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을이면 러시아학 전공자들은 공동 학술대회를 기다린다. 6·25 사변과 냉전, 베트남 파병과 1·21사건 그리고 10월 유신 같은 사건을 경험한 한국에서 러시아 관련 연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990년 9월 30일 한국과 소련이 외교관계를 맺고, 1992년 11월 19일 문화협정을 체결하기 전까지 러시아 연구는 난맥상 자체였다. 연구를 위한 도서(圖書)를 구하는 게 불가능했고, 전문가 양성은 언감생심이었으니 말이다.1990년대 이전 러시아 관련 분야 연구자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그 하나는 국내에서
아침저녁으로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 때문에 신문이고 라디오고 간에 새 소식을 보고 듣고 싶은 마음이 전연 들지 않는다. 누구를 찌르고, 죽이고, 도주하고, 자살하고, 사기 치고, 음해하고 등등 각종 사건 사고가 날마다 차고 넘친다. 참 흉악하고 무도한 세상이다. 6·25 한국동란이 끝난 지 어언 70년이니까 두 세대 이전에 전쟁으로 인한 살육(殺戮)이 멈춘 지 오래다. 그런데 흉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유는 무엇일까?!거의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배고프고 헐벗었던 1960∼70년대에도 흉악범죄와 자살 혹은‘묻지마 범죄’는 드물었
처서(處暑) 백로(白露) 지나 추분(秋分)이 코앞인데 날마다 비가 내린다.예년 이맘때면 가을바람 소슬하고 일기 쾌청하여 교외(郊外)로 나가기 제격이었는데, 요즘 날씨는 종잡기 어렵다. 언론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이 지구 자연환경을 파괴한 결과를 마주하는 듯하다. 그래선지 ‘인류세(人類世)’라는 어휘가 낯설지 않다.인류세는 1980년대 미국 생물학자 유진 스토머와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제안한 개념이다. 그들은 인류의 산업활동 때문에 지구 환경이 극단적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런 사실을 지질시대에 포함하고자 인류세를
독자 여러분은 조각 이불을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무늬와 색깔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조각 이불이 마음에 드시는지 궁금하다. 조각 이불은 어린아이를 위한 이불로 사랑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록달록한 무늬와 기하학적인 질서로 배열돼있는 조각 이불은 따스함과 질서정연함을 동시에 선사할 수 있으니 말이다.언제부턴가 나를 만들어온 여러 요인(要因)을 생각하게 된다. 퇴임을 앞두고 사람들에게 인사말을 하라는 청을 들었을 때 그런 말을 했다. 지금의 나를 있도록 해준 여러분의 인내와 너그러움에 감사한다는 뜻의 말을 전한 것이다. 잘
오브리 드 그레이의 ‘노화의 종말’(2007)에서 발원하여 데이비드 싱클레어와 매슈 러플랜트의 ‘노화의 종말’(2020)과 호세 코르데이로와 데이비드 우드의 ‘죽음의 죽음’(2023)으로 이어지는 노화의 종식과 불사(不死)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이런 논의 사이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2015)가 자리한다.‘사피엔스’에서 하라리가 제시한 것은 ‘길가메시 프로젝트’였다. 사피엔스의 가능 최대수명인 125세의 네 배에 이르는 500세 인생에 도전하는 기획이 길가메시 프로젝트다.그런 문장과 만났을 때 ‘농담하나?!’
