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행복은 동의어다. 며칠 전, 남편 차를 타려고 조수석 문을 여니 장미꽃다발이 떡하니 앉아 있다. 향긋한 행복의 냄새가 차 안 가득하다. 먹지도 못 하는 데 왜 좋아하느냐고 투덜거리지만 기념일마다 꽃을 챙기는 걸 잊지 않는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기쁨을 준다. 차를 타고 국도를 달린다. 차창으로 내다뵈는 푸른 능선이 곱다. 잎이 나기 전까지 산에 서 있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어설픈 내 눈은 분간을 못 한다. 볼 줄 모르는 수묵화처럼 검은 것은 그냥 나무로 보일 뿐이다. 잎이 무성해진 여름에도 구분 못 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멀리서도 나무 이름이 단번에 튀어 나오는 시기가 있다. 꽃이 필 때이다. 조물주가 계절이란 마이크로 신호를 주면 산은 일제히 멋진 카드섹션을 벌인다. 멀리서도 달콤한 향기가
마리안나의 소박한 꿈이 댕강 잘려나가 버렸다. 오늘 동행하지 않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함께 왔더라면 그녀는 얼마나 서운했을까. 내년 봄 우리 텃밭에서 이루려던 꿈이, 누군가에게 참수 당해버렸으니 말이다. 등산가는 길가, 아파트 단지가 생기며 새로 쌓은 높은 담장 아래 틈. 그 틈바구니에 어떤 연으로 보리 한그루가 살고 있었다. 관심 없이 지나다녀 보리가 패기 전에는 그 곳에 보리가 자라는지 몰랐다. 사월 중순 오랜만의 부부 주말등산길…. 튼튼한 보릿대 하나가 갓 빚어내어 탐스레 팬 초록보리이삭을 처음 만났다. 그 앙증스런 모습에, 아내 마리안나는 곧바로 새 보리이삭 꿈을 꾸었다. “보리이삭 익으면, 가져 가 내년에 우리 텃밭에 심어야지!” 그녀의 꿈이, 갓 세상에 태어난 보리이삭의
정자나무 그늘에 앉아 유월의 산과 들을 바라봅니다. 모내기를 끝낸 들판은 착근을 한 벼들이 초록을 더해가고 녹음 우거진 숲에서는 뻐꾸기소리 들립니다. 올해는 봄비가 잦아서 초목이 더 무성하고 녹음이 짙습니다. 인공구조물을 제외하고는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초록입니다. 바야흐로 초록제복의 군대가 이 땅을 점령했습니다. 여름 한 철 의무복무를 하는 뭍 생명의 수호자들이지요. 녹색식물의 엽록소가 물과 공기와 햇빛을 합성해서 탄수화물을 만들어낸다는 걸 생물시간에 배웠지만, 정작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대단한 일인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교육이 대부분 그러하듯 생물선생님은 그 광합성이 모든 생명의 원천이며 지구생태계를 유지하는 동력이라는 걸 강조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엽록소의 광합성이라는
