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의 오지(奧地) 중 오지’로 불리는 봉화군.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에도 봉화는 한적한 여유로움을 추구하는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북적거리는 인파와 현란한 네온사인을 피해 유년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아 있는 ‘시골 마을에서의 며칠’을 꿈꾸던 관광객들은 봉화군의 피할 수 없는 매력에 빠졌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부산과 서울, 대구와 광주 등 인구가 최대 1천 만 명에서 최소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에서만 살아본 이들에게 겨우 몇 만의 주민들이 1970~80년대의 따스한 공동체적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봉화군은 그 자체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벽과 바닥엔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두 청년이 입은 옷도 얼핏 보기에 비싼 건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밝고 환하다. 꿈이 있기에 가질 수 있는 미소다. 월세가 15만 원이라는 포항 꿈틀로의 허름한 ‘뮤직 테라피(Music Therapy·음악을 통한 치유)’ 작업실. 하지만 거기선 15억 원, 아니 150억 원의 원대한 꿈이 움트고 있다.김명진(29)과 윤관(28)은 그럴듯한 학력도, 사회적·문화적 배경도 갖추지 못한 젊은 뮤지션이다. 그럼에도 자긍심과 자존심은 어지간한 유명 음악인도 흉내 내기 어려울
인간에겐 지금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고난이나 어려움이 세상 무엇보다 크고 아프게 느껴진다. 그건 사람의 한계이기도 하다.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 2021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그보다 더 큰 비극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당연하다.그러나 과연 그럴까? 지금 숨 쉬며 살아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아득한 먼 옛날. 문자로 기록되지도 못한 시절부터 인간은 언제나 고통과 수난 속에서 살았다. 그걸 당신이 인정하건 그렇지 않건.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더 멀리는 중동과 아프리카에 고대국가가 존재했다. 의학기술이 현대처럼 발
서른셋.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은 나이도 아니다.청년의 도전의식을 가진 33세 여성이 자신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영업해온 낡은 숙박시설을 깔끔하게 리모델링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신세대 숙박업소를 만들었다.포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죽도시장 안에 자리했던 대구여인숙을 ‘오다가다 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시킨 이현진 대표가 바로 그 사람.21세기를 사는 20~30대 한국 청년들 중 해외여행 한 번 해보지 않은 이들을 이제 찾아보기 쉽지 않다.그들이 유럽 여행에서 주로 이용하는 숙박시설이 바로 게스트하우스.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
지난해 초. 갑작스레 출현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인류에게 환멸과 공포를 가져다줬다. 동시에 지구의 주인인 것처럼 오만하게 행세했던 인간이 실상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무섭게 가르쳤다.그러나 100가지 나쁜 점 속에서도 굳이 찾아내자면 그 가운데 한두 가지 좋은 점은 반드시 있는 법.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한 해에 수백 만 명이 해외여행을 떠나고, 그보다 몇 배 더 많은 숫자가 국내관광을 하는 한국. 하지만, 지난해부턴 외국은 물론이고 이웃 동네로 가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2020년
국토교통부 노동조합 위원장 최병욱(49)씨의 고향 사랑은 유별나다. 그의 ‘카운터 파트너’라 할 전·현직 장관들은 한 명 빠짐없이 포항 호미곶의 일출을 찍은 사진을 취임 선물로 받았다. 최병욱 위원장의 고향은 포항이다.최 위원장은 직장이 있는 세종시에서 계속 살지는 않을 생각이다. 항상 일에 쫓기면서도 거의 매주 빼놓지 않고 포항행 KTX 열차에 오른다. 부모님과 자식 셋이 생활하는 고향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고, 머리 아픈 문제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고 한다.만 19세에 군대에 갔고, 만 21세에 공무원이 됐다. 그로부터 28