관객이 한 편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인상과 미학적 인식, 그리고 감수성은 천양지차(天壤之差)다. 호사가(好事家)는 그것을 취향(趣向)이라는 어휘 하나로 설명하고자 하지만, 실제로 그런 차이는 미학적 훈련의 결과에서 발원한다.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이고 계통적인 미학 훈련을 해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영화를 포함한 예술 전반을 수용하는 기본자세부터 다르다. 대상을 읽고 보고 느끼면서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간파하는 능력 차이가 개인별로 크다.요즘 사람들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리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는 생각할 거리가
며칠 전 밤늦도록 잠이 찾아오지 않아 전전반측(輾轉反側)하다 급기야 일어나 앉는다. 평소 같으면 잠자리에 든 지 1∼2분이면 곯아떨어지기 마련인데, 이런 불면(不眠)의 시간이 다가오기도 한다. 그럴 때 벗하라고 생겨난 것이 유튜브인 모양이다. 제법 오래전부터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혹은 ‘법성게(法性偈)’ 같은 불교 관련 경전이나 글을 찾아 읽곤 했다. 그러다 보니 유튜브도 자연 그런 쪽을 찾아서 듣게 되는 것이다.그날 설법의 요체는 ‘자제’에 관한 것이었다. 몸과 마음과 말의 세 가지를 자제하라는 게 요체였다. 몸과 마음과 말
금요일 점심 먹고 오는 길에 아, 그렇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경북대 교수회에서 퇴임의 변(辯)을 써달라는 시한이 그날이었기 때문이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길을 걷는 일은 그래서 유용하고 의미 있는 모양이다. 방송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얼핏 두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지나간 세월을 차분하게 반추하여 글로 옮겨야 한다. 원고매수 제한은 없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하면 된다.수요일에는 젊은 가수 박창근씨를 초대하여 두 시간 특집방송을 진행했고, 목요일에는 학교 선생님 두 분과
보름 넘게 이어지는 폭염(暴炎)과 열대야가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헤살놓고 있다. 강릉에서는 열대야도 모자라 초열대야까지 나타나는 걸 보니 지구 온난화가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계속되는데, 새만금 잼버리 대회의 난맥상이 한국인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내고 있다. 선진국 타령을 해대던 수많은 언론매체에 빨간불이 켜진다.세계 전역 159개국 4만여 명이 참가하는 1천억원 규모의 세계적인 행사를 ‘배추 장사’ 문서 처리하듯 주먹구구식으로 치르려 했던 인사들의 난맥상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새만금이
“월요일 출근 후 업무 폭탄과 아이 난리가 겹치면서 그냥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숨이 막혔다. 밥을 먹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인용문은 서울 교사노동조합이 7월 24일 유족의 동의를 받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초등교사의 일기장 일부다. 스물세 살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했던 교사의 깊은 한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그녀를 머나먼 곳으로 떠나보낸 두 가지 근본 원인이 글에 담겨 있다.초등학교 담임교사에게 떨어지는 과중한 업무가 그 하나고, 아이로
20대 초반 여교사가 학교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죽음을 둘러싸고 숱한 소문과 의혹과 추측이 난무한다. 죽음을 둘러싼 진영 사이의 대결과 충돌도 점입가경이다. 하지만 그들 목소리의 교집합이 있으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이런 주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멀리는 4·16 세월호 대참사와 가까이는 10·29 이태원 참사가 있다. 그런데 결론은 무엇인가?! 유야무야(有耶無耶), 꼬리 자르기,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고, 책임자 처벌은 온데간데없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 겪는 일인가?! 반짝하며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이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내게 썩 쓸모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서적을 소개하는 지면이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로 무장한 수많은 신간 서적이 출간-유통되는 21세기 20년대는 그야말로 유토피아다. 그래서 일본 최고의 지식인이자 독서광 다치바나 다카시(1940∼2021) 평론가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아생전에 그는 “이렇게 좋은 책들이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데, 죽어야 한다니 너무나 안타깝다”는 소회(所懷)를 밝힌 바 있다.얼마 전에 ‘표류하는 세계’에 나오는 구절을 보고 즉시 구매했다. “미국이라는 강력한 배는 정치 갈등과 부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태곳적부터 인간은 불멸을 꿈꾸었다. 인류의 가장 오랜 서사시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주인공 길가메시는 친구인 엔키두의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고통받는다. 필멸(必滅)해야 하는 존재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을 모색하다가 그는 우트나피쉬팀에게 영생의 비법을 알아낸다. 하지만 우르크를 목전에 둔 지점에서 뱀에게 영생의 불로초를 도둑맞고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대략 4,500년 전에 지어진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죽음은 중요한 주제였다. 죽음과 불멸에 가장 친숙한 사람은 진시황일
