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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슬픔은 붙었다 녹슨 쇠붙이의 몸에는 녹슬지 않은 하얀 얼룩 같은 것이 떨어질 듯, 붙었다 대문을 삐끔 열고 나온 늙은이가 하아얀 치아의 웃음을 문간 위에 걸어놓고 돌아간다 그 집에는 곧 느닷없는 기쁨의 손님들이 들어찬다 굽은 삭정이 그 집의 감나무 가지 위에도 오늘은 하얀 웃음 달이 걸렸다 (시의 일부분 인용)…. `지나가는 슬픔`(2004) 시인은 녹슨 쇠붙이를 늙은이에 비유하면서 소멸이라는 주제를 펼쳐 보이고 있다. 녹슨 쇠붙이에 붙어있는 녹슬지 않은 하얀 얼룩이나 하이얀 치아는 소멸이 아니라 스러질 듯하면서도 스러지지 않은, 살아있는 존재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상황과 상태를 말하고 있다. 사라져 버릴 것 같지만 살아있는 존재의 절실한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다
시
등록일 2010.07.15
게재일 201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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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낯익은 듯 낯선 듯 하도 작아져 깜빡 스치다가 유난스런 풋비린내 가던 길 뒤돌아서 간지럽도록 어루어보니 누가 날 개조하였으니 혼까지는 빼내지 못해 나 언젠가 들녘 네 모습에 취해 쑥 디밀어본 후각 그 지독한 쑥부쟁이 냄새 같은 누가 너를 이렇게 작게 만들었느냐 `우물`(2001) 이 시가 실린 `우물`이라는 시집에 실린 많은 시들이 존재에 대한 근원을 갈구하는 작품들이다. 작아진 국화를 보면서 그는 세상 모든 존재의 본질과 원형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것은 선문답 같은 질문이긴 하지만, 인간 본연의 원초적 질문이기에 그 추구는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시
등록일 2010.07.11
게재일 201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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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개울물이 밤새 닦아놓은 하늘로 일찍 깬 새들이 어둠을 물고 날아간다 산꼭대기까지 물 길어 올리느라 나무들은 몸이 흠뻑 젖었지만 햇빛은 그 정수리에서 깨어난다 이기고 지는 사람의 일로 이 산 밖에는 삼겹살 같은 세상을 두고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나는 벌레처럼 잠들었던 모양이다 이파리에서 떨어지는 이슬이었을까 또 다른 벌레였을까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부렀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1998) 어느 날 물푸레나무숲에서 잠들었던 시인이 문득 깨어나 새벽에 느낀 숲의 생명들과 작두날 같이 살벌한 세상의 일들을 대비시킨 체험이 묻어나는
시
등록일 2010.07.08
게재일 201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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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울음소리 옥양목의 가위질 같다 차가운 별빛은 물에 씻어 박은 듯 잊고 산 세상일들이 오린 듯이 또렷하다 `먼 하늘 바람꽃`(2001) 포항에서 활동하는 시조시인 서숙희의 시조 한 편을 올린다. 시조에 쓰이는 언어들이 그렇듯이 정갈하고 단촐한 시어들이 작은 그릇 속에 소복한 느낌을 준다. 제 몸을 비벼 소리를 내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씨악씨악 가위질 소리 같이 작고 명징하게 들리는 듯하다. 처서 무렵의 차가운 별빛이 분탕스런 세사(世事) 위로 깨끗하게 내리는 저녁, 이 시를 읽는 이의 마음도 그렇게 벌레울음소리와 고운 별빛이 스미길 바라는 시인의 고운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시
등록일 2010.07.07
게재일 201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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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새들은 지붕으로 곳간으로 담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검은 새들은 빈집에서 꿈을 꾸었다 검은 새들은 어떤 시간을 보았다 새들은 시간 속으로 시간의 새가 되어 날개를 들고 들어갔다 새들은 은빛 가지 위에 앉고 가지 위로 날아 하늘을 무한 공간으로 만들며 해빙기 같은 변화의 소리로 울었다 아아 해빙기 같은 소리를 들으며 나는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있다 …. (시의 일부분 인용) `풍경 뒤의 풍경`(2001) 새를 시간의 이미지로 바꿔놓은 이 시는 새의 귀소(歸巢)과정을 흐르는 풍경 속에 담긴 시간의 의미로 탐색하고 있다. 시인은 새를 시간의 이 쪽과 저 쪽을 넘나드는 존재로 상상하고 앞으로만 흐르는 자연적 시간의 규율을 파괴하는 존재로 보고 있다. 이러
시
등록일 2010.07.06
게재일 201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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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를 떨구듯 적요한 시간의 마당에 백지 한 장이 떨어져 있다 흔히 돌보지 않는 종이이지만 비어 있는 그것은 신이 놓고간 물음 시인은 그것을 十月의 포켓에 하루 종일 넣고 다니다가 밤의 한 기슭에 등불을 밝히고 읽는다 흔히 돌보지 않는 종이이지만 비어 있는 그것은 신의 뜻 공손하게 달라 하면 조용히 대답을 내려주신다 `떠도는 몸들`(2005) 백지란 텅 빈 여백을 의미한다. 있음과 없음 그 이전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성을 예비하는, 창조의 모태이고 원형이다. `백지 한 장`을 꽃씨에 비유한 시인은 생성의 시원(始原)으로서의 백지의 존재성에 시의 초점을 맞춘 것이다.
