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달력을 넘기다보니 허전하고 쓸쓸하다. 마지막장 달력에 새겨진 ‘12’가 크게 다가온다. ‘어이쿠, 또 한 해가 가는구먼!’ 해마다 연말이면 예외없이 터져나오는 탄성(歎聲)이다. 그렇게 다시 세월이 가고 스스럼없이 나이의 문턱을 넘는다. 구렁이가 담 넘어가는 것을 본 일은 없지만, 시간에 편승해 퍼런 녹이 슬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백두(白頭)의 계급장을 단 것은 꽤나 오래 전 일이다. 차마 부끄러운 일이다. 각설하고, 엊그제 한국인의 ‘행복도’ 조사결과가 언론에 발표됐다. 2018년에 유엔에서 내놓은‘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5.8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32위라 한다. 더욱이 2012~2015년 세계인의 행복도 조사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1
나이 들면서 세상과 작별하는 사람의 면면이 눈에 밟히는 경우가 늘어난다. 젊은 시절에는 죽음이 나와는 무관한, 먼 곳에 있는 매우 추상적인 대상으로만 보였다. 그러다가 문득 가까운 사람의 부음이 홀연히 찾아들면 흠칫 놀라게 된다. 그런 놀라움의 순간이 어느새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나이에 이른 것이다. 세월과 시간은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 점에서 우리는 단 하나의 평등권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베르나르도 베루톨루치가 세상을 버렸다. 1941년에 출생했으니 우리 나이로 78세. 아버지의 친구이자 ‘맘마 로마’를 연출한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조감독으로 영화인생을 시작한 그는 1962년 ‘냉혹한 학살자’로 영화감독이 된다. 베르톨루치가 남긴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중하게 여기는 덕목은 공감이다. 공감은 등장인물들이 처하는 대립과 갈등, 절체절명의 위기와 전락, 위대한 승리와 치명적 패배를 목도하면서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는 행위다. “너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같다!”는 것에서 공감은 시작한다. 그것이 슬픔이든 분노든, 한탄이든 자조(自嘲)든, 증오든 사랑이든 문학의 주인공과 독자가 공유하는 감정과 인식의 교류에서 공감은 생겨나고 확산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강의실에서 공감이 자취를 감췄다. 소설이나 희곡, 시를 읽지 않는 세대가 주축이 되어버린 염량세태의 당연한 풍경이다. 대학입시를 위한 ‘축약본’ 독서를 끝으로 대다수 청춘은 문학과 영원히 작별한다. 줄거리와 주인공, 작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최소한의 독서 아닌 독서가 청춘의 영
얼마 전 텔레비전 인문학 대담 프로그램에서 2018년 이전의 200년 동안 발생한 주요 사건을 ‘08년’ 끝자리로 살펴보니 흥미로운 일이 많았다. 우선 1818년 5월 5일 카를 마르크스가 탄생한다. 1867년 출간된 ‘자본’으로 150년 넘도록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마르크스. 영국의 메리 셸리는 1818년에 장편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출간한다.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부제(副題)를 가진 소설에서 그녀는 인간이 생명의 창조주가 될 수 있는지 묻는다. 100년 전으로 소급하면 1918년에 천만 넘는 전사자를 야기한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48년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원년이다. 1968년은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열도를 휩쓴 ‘68혁명’ 발발연도다. 1988년에 서울올
지난 11월 초하루 중국 강소성 남경대학교에서 낯선 장면이 포착된다. 100여 명의 대학생들 앞에서 연설하던 몇몇 학생이 사복차림의 건장한 사내들에게 속절없이 제압당한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봉변을 당한 학생들은 ‘마르크스주의 열독(閱讀) 연구회’ 소속으로 마르크스의 저작을 읽고 토론해 왔다고 한다. 사회주의 종주국을 자처하면서 강성대국의 길을 걷고 있다는 중국에서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를 선전하고 싶을 뿐이고, 습근평 주석의 부름에 호응했을 뿐이다. 학교는 왜 우리를 이렇게 대하는가!” 이것이 제압당한 학생의 연설일부다. 남경대학 당국은 5년 전 창립돼 철학과 부속 모임으로 활동해온 연구회의 등록갱신을 거부함으로써 연구회를 ‘미등록단체’로 만들어버린다. 그러자 연구회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린다고 우리나라가 북새통을 떠는 시각, 쾰른에서 어학과정을 공부하던 때 겪은 일이다. 조용한 거리에 유모차 부대가 출현한다. 아이들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유치원 교사들이 경찰이 쳐놓은 줄을 따라 거리행진을 하는 것이다. 호기심 많은 내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시위하는 까닭을 듣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유치원 교사봉급이 너무 작아서 봉급인상 시위를 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온 때문이다. 당시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의 지배정당은 진보성향의 사회민주당이었고, 당연히 그들은 유치원을 포함한 교사와 교수의 봉급인상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 재정이 녹록치 않아서 교사들의 요구에 응할 형편이 아니었다. 이에 유치원 교사들은 물론이고 유
