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란 이야기일 터. 여기 강산이 2번은 변할 시간에 가까운 17년 동안 꾸준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퇴근길 청취자들의 친구로 오랜 세월 함께 한 포항MBC ‘라디오 열린 세상’에서 ‘김씨 아재’ 코너를 맡아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어온 이정대 씨.2004년 처음 스튜디오에 들어설 때부터 지금까지 깨끗하게 손을 씻고 대본을 받아드는 그는 항상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잊지 않는 방송인으로 살고자 애써 왔다. 긴장과 진땀의 연속이라 할 수 있는 생방송과
한국은 문화·예술의 중심축이 서울로 설계된 국가라는 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현실이 이러하니 지방 도시의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건 힘겨울 게 불을 보듯 뻔하다.여기에 지난해 초부터 예기치 못한 복병처럼 문화예술계를 궁지로 몰아넣은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쳤으니, 포항 예술가들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할까?한국국악협회 포항지부장 이원만(58)씨는 20대 때부터 문화운동을 시작해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의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기 드문 예술가다. 국악으로 시작했지만, 최근엔 대본 작가와 제작감독 등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
8145060분의 1.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이다. 사람이 하루에 벼락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맞을 확률과 비슷하단다. 가능성이 제로(0)에 가깝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매주 적지 않은 이들이 로또복권을 구입한다.복권 구매자들은 말한다. “5천 원짜리 한 장 혹은, 1만 원짜리 한 장으로 사서 지갑에 넣어둔 로또로 인해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잊고 한 주를 웃으며 견딜 수 있다”고.서울의 아파트 한 채 가격이 20~30억 원을 가볍게 뛰어넘는 한국. 부자들에겐 10~20억 원을 오가는 로또복권 당첨금이 크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
삶의 무대를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편안한 공간, 익숙한 사람들에게 끌리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하지만 모든 인간이 똑같을 수는 없는 법. 어떤 사람은 정주(定住)가 아닌 떠돎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기도 한다.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모범적인 영어강사로 살아온 이미하(57)씨는 늘상 보는 풍경과 매일 만나는 사람들 곁을 떠나 캄보디아라는 낯선 나라에서 새롭고 설레는 삶을 살아가는 꿈을 꾸고 있다.대부분의 동년배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안주하려는 나이에 20대 청춘처럼 불확실한 미래로 겁 없이 뛰어들고자 하
지난 시대 운동선수들에겐 “죽도록 열심히, 무조건 지도자가 시키는 방식대로”가 금과옥조(金科玉條)의 지침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그게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됐다.최근엔 체육계 전반에 걸쳐 고질적 문제로 제기돼 온 지도자와 학생간, 선배와 후배간 ‘학교 폭력’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10대 때부터 체육계에 몸 담아온 트레이닝과학연구소 박성률(57) 대표는 이를 안타까워했다. 아시안게임 조정 4위 국가대표로 활약독일서 ‘트레이닝 방법론’ 등 학위 받아대학교수·스포츠과학 연구원 등으로30년 이상 전문 체육지도
누가 아름다운 사람인가? 이런 질문이 던져진다면 답변은 너무나도 다양할 터. 하지만 가장 간명한 대답은 “자신의 자리에서 아이덴티티(Identity)를 지키며 사는 사람”이 아닐까?영화 ‘어 퓨 굿맨(A Few Good Men)’에서 미국 미사일 기지를 지키는 해병 대령 제셉(잭 니콜슨 분)은 자신이 감옥에 갈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말한다.“위국과 위민, 명예를 너희들은 농담할 때나 사용하지? 그러나 우린 달라. 그 단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살아왔지.”다소 파시스트적인 성향을 보이는 군인 제셉 대령의 위 대사에 관한 사람들의 평가는