‘코로나19 사태’가 지구를 덮친 지난해. 사람들은 죽음이 삶과 얼마나 가까운 곳에 도사리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동양인과 서양인, 노인과 청년, 여자와 남자 구분 없이 언제든 다가설 수 있는 절멸의 공포.그 속에서 우리는 발견했다. 삶은 죽음 속에, 죽음은 삶 속에 웅크리고 있으며 결국 살아간다는 건 죽음을 향한 과정이란 걸. 슬프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그러나, 공포가 모든 일상을 온전히 파괴할 수는 없는 일. 인간이 죽을 줄 알면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건 자신이 소멸하는 존재라는 걸 가끔은 잊고, 때로는 의도
사실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세상은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다.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이 더 크고 넓다.인간이 살아가는 공간 곳곳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경우가 흔하다. 오죽하면 바로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의 눈을 ‘심미안(審美眼)’이라고 하겠는가.여기 시각장애인들의 심미안을 열어 눈뜬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보다 더 환한 세계와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안무가가 있다. ‘룩스-빛 무용단’ 김자형 단장이다. 발레 전공 무용학원 강사로 일 해오다결혼 후 늦깎이 대학원 공부에 매진10년전
한국 사람들에게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대략 50~60개 나라를 여행한 선배와 영덕의 해변을 돌아본 적이 있다.1990년대만 해도 한국인 관광객을 찾아보기 어려운 외국의 여행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이 선배가 필리핀 보라카이의 화이트비치를 찾았던 땐 그 아름다운 섬의 80% 이상 지역이 전기 없이 살았다고 하니. 최근엔 어떠냐고? 필리핀 대부분의 해변은 거의 부산 해운대 수준으로 한국인이 넘쳐난다. 거기에 중국인들까지 합류한 게 이미 오래 전이고.사파이어 색채로 빛나는 태평양의 낭만? 이제 보라카이엔
세련된 옷차림에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얼굴. 어떤 질문에 답하건 거침이 없고, 도시적 감수성이 곳곳에서 감지되는 사람.그럼에도 “나는 농민의 딸이에요. 실제로 여든이 넘으신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포항시 남구 연일읍에서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어요. 농어민들이 잘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겠죠”라고 말한다.요리연구가이자 ‘한국 전통음식 홍보 대사’라고 부르면 될 듯한 신나희 씨 이야기다.누구나 그렇듯 생에는 여러 사연이 있기 마련. 신나희씨 또한 몇몇 일을 하던 시기를 거쳐 2021년 현재는 삶을 3번째 방향전환해 전통요리를 만들고
노벨상을 받은 미생물학자와 세균학자, 방방곡곡에 이름을 알린 미래학자와 ‘명의(名醫)’로 칭송받던 의사들…. 그들 중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또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해 1년을 끙끙댔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이야기다.지난 2020년은 바로 그 바이러스가 지구 전체를 공황과 공포 속으로 몰아놓은 해였다. 누구도 이 명백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첨단화된 의료 시스템과 최고의 의료진을 갖춘 미국과 서유럽부터 속된 말로 ‘박살이 났다’.전 세계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던 휘황한 도시 뉴욕과 파리, 로마와 런던에 코로나19 바이러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다면 외출을 자제하는 사람들은 뭘 하며 지낼까? TV 보는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는 언론 보도를 가끔 접한다. 나쁘지 않다. 인간에겐 감각적 즐거움의 충족도 필요하니까.하지만 ‘이성적 채움’을 원하는 이들에겐 TV 앞에서만 머무는 게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닐 듯. 이럴 때 독서만한 게 있을까? 시집을 읽는다는 건 비어가는 영혼의 곳간을 채우는 행위가 분명하다.최근 시인 김선향(54)이 2번째 시집을 펴냈다. 한국 나이로 마흔 살에 늦깎이 등단했고, 첫 시집을 상재한 지 4년. 누
어쩌다 보니 40여 개 나라를 여행했다. 세칭 ‘돈 많고 시간 넉넉한’ 팔자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다.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해 몰락한 조부와 세상에 대한 불평과 분노를 가슴에 안고 일찍 죽은 선친을 가진 가난한 노동자지만, 끽해야(?) 4만km가 조금 넘는 둘레를 가진 ‘내가 태어난 별’ 지구를 한 바퀴쯤은 돌아보고 싶었다.서른 즈음부터 1년이면 1~2번, 많게는 3번까지 다른 나라로 향하는 비행기나 배에 올랐다. 짧게는 3~4일에서 길게는 10개월의 기간. 그런 장단기 여행자의 삶이 20년 가까이 이어졌다.2020년은 특별하고
