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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만나러 우포에 갔습니다 수천 페이지 모래바람 속을 뒤졌습니다 아버지의 발자국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사시사철 늪 속에 잠겨 있는 우포를 찾았을 때 아버지의 발자국을 집어삼킨 사구 하나 고향 뒷산에 솟아 있었습니다 낙타처럼 등에 혹을 달고 말없이 누워 있었습니다 밤마다 혹에서 나와 마을로 내려온답니다 타박타박 낙타처럼 내려온답니다 바람뿐인 아버지 바람을 주머니처럼 차고 어머니 머리 풀고 있는 늪으로 내려온답니다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는 바람주머니를 버리러 몰래 내려온답니다 바람 도서관에서 가시연꽃 하나 찾았습니다 어둠 속에 피어 있는 가시연꽃 밤이슬 맞으며 머리를 풀고 있었습니다 원시의 생명체들이 살아숨쉬는 우포늪에서 시인은 그 생명의 꼭지들에 이는 바람과 그들의 언어를 느끼고 있다. 어둠 속에 피어
시
등록일 2013.10.20
게재일 201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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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에 나부끼는 활엽수들 산발한 채 달려드는 빗줄기 불빛의 혀로 감싸 안는 기둥들 불어난 물살에 떠밀려가는 냇가의 돌들 갑작스런 방문에 부산스러운 것들 깜깜한 황홀의 소용돌이 가라앉은 뒤 낱알 뱉어낸 푹 꺼진 자루로 남아 오래 허전하고 아픈 영혼들 태풍의 거센 바람과 세찬 빗줄기를 견디는 나무들과 거친 물줄기에 단단히 자기를 옮아매고 견디는 냇가의 돌들을 본다. 태풍 지난 뒤의 여러 생채기를 보면 그래도 꿈쩍하지 않고 그 어려운 상황을 견디고 버틴 강단진 그들의 생명력을 본다. 깜깜한 황홀이 지난 뒤의 자연처럼 의연하게 우리에게 닥쳐오는 인생의 강력한 태풍을 맞을 수는 없는 걸까.
시
등록일 2013.10.17
게재일 201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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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야, 꽃은 보여주는 것만 아니다, 라며 무화과 꽃, 저 혼자 꽃받침 속에서 필 때 쯤 독장골 나락 논에 엎드려 두벌, 세벌 김매다 휘어진 등짝으로 팔 남매 꽃피워낸 당신 - 무화과는 속에서부터 익는 열매란다. 당신의 아이, 그 아이의 아이 그 아이의 육 개월 된 딸 민채를 품에 안고 줄장미 담장 곁, 당신이 깔아놓은 30년생 짙은 그늘 아래서 이 땅의 아버지들은 어쩌면 꽃 피우지 않아도 달콤하고 새콤한 맛이 입안에서 구르는 열매를 내놓는 무화과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평생을 꽃피워보지 못하고 자식을 위해 희생과 정성과 사랑을 다 바친 그들이다. 등짝이 휘고 몸이 쪼그라든 어르신네들을 보면, 그 깊은 눈빛을 마주치다보면 가만히 거수경례를 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시
등록일 2013.10.16
게재일 201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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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을 한 울음이 봉분을 뒤덮었다 무덤가 멀리까지 범람한 울음 속에서 절벽을 지고 살던 옹이 박힌 한숨소리를 듣는다 다닥다닥 매달린 입술 부르튼 울음들이 찢어진 앞산 하늘을 조금씩 밀어낸다 묶음으로 기워 입은 울음들 당신과의 거리가 멀어질까 두려운지 땅을 딛고 선 푸른 정강이엔 힘줄이 팽팽하다 굴참나무 위에서 가끔씩 훌쩍대는 뻐꾸기 그때마다 울음이 우우우 날리는 발밑엔 찢긴 하늘이 수북하게 쌓인다 갈말산허리엔 군데군데 오래된 잠들의 납작한 등이 보인다 하필이면 무덤 가에, 혹은 무덤에 이르는 길가에 다북다북 피어난 꽃, 가만히 들여다보면 꼭 삶은 계란을 반으로 쪼개놓은 것 같다해서 계란꽃이라고도 부르는 우리에게 퍽이나 친근한 꽃이 개망초꽃이다. 먼저 떠난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과 눈물이 방울
시
등록일 2013.10.15
게재일 201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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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너마저 떠나버린 끝 그리움 빛발치듯 노을이 탄다 내 생명처럼 은폐하던 사랑. 끝내 안타까이 돌아 서는 그대 등살처럼 노을이 탄다 붉게 번지는 노을, `노을이 탄다`라고 표현하는 시인의 가슴 속에서는 사랑의 아픔과 결별의 애절함이 타오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생명처럼 아끼고 위해주며 은폐하던 사랑을 내려놓고 끝내 돌아선 안타까운 사랑을 붉게 타오르는 노을 속에서 다시 볼 수 있는 애가가 아닐 수 없다.