기자의 개인적 경험에 한정시켜 말하자면 유능한 의사보다 더 만나기 힘든 게 ‘따스한 의사’다. 환자의 아픈 육체만이 아닌 두려운 마음까지 다독여 위로를 통한 치유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의사 말이다.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포항 고창대유외과의원 고창대(52) 원장은 따스한 의사임이 분명해 보인다.2000년대 초반. 막 개원한 젊은 외과의였던 고창대는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환자를 만난다. 서울의 큰 병원에서 수술하자는 가족들의 권유에도 그녀는 고 원장에게 수술 받기를 원했다. 이유는 하나.이전에 앓았던 병을 말한 후 “얼마나 힘드셨어요?”라는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벽과 바닥엔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두 청년이 입은 옷도 얼핏 보기에 비싼 건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밝고 환하다. 꿈이 있기에 가질 수 있는 미소다. 월세가 15만 원이라는 포항 꿈틀로의 허름한 ‘뮤직 테라피(Music Therapy·음악을 통한 치유)’ 작업실. 하지만 거기선 15억 원, 아니 150억 원의 원대한 꿈이 움트고 있다.김명진(29)과 윤관(28)은 그럴듯한 학력도, 사회적·문화적 배경도 갖추지 못한 젊은 뮤지션이다. 그럼에도 자긍심과 자존심은 어지간한 유명 음악인도 흉내 내기 어려울
서른셋.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은 나이도 아니다.청년의 도전의식을 가진 33세 여성이 자신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영업해온 낡은 숙박시설을 깔끔하게 리모델링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신세대 숙박업소를 만들었다.포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죽도시장 안에 자리했던 대구여인숙을 ‘오다가다 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시킨 이현진 대표가 바로 그 사람.21세기를 사는 20~30대 한국 청년들 중 해외여행 한 번 해보지 않은 이들을 이제 찾아보기 쉽지 않다.그들이 유럽 여행에서 주로 이용하는 숙박시설이 바로 게스트하우스.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
국토교통부 노동조합 위원장 최병욱(49)씨의 고향 사랑은 유별나다. 그의 ‘카운터 파트너’라 할 전·현직 장관들은 한 명 빠짐없이 포항 호미곶의 일출을 찍은 사진을 취임 선물로 받았다. 최병욱 위원장의 고향은 포항이다.최 위원장은 직장이 있는 세종시에서 계속 살지는 않을 생각이다. 항상 일에 쫓기면서도 거의 매주 빼놓지 않고 포항행 KTX 열차에 오른다. 부모님과 자식 셋이 생활하는 고향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고, 머리 아픈 문제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고 한다.만 19세에 군대에 갔고, 만 21세에 공무원이 됐다. 그로부터 28
사실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세상은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다.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이 더 크고 넓다.인간이 살아가는 공간 곳곳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경우가 흔하다. 오죽하면 바로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의 눈을 ‘심미안(審美眼)’이라고 하겠는가.여기 시각장애인들의 심미안을 열어 눈뜬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보다 더 환한 세계와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안무가가 있다. ‘룩스-빛 무용단’ 김자형 단장이다. 발레 전공 무용학원 강사로 일 해오다결혼 후 늦깎이 대학원 공부에 매진10년전
세련된 옷차림에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얼굴. 어떤 질문에 답하건 거침이 없고, 도시적 감수성이 곳곳에서 감지되는 사람.그럼에도 “나는 농민의 딸이에요. 실제로 여든이 넘으신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포항시 남구 연일읍에서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어요. 농어민들이 잘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겠죠”라고 말한다.요리연구가이자 ‘한국 전통음식 홍보 대사’라고 부르면 될 듯한 신나희 씨 이야기다.누구나 그렇듯 생에는 여러 사연이 있기 마련. 신나희씨 또한 몇몇 일을 하던 시기를 거쳐 2021년 현재는 삶을 3번째 방향전환해 전통요리를 만들고
‘한문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하면 길게 기른 수염에 하얀색 모시 한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노인이 떠오른다. 더불어 ‘서당’과 ‘훈장’이란 단어가 눈앞으로 스쳐 지나간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어쩔 수 없는 선입견이다.그런데 ‘조금’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르다. 고려대 한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재욱(49) 강사는 글에서 보이는 감각과 말에서 느껴지는 센스가 재기발랄한 20대 청년 같다. 에너지가 넘치고 자유분방하며, 심지어 모던하다. 그에겐 대중의 선입견을 전복시키는 힘이 있다.바로 그 자유로운 에너지와 모던한 힘으로 김재