시
등록일 2010.06.30
게재일 201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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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아니, 그도 저도 안 되면 햇빛 벌레가 되어서라도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울어도 제 눈물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어두운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내 몸을 구부려 따뜻하게 감싸면서 천년을 더 그렇게 (시의 일부분 인용)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2005) 사람의 몸은 늙고 병들기 마련이고 그것을 어둠의 상태가 도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시인은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고 말한다. 이 시에는 자기위주의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 이타적(利他的)인, 남을 위한 배려에 끊임없는 관심과 배려를 나타내는 시정신이 착하게 그려져 있다.
시
등록일 2010.06.29
게재일 201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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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잘 가라 그 어느 연대, 땅에선들 청춘의 날들은 억지로라도 괴롭고 힘들어하지 않았으랴 잘 가라 청춘 다가오는 날들이 결례 같은 죽음뿐일지라도 무작정 떠밀려온 채 살아 애쓰는 여기가 나의 거점 그때 그 패배와 나락의 순간들이 없다면 이토록 깊고 서늘한 사랑의 완성을 꿈꿀 수 있으리 `나는 오래 전에도 여기 있었다`(2005) `매장시편`의 시인 임동확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탐구에 관심을 가지고 쓴 시가 많다. 시인은 한 편의 고별사를 쓰고 있다. 살면서 덮쳐온 치욕과 어둠, 죄의식과 굴종에 대한 결별을 선언하는 고별사이다. 청춘을 사로잡았던 기억들이 비록 패배와 나락의 순간들이었을지라도, 그것이 죽음으로 가는 길일지라도 시인은 거기에서 깊고 서늘한
시
등록일 2010.06.28
게재일 201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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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가방 하나 들고 오늘도 만나야 할 사람들을 챙긴다 사람 앞에 서서 말을 잃어버렸다 가슴의 말을 잃어버렸다 눈웃음치는 탈 하나 얼굴에 얹고 그의 머릿속을 열심히 읽으며 그의 표정 따라 내 말도 흘러가고 늦은 밤, 소주 한 잔 걸치고 대문 앞에 서면 전등불 속 환히 드러난 텅 빈 껍데기 허수아비 하나 `어둠의 축복`(2008) 먹고 살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는 모습과 상처받고 지친 모습으로 귀가하는 모습이 시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이 시는 사람을 수레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의 포로로 설정하고 있다. 제목인 도시의 허수아비 라는 말은 위선과 기만이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 모든 이들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본연의
시
등록일 2010.06.27
게재일 2010-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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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더 높이 산정 어디에도 바람에 쓸린 뼈 한 조각 찾을 수 없다 세 들어 살던 하늘 한 조각 비워 두었을 뿐 이 지상에서 꿈꾸지 않았으므로 아프지 않은 죽음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바람보다 몸이 가벼워질 때 깊은 침묵으로 서서히 지워질 뿐 쓸쓸한 추락으로 땅 위에 몸을 박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산에서 내려와 화전(火田)으로 땅을 갈며 또 다시 그 위에 무덤을 만들지만 새들의 무덤은 없다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2003) 새의 이상과 꿈은 더 넓고 높은 천상의 공간에 존재한다. 그래서 새는 초월을 꿈꾼다. 그러나 시인은 단호한 어조로 지상적 삶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지상의 삶이 시련과 고통의 과정이어서 이런
시
등록일 2010.06.24
게재일 201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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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때마다 꼭이 왼 신은 오른발에 신고 오른 신은 왼발에 신는데 그러나 무슨 상관이람 애초에 무슨 상관이람 왼 신을 오른발에 신고 오른 신을 왼 발에 신고 희옥이는 저 혼자서 신나게 놀다가 신발은 저만치 내팽개친 채 법당 앞 마룻바닥에서 곤히 잠들었다 ....( 시의 일부분 인용) `세상에 새로 온 꽃`(2004) `순진무분별`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잔잔히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작품이다.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의 행동과 표정을 통해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 본연의 원형을 묘사하고 있다. 어린이야말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가장 우주적 순리에 순응하는 존재다. 이 시에는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생명의 리듬이 깊이 깔려있다.