시
등록일 2013.10.13
게재일 201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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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天葬)이 끝나고 일제히 날아오르는 독수리 떼 허공에 무덤들이 떠간다 쓰러진 육신의 집을 버리고 휘발하는 영혼아 또 어디로 깃들일 것인가 삶은 마약과 같아서 끊을 길이 없구나 하늘의 구멍인 별들이 하나 둘 문을 닫을 때 새들은 또 둥근 무덤을 닮은 알을 낳으리 인류의 역사는 삶과 죽음의 연속선에서 이루어진다. 영혼이 휘발하여 깃들일 곳이 없어도 인간의 삶은 끊을 길이 없이 이어진다. 주검을 포획하는 독수리는 또 죽음을 전제로 새로운 생을 낳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힘들다고 벗어 던져버릴 수도 없는 것이며 피할 수도 없는, 짊어지고 가야할 운명이고 업보인 것이다. 그래서 인생에게는 무상감과 허무감이 끝없이 밀려오고 밀려가고 또 오는 것이리라.
시
등록일 2013.10.10
게재일 201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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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이 나란히 길을 걸었다 노을을 향하거나 아니면 땡볕 아래 가까워질 수 없는 간격을 두고 손을 잡았다 세상 사람들은 갑이 아니면 을이다 배부른 너는 갑이 되고 배곯은 나는 을이 되어 지극히 개인적 혹은 현실적인 입술로 탁자를 가운데 두고 서로를 속셈하는 눈빛을 가늠해 보았다 네 입가에 맺힌 미소는 엉킨 곁눈질에 들키지 않았다 색이 상반되는 두 얼굴로 불평등 생존협약을 체결하지만 흐르는 물결, 출렁거리는 파도 속에는 언제나 반은 갑이고 나머지는 을이어서 경계는 등거리에서 충돌했다 틈이 많은 갑과 을 사이 발자국이 아프다 최근 우리 사회에 이슈로 떠오른 말이 있다면 `갑과 을`이라는 말일 것이다. 사회학적인 의미가 깊이 깔린 이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과연 그 양분에 따른 경계는 이렇듯 냉혹하게 존재하는
시
등록일 2013.10.09
게재일 2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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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그 어느 것인들 두꺼운 자궁 속에 담겨 있던 씨알맹이 아니었으랴 그 아름답고 슬픈 벗어나기 뱀이 허물을 벗듯이 자유는 스스로와 우주를 파괴하는 자이면서도 지금보다 더 드높이 날 수 있는 날개 아닌가 세상 모든 근원이 자유에서가 아니라 구속에 있다라는 시인의 인식이 흥미롭다. 시인은 인간의 태어남 자체가 자유에서 구속이 아니라 그 역(逆)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이란 그 근원적 묶임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아닐까. 지금보다 드높이 낡아오르기 위해서는 벗어나기와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파괴라는 폭력적 과정을 그쳐야한다는 점에서 이 시의 제목이 `모순` 인 것이다.