포항 장기면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낸 소년에게 골프는 낯설고 생소한 스포츠였을 게 분명하다. 부모는 농사와 해녀 일로 자식들을 키웠다.넉넉하지 못한 형편 탓에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소년은 공장에서 작업 중 사고로 손가락을 크게 다쳤다. 한창 피가 뜨겁던 20대 초반. 당연지사 절망과 고민의 시간이 길었다.그러나 소년은 목전에 닥친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았고, 노력을 불쏘시개 삼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발견해 주목받는 삶을 살고 있다. 프로골퍼 최호성(47) 씨 이야기다.최 선수는 지난 5월 포항시 홍보
10대 때부터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소년이 있었다. 집을 만든다는 게 어떤 의미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하는 것인지 몰랐지만, 그 아이는 무작정 ‘집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꿈을 버리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며 키워간다면 꿈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귀 위에 연필을 꽂고 건물을 바삐 오르내리는 이들을 지켜보던 소년은 자라서 건축가가 됐다. 참샘건설 최광식(47) 대표 이야기다. 중학생 때부터 관심 가진 건축의 세계토목 전공하며 밑바닥부터 실력 다져스물셋에 부모님집 짓게된 귀한 경험30년 가까운 건
소설을 쓴다는 건 허구의 문장을 수단으로 세계와 인간의 진실을 탐구하는 행위다.소설가가 꼭 똑똑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건 소설가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 아닐까. 고민 없이 해결되는 문제는 없고, 진실은 고민의 시간을 통해 찾아지는 것이므로.소설가가 인간의 소프트웨어라 할 정신 영역을 심화·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의사는 하드웨어라 부를 수 있는 육체의 안정적 보존과 효과적인 치유를 담당하고 있다. 둘 다 쉽지 않은 일이다. 법 공부하다 27세에 의대생으로 진
최근 높은 인기를 얻으며 방영된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을 안타까운 눈길로 지켜본 사람이 있다. ‘노래하는 경찰’로 이름이 알려진 권영삼(52) 경위다.‘46세 이하’라는 자격 요건에 걸려 도전을 포기해야 했던 권씨는 다른 가수가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 속에서 열창하는 모습이 한없이 부러웠을 터.1992년 경찰이 됐고, 1997년 가수로 데뷔한 권영삼 씨는 세상 무엇보다 노래와 무대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가졌던 아쉬움과 부러움이 충분히 이해된다. 고교 졸업 전 라이브 무대에 섰지만잠시 가수 꿈 접고 19
51년 인생에서 40년 넘는 시간을 한 가지에 몰두하며 한 우물을 파왔다면 그 신념의 단단함이 어느 정도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푸른 바다와 짙푸른 녹음, 붉은 일출과 어두운 달그림자가 공존하는 울릉도에서 태어난 소년은 철이 들기 전부터 그림이 좋았다. 물감과 붓만 있다면 어디서건 그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미술은 소년의 ‘운명’ 혹은 ‘삶 자체’가 됐다.흘러온 반세기 동안 울릉도, 포항, 대구, 다시 포항으로 사는 곳은 바뀌었지만 그림을 향한 그의 열정은 시종일관 변함이 없었다. 화가 박승태 씨 이야기다. 그림솜씨
과장과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는 담백한 사람. 이번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포항남·울릉 지역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석패한 허대만(52) 씨에게서 받은 첫 느낌이다. 구구하게 패배를 변명하지 않고, 경쟁했던 당선자를 향해 “앞으로 의정활동을 잘 해서 표를 준 분들에게 보답하시라”는 덕담을 전하는 사람. “변화를 향한 희망은 현재진행형 입니다” 고향서 선출직공무원 되고팠던 명문대생 시민운동가로, 시의원으로 지역 이끌어 지역 정치구도 바꾸고픈 열망 이루려 국회의원·지자체장 선거 7번 도전장 거듭되는 낙선에도 지역 미래 포기 않아“집
해사한 얼굴, 선량한 눈매, 소년의 웃음을 지닌 중앙대 이승하 교수. 얼핏 봐선 예순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그늘이나 곡절 하나 없이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다.상처 받기 쉬운 예민한 영혼을 가진 이승하의 소년기는 ‘거의’ 지옥에 가까웠다. 1970년대 군사독재 시절 학교들은 군대 이상으로 폭력적이었고, 서울법대를 나와 판검사가 아닌 문인이 되겠다고 선언한 형님으로 인해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학교와 가정 어디서도 편히 숨쉬기가 힘들었다. 이처럼 어두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고교생 이승하는 신경 쇠약을 앓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