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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가 삼만 평 비산비야를 적시는 곳 밥 먹다말고 혼자 짧게 훌쩍였다는 노파가 고사리 돋는 소리 엿들으며 살았다던 한 칸 움막 그 움막 폭삭 삭아 흔적 없는 자리 조막조막조막조막 짧은 문장의 황홀한 구걸의 손들 극약처럼 아찔한 문장이다 너는 너무 오래 혼자 우는 젖은 문법이었구나 다시, 유목의 긴 시절이 올 것 같다 햇 봄, 돋아나는 고사리의 모습을 조막조막한 짧은 문장의 황홀한 구걸의 손들이라 표현한 시인의 시선이 재밌고 따사롭다. 봄비 속에 새 생명의 순을 내 놓는 고사리. 가만히 혼자 우는 문법이라고 말하는 시안이 깊다. 맞다 이제는 긴 유목의 시간을 걸어가야할 것이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헤쳐나가야할 것이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시
등록일 2014.01.09
게재일 201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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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새순 말려 띄운 작설(雀舌)을, 늦가을 해어름에 비로소 뜯네 기다려도 올 이 없는 산 중 삶인데 고이고이 간직해온 심사는 뭘까 뒤뜰엔 산수유 열매가 붉어 메꿩 몇 마리 부리 쪼는데 찌르레기 샘물 찍어 하늘 바래듯 늦가을 홀로 앉아 차를 마시네 기다려도 올이 없는 외진 산방(山房)에 가을 산과 대좌하여 드는 작설은 지난 봄 이슬에 젖은 찻잎이 오늘은 서릿발에 향기도 차네 새봄의 작설 한 줌을 늦가을 산방에서 우려마시며 시인은 외로움과 기다림에 눈을 감는다.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아득한 그리움 끝을 물고 새들은 날아갈 것이고 쓸쓸히 가을꽃들도 떨어질 것이다. 서릿발 차가운 시간을 건너가는 머언 기다림은 무엇을,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아침이다.
시
등록일 2014.01.08
게재일 201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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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려야 할 슬픔이 너무 많아 기어이 꽃은 제 몸을 찢고야 말았다 다가오지 마 다가오지 마 입술을 앙다물고 참아보아도 혈관을 타고 흐르던 아픔은 줄기에 잎에 가시로 돋아났다 보금자리도 없이 새끼를 낳은 설운 짐승의 눈빛으로 홀로 형극(荊棘)의 길을 가는 온몸 가시를 세운 멍든 얼굴 오늘은 오늘이 길을 가는 거라고 염천의 하늘 아래 조심조심 눈꺼풀을 연다 호수면을 가득 덮은 물풀들 사이에 철갑을 두른 듯 튼실한 줄기에서 피어나는 꽃. 닥지닥지 가시를 붙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꽃 한 송이를 피워올리는 아름다운 연꽃에 시인의 마음이 가닿아 있다. 수많은 시련과 아픔을 감내하고 피워올린 꽃이기에 더욱 아름답고 값진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좋은 환경과 여건 속에서의 성
시
등록일 2014.01.07
게재일 201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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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물만 뽑아내던 물푸레회사 자판기가 창고로 밀려나고 수선집 담벼락엔 석양을 걸친 플라타너스가 박음질 되었다 노루박 박음질이 막 끝난 배내옷 밑그림은 어렵게 따온 햇살과 강아지풀이란다 치맛단을 꿰러온 필화댁 우스갯소리에 몇 년 전 묵은 이불에서 뜬금없이 박태기잎이 돋아나고 사과밭에 새참 배달 가는 여자, 손에 든 둥근 세상이 마냥 흔들린다 베갯잇에 단풍 물든 산은 낮게, 산 그림자는 주름노루발로 바꾸어 프릴 만드는 걸 잊지 않는다 산을 베개 삼아 누운 가을 문장 툭, 툭 실밥 터지듯 붉게 타들어간다 몹시도 뜨겁고 힘들었던 시간을 물고 거칠게 몰아치는 태풍의 생채기가 걸쳐져 있는 가을은 곱다. 시련과 역경의 시간이 길고 깊을수록 그것을 감내하고 극복하고 오는 결실을 참으로 소담스럽고 아름다운 것이다. 시
시
등록일 2014.01.06
게재일 201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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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창 다 빼고 빈 몸 허공에 내걸렸다 원망 따위는 없다 지독한 목마름은 먼 나라 얘기 먼지 뒤집어써도 그만 바람에 흔들려도 알 바 아니다 바짝 마르면 마를수록 맑은 울음 울 뿐 산사의 추녀 끝 풍경소리가 날리어가는 쪽에 목어가 헤엄치고 있다. 속창을 다 빼고 빈 몸으로 허공을 향해 저어가고 있다. 지독한 목마름도 원망도 없이 어디론가 목어는 헤엄쳐가고 있다. 인생이란 어쩌면 절집의 한켠에서 어딘가로 헤엄쳐가는 목어와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를 비우고 또 비우고 차오르는 욕망과 집착을 벗어버리고 무욕의 정신 하나로 헤엄쳐가는 것이 우리의 한 생이 아닐까.