‘기자 유성운’을 처음 만난 건 13년 전 몽골 울란바토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동아일보에 막 입사한 신입이었던 그는 용모가 반듯했고 예의가 깍듯했다.3박4일의 일정을 함께 하며 곁에서 지켜보니 취재에도 열심이었고, 문장도 탄탄했다. 이른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두루 갖춘 청년. 역사를 전공했다는 유성운은 기자보단 학자, 또는 소장 연구자에 가까운 사람이란 인상기가 남았다.그 주관적 판단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긴 그는 정치부에서 일하며 ‘유성운의 역사·정치’라는 글을 연재했다. 기존의 정치 기사에서는 볼
“눈 한 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생이 저물었구나”라고 탄식한 철학자가 있었다. 그만큼 세월은 빠르다. 떠들썩하게 시작된 2020년이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스산한 바람 속에서 어깨 움츠릴 겨울이 코앞이다. 쓸쓸한 날엔 그 쓸쓸함을 억지로 숨길 필요가 없다. 쓸쓸함을 즐기며 한껏 고독해지는 것도 겨울을 이기는 좋은 방법. 여기 막막하고 외로운 계절을 함께 걸어줄 좋은 친구가 있다. 바로 시인 허연의 시집과 산문집이다. ▲책과 함께 살아온 사내의 고백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오래전이 아니다. 20세기엔 ‘발군(拔群)’이라 불러도
“상상력이 세상을 바꾼다.”68혁명 당시 프랑스 파리 대학 담벼락에 붙었던 격문이다. 역사학과 철학에 공학과 IT기술이 결합하고 여기에 상상력까지 더해진다면 신라의 유적과 유물은 어떤 모습으로 현대인들 앞에 나타날까?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지난달 31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주의 재발견-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 초청강연회에서 기발하고 흥미로운 상상 하나를 이야기했다.“지금으로선 복원이 힘든 황룡사와 9층목탑을 해가 진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홀로그램(Hologram·3차원 입체 영상)으로 떠오르게 하면 어떨까? 한국
“동쪽과 서쪽을 지키듯 웅장하게 선 석탑과 그 주위에 싱싱한 생명력으로 빛나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없는 감은사 절터를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습니까?”지난달 31일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 초청강연회를 위해 경주를 찾은 유홍준(명지대 석좌교수) 전 문화재청장이 고사(枯死) 직전의 위기에 처한 감은사지 느티나무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감은사는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호국의지가 담긴 절인 동시에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등 빼어난 신라의 불교 유물이 다수 발견된 예술적 사찰.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세간의 풍문은 과장이 아니었다.경북도와 경주시가 주최하고 경북매일신문이 주관한 유홍준(명지대 석좌교수) 전 문화재청장 초청강연회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에 참석한 청중들은 때로는 진지하게, 가끔은 소리 내 웃으며 유 교수의 강연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다.지난달 3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 3층 강연장은 시작 전부터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지키며 소독과 사전 신청 여부 확인을 마친 250여 명의 청중들은 부푼 기대감으로 강연을
빼어난 문화유산 전문가의 안내로 신라의 유적과 유물이 지닌 가치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의미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오는 31일 오전 10시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주최하고, 본사가 주관하는 유홍준(명지대 석좌교수) 전 문화재청장 초청강연회가 경주화백컨벤션센터 3층에서 열린다.본사는 올 한 해 ‘경주의 재발견-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이란 타이틀로 15회에
산마다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어 장관인 시기다. 하지만 아직도 꼬리를 내리지 않은 ‘새로운 역병’ 코로나19로 인해 산 속 조용한 절에서 가을을 즐기기가 쉽지 않다. 그 아쉬움을 달래줄 방법이 없을까? 궁여지책으로 영민한 시인의 산사 기행문을 꺼내 든다. 그가 안내하는 만산홍엽(滿山紅葉)의 10월 속으로 들어가 보자.▲적멸의 문장으로 독자들을 설레게 할 ‘피었으므로, 진다’시인 정호승은 책을 접하고 이런 말을 남겼다.“여느 절 여행기와 달리 불교에서 최고의 성지로 꼽히는 5대 적멸보궁과 3보 사찰 그리고, 3대 관음성지 등을 골라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