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법론적 회의`란 말을 처음 쓴 철학자가 데카르트(Descartes).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이라 해서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해서 다 진리가 아니며 연극무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그림자는 실제가 아니다. 역사는 `사실`이지만 다`진실`은 아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많이 고민한 사학자가 사마천이다. 한신은 한(漢)나라 개국공신이다. 어느날 한신이 유방에게 말했다. “황제께선 10만 병사를 거느릴 장수입니다” 황제가 한신에게 물었다.“경은?” 한신이 대답했다. “소신이야 다다익선이지요” 내가 당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뜻이니, 이때부터 한신은 `반역의 기운이 농후한 자`로 찍혔고, 결국 토사구팽. 역모죄를 쓰고 3족이 죽었다. “한신이 역모를 했다”하는 기록은 `사실`이지만“과연 역모
칼럼
등록일 2015.04.01
게재일 2015-04-02
댓글 0
-
이슬람 강경파 IS가 말썽이다. 사람을 납치해다가 처형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돈을 갈취하는 국제깡패가 요즘 치도곤을 맞는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그것을 `멋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본거지를 찾아가는데 우리나라 김모 군도 합류했다. 테러분자들은 늘`정의`를 앞세우는데, 이들은 과거의 십자군전쟁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슬람은 `참혹성`을 무기로 사용했다. 포로를 최대한 참혹한 모습으로 만든 후 적진에 돌려보내는 수법인데 그 처참한 몰골을 보고 질려서 손을 들게 만든다. IS도 칼이나 총으로 공개처형하고 심지어 기름을 뿌려 화형하는 장면까지 공개했다. 그런데 처형당하는 피해자들이 의외로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몸부림치거나 애원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는데 “실제로 처형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사진 찍기 위한 것”
칼럼
등록일 2015.03.31
게재일 2015-04-01
댓글 0
-
사소한 행복감은 언제 밀려오는가? 온 겨우내 뒷베란다에 방치했던 노랗고 빨간 미니 화분을 자동차 뒷좌석에 싣고 꽃집을 향할 때. 그 빈 화분에다 팬지나 데이지를 심고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공기 중에 떠도는 봄 향기를 맡을 때. 그 화분이 실은 지난가을 모 카페에서 친구가 건넨 황국과 홍국의 쌍 화분이었다는 걸 기억해 낼 때. 그때 카페 창가에 비친 친구의 옆얼굴이 내가 좋아하는 데이지를 닮았다고 믿고 싶을 때. 기침 돋는 목소리로 최선을 다해 엄마의 안부를 물을 때. 안부를 묻는 내 최선의 목소리보다 더 빠르고 깊이 전해지는 늙은 엄마의 노심초사를 알 때. 한껏 게으르고 늘어져 소파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뒹굴 때. 그때 몹시 아끼는 폴란드 산 십자꽃 무늬 잔에 커피를 내려 건네는 순정한 아들의
칼럼
등록일 2015.03.30
게재일 2015-03-31
댓글 0
-
아버지 살아계실 제 비유적으로 말하기를 즐겼다. 그것이 속담인지 당신만의 어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를테면 `손 큰 어미 장 퍼 나르듯 한다`, `꽃도 한철 문장도 한철` 이런 말을 흔히 썼다. 각각 살림살이와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었다. 인사에 선후 없다, 라는 말도 아버지에게서 자주 들었다. 인사에는 어른 아이 순서가 정해진 게 아니니 서로 예의를 지키는 게 좋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두 젊은 연예인이 야외 녹화를 하다가 다툼이 붙었다. 세 살 어린 쪽이 반말 뉘앙스를 풍기며 대꾸를 해서 언니 쪽이 폭발해 욕설을 했단다. 마주친 손바닥이 소리 나듯 잘잘못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네티즌들의 갑론을박 속에서 `예의` 부분을 받아들이는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다. 나
칼럼
등록일 2015.03.29
게재일 2015-03-30
댓글 0
-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언행을 기록으로 남겼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등을 비롯한 그의 이야기 안에는 소크라테스를 둘러싼 당대 철학가·정치인들의 행적이 실감나게 묘사된다. 그 중 `향연`은 그들의 에로스 찬미가에 해당된다. 비극작가 아가톤이 비극경연대회에서 우승했다. 축하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예닐곱 명이 모였는데 곧 에로스에 대한 격렬한 토론장이 된다. 그때 마지막으로 향연장에 등장하는 인물이 군인이자 정치가인 알키비아데스였다. 담쟁이덩굴과 제비꽃으로 된 화관을 미남자 우승자인 아가톤에게 씌워주고 싶어서였다. 알키비아데스에게도 에로스 찬양을 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는 실은 에로스에 빗대 소크라테스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더 말하고 싶었다. 술을 빙자해 복잡한 속내