시
등록일 2014.01.05
게재일 201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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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고막 사이로 어둠이 가득 고였다 모로 눕자 예민해진 소리들이 누렇게 흘러나와 들리지 않는 소리로 바뀌었다 난 다만 작고 희미해지는 것이 안타까웠을 뿐 씨이잉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깜깜해진 소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을 뿐 어둠을 연습하는 어떤 몸짓과는 달랐다 들어야하는 것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없는 마음을 생각했다 내가 듣고 싶은 건 세상에 없는, 세상에 늘 있는 엄마 얼마나 파고들어야 들릴까 저 따뜻한 소란을 흘려주는 회리 소리 의사는 빛으로 소리를 쏘았다 돌돌 말려 들어갈수록 빛이 닿지 못하는 고막의 소실점 너머, 맨 처음소리 하나 가질 수 있다면 나는 이 귀머거리의 나날이 좀 마음에 든다 귀의 통증을 통해 어쩌면 심각한 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시인은 거기에 머무르고 주저하고
시
등록일 2014.01.02
게재일 201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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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와 악수하고 있으면 이 사람 목젖이나 가슴 어디쯤 잘 간직해두었던 따순 눈물들 손금 따라 흘러나와 나까지 적시고 문득 눈길 들어 올려다보면 얼굴 가득 순한 웃음에 나는 고만 부끄러워지는데 내 손에 붙잡힌 여린 뼈마디들이 가만가만 속삭인다 괜찮아요 저도 부끄러운 게 많아요 그이와 악수하고 나면 가만히 막걸리가 묵고 잡다 가만히 건내는 악수. 손바닥을 감싸 쥐는 그 짧은 순간이지만 시인은 손바닥 가득 타고 흘러오는 상대의 안온한 인간미와 풋풋하고 알싸한 사랑을 느낌을 고백하고 있다. 악수를 하면서 상대방의 얼굴이나 눈빛을 바라보지 않아도 맞잡은 손의 온기를 통해 진지하고 진실된 사람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비단 시인에게만 있는 통찰력은 아닐 것이다.
시
등록일 2014.01.01
게재일 201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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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너에게 전화를 했다 잘 지내니? 잘 있어요. 잘 계시지요? 응. 나도 잘 있어 …. 잘 지내지 못한다는 걸 서로 알고 있다 말의 통로인 전선이 비에 젖고 있었다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거나 물을 때가 있다. 이 시처럼 잘 지내지도 못하고 뭔가 일이 꼬이고 어려움에 봉착해 있음에도 있는 대로 말하지 못하는 심정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안녕하지 못하고 힘든 일에 빠져있거나 어려움에 들어있는 것을 알면서도 확인하려들지도 않고 그냥 괜찮으냐고, 괜찮다고 묻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말의 통로인 전선이 비에 젖듯이 안부를 묻고 답하는 서로의 마음도 젖어들 것이 분명하다.
시
등록일 2013.12.30
게재일 201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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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나의 정체성에 대한 답은 어렵고 특별한 것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우리가 발 디디고 살아가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이 시의 요체다. 나의 하루 하루에 그 답이 있다는 것이다. 남대문 시장 같은 삶의 현장에서 나는 누구냐에 대한 답을 찾을 수있다는 것이다. 고생스럽고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시
등록일 2013.12.29
게재일 201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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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얐습니??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머 일즉 왔나 두려합니다 철모르는 아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 하얐더??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설에 대히고 `너는 언제 피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시인은 무언가 간절히 기다리는 자신의 마음을 좀 더 애절하게 전달하기 위해 `님을 기다리는 여인`의 가면을 썼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예쁘게 꾸미고 기다리던 경대 위에 야속하게도 꽃잎만 떨어지고 있어 애닯은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만해 한용운의 우주와 자연, 사람에 대한 사랑
시
등록일 2013.12.26
게재일 201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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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조선소나무 슬그머니 손을 뻗어 하늘의 흰 구름을 끌어당기고 있다 흰 구름도 내심 싫지만은 않았던지 응댕이를 돌려대 주면서 마주 이끌리고 있다 그렇다! 나도 이젠 흰 구름이나 공손히 받들고 서 있는 한 그루 조선소나무였으면 싶다 조선소나무에 걸리는 흰 구름. 그들의 어우러짐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정겹고 평화로운가. 조선소나무처럼 공손히 구름을 받들고 살겠다라고 말하는 시인은 여생을 그리 무위자연으로 살다가고 싶어서 인지 모른다. 얼마나 가파르고 살벌하고 절뚝거리는 불구의 삶이 팽팽히 흐르는 우리네 삶을 향해 던지는 잠언이 아닐까.
