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가토 다이조는 의존심리가 강한 사회는 공포와 적대감으로 가득찬 세상을 만든다고 했다. 의존심리는 자주, 자존, 자립심의 결여로 인한 나약함과 그에 따른 불안, 공포,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힘 있는 것에 의존하려고 하는 마음에서 발생한다. 이런 의존심리가 보편화 되면 힘 있는 것에 의존하고 기생하는 ‘의존병의 사회’가 되어 병든 세상이 되어 버린다. 이반 일리치는 스스로 고칠 수 있는 병도 병원에만 의존하는 지나친 의존심을 ‘의원병(醫原病)’이라고 했고 이 병이 보편화가 되는 ‘의원병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몸에 대한 자
맥시코 체첸이사의 쿠쿨칸 신전근처에 후에고데펠로타(골반축구장)가 있다. 경기장 넓이는 오늘의 축구 경기장과 비슷하지만 한쪽에 10미터 높이의 벽면이 있고 그 벽면 꼭대기에 농구골대와 같은 것이 세로로 세워져 있다. 골반으로 공을 차서 그 골에 넣는 경기가 고대 마야의 골반축구이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 경기의 승자는 그 심장을 신전제단에 제물로 바쳤다고 했다. 결국 골반축구의 즐거움은 제물을 뽑는 ‘여흥’에 불과하다. 이 경기의 승자는 제물이 되어 신전의 제단에서 죽어야 하는데 과연 누가 골대에 볼을 넣으려 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전자제품 수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정직하게 일하는데 좀처럼 돈이 벌리지 않았다. 친구가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손님이 수리를 맡기면 고치지 않아도 될 것까지 수리하여 비용을 배로 챙기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했더니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과잉수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고객들이 발길을 돌려버렸다. 그는 크게 뉘우치고 다시 양심적으로 가게 운영을 하였다. 세월이 흘러 신뢰가 쌓이게 되고 돌아섰던 고객들이 다시 돌아와서 크게 성공하게 되었다. 성공의 비결을 묻자 ‘정직과 신뢰’라고 했다.
배의 침몰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해안 지역에 보잘 것 없는 인명구조소가 있었다. 몇 밖에 없는 구조원들은 밤낮으로 쉴 새 없이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구조활동을 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건졌다. 세월이 흐르고 이들이 구조사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후원회를 조직하고 후원을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후원자들을 관리하고 친목하는 일이 구조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급기야 구조소는 후원회원들의 친목회관으로 전락하게 되고 구조소는 그 본래적 목적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뜻있는 사람이 다시 구조소 본래적 사명으로 돌아가 구
한 번도 교육을 받지 않은 아프리카에 원주민들 아이들에게 1+1=2가 된다는 덧셈을 가르쳤는데 한사코 원주민 아이들은 1+1=1이라고 고집하였다. 진흙 두 덩어리를 합치면 한 덩어리가 되니 하나에 하나를 더하더라도 하나라는 것이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설명한 말이다. 머리가 둘인데 몸이 하나인 사람을 썀 쌍둥이라 한다. 이란에 썀 쌍둥이인 ‘비자니’ 자매는 두 머리가 자꾸 싸워서 한 몸살기를 거부하고 각자의 삶을 살고 싶어 분리수술을 하였는데 결국은 둘 다 죽었다. 반면에 태국의 썀 쌍둥이인 ‘창’과 ‘엥
얼마 전 조용기 목사가 작고하였다. 그는 단일 교회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가 모이는 교회로 성장시켜 기네스북에 올랐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모든 일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요한의 기도문을 교리화 하여 영혼관리만 잘 하면 모든 일이 잘되고 육신도 건강해 진다는 삼박자 축복교리를 주창했다. 이는 매우 간단명료한 신앙방식으로 순식간에 교회를 급성장 시켰다.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매듭이 생기면 당사자를 만나 술 한잔 하면서 매듭을 풀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당사자를 만나 풀려고 하지 않고 기도로 하나님을