시
등록일 2013.10.07
게재일 201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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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그늘이 야윈 게 내 눈 흐린 탓인 줄 여겼더니 사실은 물소리가 저렇게 깊은 까닭이고, 물소리가 야윈 게 내 귀 성근 탓인 줄 믿었더니 과연 산그늘이 저렇게 깊은 까닭이네 날빛 다문다문 저물어서 산그늘이 물소리 되고 물소리가 산그늘 되니, 하염없어라 흰머리의 삭신일란 기껏 두어 모숨 남은 채, 데리고 갈 병(病)도 없이 후미진 조개무지처럼 으슥하네 백담사 계곡, 설악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시인은 물소리와 그늘에 대해 깊이 바라보고 새기고 있다. 어느 것 때문이라 규정하기 힘든, 규정하는 것조차 부질없는 것이라는 깨달음 속에는 인생을 깊이 관조하는 그윽한 눈이 있다. 자연스런 우주의 계율에 견주어 하염없이 흰머리만 늘어나고 늙어가는 삭신을 들어 생의 허망함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시이다.
시
등록일 2013.10.06
게재일 201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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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든 길이다 알아차렸을 때도 직진이다 이정표와 상관없이 직진이다 뒤돌아설 수 없다 그러므로 직진 직진이다 절벽의 길, 풍덩 허공을 밟아 두 눈 질끈 감고 악세레이터 밟아버린 호박 줄기 자살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다 저도 식겁은 먹은 것이다 가물어 마른 하천 바닥 아, 애호박 하나 한숨처럼 흘러나와 있다 도로 위로 방향을 튼 환삼덩굴도 분명 초보 초보운전자는 후진에서 진땀이 난다 마른 하천 바닥에 나뒹구는 애호박 하나, 도로 위로 기어가는 환삼덩굴, 길을 잘못 든 경우다. 어설픈 초보운전 탓이다. 비록 그 잘못 든 길이라 할지라도 시인은 직진하라고, 되돌아서지 말아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재밌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노련과 성숙에 이르는 길은 때로는 이러한 시련을 정면으로 돌파하면서 터득되는 것이다. 두려움
시
등록일 2013.10.03
게재일 201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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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탈 배밭에 배꽃 한창이다 어쩌다 저녁때를 놓친 공복의 노을이 가장 먼저 젖어드는 저 배밭 그세 입술 빨갛다 슬쩍, 배꽃 입술 훔치고 저도 새빨개져 산등성이 넘어가는 도둑구름 나는 또 막차를 놓친 망연자실, 할 말 잃은 여행객이다 산비탈 배밭, 하얗게 배꽃이 피어 아름다운 풍경을 들추고 저녁노을이 들고 있다. 하얀 배꽃에 번지는 붉은 저녁노을을 입술이 빨갛다라고 표현하는 시안이 맑고 깨끗하다. 슬쩍 배꽃을 붉게 물들이고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도둑구름이 입술도둑인 것이다. 그 아름다운 평화경에 빠져 막차를 놓쳐버린 시인도 또 하나의 입술도둑이 아닐까.
