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을 담아낸 ‘기생충’이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하다. 여전히 한국인들은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기생충’을 화제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우울하고 답답한 우리의 내면을 활짝 열어준 ‘기생충’이지만, 영화가 전달하는 주제는 무겁고 우울하다.세상의 부조리와 모순과 상처를 보듬는 장르로 나는 기록영화를 꼽는다. 그것은 필시 ‘송환’의 김동환 감독의 지론에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록영화가 세상을 바꾼다!” 2004년 개봉된‘송환’은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기록영
2020년 2월 10일 아주 반가운 소식이 태평양을 건너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과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것이다. 온종일 한국언론은 야단법석 북새통으로 시끌벅적하여 잔칫집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세계가 신음하고 있던 와중에 들려온 낭보(朗報)에 한국인 모두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참 좋았다.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재능을 선보인 봉준호는 ‘괴물’(2007)과 ‘설국열차’(2013)로 관객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문학교
세상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그리고 적절한 시점에 끝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밤과 낮의 교체, 사계절의 운항,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도 같은 궤적을 가진다. 생로병사로 점철되는 인생도 시작과 중간과 끝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유기체에 지나지 않는다. 만남과 작별에는 과정의 필연성이 내재해 있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필연 혹은 인과율의 거대한 손길이 잠재해 있는지도 모른다. 2019년 2월 18일 시작된 광주생활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경북대와 전남대의 교수 교환제도에 기초하여 1년 가까이 진행된 나의 광주 삶이 바야흐로
조상의 산소를 찾아 인사하고 묘소 돌보는 것을 성묘라 한다. 성묘는 설날과 한식, 추석에 주로 이뤄진다. 지난 설에도 나의 성묘는 어김없이 이어졌다. 서울 모친댁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음성군 생극 공원묘지에 19년째 누워계신 선친을 찾은 것이다. 급작스레 닥친 아버지의 별세로 인해 사촌형이 서둘러 구한 묘터가 공원묘지였다. 나는 기회 닿는 대로 그곳을 찾아 선친께 소주 한 잔 권하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설이나 추석 당일에는 그야말로 입추(立錐)의 여지 없을 만큼 인산인해다. 고속도로가 막히는 일이 다반사(茶飯事)여서 당일을 피해
세종은 젊어서부터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못했다고 한다. 2년 8월 29일 기록이다. 하지만 세종은 상사(喪事)를 당하면 짧게는 며칠, 길게는 한 달 넘도록 고기반찬 없는 소찬(素饌)으로 일관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수많은 고기로 넘쳐난다. 소와 돼지, 닭과 오리는 물론 바다에서 잡고 기른 허다한 어류가 밥상에 오른다. 5천년 한민족 역사에서 이토록 먹을거리가 풍요를 구가했던 때는 일찍이 없었다.새옹지마(塞翁之馬)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세상에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우리에게 자신의 몸을 내주고 불
더러 억장으로 취하는 때가 있다. 나이 먹고 몸이 부실한 것도 원인이겠으나, 강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술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하곤 한다. 주독으로 고단해진 육신을 추스르다 보면 성찰의 시간이 찾아온다. 구토와 오심으로 괴로워한 적도 있으나, 요새는 그런 일이 없다. 그것도 음주 행각으로 얻어낸 작은 지혜이거나 깨달음이려니 생각한다.나른해진 몸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지난 일을 회억하거나 흐뭇한 추억에 잠기는 날도 있다. 아마 그것이 음주 다음 날의 유쾌한 선물일 것이다. 온종일 빈둥거리면서 몸과 마음을 분망한 일상과 격
