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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驚蟄) 지나 춘분(春分) 의료원과 성당 사이 텃밭에 계분을 뿌리는 부부 냄새는 금방이라도 비를 몰고 올 것만 같다 췌장을 잘라낸 지난 해 여름처럼 헐거워진 땅의 틈을 밀고도 밭고랑의 봄은 좀처럼 서두르질 않는다 아내는 멀찍이 마음을 기댄 채 꽃몰이를 하는 듯 어깨에서도 바람이 일고 남편을 향한 기도처럼 계분을 뿌리듯 자신을 뿌린다 흩어지는 독한 냄새 암세포를 밀어내며 봄은 피고 약봉지 안 캡슐에 담기는 성당의 종소리, 삽자루의 오전은 천천히 건너가고 아내의 장화 신은 발을 뒤따라 남자는 가벼운 발자국 찾느라 콧날이 찡한 봄 한 움큼을 삼킨다 남자의 절반을 일구며 계분더미에 앉은 나비 같은 여자가 웃는다 후드득 몰려오는 빗방울을 닮아가는 파종의 시간, 봄의 절반을 빠져나온 성당의 종소리는 아주 멀
시
등록일 2012.03.18
게재일 201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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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견새 목이 타는 호젓한 봄길 귀촉도 울음 밟고 님 오시겠네 진달래 꽃 사태로 멍이 든 산골 아지랑이 구름 길에 소매 다 젖겠네전통적인 운율인 7.5 조에 충실한 작품으로 낭송하기에 적절한 시이다. 온 산에 진달래꽃이 지천으로 피어나고 귀촉도 울음소리가 애절하게 퍼지는 산골의 봄날, 그리운 님을 기다리는 시적 화자의 마음이 잘 녹아난 작품이다.
시
등록일 2012.03.15
게재일 201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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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도 낙산사 풍경은 태(態)를 지어 우는 걸까 솔바람 닿을 제면 난향(香)으로 흔들리고 먼 동해(東海) 썰물 소리엔 방생(放生)하는 풍경 소리몇 해 전 불탔다가 다시 재건된 낙산사를 떠오르게 하는 시조이다. 동해를 굽어보며 청솔 속 아늑히 자리한 절집의 풍경소리, 그 아름다움과 고적한 분위기를 통해 자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서정시조이다. 그것은 풍경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인의 마음이 그만큼 그윽하고 자비로운 까닭이리라.
시
등록일 2012.03.14
게재일 201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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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입니다. 보이다가 사라지는 것 그것이 문입니다. 문은 맨 처음 점이다가 선이다가 광장이 되지 못하고 처음의 그 소실점 밖으로 사라집니다 문은 크다가 스러지고 화사하다가 어둡고 멀다가 안 보이다가 잠기어 침묵하다가 어느 한순간 빗장 내려지고 환히 열리는 때도 있습니다만 어느 한순간에 또 감쪽같이 눈앞에서 퇴장합니다 문은 문이다가 문 밖으로의 사라짐 혹은 문 안으로 사라짐에 대해 절대 설명하는 일은 없고 감각으로 책정되는 문이 강의록만 있을 뿐 문득 내 마지막 문을 나서면 그 뒤는? 허방입니까? 그 무목적성의 텅 빈 충만, 그 부대낌 없는 불안을 어찌 견딜지요 이 지상에 문이 단 하나였다면 오늘의 개인의 세계의 이 진화는 과연 왔을지요 나 다시 올 겁니다 알 수 없는 문의 감옥, 이 지상으로
시
등록일 2012.03.13
게재일 201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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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의 꽃그늘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한 하루살이 하루가 생의 전부 바람이 보기엔 보잘 것 없는 날개짓 나 사랑을 좇아 욕망을 좇아 살아온 하루살이의 주검 앞에 조용히 무릎꿇는다 헛된 욕망의 삶으로 부질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인간들을 향해 조용한 목소리를 던지고 있다. 하찮은 미물인 하루살이도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다가 조용히 생을 마감하건만 우리는 얼마나 신에게 부여받은 시간들을 알차게 사용하고, 최선을 다해 살다 가는지 참참히 자신을 들여다 볼 일이다.