제천에 가면 청풍호 주변에 금월봉이라는 곳이 있다. 아세아 시멘트 영월공장에서 시멘트 제조에 필요한 흙을 공급하기 위한 땅이었는데 흙은 없고 온통 바위 뿐이어서 헐값에 팔아버렸다. 이 땅을 산 사람이 평토 작업을 하려고 흙을 파내다 보니 그 바위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물을 뿌려가며 흙만 걷어 내었더니 기암괴석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모양이 마치 금강산에 달이 뜬 봉우리 같아서 이름을 ‘금월봉’이라 지었다. 이를 제천시가 수십억원에 사들여 관광지로 조성하여 지금의 국민 관광지가 되었다. 땅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을 알아보지 못
1890년대 유럽이 남태평양 도서(島嶼)를 식민지로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원주민들에 하물숭배(荷物崇拜)라는 종교가 생겼다. 생전 처음 보는 화물선에서 필요한 모든 물건을 내려 쓰는 것을 보고 화물선을 모든 것을 내려 주는 신으로 생각하여 하물숭배의 제의를 드렸다. 1999년 이를 취재하러 간 토론토스타의 기자가 “어찌하여 어리석게도 하물숭배를 하느냐?”고 묻자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우리는 불과 60년을 숭배하고 있지만 그러는 당신들은 어찌하여 2천년 동안이나 하물숭배를 하느냐?”고 되물었다.베드로는 밤새 그물질을 했지만 한 마리의
벌써부터 모든 뉴스의 관심이 대선에 있는 듯하다. 각 당의 대선 후보가 된 사람이 어떤 구호를 들고 나올지 궁금하다. 잊혀지지 않는 대선구호의 고전이 있다면 3대 대통령선거 때인 민주당 신익희 후보의 ‘못 살겠다 갈아보자’이다. 이에 맞서 당시 여당인 자유당은 ‘갈아봤자 소용없다, 구관이 명관이다’로 대응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국민은 정권을 바꾸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약간의 바뀐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갈아봐도 별 소용없었다’는 느낌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청산을 외치지만 그 적폐청산이 정치 보복이라는 의구심을 받기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강제 동원되어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일을 하였다. 특히 군인들이 전장으로 이동할 때에 자신의 배낭을 짊어지게 하여 운반하게 했는데 법령으로는 1마일 즉 오리까지만 허용했다. 간간히 이 법을 어긴 병사들이 있었는데 감봉과 명예전역, 매질로 다스렸다는 요세푸스의 기록이 있다. 강제하는 법은 오리까지만 허용하였다. 피 지배계급이 되어 버린 이스라엘 사람들이 억울하게 강제노역을 하게 되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만일 점령군의 한 사람이 그의 배낭을 지고 오리를 가자고 강요하거든 십
예수 시대에 어떤 사람이 속옷을 담보로 하여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여 속옷을 빼앗기게 되었다. 유대인은 두 가지 옷을 입고 다녔는데 속옷은 알몸을 가리기 위한 옷이고 겉옷은 덮고 자는 이불과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옷이 흔하지만 당시에 옷도 담보물이 되거나 전당물이 되는 품목 중에 하나였다. 이에 대한 율법의 규정은 극빈자의 옷이 전당물이면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그 옷을 돌려주라고 되어 있다. 알몸을 가리고 덮고 자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불의한 자들은 옷을 돌려주지 않았고 오히려 벌금으로 농산물 중에 포도주를 받아갔
요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진동벨을 주는데 그 벨이 울리면 가서 커피 잔을 받아 오고 나갈 때도 커피 잔을 직접 반납해야 한다.이런 일은 과거에 종업원들이 했던 일인데 고객이 직접하게 되었으니 고객이 왕이라는 시대는 지나가고 소비자가 종업원이 되었다가 고객이 되었다 하는 종객(從客)의 시대가 되어 버린듯하다.노동을 하고도 그 대가를 받지 못하는 일을 이반 일리치는 그림자노동(Shadow work)이라 했다. 내 나름대로 그림자노동을 두 가지로 분류해 본다면 첫째는 상업적 그림자노동(Commercal Shadow Work)이다.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잘 알려진 예수의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비실제적이고, 피학적이고 자멸적이다. 이것을 비폭력무저항주의라고 하기도 하고, 무한히 양보하는 사랑이라고도 한다. 이 가르침의 해석을 위한 배경을 미쉬나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가르침은 불의한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관계를 상정한다.미쉬나에는 동급신분에서 손바닥으로 상대방의 뺨을 때리면 200일에 해당하는 품삯을, 손등으로 때리면 400일에 해당되는 품삯을 벌금으로 물어야 한다고 했다. 손등으로 치는 행위는 모멸감과 수치를 주기 위한