오래전 일이다. 결혼하기 전이니 이십 년도 훨씬 전의 케케묵은 일이다. 남편(아직은 남자친구였던)이 친구를 소개시켜 준다고 해서 퇴근 후에 만나러 갔다. 대학 동기라며 경주가 집인데 포항 근처대학에서 강의를 한다고 했다. 조용한 말투의 남편과 달리 키가 크고 걸걸한 목소리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다. 헤어스타일은 주변머리만 있는 편이라 친구라기보다는 한참 선배 같았다. 하지만 두런두런 농담도 잘 건네고 식성도 좋은 것이 사람 참 좋아 보였다. 저녁은 무얼 먹었는지 정확한 기억이 없지만 남편이 계산했다. 그러자 커피는 자기가 사겠다며 일어섰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포항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로마’라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남편은 녹차를 시켰고 그 친구는 커피를 시킨 것 같다. 그때 난 카페인
첫 손자 태극이가 큰 메시지를 선물했다. 우리 가족의 품으로 온지 아홉 달을 막 지날 때였다. 돌아보면 두 달이 되기 전에도 주었는데, 내 미련이 늦게 알아챈 것이다. 메시지선물이 바로 태극이인 듯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녀석은 그동안 우리 가족을 즐겁게도 하고, 놀라게도 하며, 애간장을 태우게도 하였다. 난지 두 달을 며칠 앞둔 날. 할머니가 “맘마 먹었어?”하고 어르는 말에, “응!”하며 대답하기에, “맘마 먹었어요?”라고 또 물으니, “응!” 하고 다시 대답하였다. 세 번째도 같은 대답을 해 식구들을 감탄케 했었다. 석 달이 될 무렵 녀석 엄마가 찍어 보낸 동영상. 엄마는 어르고, 녀석은 힘찬 고성반응으로 서로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생각보다 여러 번 소리 질렀다. 끝부분에는 성질부리는 얼
“풀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새파란 하늘 가 흰 구름 보면/ 가슴이 저절로 부풀어 올라/ 즐거워 즐거워 노래 불러요.” 오월이면 절로 흥얼거려지는 노래입니다. 앞의 두 소절을 부르면 나는 단박에 오십년 세월을 거슬러 어린 시절로 달려가곤 하지요.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면 식구들은 모두 들일 나가고 외양간 누렁이만 목을 빼고 나를 기다렸지요. 보리밥 한 덩이 우물물에 말아 먹고는 누렁이를 몰고 나가는 게 내 몫의 일과였어요. 풀이 많은 산자락에 누렁이를 놓아주고 나는 망태기 가득 꼴을 베지요. 여남은 살 소년이면 벌써 낫질이 익숙해져서 망태기 하나쯤 금방 채울 수 있었지요. 꼴을 다 베고 나면 ‘풀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새파란 하늘 가 흰 구름’을 바라보기도 하지요. 누렁이는 어쩌느냐
혼자 하는 것보다 친구와 같이 하면 더 좋은 것들이 있다. 깻잎무침 접시에서 젓가락으로 한 장 떼어낼 때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눌러주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보고 나서 꽁냥꽁냥한 연애에 대해 폭풍 수다 떨기, 두껍고 버거운 책 못다 읽고서 ‘너도 그랬어?’ 하며 공감해주기, 택배 박스에 섞여온 뽁뽁이 터트리며 남편 흉보기, 그 중에 최고는 여행을 함께 하는 것이다. 햇살이 좋은 날, 약속 없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파도소리 들으러 가자고 말을 건네니 두 말없이 따라나섰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고 운전대 잡은 사람 마음대로 하라며 웃었다. 장기 읍내를 지나 바닷길로 접어들다가 양포항을 만났다. 함께 간 친구들이 이 어여쁘고 조그만 항을 못 보았다기에 미리 둘러본 내가 소개해주고 싶었다.