시
등록일 2012.03.12
게재일 201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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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구처럼 안 생긴 형제 같은 말쑥하고 튼튼한 사내 셋 좁은 곳에서 십 년도 넘게 큰 호빵 만들지 않을 때 한 번도 본 적 없는 제주시 동문시장 옆 거리 이 세상 같지 않은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분식집 풍경이다. 십 년도 넘게, 진득하게 호빵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다. 하던 일 잘 되어 돈 좀 벌면 더 나은 일을 찾아 떠나버리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데, 답답한 골목 안에서 꾸준히 호빵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감동적이다. 좀 바보스럽고 답답한 느낌은 주어도 뭔가 한 가지에 몰입하는 것이 아쉬운 우리 사는 세상을 향해 큼지막한 호빵을 건내고 있다. 골목 안 그 사내들.
시
등록일 2012.03.11
게재일 201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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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 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단순하고 소박한 극히 개인적인 삶의 정황을 읊은 것 같지만 괴롭고 고단한 우리네 인생의 무게와 힘듦을 관조하는 울림이 큰 작품이다. 이미 귀천(歸天)이라는 시로 너무도 잘 알려진 천상병 시인의 시로 가난과 고절감, 소외감이 작품 전편에 깔려있다. 어쩌면 가난이란 우리네 삶을 더욱 깊고 의미있게 하는 어떤 힘이 아닐까하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게 한다.
시
등록일 2012.03.08
게재일 201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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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쿵쾅거리는 심장으로 너를 기다리기도 했다 너에게 미쳐서 고함지르기도 했다 암표를 사서라도 너를 보려 했다 사람이 웅성거리면 너에 대한 사랑이라고 네가 떠나 사람이 흩어지면 다음을 기약하며 떠나는 아쉬운 작별이라고 숱한 미사여구를 찾아서 네게 갔다가 붙이던 한때 너에 대한 집착 한때 너에 대한 열광 한때 너에 대한 추종 하나 쇼하지 마라 너에게 미쳐 있는 동안 너는 멀리 떠나고 있었다 다시 건널 수 없는 이별의 깊은 강을 만들고 있었다포항 출신의 김왕노 시인의 시는 매우 역동적이고 곱씹을수록 맛이 우러나오는 시들이 많다. 그에게 적어도 사랑은 현재형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어온 그리움이라할지라도 그것은 진지하게 현재적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상대가 느끼든 그렇지 못하든 사랑은 일방적이고 맹목적일
시
등록일 2012.03.07
게재일 201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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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엄을 듣는 오후입니다 당신은 쌀죽을 쑤고 나는 장자(莊子)를 읽으면서 무릎을 깎습니다 화분에 어리는 꿈들은 거짓의 가루를 입힌 사실입니다 당신은 지루한 날에 메스를 댑니다 유리를 빻아 아슬한 놀이 공원을 짓고 담장에는 비타민도 바릅니다 레퀴엠을 듣는 오후에도 의무감이란 게 있습니다 나는 토마토를 갈아 토마토죽을 만듭니다 당신의 놀이 공원에 물고기들을 가두고 무화과를 심습니다 물론 이 오후는 라이브가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놀란 듯 노래를 부르는 아이처럼 몰랐다는 듯 태어나는 신생아처럼 당신은 주전자 앞에서 서서 끊는 물을 지휘합니다 물을 마시듯 숨을 쉬면서 복화술을 연습합니다 그렇게 당신은 나의 귀를 수리합니다레퀴엠은 인반적으로 장중하고 죽은 사람을
시
등록일 2012.03.06
게재일 201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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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알기 전에 춤을 춰야한다 듣지 못하는 왕이메이는 소리를 본다 스테레오에서 각기 다른 노래가 빛깔과 더불어 적셔오는 걸까 저 빛깔이 노래한다고 받아들이는 걸까 몸속에 온갖 꽃물이 물들여져 온다 소리는 공기와 물 사이에 놓여 있는 셈이다 소리의 물줄기를 맞는 순간 그녀의 몸이 어루숭 꽃으로 피어난다 진동과 리듬을 지닌 그녀, 춤의 영혼이다 몸짓과 소리를 한곳에 모을 수 있는 건 심장의 속삭임 심장을 앞사람 등에 포갠 채 그녀는 격렬한 고요와 적막한 고동소리로 천수관음을 일구었다 42개의 손을 펼치고 거두는 사이 바다를 들여 놓는 듯 객석이 모두 파도의 요탕 속으로 잠겨든다 관대한 고통들이 한꺼번에 씻겨나간다 중국의 청각장애인 왕이메이. 그에게 운명적으로 짐 지워진 것은 소리
시
등록일 2012.03.05
게재일 201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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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한 마리 남자처럼 떨고 있다 창밖 잎 진 나뭇가지를 떠나지 못한다 비는 내려 가지에 가시가 돋는다 한 자리에서만 가지를 잡고 있다 하늘이 숨 고르는 사이를 참새소리는 놓치지 않는다 부리만큼 뾰족하다 (…) 참새 같은 여자와 참새 같은 남자와 참새 같은 늙은 남자와 참새 같은 늙은 여자와 머리털에 빗물이 스미고 생각난 듯 부리를 가지에 문지른다 빛 한 점이 새까만 눈동자에서 빠져나오려다 갇힌다 참새소리가 참새소리 너머에서 난다비 내리는 날 남자처럼 떨고 있는 참새 한 마리를 바라보는 것은 침묵과 같은 것이리라. 가만히 그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내면을 읽어내는 시인의 모습에서 무언가 쓸쓸함을 느낄 수 있다.
