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멸망 애도 `不事二君`선택 은거 학문 정진하며 쟁쟁한 후학들 배출 구미 금오산 입구, 아름다운 계곡 옆에 무상한 세월에도 바래지 않은 기상을 풍기는 몇 채의 건물이 있다. 건물로 가는 초입에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로 시작되는 시조를 새긴 시비(詩碑)가 있어 이곳이 고려말의 충신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관련이 있으며, 또 `채미정(採薇亭)`이라고 새긴 돌을 통해 이 건물군을 대표하는 이름이 채미정임도 알 수 있다. 입구를 지나면 마치 속세와 성지를 구분하는 듯, 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가 놓여 있다. 돌 다리 앞에는 고색창연한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져 있어 채미정이 지닌 권위를 실감케 한다. 다리를 건너 건물로 들어가면 1768년(영조 44)에 선산 선비들이 길재
기암괴석·계곡 등 자연경관 자랑하는 `영남 8경` △금오산 도립공원 우리나라 최대 내륙산업도시 구미시에는 제법 산다운 산이 많다. 1970년 6월 국내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금오산(976m), 선산과 인동지역의 주산인 비봉산과 천생산, 신라 불교 최초의 전래지 도리사를 품은 냉산이 있다. 이 가운데 으뜸은 금오산이다. `영남 8경` 또는 `경북 8경`이라 불리며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기암괴석과 잘 발달한 계곡이 산세와 조화를 이뤄 가히 일품이다. 이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연간 250만명이 찾고 있다. 금오산은 수려한 경관만큼이나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삼족오(三足烏)와 숭산(嵩山), 임금을 예언한 산이라는 범상치 않은 지명 유래 등이 깃들어 있다. 고려 말 불사이군(不
국권 침탈 일제에 맞서 `자정순국`한 올곧은 선비 지난 해가 경술국치 100주년으로 나라를 잃은 치욕을 기억하는 시간이었다면, 금년은 수많은 지사들이 국권회복의 설욕을 위해 만주로 독립의 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거사의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 치욕의 끝과 설욕의 시작 한 가운데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 1842~1910)의 자정순국(自靖殉國: 나라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있다. 1910년,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은 엿새를 돌아 9월4일 향산 이만도가 은거하고 있던 일월산 자락의 궁벽한 산골에도 찾아들었다. 이에 이만도는 일찍이 을미사변이나 을사늑약 체결의 치욕에도 한 줄기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해 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품을 여지가 없어
임진왜란이 일어난 그 이듬해 2월, 경상북도 상주에서 정경세(호는 愚伏, 1563~1633)와 상주의 유학자들로 이뤄진 의병진이 왜적의 공격으로 함락당했다. 이 때 의병진에 참여했던 상주의 유학자 이전(호는 月澗, 1558~1648)과 이준(호는 蒼石, 1560~1635) 형제는 왜병들을 피해 백화산 정상으로 피하려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 이준이 토사곽란을 일으켜 쓰러져 탈출할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 그러자 이준은 형의 손을 부여잡고 “저는 병으로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형님께서는 빨리 여기를 탈출하셔서 선조의 제사를 이으십시오”라고 했다. 그러나 형인 이전은 완곡하게 거부하며 “옛날에 형제가 도적들과 맞붙어서 죽기로 싸운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를 버리고 홀로 살아 남을 수 있겠는냐
안동 길안의 한 골짜기, 작은 폭포와 너럭바위와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정자 하나가 있다. 정자 이름은 만휴정(晩休亭), 만년의 삶을 보내기 위한 정자라는 의미이다. 이 정자는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정자를 건립한 주인공의 삶 역시 아름답다. 이 정자의 주인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청백리였던 김계행(係行)이다. 김계행은 1430년(세종 12)에 태어나서 1517년(중종 12)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취사(取斯), 호는 보백당(寶白堂)이다. 그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생원시에 입격(入格)하여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문과는 많이 늦어져 51세가 되어서야 급제하였다. 하지만 과거 급제에 연연하거나 관직에 나가려고 초조해하지 않았다. 당대의 학자였던 점필재 김종직(宗直)
정쟁 싫어 도산에 은거… 청량산 벗하며 학문 집대성 경상북도는 조선시대 영남학파의 본산으로서 풍부한 정신문화적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유교의 고장이다. 경북매일은 2011년 새해를 맞아 경북의 이러한 우수한 전통문화를 선현들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어 조명함으로써 그 잠재력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디지털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문화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화두로 제시한다. 50대 초반 벼슬에서 완전히 물러나 도산(陶山)으로 낙향한 지 10여년 남짓 되던 어느 해, 퇴계 이황(1501~1570)은 오랜만에 청량산 유람길에 올랐다가 시 한수를 짓는다. 지금의 농암종택 아래에 있는 학소대 기암절벽을 밀쳐내듯 튕기며 휘돌아 내리는 낙동강이 일직선으로 넘실대며 장대한 풍광을 이루고 있는 곳에 이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