시
등록일 2013.12.25
게재일 201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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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제일 춥다는 소한(小寒)날 남수원 인적 끊긴 밭 구렁쯤 마음을 끌고 내려가 항복받든가 아니면 내가 드디어 만신창이로 뻗든가 몸 밖으로 어느 틈에 번개처럼 줄행랑치는 저 눈치꾸러기 그림자 마음을 다스린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시인은 소한날 차가운 겨울 밭 구렁에서 분분하고 시끌벅적한 마음을 꺼내 항복을 받든가 아님 굴복을 하든가 결단을 내고 싶다는 말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바르게 다잡으려고 애쓰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쉽지 않음도 시의 뒷 부분에서 볼 수 있다.
시
등록일 2013.12.23
게재일 201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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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속에는 바람이 벼린 칼날이 숨겨져 있나부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저 늙은 소나무가 하얀 피눈물을 다리께 젖도록 울겠는가 민족현실과 민중적 생명력을 노래해온 시인이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깊은 침묵에 들고 있다. `세월 속에는 바람이 벼린 칼날`이 숨겨져 있고, 하여 하얀 피눈물을 다리께 젖도록 울었던 존재는 늙은 소나무이기도 하고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 가만히 눈 감고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보고 싶은 아침, 아슴아슴 가슴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시
등록일 2013.12.22
게재일 201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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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한설에 풍경소리마저 얼어붙은 겨울 산사에서 온 밤을 통째로 우는 건 문풍지뿐이다 문의 틈새를 살고 있으나 사실은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솜이불이 깔린 따뜻한 아랫목에 몸을 누이고 바람 타는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멈추고 울음을 그쳐도 문풍지는 문풍지 안으로 들어 갈 수가 없다 차라리 바람에 온몸을 치떠는 것이 몸부림치며 우는 것이, 살아있는 이승의 시간인 것을 안이어서도 안 되고 밖이어서도 안 되는 안과 밖의 경계를 살아야 하는 문풍지 안도 밖도 아닌 경계에 서 있는 것들의 슬픔, 그 아픔의 존재론적 성찰이 깊은 작품이다. 시인도 그런 운명적 존재가 아닐까. 늘 경계의 그늘을 들여다보고 엿보아서는 안되는 세상의 비밀을 이미 알아버린, 결코 축복이 아닌, 경계에 선
시
등록일 2013.12.19
게재일 201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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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던져 개를 쫓으려 한 적이 있다 신발을 던져 닭을 쫓으려 한 적 있다 신발을 던져 자식을 쫓으려 한 사람을 알고 있다 골목 밖으로, 있는 힘껏 신발을 집어던지던 사람을 알고 있다 자식을 향해 던지려던 외짝 신발을 거머쥐고 되돌아서던 그 사람을 알고 있다 한없이 안으로 오므려지던 신발도 없이, 대책도 없이 맨발로 쫓겨나던 그 자식의 맨발바닥을 알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고 시려옴을 느낀다. 왜일까? 시인이 말한 신발을 던지는 일들을 많이도 보았고 우리도 그랬던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신발 던져 개나 닭을 쫓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을 향해 그것도 자식을 향해 신발을 던져 쫒아내는 어버이의 그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피눈물을 머금고 던지려다
시
등록일 2013.12.18
게재일 201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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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넉넉히 머물다 가도록 채곡히 오지랖을 여민다 서걱이며 청춘을 울었던 시간들 바람결에 흘려보내고 청명한 가을볕에 돋아 오르는 새하얀 몸 꽃들 새벽바람에 하얗게 풍장(風葬)해 버린다 함부로 꺾이지도 무너지지도 않고 뜨겁게 어깨 걸고 거친 눈바람 속을 걸어 삼동을 건넌다 푸르게 어우러져 풍성한 생명의 시간을 보낸 갈대숲에 깃드는 가을볕을 보면서 시인은 거친 눈바람 몰아치는 엄동의 시간을 서서 견딜 힘겨운 시간들을 떠올리고 있다. 자연에서 인생의 한 면을 떠올리고 있는 깊이가 느껴지는 시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지 않는가. 충일한 생명감으로 건너온 청춘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인생의 후반부를 무욕의 정신으로 자기에게 남아있는 소유에 대한 헛된 욕망들을 다