시
등록일 2012.03.04
게재일 201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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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프가 꺼진다. 소멸의 그 깊은 난간으로 나를 데려가 다오. 장송(葬送)의 바다에는 흔들리는 달빛, 흔들리는 달빛의 망토가 펄럭이고, 나의 얼굴은 무수한 어둠의 칼에 찔리우며 사라지는 불빛 따라 달린다. 오, 집념의 머리칼을 뜯고 보라. 저 침착했던 의의(意義)가 가늘게 전율하면서 신뢰(信賴)의 차건 손을 잡는다. 그리고 시방 당신이 펴는 식탁(食卓) 위의 흰 보자기엔 아마 파헤쳐진 새가 한 마리 날아와 쓰러질 것이다.우리의 무의식, 자의식의 세계를 서술적으로 보여주는 좀 난해한 작품이다. 램프가 꺼진다는 것은 밝음에서 어둠으로의 변화이고 그것은 내면세계의 어두움의 시작이다. 곧 음산하고 처절한, 끝없는 추락과 절망의 세계를 언어로 조직해 내고 있다. 현대인들의 절망이나 고독한 감정을 무의식의 내면세계 표출
시
등록일 2012.03.01
게재일 201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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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보라색 도라지꽃이 피면 엉덩이에 몽고반점 가진 새끼나 기르며 한 삼백 년쯤 살고 싶었다 도라지꽃 백 번 피었다 지면 비 갠 뒤 무지개 너머로 가리 솔숲 너머로 달뜨는 이 세상에 누구 아들로 다시 와 숨결 받을까복잡한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 내려와 둥지를 튼 시인이 무욕의 삶과 영원의 삶을 바라보는 눈이 깊다. 그가 함께 숨쉬고 있는 자연 속에는 영원으로 가는 길이 놓여있고 자잔한 생명의 눈부심이 있다. 그 속에 흐르는 고요와 평화를 이 아침 우리도 가만히 들여다보자.
시
등록일 2012.02.28
게재일 201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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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뒷마당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에게 거미가 고운 수의를 한 벌 해 입혔다 허공에 새로 생긴 봉문 앞을 지날 때마다 바람이 경을 읽는다 절집의 평화로운 한 정경을 읽어내는 시인의 눈이 눈이 보이지 않는 또다른 내면의 풍경을 읽어내고 있어서 시인의 눈매가 정교하고 깊으며 따스하다. 절집의 풍경이 그러하듯 우리네 인생, 사람 사는 일들도 다 그러하지 않을까.
시
등록일 2012.02.27
게재일 201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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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옇게 등을 보이는 먼 산 말다툼 끝에 은근히 토라진 그 같다 평평한 수면을 끌어당기며 엎드린 저수지의 나직한 어깨 폴짝거리며 뛰어 다니던 싸리나무 우거진 고샅길 눈 쌓인 은빛 들판 그들 곁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다 순백 눈 위를 팔딱팔딱 뛰는 시의 음표들 햇살의 장난같이 나도 그에게 부드러워지고 싶다 날리는 눈발처럼 살포시 손잡고 다가서고 싶다순백의 들판, 흰눈이 소복이 내린 들판은 평화의 절정이다. 그 절정의 평화의 경지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에 이미 더 큰 평화의 들판이 형성되어있다. ` 그들 곁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다`라고 고백하는 시인의 마음이 그것이다. 그 눈 속에서도 파랗게 눈을 뜨는 새싹들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시
등록일 2012.02.26
게재일 201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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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기나긴 죽음의 시절 꿈도 없이 누웠다가 이 새벽 안개 속에 떠났다고 대답하라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흙먼지 재를 쓰고 머리 풀고 땅을 치며 나 이미 큰 강을 건너 떠났다고 대답하라불행한 현실을 떠나 청산으로 불리우는 미지의 아름다운 세계를 동경하는 시인의 마음이 절절히 그려진 1980년대의 작품이다. 우리네 삶이 산 너머 산이요 물 건너 물인 것을, 그래도 저버릴 수 없는 것이기에 현실적 온갖 어려움과 고통을 감내하며 희망 하나로 살아가는 민중들의 한(恨)이 잔잔히 스민 감동적인 시다. 80년대 초의 시대적 상황과도 맞물려 있어 울림이 큰 작품이다.