감자를 설탕에 찍어 먹느냐 소금에 찍어 먹느냐는 사소한 문제로 다투다가 급기야 감정이 격화되어 큰 싸움이 되고 결국 이혼하게 된 부부가 있다. 커피에 설탕을 탈까 소금을 탈까 그 문제로 싸우다가 이혼한 부부도 있다고 한다. 심리학자 리처드 칼슨은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의 대부분은 이처럼 사소한 문제라고 하면서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지 말라”고 했다. 따져보면 목숨을 걸만한 중대한 일은 없으니 목숨 걸고 싸우지 말고 초연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목숨 걸고 싸우는 일이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날에 잡을 고기를 잡아 놓고 여유롭게 누워 쉬고 있는 어부를 보고 한 부자가 말하길 “더 많은 고기를 잡으면 더 큰 배를 살 수 있고 그러면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큰 부자가 되면 뭐하느냐?”고 어부가 물으니 자기처럼 평안히 삶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어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당신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나는 지금 평안히 삶을 즐기고 있는 중이요”했다. 소확행을 생각나게 하는 앤소니 드 멜로의 글이다.얼마 전부터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작은 것에서 확실한 행복을 얻는다는 뜻이다. 사
남유럽 어느 조그만 마을에 해가 지고 어두움이 짙어 오면 하얀 집들에 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다만 마을을 굽어보며 언덕 위에 세워진 교회당만은 어둠을 지키듯 깜깜한 채 우뚝 서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교회를 ‘많은 등불의 집’이라고 불렀는데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400년 전 이 교회를 지은 공작에게는 10명의 예쁜 딸이 있었다. 공작은 어린 딸들이 정원에서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딸들이 성장한 다음에는 바느질하는 모습, 궁전을 장식하려고 꽃다발을 만드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살았다.
인류의 위대한 발견 중에 하나가 항생제의 시초가 된 페니실린이다. 페니실린의 발견으로 인류의 평균수명이 늘고 폐렴과 같은 세균성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어 수많은 사람을 죽음에서 구했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고 이에 대한 감사를 처칠과 그의 부모에게 돌렸다. 처칠이 어렸을 때에 물에 빠져 죽을 뻔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 플레밍이 물에 뛰어 들어 처칠을 구했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처칠의 부모는 플레밍이 의학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결국 페니실린을 만들게 되었다. 처칠과 플레밍이 서로에게 끼친 영향력이
필리핀의 유명한 부자 사업가의 아들 카풍카우라는 청년이 신학교에 들어갔다.학교에 가 보니 화장실과 욕실이 더럽고 냄새가 나는 등 너무 불결해서 불만을 품고 학장에게 갔다.“학장님,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 좀 치워주십시오. 깨끗하게 해주세요.”“알았네. 내가 다 알아서 조치할 테니 가 있게.”조금 뒤에 이 학생이 그 화장실에 가 보았다.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씻는 소리, 닦는 소리가 들렸다. 청소부를 데려다가 청소하는 줄 알고 들어가 보니 학장님이 직접 청소하고 있었다.“학장님, 청소부 데려다가
1968년 같은 해에 ‘이재용’씨와 ‘김기환’씨가 태어났다. 이재용씨는 일류 가정교사를 통해 학업에 도움을 받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아버지의 회사에 입사하고 삼정전자 부회장이 된다. 같은 해에 태어난 김기환은 학교 다닐 때에 반장도 하고 성적도 우수하여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그럴 즈음인 1993년 대학입시 부정사건이 터진다. 부자들이 고액을 주고 대학입학 대리시험을 치게 하고 학력고사 성적을 조작하는 사건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삶에서 우리에게 일어난 외적 사태가 해결하기 힘든 커다란 고통을 야기할 때 우리는 그 사태를 역경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사태가 왜 우리 자신에게 일어났는지, 그 사태로 인한 고통의 이유와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을 때 역경은 우리의 정신을 약화시키고 삶을 파괴하는 ‘삶의 총체적 위기’로 지각된다.사전에서 역경(逆境)은 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으로 정의 내리고 있다. 사전적 정의를 통해 역경을 살펴보면, 첫째, 역경은 고통과 결부된 사태로, 고통을 촉발한 사건뿐만 아니라 그 사건으로부터 촉발되어 일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