겨울비가 촉촉하게 내리던 1월 6일 월요일 저녁. 광주 동명동에 자리한 ‘서향재(書香齋)’에 도착한다. 서책의 훈향이 퍼져 나가는 집, 서향재. 이곳에서 30년 넘도록 시민들이 모여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고 토론해왔다고 한다. 한 세대에 이르는 긴 세월, 세 번째 월요일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향재 독서모임 이름이 ‘세월회’라고 말한다.그날 모임에서 나는 ‘유라시아와 격동의 20세기’라는 주제로 강연했다.유라시아를 횡단하는 포괄적인 인문학 서책을 기획하고 있던 터라, 그 일부를 파워포인트로 정리해 선보인 것이다
다시 새로운 해가 시작됐다. 21세기 스무 번째 새해가 떠올랐다. 해마다 12월 31일이면 수많은 인파가 동해로 달려 나간다. 지체와 서행을 반복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맹렬 기사들이 거리에 차고 넘친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 새해일출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이다. 길이 아무리 멀고 고단해도 그들의 바람을 꺾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그만큼 절실한 소망과 꿈이 있다는 얘기다.싫든 좋든 2020년은 시작됐고, 우리는 다시 새로운 길에 올랐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이 없으며, 길은 다시 다른 길과 이어지며 확장된다. 길을 걸으며 우리는 자연지리
어허! 하는 소리가 내면에서 울려 퍼진다. 한 해가 잠깐이었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게 되는 연말이다. 황금돼지띠라 해서 요란스레 시작된 기해년이 시나브로 저물어가는 시점.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커다란 바람과 꿈을 가지고 맞이한 대망의 2019년이 작별을 고하고 있다. 자기 나이만큼의 속도로 세월을 체감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겠다.1월 달력부터 돌아보니 신년벽두부터 분망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부친기일과 중고차 매매, 근대문화동아리와 설날일정까지 달력에 빼곡하다.그렇게 문을 연 기해년 1년을 광주에서 보내고 어느덧 대구로 귀환할
12·12 군사쿠데타 40주년이던 지난 12일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그레타 툰베리를 선정했다. 스웨덴 국적의 약년(弱年) 16세 소녀 툰베리는 특별한 이력의 소유자다.그녀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여성, 영국 ‘비비시’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100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툰베리는 세계적인 기후위기에 매주 금요일 학교를 가지 않고 스웨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다. 그리하여 세계 150개국 청소년들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각국
요즘 마음이 아주 무겁다. 즐거운 일이 있어도 흔쾌하지 않다. 오랜 세월 가까이 지낸 후배교수가 항암투병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30일 ‘담도암’ 4기로 각종 장기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은 그는 몸무게가 15㎏이나 줄었다고 한다. 그것도 부족해 5개월 예정의 기나긴 항암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요즘에는 10분 앉아있는 것도 힘들다고 한다. 그토록 활달하고 건강했던 50대 초반의 가장이 한순간에 고통의 나락에 떨어지다니?!울림 좋고 당당한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7월 중순 일이다. 울산에 일이 있어서 전화했을 때, 그는 두 아들
‘다이내믹 코리아’는 쉬지 않는다. 나라 안팎의 사정도 그렇거니와,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역동적이며 욕망에 들뜨고 미래를 기획하는 한국인! 그래서 영국의 좌파 저술가 마틴 자크는 에서 2050년 1인당 국민소득 1위로 대한민국을 꼽는다.그가 말하는 세계 1위 한국의 저변에 자리하는 것은 조지 소로스가 말하는 휴전선 철폐와 남북한 단일 경제공동체이리라.그것은 불과 30년 뒤의 일이다. 그것은 꿈도 아니고, 망상은 더더욱 아니다. 1960년대 세계 최빈국에서
야스나야 폴랴나에 있는 레프 톨스토이 생가에 녹음이 한창인 어느 해 7월, 오솔길을 걷노라니 목소리 들린다. “여기가 톨스토이 무덤이에요.” 순간 걸음을 멈춘다. 아무런 표지도 비석도 없이 관 모양의 직육면체가 초록의 풀로 덮여 있을 뿐. 일행은 잠시 숨 고르고, 나는 선글라스 벗고 고개 숙인다. 그것이 톨스토이 무덤임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무심코 지나칠 법한 수더분한 공간에서 인류 최후의 타이탄은 누워 있었다.“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크레타의 이라클리온에 잠들어 있는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묘비