생명 가진 것을 죽이는 일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기르던 화초나 수목 하나 죽어도 가슴이 서늘한 법이므로. 하물며 움직이는 생명체의 목숨을 앗아가는 행위는 대단한 결단이나 용기를 필요로 한다. 얼마 전에 어깨 위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있어서 필시 ‘모기려니’ 하고 잡아 죽였다. 아뿔싸?! 그것은 모기가 아니라, 작은 거미였다. 성마른 판단과 행위로 거미의 생목숨을 빼앗았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사람마다 꺼려하는 생명이 있다. 나는 쥐와 뱀이 불편하다. 파리와 모기, 바퀴벌레와 돈벌레(그리마), 지렁이와 노린재도 반갑지 않다. 하지만 지렁이나 그리마 혹은 거미 등속은 웬만해서 죽이는 법이 없다. 축축하고 규모가 큰 지렁이는 삽이나 호미로 녀석의 본향(本鄕)인 흙이나 풀 속으로 던져준다. 모기
2016년 3월에 서울에서 열린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은 흥미로웠다. 인간계 최고수로 선발된 이세돌이 1승 4패로 밀렸다. 1, 2, 3, 5국을 알파고가 가져갔고, 이세돌은 4국을 건지는데 만족해야 했다. 4국 역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이세돌이 던진 끼움수에 알파고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인공지능의 유일한 패착이었다. 2017년 5월에 알파고는 세계최강 커제 9단과 대결해 3전 전승을 거둔다. 열혈청년 커제는 바둑을 두다가 분을 삭이지 못한 나머지 얼굴이 붉게 상기되고 눈시울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알파고는 불과 1년만에 바둑 분야에서 인간을 완전히 따돌리는 절정고수로 등극한다. 알파고는 은퇴하여 신계(神界)로 들어갔다고 한다. 종횡으로 19줄 361개의 교차점에 돌을 놓아야
지난 10월 2일에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총리가 부산대에서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산대가 밝힌 명예박사 수여의 변은 이러하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한국에 대한 인식이 깊고 식민지 역사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이 과거를 미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여 온 정치 지도자다. 향후 동아시아 번영과 한일 양국의 관계발전에 힘이 돼 줄 것으로 기대한다.” 전통적으로 정치적인 가문의 일원인 그는 2009년 8월 30일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진두지휘한다. 자민당이 60년 넘도록 독점해온 권력의 지형도를 일거에 바꾼 인물이 하토야마 유키오다. 한국에서 1998년 정권교체가 일어난 지 11년만에 일본에서도 정권이 바뀐 것이다. 이렇게 보면 ‘다이나믹 코레아!’가 선진적인 면도 있다. 2차대전 이후
얼마 전 서울교육청에서 두발 자유화와 편안한 교복 방안을 발표했다. 머리털 길이는 물론이려니와 파마와 염색도 허용하겠다는 것이 두발 자유화의 골자다. 아울러 학생들의 불평과 원성의 대상인 교복도 자라나는 학생들의 신체에 적절하고 편안하도록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이것을 두고 사람들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에는 수많은 전문가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교육과 의료, 아파트 세 영역에는 헤아릴 수 없는 강호제현들이 가공(可恐)할 신공을 펼치며 군웅할거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강호제현이 관여하려는 분야가 점입가경 확대일로를 걷는다는 점이다. 청년실업, 노인복지, 낙태문제, 남녀혐오, 신도시와 그린벨트 해제, 국민청원을 둘러싼 찬반양론 등등. 이렇게 대단한 나라의 공복(公僕)으로 ‘
메리 셸리(1797∼1851)가 ‘프랑켄슈타인’을 출간한 1818년 러시아에는 잊히지 않을 인물이 태어난다. 산문시와 소설, 희곡 모두에서 천품을 발휘한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가 주인공이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와 더불어 19세기 러시아 황금시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심훈의 ‘상록수’를 읽다 보면 기시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투르게네프의 ‘처녀지’ 때문이다. 일본의 근대를 이식받은 식민지 조선 문인들이 열광했던 작가 가운데 하나가 투르게네프라는 사실은 주지하는 바다. 일본 지식인과 문인들 역시 투르게네프의 문학적 성과에 매료되었다고 전한다. 그런 배경에는 ‘뜬구름’의 작가이자 러시아문학 번역가였던 후타바테이 시메이(1864∼1909) 같은 인물의 열성적인 노력이 자리한다.