시
등록일 2010.06.23
게재일 201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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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저편에 너를 세워두고 혼자 가는 길 자꾸만 발이 저리다 잡목 숲 고요한 능선 아래 조그만 마을 거기 성급한 초저녁 별들 뛰어내리다 마는지 어느 창백한 손길이 들창을 여닫는지, 아득히 창호지 구겨지는 소리 그 끝을 따라간다 ........(시의 일부분 인용)......... `탁자 위의 사막`(2004) 내 마음 저 편에 너를 세워두고 혼자 가는 길은 아픔을 씹으며 가는 길이다. 쉬 버릴 수 없는, 버려지지도 않는 너와의 시간을 가슴 깊이 쓸어안고 홀로 가는 시적화자의 심정은 차라리 평온한 것인지 모른다. 잡목 숲 고요한 능선 아래 조그만 마을에 내리는 초 저녁별들에게서, 가만히 불어오는 바람에서 삶을 깊이 끌어안는 시인의 마음이 참
시
등록일 2010.06.22
게재일 201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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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이따금 찾아가네 광주의 서쪽 지금은 없어진 주월동 억새밭 너하고 앉아 송정리 쪽 핏빛노을 바라보던 곳 마음이 이따금 따라가네 선운사 외진골짝 떡갈나무 잎이 두 자나 쌓인 곳 뉘엿뉘엿 땅거미 지는 줄 모르고 둘이서 묻혀있던 곳 `자몽의 추억`(2005) 살다보면 마음이 끝없이 이끌리어가는 곳이 있다. 거기에는 평화와 기쁨과 사랑이 있는 곳이리라. 아니 거기에는 감동과 눈물과 애절함이 있는 곳인지 모른다. 망연히 핏빛 노을을 바라보던 곳에서 선운사 외진 골짝 떡갈나무 잎들이 쌓인 곳에서 애절한 추억을 쌓았던 시인은 너를, 그대를 가만히 불러보며 그리워하고 있다. 참 정겨운 작품이다.
시
등록일 2010.06.20
게재일 201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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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어둔 숲에 버려진 기와집들 오랜 세월에 바래진 빛깔로 겨우 어른댄다 갓 피어나 버들강아지나 물푸레나무, 하류를 거슬로 올라온 무나무들이 물줄기 휘감고 일어나다 쓰러지길 되풀이하는 동안 내 모습은 홀로 물빛에 잠겨 반짝이고 다 저녁, 가벼운 바람에 휩쓸려 같이 흐르는데 강둑에선 자잘한 풀꽃무더기들 연방 꽃망울 톡 ,톡 터뜨리며 강물을 시샘한다 갈수록 강은 얕아지고 강둑은 높아져도 내 모습은 아래로, 아래로, 검게, 흘러만 간다 `귀 단지`(2004) 이른 봄 강가에서 되살아나는 생명의 불꽃들을 바라보는 시인은 그 경이로움에 놀라고 그들에게 마음과 눈길을 주기에 바쁘다. 봄이 스미는 강가에서 차오르는 생명의 기운들을 바라보는 시인은 또한 자기
시
등록일 2010.06.16
게재일 201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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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냇가에 앉아 물결 하나 접어 그대에게 편지를 쓰네 냇물 속에는 글자처럼 몰려다니는 은빛 송사리 떼 머릿속에는 송사리 떼처럼 몰려다니는 그대 생각 물결 하나 접어 그대에게 짧은 편지를 쓰네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2005) 물결 위에 편지를 쓰는 시인의 마음이 참 곱고 정겹다. 눈빛으로 마음으로 써서 띄워보내는 편지라 할지라도 연필로, 잉크로, 혹은 먹으로 쓴 편지 못지않게 절절하고 진실된 마음이 담긴 것은 아닐까. 곱고 아름다운 시심이 은물결처럼 반짝이는 작품이다.