시
등록일 2012.02.23
게재일 201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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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란 낯섬에서 오는 축복. 낯섬의 `섬`이란 말에서 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섬을 바라본다. 여름에서 가을로 기운, 고개 너머 더덕 냄새 달라붙는 소백산 세밭계곡 입구에서 만난 자동차 주행거리 200,000㎞. 길가에 차 세우고 그간 달렸던 곳곳의 이력을 허공 지도 한 장에 잇는다. 섬, 섬, 섬------ . 둥글다. 지구 자오선 40,000㎞의 다섯 배. 낯섬이 내 앞에 필연으로 머물고 있다. 수평선에 목매달아 사이렌 울리며 달리는 구급차처럼 가보고 싶은 그린 미지의 섬, 낯섬.`낯섬`이라는 말은 `낯섦다`라는 말에서 온 말로서 시인이 의도적으로 `낯섦`이라 하지 않고 낯섬이라고 표기하고 있음을 시를 읽으면 느낄 수 있다. 우연이란 낯섬에서 오는 축복이라고 하고, 낯섬이 내 앞에 필연으로 머물고
시
등록일 2012.02.22
게재일 201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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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왼손, 오른손만 졸졸 따라다니는 왼손 오른손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그러면서도 오른손에게 쌀쌀맞은 왼손, 간혹은 오른손 무시하다 큰코다치기도 하는 왼손, (…) 나는 당신의 왼손, 오른손과 같은 날 태어나 오른손만 바라보다 오른손과 같이 죽을 왼손 오른손 죽을 때 고요히 그 옆에 같이 누울 왼손왼손 오른손의 관계와 그 밀접함이랄까 운명적인 관계를 말하면서 시인은 사랑과 화해의 기술을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모든 사랑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 결핍의 과정을 채워가는 것이 또한 사랑이 아닐까. 그게 사랑의 본질이고 실체다. 오른손과 왼손의 관계처럼 말이다.
시
등록일 2012.02.21
게재일 201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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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한로(寒露)의 음절을 밟고 지나간다 귀뚜리는 나를 보아도 이젠 두려워하지 않는다 차운 돌에 수염을 착 붙이고 멀리 무슨 신호를 보내고 있다 어디선가 받아 읽는 가을의 사람은 일손을 놓고 한동안을 멍하니 잠기고 있다 귀뚜리의 송신(送信)도 이내 끝나면 하늘은 바이없는 청자(靑瓷)의 심연이다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 무렵 가을을 깊이 묘사하는 신동집 시인의 대표시이다. 귀뚜리의 울음이 끝나는 것을 생명의 종말로 여기는 시인은 청자의 심연같은 적막의 순간을 미리 내다보고 있다. 가을을 조락(凋落)과 죽음, 마지막의 의미로 받아들이며 생명의 시효가 끝나가는, 죽음이 임박해오는 것을 `신호`로 표현하는 시인의 깊은 눈을 느낄 수 있는, 명상의 시이다.
시
등록일 2012.02.20
게재일 201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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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려서는 정말로 초록 봄비가 내렸다 봄비가 내리면 새잎이 나고 꽃들이 새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새로 잎이 나는 나무며 풀들은 마치 운동회 날 뜀박질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같았고 새로 피어나는 꽃들은 마치 장마당에 모여 북적대는 장꾼들 같았다 아이들도 비를 맞으면 키가 큰다고 좋아했다 요즘도 초록 봄비는 내린다 그러나 그 초록 봄비는 화살촉 같은 날카로운 혓바닥을 숨긴 초록 봄비다 산성비이고 방사능비라는 이름을 가졌다 어른들은 절대로 밖에 나가서 비를 맞으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오히려 아이들은 창 안에서 맨몸으로 초록 봄비를 맞고 있을 나무며 풀들을 걱정한다봄비를 초록봄비라고 부르는 시인의 가슴 속은 연두빛 연초록빛이 가득하리라. 어릴 적 봄비가 내리면 앞다투어 피어나던 봄꽃들,
시
등록일 2012.02.19
게재일 2012-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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