시
등록일 2013.10.01
게재일 201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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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이처럼 흘렀으니 그대를 잊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채석강 가에 나와 돌 하나 던집니다 강은 온몸으로 경련을 일으킵니다 상처가 너무 깊은 까닭입니다 상처가 너무 큰 까닭입니다 돌 하나가 떠서 물 위에 꽃 한 송이 그립니다 인제는 향기도 빛깔도 냄새도 없는 그것을 물꽃이라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채석강 가에 나와 돌 하나 던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맺는 수많은 인연들과의 관계에서 기쁨과 행복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아픔과 상처를 남기고 멀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인간은 미망과 번뇌에 묶여 정말 많은 죄업을 쌓으며 한 생을 건너고 있다. 시인이 말하는 `물꽃`은 상처가 피워내는 꽃이다. 그러나 그 상처는 이제는 아물대로 아물어 흉터로 남
시
등록일 2013.09.30
게재일 201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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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슬픔이여 별들의 침묵이여 별들은 눈물을 감추고 별들은 슬픔을 말하지 않네 땅에도 땅에도 슬픔이 있어 옥창(獄窓)에 어리는 무기수의 눈물이여 밤하늘에 수 놓여진 은하수를 별들의 슬픔으로 혹은 별들의 침묵으로 인식한 시인의 시선이 참 따스하다. 별들에게도 슬픔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별들은 그 슬픔을 말하지 않고 침묵할 뿐이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도 수많은 슬픔과 침묵이 존재한다. 우리의 현실이 그 연속이라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시인은 눈물의 정결함과 투명함을 통해 생명의지와 흐트러지지 않는 인간성을 옹호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
등록일 2013.09.29
게재일 201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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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절모를 쓰고 바다를 넘어온 달이 솔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 간월도 저편 달은 벌써 아편 먹은 몽유병자 밀물과 썰물을 헛디디며 나도 조금만 지체하면 섬이 되었겠다 개심사쯤 가서 마음 비울까 했는데 자꾸만 뻘밭으로 몸이 돌아간다 물은 빠지고 서천을 덮던 달그림자가 도요새를 물고 갔다 캄캄한 뻘밭에 바람은 눕고 굴 여무는 소리, 진주알 몸 굴리는 소리 귀가 가렵다 간월도 저편 뻘밭에 차올랐던 물은 빠지고 서천을 덮던 달그림자가 도요새를 물고 간 간월도 바다의 고요한 평화경으로 우리를 끌어가는 시인은 거기에서 우리의 마음의 귀를 열라고 충동질하고 있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캄캄한 뻘밭에 바람이 눕고 굴 여무는 소리, 진주알 몸 굴리는 소리를 들어보라 한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달이 굴러가는 소리와 간월도 저
시
등록일 2013.09.26
게재일 201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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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금 소낙비 쏟아진 뒤 십이선녀탕 계곡에 들었다 바위를 휘도는 물살은 한 장삼자락 뿌리며 너울너울, 쨍한 햇살 한 순배 돌자 나무들은 젖은 몸 말리느라 가지를 홰친홰친, 잎새 끝에 매달린 물방울은 똘랑똘랑, 환삼 덤불에 숨어들었던 산새들은 포록 포로록, 졸음에 겨운 물푸레나무 가는 코 골며 쐐르릉 쐐릉, 어느 새 그늘 한 치 늘인 까치박달나무 기재개켜며 아우훔, 썩은 굴참나무 둥치께를 넘는 칡넝쿨은 옴죽옴죽, 이낀 낀 바위 틈새로 두꺼비는 앙금앙금, 비에 씻긴 부들 위 다시 알 스는 실잠자리 꽁지는 조촘조촘, 숲 속 소리바다에서 무료로 다운받은 물소리 바람소리 왼갖 벌레소리에 멀미난 물봉선화, 마타리는 손사래 살래살래, 한결 짙어진 바람결에 부전나비, 외눈이사촌나비는 진진초록 여름을 펼쳤다 접으며 흠흠,
시
등록일 2013.09.25