1988년 햇살이 따사로웠던 4월 중순, 로렐라이 언덕을 찾아가는 길에 라인과 모젤, 란 강이 만나는 코블렌츠에서 중년신사와 대화를 튼다. 유럽의 시간은 영원히 사라진 것 아니냐는 나의 질문에 아니라는 답이 순식간에 나온다. “유럽은 한 지붕 아래!” 하고 그가 간명하게 말한다.장구한 세월 유럽은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각축을 벌이며 살아왔다. 특별한 절대강자 없이 전개된 피의 역사에서 ‘유럽은 한 지붕 아래’라는 전통이 세워진 것이다.‘유러피언 드림’에서 세계주의자 리프킨은 유럽이 공유하는 두 가지로 기독교와 계몽주의를 제시한다. 3
1989년 11월 9일 동서 베를린을 차단한 장벽이 무너진다. 1961년 이후 28년 만의 일이다. 유라시아 동쪽의 냉전 상징이 휴전선이라면, 서쪽의 상징은 베를린 장벽이다. 베를린 자유대학에 다니던 나는 장벽붕괴를 실시간 경험한다.유고슬라비아 공용어인 세르보-크로아티아어를 제3슬라브어로 배우던 나는 담당강사 우베 힌리히스 교수와 서베를린 중심가 쿠담에서 역사적인 장면을 대면한다.“오늘 저녁에 특별한 일 있어요?” “아니, 없는데요.” “그럼 나하고 시내 나가서 동베를린 사람들과 이야기해 볼래요?!” “그러죠.” 이런 대화를 주고받
인간의 이상한 심사 가운데 하나가 “남의 떡이 커 보인다!”일 것이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이 더 크고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내 손의 새 한 마리가 숲속의 두 마리 새보다 값지다”는 서양속담이 있지만, 우리는 숲속의 두 마리마저 욕망한다. 인간이 탐하는 무한욕망을 지적하는 수많은 경구와 거룩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자(他者) 소유의 대상을 부러워하는 못난이다.얼마 전에 전남대 교수들과 경북대와 전남대를 비교하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핵심은 어디가 더 좋은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거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 총성이 울려 퍼진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이다. 안 의사가 발사한 세 발의 총탄에 맞은 이토 히로부미는 20분 만에 절명한다.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수행하던 3인의 일본인을 추가 저격한 후 “대한만세!”를 외치며 현장에서 검거된다.안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3월 26일 ‘여순(旅順)감옥’에서 순국한다. 거사 이후 꼭 5개월 뒤의 일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 총성이 울려 퍼진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와 차지철을 저격한 것이다.
지난 10월 18일 전남대 ‘김남주 기념홀’에서 ‘영호남 지역담론과 대학의 역할’을 주제로 ‘제1회 영호남 교류 학술대회’가 열렸다. 전남대 박구용 교수,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황지우 시인과 필자가 발제를 맡았다. 오후 1시 반부터 시작한 학술대회는 5시 20분까지 이어지면서 지역감정과 지역갈등에 대한 다채로운 논의가 오갔다.남북이 분단된지 70여 년이 흘렀고, 동서분열까지 더해지니 더욱 고약한 노릇이다. 학술대회에서 지역감정을 논의하게 된 원인 제공자는 여러분도 익히 아시는 한국 제1야당 원내대표다. “문재인 정권은 광주일고 정
“실제 내 생활은 너무 구렁텅이인데 여기 바깥에서는 밝은 척하는 게… 너무 이게 사람들한테 내가 거짓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든 다 뒤에 어두운 부분이 있는데, 바깥에서는 안 그런 척하고 사는 거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살지 말라 해서. 그냥 되게 양면성 있게 살아가고 있어요. 지금.” 10월 14일 스물다섯 나이로 세상과 작별한 설리가 ‘악플의 밤’ 방송에서 남긴 말이다.공감 가는 말이다. 세상에 그늘진 구석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솔직하게 터놓고 살기 어려운 사회가 우리나라다.
요즘 세간의 관심은 서초동과 광화문이 대표하는 광장이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으로 촉발된 대중과 정파의 대립이 도달한 종점이 서초동과 광화문이다. 그를 둘러싼 찬반으로 진영이 갈린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빌미가 된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가진 자들의 계급 내리물림이 얼마나 우심한가를 보여준다. 신분제 사회가 아니건만 한국에서 신분상승은 조선시대처럼 불가능해 보인다.그러나 빙산의 일각으로 본질적인 문제를 가린다면 도덕의 잣대로 정치를 가늠하는 우행(愚行)이 될 것이다.대중이 분노하고 허탈해하는 지점은 ‘좌파가 그럴 수 있나’ 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