사월 하순 중간 날. 일터의 대체휴일이라 오랜만에 가까운 야산등산에 나선다. 휴일이면 거의 오르던 이 등산길을 올 봄엔, 다른 일들로 오래 오지 못했었다. 사월의 꽃들이 삼월에 피고, 오월의 꽃들도 사월에 피는 기후변화시대를 또 절감한다. 하늘을 이고 갓 피어난 아카시아꽃이 뿜어내는 향기가 저절로 마음메모리칩을 검색한다. 기억모니터에 ‘아카시아궁궐!’이 클로즈업된다. 젊은 날의 자작 합성어다. 돌아오는 길…. 마지막 쉬는 곳의 벤치에 무심코 앉으려는데, 벤치 옆에 까만 비닐봉지가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산에 오신 여러분, 쓰레기를 소중한 자연에 버리지 말고, 이 봉지에 담아 주십시오!’라고 부탁하는 어느 고마운 마음이 서린 봉지다. 비닐봉지를 어떻게 벤치에 걸었는지 살펴본다. 벤치 지지대 사
‘학원에 가기 싫은 날은 가장 고통스럽게 엄마를 씹어 먹고 삶아 먹고 구워 먹고 눈깔을 파먹고 이빨을 다 뽑아 버리고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고 마지막으로 심장까지 먹고 싶다’는 내용의 열 살짜리 여자아이의 글이 항간에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 그 아이 부모의 말로는 특별히 문제가 있는 아이는 아니라고 하니, 대다수 요즘 아이들 정서와 사고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물론 아이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아이를 그 지경으로 만든 어른들의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고, 그런 글을 동시(童詩)라고 입에 피 칠을 한 채 심장을 먹고 있는 그림과 함께 책으로 만들어낸 어른들의 일그러진 심성에도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더욱 기막힌 것은, 그 아이의 엄마라는 사람이 “처음에는 저도
어린 시절, 학교로 가는 길은 두 갈래였다. 과수원 사이를 지나는 새길과 논을 옆에 두고 가는 헌길이다. 통학버스가 다니기 위해 새로 만들어 놓은 길은 차 전용이었고, 자전거가 마주와도 한 쪽은 내려서 길가로 비껴서야하는 헌길은 걷는 사람 전용이었다. 두 길 모두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30분이면 학교에 도착했다. 내가 주로 다닌 곳은 헌길이었다. 헌길엔 도랑이 바짝 따라 붙으며 길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물빛에 내 그림자를 비춰가며 개멀구를 따먹고, 산 밑까지 내려오다 냇물을 건너지 못한 칡덩굴이 향긋한 냄새를 풍겨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지금도 오래된 길을 좋아한다. 포항에서 출발해 영천에 가는 길은 고속도로와 국도도 있지만 오늘 가 볼 길은 이 두 길이 태어나기 전 이용했던 헌길이다. 사람들의
세레나! 좋아하는 봄꽃들이 사월초순에 다 졌습니다. 개나리꽃, 진달래꽃, 벚꽃, 살구꽃, 목련꽃이 그들입니다. 사월에 필 꽃들이 삼월에 피었으니 일찍 진 것은 당연한데, 마음이 개운치 않으니 웬일일까요? 그나마 겹벚꽃과 라일락꽃이 피어 아직은 꽃피는 봄이라 일러줍니다. 그 곳은 어떤가요? 아마도 비슷할테죠. 오늘아침 출근길에 불현듯 ‘내가 뭐하고 사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척에 라일락꽃을 두고도 자주 가지 않는 방향이라고 내음 한번 제대로 느껴보지 않고, 또 이 봄을 소진하는 한심한 존재’란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보고 느낄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으니 봄꽃들에게 문을 닫고 산 게지요.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야 한다고 언젠가부터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겨우내 움츠렸던 아이들이 봄 햇살 아래 나와서 이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할 때쯤이면 노래에 맞추기라도 하려는 듯 제비가 돌아왔다. 