6월 30일까지 학생들의 성적을 처리해야 했기로 지난 며칠 답안지를 붙들고 씨름했다. 채점할 때마다 절감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의 글 쓰는 능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진다. 어떤 경우에는 아, 이 정도까지 떨어질 수 있나, 하는 자괴감(自愧感)이 찾아오는 수도 있다. 대학생들이 쓴 답안지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오류가 곳곳에서 나를 급습한다.2023년 1학기 채점 답안지 가운데서 나를 웃기고 울렸던 몇몇 구절을 소개한다. 지난 학기 강의 제목은 ‘동서 고전의 만남’이었고, 강의 내용은 세계 4대 문명과 초원 문명에서 시작하여 야스퍼스의 ‘축
석면 제거공사를 한다고 대학원동 건물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방학 기간에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본부의 구상에 따라 연구실을 정리해야 했다. 이번 학기 시작 전부터 나는 연구실에 있는 책을 정리할 요량이었다. 러시아어, 영어, 도이치어, 한국어 그리고 기타 언어로 된 적잖은 분량의 책을 단번에 정리하는 것은 어리석은 노릇 아닌가?!나의 의도는 선량한 의지 때문에 관철되지 못했다. 몇 년 전 명예퇴직한 동료 교수가 인문학 카페를 열겠다는 뜻을 표명했고, 그곳에 다채로운 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퇴직 이후 인문학 카페의 고객이자
아주 오랜만에 결혼식에 참석했다. 나는 장례식에는 자주 가는 편이지만, 결혼식에는 부조(扶助)만 하고 대개는 아니 간다. 쓸쓸하고 슬픈 장소에는 사람이 많이 갈수록 좋지만, 환하고 행복한 자리는 조금 허전해도 견딜 만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가 결혼식에 간 이유는 나의 둘째 아들이 혼인(婚姻)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혼주(婚主) 자격으로 신랑과 신부를 위한 덕담(德談)을 하기로 했기에, 더욱 결혼식에 가야 했다. 붐비는 토요일 오후 서울 내부순환도로와 강변북로를 거쳐 강동(江東)의 결혼식장에 도달한 시각은 오후 2시 15분 무렵. 예
세상의 모든 것에는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존재한다. 이것에는 예외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처음과 마지막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첫사랑이나 첫인상 혹은 마지막 잎새나 마지막 수업 같은 말이 생겨난다. 1871년 알퐁스 도데가 남긴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과 1907년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가 기억에 남아있다.내게도 그런 일이 있다. 지난 목요일 오전 9시, 10시 반 그리고 오후 3시에 마지막 수업을 한 것이다. ‘동서 고전의 만남’, ‘러시아 어문학의 세계’, ‘명저 읽기와 토론’ 세 과목을 종강한다. 대상포진
개인의 경험과 지식은 그가 지상에 머문 시간의 길이와 비례하지 않는다. 오래 살았다 해서 개인이 도달하는 지적·정신적 성취가 그 시간만큼 깊고 너르지 않다는 얘기다. 오히려 어떤 이는 짧은 생을 열렬하게 불태움으로써 경이로운 높이에 이르기도 한다. 식민지 조선의 시인 소월과 동주, 소설가 김해경과 김유정 같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어떤 교수는 100살이 넘도록 살았다지만, 그가 도달하는 지평은 어느 지점에 멈춰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개인에게 허여된 사유와 인식의 근저를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
사람마다 좋아하는 냄새가 있다. 나는 바닷바람 냄새와 잔디 깎을 때 나는 냄새가 좋다. 바다를 처음 보았을 때 바다의 드넓은 인상도 좋았지만, 바다가 풍기는 냄새도 잊을 수 없다. 잔디 냄새가 좋다는 생각이 처음 든 것은 베를린 자유대학 동유럽연구소 앞에서였다. 1989년 4월 어느 맑은 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오던 잔디 냄새는 대단한 것이었다.어린 시절 큰집에 가면 잔디에서 온종일 뛰어놀 수 있었다. 일 년에 단 하루, 추석 당일에만 허락된 특별한 행사가 잔디에서 공놀이하는 일이었다. 가난했던 나의 아버지와 달리 집안의
아침 아홉 시 반에 시작한 여정(旅程)이 자정 넘어서야 끝난다. 학회의 정례 학술논문 발표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것이다. 나는 학회 활동에 열렬한 연구자가 아니다. 공부를 혼자 해 버릇한 이유로 독야청청 독불장군의 길을 허위단신 달려온 세월이 30년 가까우니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청해서 발표를 결정하여 서울에 다녀왔다.정년을 불과 석 달 앞둔 백발의 연구자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희곡 ‘시골에서 한 달’ 연구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진 것이다. 19세기 90년대 안톤 체호프의 극문학 성립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극작가 투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