칼럼
등록일 2015.03.26
게재일 2015-03-27
댓글 0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서거했다. 그에 관한 평가는 다양하다. 경제를 일으키고 국민성을 개조한 측면에서는 `아시아의 거인`으로 칭송 받는다. 반면 지나친 독단으로 자신의 생각을 주변과 국민에게 주입한 면에서는 `아시아의 히틀러`로 폄하되기도 한다. 그 둘 다 제 삼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옳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지도자는 이 세상에 없다는 생각. 어떤 것을 우선에 둘 경우 그 반대쪽의 일에는 아무래도 소홀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그 이면에는 그것에 버금가는 나쁜 일이 생기고 그것 때문에 고통받는 존재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리더란 사람들을 격려하고 자극하는 자리이지, 자신의 복잡한 생각들을 공유하는 자리
칼럼
등록일 2015.03.25
게재일 2015-03-26
댓글 0
-
사랑하면 왜 작은 것에도 웃게 되고, 사랑받으면 왜 충만감에 휩싸이게 될까. 그건 사랑이 그만큼 단순하고 담백한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미워하기보다 사랑하는 게 더 쉽다. 누군가를 미워해야만 할 때 사람들이 취하는 방식은 사랑할 때의 그것에 비해 훨씬 복잡해진다. 사랑할 때는 변명이 필요치 않지만, 미워할 때는 변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워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변호해줄 핑곗거리를 만들어내 위안을 삼으려 하기 때문이다.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덫에 걸렸다. 야옹야옹 애처롭게 내지르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했다. 다람쥐도 독수리도 사람도 심지어 동료인 고양이마저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니, 들으려 하지 않았다. 딱 한 명, 세상 모든 것에 연민의 귀를 열어 놓기를 즐기던 여우에게 그
칼럼
등록일 2015.03.24
게재일 2015-03-25
댓글 0
-
한 걸음 물러나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이론서의 도움을 받고, 아무리 현명한 이웃의 조언을 듣는다 해도 내 아이를 직접 키우는 동안에는 객관적인 시각을 확보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더 이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 없을 시기가 오면, 그제야 숨어 있던 자녀교육에 관한 여러 객관적인 생각이 모아지곤 한다. 사람의 일이란 게 언제나 지나고 난 뒤에야 후회하는 것. 키우는 동안 제대로 된 자녀교육법을 실천할 걸, 하는 아쉬움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한들 당시 행한 육아법에서 더 진일보한다는 보장은 없다. 자녀교육에 대해 아는 것과 자녀교육을 하는 것은 이상과 현실만큼의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 교육은 부모의 제일 큰
칼럼
등록일 2015.03.23
게재일 2015-03-24
댓글 0
-
노트북 자판이 말썽이다. 서너 개의 글자판이 아예 먹통이다. 어르고 달래도 고장 난 부분의 글자는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대부분의 자판이 온전하니 안 되는 곳만 건너뛰어도 독해는 되겠지 싶어 써나가는데, 웬 걸 무슨 외계어 향연장 같다. 고작 몇 개의 글자판이 막혔을 뿐인데도 무슨 말을 쓴 건지 쓴 나도 읽어 내릴 수가 없다. 당황스럽다. 휴일이라 AS센터에 달려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글은 써야겠고. 이 응급사태를 어찌할까 싶다. 다행히 남편 왈 노트북에다 일반 자판기를 연결하면 되니 걱정 안 해도 된단다. 먼지 쌓인 자판기를 꺼내 연결 실행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자판이 술술 먹힌다. 아주 작은 곳 하나만 막히고 끊겨도 온전한 교감에 이르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겠다. 여기까지만 접수했다면 이 글을
칼럼
등록일 2015.03.22
게재일 2015-03-23
댓글 0
-
어찌 천재작가들은 요절할까. 볼프강 보르헤르트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스물여섯에 죽은 그는 요절 치고도 너무 이른 나이라 안타깝기만 하다.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르렀다. 죽기 전 남긴 단편들과 대표 시를 모아 발간된 책이 `이별 없는 세대`이다. 실린 단편들은 보르헤르트의 짧은 생애만큼이나 아주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이라고 말하기보다 손바닥소설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정도로.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는 열다섯 편의 손바닥소설 중 가장 여운을 남긴다. 아직 젊었기에 순수했던 작가정신이 주인공 위르겐과 꼭 닮았다. 아홉 살 위르겐은 폭격으로 폐허가 된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매일 폐허 앞을 지킨다. 허물어진 잔해 속에 네 살짜리 동생이 깔려 있기