다시 팔월 한가위 추석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이나 친지를 찾아 나라 곳곳으로 이동하는 진풍경을 되풀이하는 시절. 들판의 벼가 고개 숙인 채 누렇게 익어가고 있지만 본격적인 수확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난 여름 우심한 폭염의 무더위와 솔릭 태풍과 때 아닌 폭우(暴雨)로 농부들의 심사는 편치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추석명절을 기다려왔다. 그것은 분명 예정된 만남과 그것이 선사하는 즐거움과 흔쾌함 때문일 것이다. 추석을 목전에 둔 시점에 남과 북의 최고 정치 지도자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다시 머리를 맞댔다. 4월 27일, 5월 26일에 이어 9월 18일 세 번째 정상회담을 가진 것이다. 이제는 고인(故人)이 된 김대중-노무현 두 분 집권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한 차례씩 정상회담을 했지만 이
‘걸신(乞神)’은 “몹시 굶주려 음식을 지나치게 탐하는 상태나 그런 사람”을 일컫는다. 단언컨대 2018년 9월 한국사회의 정치-경제-종교-언론 부자들은 걸신들린 자들이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아파트값을 더 올리려 눈 빨간 투기세력은 돈에 걸신들려 있다. 조물주 위에 군림하면서 임대인을 행주처럼 쥐어짜는 건물주들도 걸신들린 자들이다. 분단 70년 남북관계에 새 역사를 쓰려는 정부의 발목을 악랄하게 잡아채는 정치인들은 권력에 걸신들린 자들이다. 북한의 세습은 목청껏 욕하면서 교회권력 세습하는 종교인 무리는 돈과 권력에 걸신들린 노예다. 자영업자들의 경영난이 오로지 최저임금 인상이라 호도하는 언론재벌과 기자들은 매판자본과 지식에 걸신들린 영혼 없는 자들이다. 사법권을 정치권력에 팔아넘긴 법원과 판사
얼마 전에 생선횟집에 들른 적이 있다. 40, 50대 중년배 서넛이 소주잔을 기울이는 저녁나절 번다한 시장통 횟집풍경은 평안하고 따사로웠다. 생선 비린내가 코를 간질이는 횟집에서 이색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서너 살 남짓한 어린애가 휴대전화 동영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일손 부족한 가난한 부부가 횟집을 운영하면서 아이에게 동영상을 틀어준 거였다. 아이는 장난감 만지듯 익숙한 손놀림으로 휴대전화를 놀리고 있다. ‘햐, 이것 참 고약하군!’ 소리 내지는 않았지만 뭔가 아픈 소리가 내장을 거쳐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이다. “재미있니?!” 하고 물어본다. 고개 끄덕이는 아이를 보고 엄마가 조금 안쓰러운 표정이다. 저 나이에 벌써 휴대전화 동영상이라니! 앉거나 누운 채 소리와 영상에 홀린 것처럼 동영상에 몰두
택시를 타다보면 민심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다. 지난 4월과 5월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6월에 북미정상회담까지 성사되었을 때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그러나 시간과 더불어 남북문제가 뒷전으로 밀리고, 한국경제가 세간의 관심사로 대두하자 상황이 급변한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과 야당들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교체하라고 이구동성으로 아우성친다. 나의 택시기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게 능사일까?! 지난 8월 26일 장 실장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필연성과 당위성을 주장했다. 한국경제는 소비가 성장을 견인하지 못하는 구조인데, 그 까닭은 경제성장이 소득증대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의 과실(果實)을 국민 개개인이 아니라, 재벌이 대표하는 기업