게재일 201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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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꼬리를 잡아당겨 귀에 걸치면내 몸은 한순간 날아가는 새가 된다입술이 펼치는 날개 속에 내 정신은 기울기를 높인다 입술을 떼어 귀에 걸치고 세상을 본다는 건파 -- 하고 한세상 무심히 치고 들어가는 일대책 없이 내 속을 들추고 그 안에 쉬어가는 일 머리가 보고 싶어 하는 걸눈이 거부한다면눈이 본 것을 머리가 받아들지 않는다면입술을 어찌 얇은 귀에다 올려놓을 수 있을까 두 입 끝이 올라가서 눈가의 꼬리를 만난다면둥글게 둥글게 굴러가는 얼굴이 되겠다속절없이 네 마음속 온전히 들어앉는 마음 되겠다귀에다 입을 걸친 김에 한 말씀하겠는데내 흰 이빨 콱 박힌 세상 한 번 달다 입꼬리를 올려 귀에 걸친다거나, 두 입 끝이 올라가서 눈가의 꼬리를 만난다는 것은 웃는 모양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 웃고 싶어도 웃지 못하거
시
등록일 2013.09.24
게재일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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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볼 땐담배 물고 어깨 웅크리고 앉은 아버지더니어둠이 몰려드는 사랑방의 아버지더니강 머리 베고 잠들어보면쪽상에 우거짓국 하나 차려도분주하기는 똑같은한겨울에도 진땀 흘리시는 어머니더라물고기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물새들에게지나는 객에게 숟가락 쥐어주던 어머니더라잠든 한밤에도 쉬지 않고빗장 지른 문을 열고 길 떠나는 기차나겨울나무 틈새를 비기고 들어서는 바람까지등 두들기며 배웅해주는 어머니더라강물에 빠진 하늘을 끌고천형의 푸른 동아줄을 끌고 가는 오리처럼자식들 다 떠난 뒤에도 집을 지켜내시는내 아버지 어머니더라 천형(天刑)의 푸른 동아줄을 끌고 가는 오리 같은 분들이 이 땅의 아버지 어머니들이다. 자식들 다 떠난 뒤에도 집을 지켜내시는 분들이다. 강은 아버지처럼 역사와 상처를 가슴에 담고 흐르기도 하지만
시
등록일 2013.09.23
게재일 201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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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 나를 가두었던 것들을 저 안쪽에 두고 내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겠다 지금도 먼 데서 오는 바람에 내 몸은 뒤집히고, 밤은 무섭고, 달빛은 면도(面刀)처럼 나를 긁는다 나는 안다 나를 여기로 이끈 생각은 먼 곳을 보게 하고 어떤 생각은 몸을 굳게 하거나 뒷걸음치게 한다 아, 겹겹의 내 흔적을 깔고 떨고 있는 여기까지는 수없이 왔었다 담쟁이는 관념적인 존재가 아니다. 아무리 가파른 직벽이라도 손을 뻗어가는, 끝없이 실천하는 존재의 상징이다. 우리는 시간과 중력에 지배받는 육신을 간직하고 있는 육체적 존재임과 동시에 이성을 가진 정신적 존재다. 시인은 사람도 관념적인 사랑을 경계하며서 실천이 따르지 않는 그 어떤 사랑도 공허한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시
등록일 2013.09.22
게재일 20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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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다 잎을 본다 잎을 보다 입술을 깨물다 꽃 눈썹 바로 아래 잎을 갉아 먹는 침 입자 벌레를 잡아주다 누렇게 마르는 잎을 보다 마른 잎을 따주려 줄기를 만지다 줄기는 가지를 흔들며 흐릿한 그림자들 밀고 당기고 마른 땅이 몸을 비틀다 세상이 어지럽다 땅을 거꾸로 받쳐 들고 헤엄치는 뿌 리들 까맣게 그을린 발밑의 씨앗들은 온몸을 뒹굴어도 내일을 마중 가는 낯선 길이 그립다 삶은 계속 갈 길을 확인하는 일이기에 시간 맞춰 태엽을 감는 소리 마른 잎을 끌고 가다 우주의 만물은 끝없이 변한다. 새순이 돋았던 나무 가지엔 어느듯 그 순이 싱그러운 나뭇잎으로 자라고 가을이면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것이 생명의 자연스런 순환이다. 우리네 삶도 늘 힘들고 어렵지만은 않을 것
시
등록일 2013.09.16
게재일 201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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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내 얼굴을 내던졌다 쨍그랑 소리가 들렸다 조각나 뒹구는 이마와 한쪽 눈 또 한 눈과 코 입술과 턱 이 악문 미소가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뇌수가 바닥에 흥건하다 잠시 후 덩굴손처럼 바닥을 기며 부서진 조각들을 모으는 바쁜 몸뚱이 완벽하게 복원된 내가 문 앞에 서 있다 현대인들은 이 시에서처럼 하루에도 수 없이 자기의 얼굴을 깨뜨리는지 모른다. 자신의 참모습을 가린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우리는 여러 모습으로 변신한다. 그리곤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환원 복원되는 것이다. 진정한 실존적 가치를 지켜가지 못하는 우리의 처신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다.
시
등록일 2013.09.15
게재일 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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