해마다 그렇게 삼짇날을 전후해서 제비들이 돌아오는 것은 계절이 바뀌는 것만큼이나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먼 남쪽나라로 날아갔던 제비들은 생사를 건 긴 여정 끝에 고향집에 돌아온 감회가 벅찬지 마당의 빨랫줄에 앉아 한동안 숨가쁘게 지저귀곤 했다. 제비는 철새임에도 유달리 귀소성이 강하다고 한다. 지난해 머물렀던 곳이나 태어난 집을 다시 찾아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암 수 한 쌍이 2회에 걸쳐 서너 마리씩 번식을 하니 가을이 되어 남쪽으로 떠날
林(숲)이란 글자 속에는 나무 두 그루가 손을 잡고 서있다. 어깨도 서로 맞대고 있어서 바람이 불면 한 방향으로 몸을 뉘었다 일어서길 반복한다. 흔들릴 줄도 모르는 빌딩숲에서 넘어지기만 하던 나는 푸른 기운을 받으러 林으로 간다. `어슬렁`이라는 제목에 꽂혀 얼른 신청했다. 지난해부터 기다린 이 모임은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포항시 가까이 위치한 산이나 숲을 천천히 걷는다고 했다. 무릎이 시원찮아 가파른 산은 겁부터 나는데, 한 달에 한 번 숲을 거닐며 나무 이름, 꽃 이름을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숲에 사는 동물과 곤충들이 숲과 도우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니 어슬렁어슬렁 따라 다니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마음에 쏙 들었다. 오늘 갈 곳은 봉좌산(鳳座山)이었다. 포항시 기계면과
아침저녁 한 생명의 곁을 지나다닌다. 내겐 봄의 전령사다. 3월 초부터 아가 손 초록 잎을 내밀어 오가는 이들에게 손짓한다. 나는 반가우면서도 찜찜하다. 의문들이 머리를 헤집고 나오기 때문이다. `넓은 들판, 아름다운 시냇가, 따사한 산자락 다 버리고 아가 손은 하필 이 틈바구니에 삶터를 잡았단 말인가. 더구나 도시의 길가 딱딱한 콘크리트 틈에 말이다. 무엇이, 어찌하여 이 여린 생명을 비좁고 오염된 틈에 태어나 살게 했을까.` 마음이 상상의 나라로 날아간다. 바람, 그랬다. 봄바람이었다. 어느 봄날, 강 건너 남녘에서 봄바람이 산들산들 푸른 언덕 넘어오다가 한껏 부푼 하얀 갓털송이를 만난 것이다. “갓털아, 너는 왜 솜사탕으로 부풀었니? 너 멀리 떠나고 싶은 게로구나. 날 기다렸지? 내가 널
“동무들아 오너라 봄 마중 가자 / 나물 캐러 바구니 옆에 끼고서 / 달래 냉이 씀바귀 모두 캐보자 / 종다리도 봄이라 노래하잔다” 봄이면 절로 흥얼거려지는 이 동요의 가사가 맞는지 인터넷에 찾아보니 봄 마중이 아니라 봄맞이란다. 하지만 마중이란 말이 더 좋아서 그냥 입에 익은 대로 부르기로 한다. 이 노래처럼 봄을 삶 속으로 맞아들이던 시절이 있었다. 앉아서 기다리거나 다니며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가운 가족이나 손님처럼 나가서 마중하던 시절이었다. 가난으로 헐벗었던 시절에는 겨울이 참 춥고 길었다. 그래서 따뜻한 봄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다 마침내 얼었던 땅이 풀리고 새싹이 움트는 삼월이 오면 너도나도 달려 나가서 봄을 맞았다. 달래와 냉이를 캐고 쑥을 뜯어서 새 봄의 기운을 식탁에
겨울 축제가 끝나간다. 우리 어머니들은 대명절인 설날에 칠 일을, 정월대보름에는 오 일을, 마지막 축제인 이월엔 하루를 놀았다. 봄을 알리는 음력 2월 1일 또한 명절이라 이름 붙여 놓고 잔치를 벌였던 것이다. 오늘이 지나면 일뜸질이 시작되니 마지막으로 노는 날이었다. 일꾼들을 위로하는 날이라는 뜻으로 머슴날, 농사가 시작되는 때라 중화절이라고도 불렀다. 온갖 떡을 해서 나이만큼 먹는다 해서 나이떡 먹는 날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월에는 윷놀이로 하루해가 저물었다. 마당 가운데 새끼줄을 쳐놓고 네가락의 윷을 던지고 모야 윷이야를 외치고, 말판도 없이 `건궁말`을 쓰다보면 금방 허기가 졌다. 짬짬이 참을 먹어야 했기에 집집마다 한두 가지씩 해 온 음식으로 한상을 차렸다. 쑥떡 옆에는 배추뿌리 삶