칼럼
등록일 2015.03.19
게재일 2015-03-20
댓글 0
-
“원고를 세 번이나 네 번쯤 고치고 난 후에야 진짜 작품의 가닥이 잡힙니다. 시도 마찬가지죠. 단지 시는 40번이나 50번 정도까지 수정한다는 게 다르지요. 도널드 홀은 한 편의 시에 100여 개의 수정본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상상이 가나요?”`작가란 무엇인가`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인터뷰 중 한 구절이다. 그러니까 그의 소설이 윤곽이 그려지는 시기는 초고 때가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적어도 서너 번은 고치고 난 뒤 그제야 작품이 시작된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때서야 작품의 가닥이 잡힌다고 보니 그 뒤 완성에 이르기까지 퇴고 과정은 또 얼마나 많은 횟수가 필요할 것인가. 그와 반대로 일반적인 경우는 초고만 쓰고도 한 작품 완성한 것처럼 방치하게 되고, 두세 번의 퇴고를 거치기라도 했다면 이는 영원한
칼럼
등록일 2015.03.18
게재일 2015-03-19
댓글 0
-
난처한 병 중의 하나가 마음병이다. 마음병은 뚜렷한 신체적 변화가 있어서 아픈 곳을 딱 집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아픈 증세를 명확하게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픈 당사자만이 실체 없는 그 고통 앞에서 괴로워해야 한다. 심고(深痼)라는 말이 있다. 주로 고치기 어려운 깊고 중한 병을 말하는데 주로 마음의 병을 일컫는데 쓰인다. 그만큼 마음의 병이 고치기 어렵다는 뜻이다. 사실 깊고 중한 병이라면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암이나 기타 위중한 병명이 마음병보다 더 앞자리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마음병이 중한 병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그 고통의 크기가 다른 어떤 질병과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병은 우리나라에서는 화병으로도
칼럼
등록일 2015.03.17
게재일 2015-03-18
댓글 0
-
“깊은 슬픔을 밑에 깔고 어머니가 누리는 잔잔한 평화 속에서 죽은 삼촌과 내가 뒤섞이는 이 인접성, 나는 그것을 어머니의 환유라고 부른다. 어머니는 어느 날 아버지 대신 나를 부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순수하고 완벽해서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환유는 결여된 은유다.” 황현산 선생의 `잘 표현된 불행`에서 `어머니의 환유` 일부분을 인용했다. 환유를 일컬어 결여된 은유라고 표현한 저 독창적 말씀에 매료되어 내 식의 해설을 쓰고 싶어졌다. 자세하게 분류하자면 여러 가지로 뻗겠지만 일반적으로 환유라 하면 표현하는 대상을 그것과 가까운 다른 말로 바꿔 말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앞치마가 환유가 되면 주부를 뜻하고, 월스트리트가 환유로 읽히면 영향력 있는 금융세력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선생의 저
칼럼
등록일 2015.03.16
게재일 2015-03-17
댓글 0
-
가령 이런 문장을 읽을 때였다. “아이들의 몸엔 언제나 벌레가 있었다. 그것들을 쫓아 버리기 위해 셔츠 안쪽, 배꼽 부근에 마늘을 채운 조그만 주머니 하나를 꿰매어 달아주곤 했다. 나는 프루스트나 모리아크를 읽을 때면, 이 작품들이 내 아버지가 아이였던 시절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아버지의 환경은 중세였던 것이다.” 작가 아니 에르노는 `남자의 자리`에서 가난하고 초라한 아버지를 중세의 환경이라고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알려졌다시피 아니 에르노의 작가적 고집은 겪은 것만 쓴다는 데 있다. 그녀의 적나라한 화법은 제 아버지에 대해서 말할 때에도 예외가 없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마들렌느 과자를 적신 홍차 향에 취해 부르주아 창가를 서성일 때, 동시대를 살았던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는 자식들
칼럼
등록일 2015.03.15
게재일 2015-03-16
댓글 0
-
아기는 거짓을 모른다. 갓 태어난 아기라면 더더욱. 하지만 거짓만을 모를 뿐 희로애락의 감정은 확실히 느낀다. 순수한 영혼인 아기의 감정은 날 것 그대로이다. 숨김도 없고 과장도 없다. 제가 느낀 그대로 그냥 받아들인다. 거짓을 배울 기회가 없으므로 적대감 같은 것도 모른다. 거짓과 적의는 한 통속이어서 아직 어린 그에게는 먼 이야기이다. 어느 볕 좋은 날 천지가 진동하고 아기공룡 한 마리가 태어난다. 그런데 웬 걸, 태어나보니 혼자이다. 외로워서 슬퍼서 울었다. 외로움이나 슬픔은 학습된 감정이 아니므로 절로 그렇게 되었다. 울면서 타달타달 걸었다. 그때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면? “헤헤헤, 고 녀석 맛있겠다!” 이 장면에서 보통 독자는 아, 끝났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맛있겠다, 라고 선언할
칼럼
등록일 2015.03.12
게재일 2015-03-13
댓글 0
-