1921년 11월 ‘개벽’ 월간지에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가 실린다. 소설의 주인공인 젊은 부부는 결혼한 지 7∼8년이 되건만, 실제로 같이 지낸 세월은 1년 남짓. 아내는 동경 유학생 남편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했으나, 돌아온 그는 날마다 술타령이다. 어느 날 새벽 두 시, 고주망태가 된 남편에게 아내가 묻는다. “누가 이렇게 술을 권했는가요?” 남편 가로대 “이 사회란 것이 술을 권했다오!” 아내는 ‘사회’라는 어휘를 알지 못한다. 아내와 말이 통하지 않는 남편은 무너지는 억장을 두드리며 다시 나가버리고 아내는 서글픈 마음에 혼잣말한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근대화를 이룬 일제(日帝)를 배우러 유학 떠난 남편과 구시대 습속과 문화에 익숙한 아내의 소통불능에 기초한 ‘
기원전 6세기 중엽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가 동으로는 인더스, 서로는 이집트에 이르는 제국을 건설한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싫든좋든 제국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프로-유라시아를 거점으로 살아온 구대륙 거주자들에게 세계제국은 오랜 세월 숙명처럼 작용했다. 세계사에서 최대제국을 형성한 대원제국(1271∼1368)을 끝으로 거대 육상제국은 종언을 고한다.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 내지 ‘대항해시대’를 기점으로 유럽의 팽창이 가속화하면서 근대가 얼굴을 내민다. 수천 년 지속된 동양과 서양의 팽팽한 이항대립은 19세기 이후 유럽의 우위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그럼에도 제국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1850년부터 1914년까지 대영제국은 세계 최강이었다. 1851년 제1차 만국박람회
‘역마살(驛馬煞)’이란 말이 있다. 사전에서는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언제나 이리저리 떠돌아야 하는 액운”이라 풀이한다. 필시 나한테 적용되는 것이리라. 60평생 살면서 서른 번 넘게 이사했으니 말이다. 이사도 이사려니와 이곳저곳 다니기를 좋아하는 성정(性情)이고 보니 부초(浮草)처럼 떠돈 곳도 적지 않다. 그래선지 나는 역마살을 액운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고전시대 혹은 농경시대 정착민의 사고일 것이다. 그럼에도 같은 곳에서 오래 살아가는 사람이 부러울 때가 있다. 이른바 ‘토박이’라 불리는 사람에게서 묻어나는 느긋함과 여유로움이 좋아 보이는 것이다. 오랜 세월 한 곳에서 산다는 것은 인근 주민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살아감을 뜻한다. 동네 이력이나 생활상의 변천을 낱낱이 꿸 수 있다는 장점
2018년 7월 하순, 한반도에서 두 사람이 세상과 작별한다. 최인훈과 노회찬이 그들이다. 최인훈은 1936년생, 노회찬은 1956년생으로 두 사람은 스무 살 터울이다. 소설가는 인간의 영혼과 시공간, 영원성과 불멸을 다룬다. 정치가는 인간의 물질과 현세성과 필멸을 본업으로 삼는다. 우주의 미소(微小)한 존재로 스스로를 자각하는 인간을 천착하는 소설가와 지금과 여기의 포로로 회자정리(會者定離)의 필연을 천형(天刑)처럼 안고 가야하는 정치가. 한증막을 연상시키는 폭염의 거리와 광장에서 시민들은 두 사람을 전송한다. 하나의 시대를 열었던 소설가와 다른 시대를 열고자 몸부림쳤던 정치가를 추모하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가 함께 하는 열린 공간과 이데올로기와 사회·정치·경제적인 평등을 추구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무더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1994년의 찜통더위와 열대야가 악몽처럼 재연(再演)된다. 하지만 역동적인 대한민국에는 어제처럼 숱한 사건 사고가 넘쳐난다. 지난 20일 고용노동부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8천350원으로 고시했다. 2016년에 6천30원이었던 최저임금은 2017년에 6천470원, 올해 2018년에 7천530원으로 올랐고, 2019년에는 8천350원으로 상승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23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중소기업중앙회는 ‘2019년 적용 최저임금안에 대한 이의제기서’를 고용부에 제출했다. 최저임금 인상액이 과다하고, 인상폭은 너무 크며, 인상속도 또한 지나치게 빠르다는 이유에서다. 여기 머물지 않고 소상공인업계는 24일 ‘소상공인 생존권 운동연대’를 출범하고 연대투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