시
등록일 2013.12.17
게재일 201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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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북산 몰랑에 뻐꾸기 울면 산비둘기 구구대는 장사슴목골 달랑 한마지기 옹사리밭에 아부지는 들컹들컹 쟁기질하고 어무니는 쪼락쪼락 풋콩을 딴다 가다 한 모금 또 가다 한 모금 촐랑촐랑 줄어가는 막걸리심부름 한 쪽박 샘물로 덧채우던 아이가 아지랑 묏등 앞에 바알갛게 엎드렸네 한 사발 거뜬 비우신 아부지 “오늘 막걸리는 왜 이리 싱겁다냐?” 그 소웃음소리 지금도 들리네 여수 부근의 작은 섬 초도(풀섬)가 고향인 시인의 고향에 얽힌 작고 정겨운 서사가 중심을 이루는 작품이다.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 막걸리 심부름을 다녀오면서 홀짝 홀짝 마셔버린 탓으로 물을 탄 막걸리를 마시고는 오늘 막걸리는 왜 이리 싱거우냐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넉넉하고 구수한 말씀에 고향의 안온하고 흥겨운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시가 아닐 수 없
시
등록일 2013.12.16
게재일 20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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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空中)이란 말 참 좋지요 중심이 비어서 새들이 꽉 찬 저 곳 그대와 그 안에서 방을 들이고 아이를 낳고 냄새를 피웠으면 공중이라는 말 뼛속이 비어서 하늘 끝까지 날아가는 새떼 공중은 비어있다. 그러나 막연히 비어있는 공간만은 아니다. 비어 있어서 얽매이지 않고 무한한 자유와 여유를 간직한 곳이다. 그 순수하고 자유로운 공간에서 아이낳고 살아가고 싶다는 시인의 순수한 마음을 본다. 그리고 새떼들은 그냥 그 공간을 향유하고 있는 것도 아님을 말하고 있다. 새들은 그곳에 살기위해 그들의 부질없는 무게들을, 뼛속까지 비워내고 거기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온갖 소유에 얽매인 우리네 인간들에게 던지는 암시가 깊다.
시
등록일 2013.12.15
게재일 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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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내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칠갑산 중턱의 호수인 겨울 천장호 가를 거닐며 시인은 그 호수의 마음을 읽어내고 있다. 호수에 돌을 던지듯 우리는 세상을 향해 영욕의 헛된 손짓들을 수없이 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무리 돌을 던져도 가슴을 열지 않는 완강한 호수처럼 세상은 인간의 부질없는 손짓에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진실되게, 참참히 세상의 중심을 향한 우리의 손짓이 이어진다면 세상은 그 속내를 보여주지 않을까.
시
등록일 2013.12.12
게재일 201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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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물 복숭아 만원어치가 한 광주리다 그중 예사 놈과 달리 먼저 눈에 들어오는 놈 있다 몸 구부려 들어보니 새가 쪼아 먹은 흔적이 역력하다 부리로 콕콕 쪼다 바삐 어딜 떠난 사이 주인이 수확해 왔던 모양 새의 주인과 나와의 겸상이라니 이즈음, 세상 분간 안 되는 나도 깊게 물러 터진 자리에 향내 물씬 배이려나 만원어치 산 복숭아 알맹이들 속에는 새가 쪼아 먹은 흔적이 역력한 복숭아가 들어있었는가 보다. 새는 복숭아 그 단물을 찍어먹다 어디로 바삐 떠난 걸까. 그리고 그걸 수확해온 과수원 주인은 왜 그것을 버리지 않았을까. 세상사가 다 그런건 아닐까.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보면 온전히 챙기지 못하고 뭔가 모자라고 삐뚤어져 있고 상한 데가 있지만 그것은 그런대로 깊게 밴 맛과 멋이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그윽한
시
등록일 2013.12.11
게재일 201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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