문예미학에 대한 성찰은 시대를 초월한다. 글 관련 사색이나 작법은 역사 이래 철학자들의 최대 관심거리 중의 하나였다. 고대 그리스 시대 때도 마찬가지였다. 철학자마다 시작(詩作)에 관한 나름의 생각들을 풀어놓기를 즐겼다. 당시는 연극이 유행하던 시대였고, 그 중에서도 비극은 문학의 최고 형식이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각 철학자들의 `시론`은 대개 비극에 관한 사유와 작법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딱히 비극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문예 전반에 관한 사유서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근대 이후의 문학인들이나 철학자들이 지녔음직한 고뇌들이 그때 이미 넘쳐났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신기하다. 내게 있는 `시학` 관련 책은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플라톤과 호라티우스 그리고 롱기누스 등의
칼럼
등록일 2015.03.11
게재일 2015-03-12
댓글 0
-
의연하면 이기고 흔들리면 진다. 목표 앞에서 단단하면 끝내 살아남아 손을 흔들고, 어리바리하면 자기연민에 빠져 결국 손을 놓는다. 목표 지향적인 이들은 우선 스스로를 확신한다. 낯설고 두려운 것에 맞설 내공이 있는데다 마음이 단단하니 흔들림이 없다. 그들은 일단 목표를 정하면 저지르고 본다. 여행이든 글쓰기든 취업이든 마찬가지다. 머뭇거리며 시도하지 않았을 때의 후회나 자책보다 재지 않고 저지른 뒤의 공허와 허탈이 그래도 낫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성취감 뒤에 오는 공허일지라도 다다르지 못한 자책에 비하면 훨씬 나은 자긍심 아니던가. 하지만 마음이 무른 자는 그 마음을 굳히는 것부터 버겁다. 자기 확신이 따라주지 않으니 목표는 부정확하고, 실천하는 방법 역시 부실하기만 하다. 당연히 주변 환경에 쉽게
칼럼
등록일 2015.03.10
게재일 2015-03-11
댓글 0
-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타일러라는 미국 청년이 있다. 똑똑하고 야무진데다 선하기까지 한 그를 보노라면 엄마 마음이 되어 절로 흐뭇해진다. 웬만한 한국인을 능가하는 어휘구사력에다 지성과 감성까지 갖춘 그의 유일한 단점은 키가 많이 작다는 것이다. `키가 많이 작다`는 이런 판단이야말로 얼마나 부끄러운 행위에 해당되는지 타일러가 가르쳐준다. 그가 말한다. “어릴 때부터 키가 크지 않은 것에 대해 나쁜 감정이 없었다.” 라고. 우리와 문화가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타일러에게 단신 콤플렉스가 없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중적 잣대가 곧 가장 옳은 생각`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상태라면 그의 단신은 배려해야 할 사항이 되고 만다. 방송용 화보 촬영을 할 때 자신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소위
칼럼
등록일 2015.03.09
게재일 2015-03-10
댓글 0
-
“어느 날엔가 국가를 상대로 일을 하는, 잘나가는 회사의 직원인 한 친구가 내 월급이 너무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아레스, 당신은 착취당하고 있어요.`하고 그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실제로 착취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살면서 모든 사람들은 착취당하기 마련이므로 나는 허영과 영광과 경멸과 질투와 불가능으로부터 착취를 당하느니 차라리 직물 사업을 하는 바스케스 씨에게 착취당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에서 발견한 문구이다. 작가 자신을 투영한 베르나르두 소아레스는 고뇌하고 기록하는 영혼의 산책자이다. 같은 생각 앞에서 작가는 기록하고 독자는 공감한다. 그게 작가와 독자의 차이점이다. 공감의 독서만큼 값진 것도 없으니 이 경우 작가와 독자
칼럼
등록일 2015.03.08
게재일 2015-03-09
댓글 0
-
다른 입장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훈련이 인간사회만큼 더딘 곳도 없다. 세상의 반 이상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관념이나 시스템은 별 검증 없이 이상한 것으로 기정사실화되어 버린다. 가장 보편적 진리는 다양성임에도 독보적 천재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닫혀 있다. 천재성의 실천에만 주력하는 그들 남다른 삶의 방식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는 늘 역부족이다. 하지만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는다고 기계가 잘못이 아닌 것처럼, 평범한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가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다. 기계와 사람의 구조가 다른 만큼의 사람과 사람 사이엔 다양성이 존재한다. 몰두형 천재는 감정에 서툴 수밖에 없다. 모든 관심을 한 곳에 `몰빵`하다 보니 사회적 가면을 학습할 기회가 없다. 미화와 과장 없는 직설화법을 구사하는
칼럼
등록일 2015.03.05
게재일 2015-03-06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