시
등록일 2010.06.15
게재일 201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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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것들도 갈등한다 미명의 시간까지 바다에 불을 밝히던 해안 구석 방파제 뒤 온갖 소리들 조개껍데기, 스티로폼, 찢어진 그물 이물은 뭍에 고물은 물에 기댄 채 뭘 골똘히 궁리하는가 저녁 해풍 찰랑이는 파도소리만 새되다 이물 끝에 앉아 있는 바닷새 한 마리 찬 해풍에 깃털을 흩뜨리고 어디로 날아갈 것인가 살아 있는 것들은 갈등한다 `캄캄한 날개를 위하여`(2006) 저녁 해풍의 찰랑거리는 파도소리만 듣고 있는 폐선을 보면서 시인 자신도 폐선이 되어 갈등하고 있다. 용도 폐기되어 퇴역한 폐선일지라도 배는 파도를 가르며 대양을 질주하고 싶어 한다. 낡고 험해진 몸이지만 아직은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
시
등록일 2010.06.14
게재일 201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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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아이가 고인돌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죽어 돌이 될 노인과 아이 고인돌과 셋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는 죽어 어떤 돌을 남길까 죽어 몸에 얼마나 무거운 돌 얹혀야 부끄러운 생애를 용서받을 수 있을까 그렇게 얼마를 살아야 끝내 돌 속으로 들어가 돌과 한몸이 될 수 있을까 `내 몸속의 지구`(2007). 고인돌 앞에서 노인과 아이가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다. 고인돌은 죽음의 법칙으로 거기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시인은 그 돌 속에 들어가 돌과 한 몸이 될 수 있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왜 일까. 그것은 영원을 지향하는 인간 근원의 욕망의 표현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시 전체에 흐르는 시인의 정신은 죽음의 법칙에 따를 수밖에 없고, 부끄러운 생애가 용서받기를 원하고, 자연으로 겸
시
등록일 2010.06.13
게재일 2010-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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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밭을 볼 때마다 명아주 대가 더 늘었다 목을 뽑아올리던 상추는 그새 꽃을 피웠다 아침이면 맷비둘기 내려오고 찌르레기 짝지어 논다 삽자루 그러쥐고 밭둑에서 졸던 할아버지 자전거만 통 소식이 없다 `어린 꽃다지를 위하여`(2006) 뒷밭에서 갖가지 자잔한 생명을 피워 올리던 할아버지의 부재, 그의 죽음, 존재의 여백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다. 생명의 순환성에 대한 시적 성찰이 돋보이는 이 시에서 우리는 탄생과 죽음은 자연의 순환적 흐름을 이루는 것으로 받아들여야함을 느낄 수 있다. 죽음은 거부되어야할 것이 아니라 순응하고, 더 나아가 삶을 더욱 깊게 하는 생명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시이다.
시
등록일 2010.06.10
게재일 201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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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나 호텔 뒷골목에는 밤만 되면 형형색색으로 아름다운 꽃이 핍니다 이화장, 목련장, 동백장…. 사철 시들 일도 없고 봄여름 구별 없이 여기서는 일년 내내 염문처럼 만발한 꽃이 핍니다 …( 중략 )… 그 휘황한 헛꽃에 속아보고 싶은 그런 허공의 꽃들은 다들, 어둠 속에서 향기보다 지독한 불빛을 풍기나 봅니다 그래선지 밤만 되면 내 몸은 어디론가 불려가고 싶고 이화장, 목련장, 동백장...... 그 흐드러진 불빛 따라 나방처럼 퍼드득 날아들고 싶어집니다 `그리운 연어`(2006) 밤이면 화려하게 불을 밝히는 여관촌 부근의 풍경을 제시하면서 시인은 인간의 에로티시즘적 욕망을 있는 그대로 형상화하고 있다. 도시든 농촌이든 이러한 풍경은 흔하
시
등록일 2010.06.08
게재일 201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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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는 자는 안개도 짐이 된다 길 위에 서는 자는 이슬도 짐이 된다 누더기, 누더기 되새김질할 틈이 없다 덧꿰맨 흉터가 또 터진다 상처는 가만두어도 비집고 나오는 것이니 저 파도 검센 흙바다를 언제 건너나 해를 등짐 지고 나온 바람이 길게 그를 눕혔다 `은근 살짝`(2006) 길 위에서는 안개도 이슬도 짐이 된다고 말하는 시인의 삶에 대한 인식이 무겁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그럴지 모른다. 가만 두어도 상처가 비집고 나오듯 우리네 한 생이 힘겹고 무거운 것을 말하는 시인은 저 파도 검센 흙바다 같은 한 생을 언제 건너느냐고 자문하고 있다. 가만히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울림을 가지고 있는 시다.
시
등록일 2010.06.07
게재일 201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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