도대체 저런 힘이 어디서 나올까. 영하 10도를 오가는 날씨가 며칠씩, 몇 차례가 지나갔는데 속잎이 살아있다니. 더구나 딱딱한 콘크리트바닥과 벽의 틈바구니에서…. 겨우내 저 잎들과 뿌리는 얼마나 떨었을까. 차라리 얼어 죽기라도 했으면 살을 에는 추위의 고통은 당하지 않았을텐데, 생명의 어떤 힘이 저 잎을 저리도 처절하게 살아내게 한다는 말인가. 어제 저녁, 인터넷을 보다가 믿기지 않는 기사를 만났다. 과학자들이 올겨울 북극의 기온이상 현상에 경악했다는 것이다. 저 겨울민들레는 그 기사가 말하는 기후변화에 온 몸으로 선제대응하며 사는 걸까. 민들레가 살고 있는 온대지방 이곳은 겨울기온이 영하 10도를 넘나든다. 한데, 정작 가장 추워야 할 북극은 영상을 오르내리는 이상기후를 알아채고 민들레는 발열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자주 거론되는 명망 있는 원로시인이 하루아침에 괴물로 전락했다. 오래 전 술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 시인이 `괴물`이란 제목의 시를 써서 그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소위 `Me too`운동으로 피해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관행처럼 자행되어온 각계의 성폭력 실상이 하나씩 까발려지고 있다. 연극계의 대부로 군림하던 연출가, 유명 배우, 법조계 판사, 천주교 신부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잇달아 치부를 드러낸 채 백일하에 끌려나오는 형국이다. 피해자들이 겪었을 치욕과 고통이 우선이지만, 가해자들 역시 그동안 쌓아올린 지위와 명성과 업적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쓰레기로 매도되는 현실에 여간 참담한 심정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비행이 지탄받아야 하는 것처럼 업적과 공로를
스무 살 시절은 르네상스다. 그래서였나, 그 시절 두꺼비약국 지하에 있던 르네상스 커피숍이 우리의 아지트였다. 커피를 주문하면 머그컵이 아닌 받침까지 얌전하게 딸린 잔에 담겨 나왔다. 탁자 중앙에 설탕과 프림이 미리 놓여있어 티스푼으로 내 간은 내가 맞췄다. 커피를 처음 만난 날은 초등학교 2학년 설쯤이었다. 외지로 돈 벌러 나갔던 고모가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귀향했다. 보따리 중에 유리병 세 개가 든 선물 상자가 제일 눈에 띄었다. 그게 무엇일까 궁금해죽겠는데 보여주지도 않고 만지지도 못하게 한 엄마는, 마루에 놓인 장식장에 보기 좋게 진열해 버리는 것이었다. 호기심 많던 언니와 나는 그 밤을 그대로 넘길 수 없었다. 식구들의 숨소리가 잦아들 무렵 살금살금 마루로 나왔다. 뻘쭘하게 서서 잠
`상대로 젊음의 거리`를 아침저녁 불편하게 오간다. 젊음의 거리 재조성공사가 한창 진행되기 때문이다. 공사는 지난 가을부턴가 본격화 된 것으로 기억된다. 지난해 초여름, 포항시당국에서 `정체성이 없는 음주 유흥거리로 형성된 이 거리를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문화거리로 만들기로` 하였다는 보도를 보았었다. 이를 위해 `가로환경개선사업과 유해환경개선사업, 지중화사업`을 추진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 무렵, 새로 조성될 `젊음의 거리`에 대한 필자의 희망을 본 칼럼에 쓴 바도 있다. 기술자와 작업자, 중장비들이 동원되어 연일 공사가 진행되었다. 새해가 되자, 바뀌어가는 거리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차도와 인도, 인도와 가로수의 경계석이 교체되고, 보도블록도 새로 깔렸다. 가로수 밑동에 보호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