 나온 이웃들, 부딪히지 않으려 애쓰며 걸어야 할 정도였다. 바다로 조금 더 가까이 나앉은 누각에 오르니 바람이 훨씬 시원하다. 누각은 네 방향으로 열려있어 동해로 이어진 바다 방향에서는 하얀 요트가 다가왔다가 멀어져가고 저 멀리 포스코 건물 쪽으로 고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