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두렁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높고 푸르다. 새떼들이 구름 사이로 미끌어지듯 날아가고, 건너편 대숲은 바람 따라 초록 물결을 일으킨다. 논 가장자리에는 백로가 부리에 미꾸라지를 문 채 한가로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농촌이 빚어내는 정겨운 풍경을 정독하며 리듬감 있게 걷는 내 마음이 흐뭇하게 젖어든다.큰형님이 조카 결혼식을 앞두고 기별을 했다. 잔칫집에 미리 와서 음식 장만을 돕고, 하룻밤 자며 동서지간에 정도 나누자고 했다. 흔쾌히 가겠다고 했지만, 뒤돌아서니 걱정이 되었다. 동작이 굼뜨고 일머리를 모르는 내가 큰일 치르는데 도움
영문 이메일을 받았다. 어마어마한 내용이다. 만일 사실이라면, 나는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다. 정말 행운의 소식이면 좋겠다.이메일은 영문 ‘디어 위너(Dear Winner)’로 시작되었다. ‘친애하는 당첨자’라니, 우선 기분이 좋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내용을 대충 살폈다. 내 이메일 주소가, 올해 자사의 이 메일 프로모션에 당첨되어 축하한단다. 당첨금이 원화로 환산하니 무려 150억 원이나 되었다. 일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전체 내용을 빨리 알기 위해, 인터넷의 영문번역기에서 전문을 우리말로 바꿔보았다. 따로 추첨에 참여하거나,
가을은 축제가 많은 계절이다. 축제기간 동안 경주는 능위에 늙은 느티나무가 멋진 봉황대에서 여러 행사가 있다. 금요일 저녁마다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가수들을 초청해 콘서트를 연다.이번 초대 가수는 최백호다. 그가 온다는 광고는 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달력에 큼직하게 표시하고 함께 갈 동생과 약속도 해두었다. 기다리는 며칠 동안 여고생이라도 된 듯 설렘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나를 누가 보았다면 발이 10센티는 붕 떠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리라.당일, 봉황대로 향하는데 소나기가 쏟아졌다. 갑작스런
이른 새벽, 흥해 용연지에 도착했다. 새벽바람의 기척으로 해가 물속에 풀어지자, 졸고 있던 물고기들이 햇귀와 타전을 시작했다. 물빛 그리움 하나 가슴에 구겨 넣고 찾아왔더니, 내 마음에 곰비임비 막혀 있던 응어리들이 무게를 덜어냈다.수풀 사이에서 한 아저씨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물속을 응시한 채 꼼짝 않고 앉아 있어 조심스레 가까이 가보았다. 그물망에 작은 물고기 서너 마리가 파닥거렸다. 은빛 물고기를 바라보는데 문득 친정아버지가 떠올랐다. 검게 탄 얼굴로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붕어를 낚던 생전의 아버지 모습이 오롯이 겹쳐졌다.어
얼마나 아팠을까. 나 같으면 까무러쳐 깨어나지도 못했을 테다. 그런데도 다시 몸을 추스르고, 연녹색 맑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이 의젓해 보인다. 도대체 생명이 무엇이기에, 저토록 억척스러운가.며칠 전 땀을 훔치며 이 곁을 지나갈 때다. 방금 풀을 베었는지 향긋한 풀냄새가 팔월 상순 대낮의 더위를 봄 나비 날개처럼 팔랑팔랑 날려버렸었다. 이 녹지 곁을 하루에 두서너 번은 지나다닌다. 출퇴근과 점심 먹으러 갈 때 다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엔 주로 자전거로 오가지만 그 외의 철엔 걸어서 지나간다.초등학교
요즈음 중부 지방에는 폭우로 내리붓는 장맛비에 온통 물난리인데 여기 포항은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계속되고 열대야가 밤잠을 못 이루게 한다. 코로나19로 답답해진 마음에 밤바다를 거닐고 싶어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산책을 나가본다. 바닷가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아파트를 나서면 벌써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에 와 닿고, 골목길 빠져 해변 도로를 걸어보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예년 같으면 방학에 피서철이라 발 디딜 틈도 없을 인파가 저 바닷가 파도처럼 일렁일 텐데…. 멀리 까만 바다 끝에 반짝이는
포항우체국 풍경이 역동적이다. 우편번호를 찾는 눈길과 주소를 쓰는 손길이 분주하다. 오고가는 발길이 끊어지지 않자 우편물은 자루 가득 담긴다. 분분한 사연들이 제비 떼처럼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문득, 며칠 전 읽었던 신문 기사가 떠오른다. 포항우체국은 1905년 6월 9일 연일임시우편소로 개소한 이래 올해 115년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포항우체국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오랜 세월동안 소식을 전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든든하게 수행하고 있다.사람들의 모습을 눈여겨본다. 상기된 얼굴로 편지를 들고 있는 그들에게서 달콤 쌉싸래한
광복이의 첫 거울 뽀뽀가 삼삼하다. 동영상 안 거울에 비친 녀석의 얼굴 모습이 마음을 종잡을 수 없게 한다. 콕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온갖 느낌이 한순간에 파도로 몰려오니 말이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그 무엇이, 마음 밭에서 죽순처럼 돋아난다.동영상을 켜기 전 정지 화면은 이렇다. 녀석은 왼발을 쪼그리고 오른발은 주저앉은, 반 쪼그려 앉은 자세를 거울 앞에 취하고 있다. 얼굴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향하고 있다. 그 표정이 너무 자연스러워 천진하면서도 진지하다는 말밖에 더할 수 없다. 왼손은 손가락을 펴서 거울에 대고
한 끼 식사를 해결할 간단한 방법을 찾는다. 아무리 찾아봐도 배달음식만한 게 없다. 습관적으로 메뉴를 훑어보고 결국 짜장면을 주문한다. 짜장면은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문득 생각나는 음식이기도 하다.버스를 타고 싶던 때가 있었다. 하루 왕복 두 번, 집 앞 신작로를 지나는 버스에는 안내양이 있었다. 한손을 밖으로 내밀어 차 옆구리를 탁탁 치고 ‘오라이’ 하면 찰떡같이 알아듣고 출발했다. 차를 타고 읍내에 다녀온 친구들이 먹은 자랑, 본 자랑을 늘어놓으면 부러움에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을 기다리며 마음만 실어 보낼 뿐이었다.초등학
온종일 내리던 장맛비가 살짝 그치고 창 넘어 들어오는 바람이 왠지 시원해서 오랜만에 마을 뒷산을 산책하고 싶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려다가 우편함을 보니 엽서 같은 것이 있기에 뭘까? 하고 꺼내보니 색다른 엽서다. POST CARD 글자 옆에 전자우표가 붙어있고 보내는 사람은 ‘外洞휴게소에서 河’(하영-나의 아호)이고 받는 사람도 우리집 주소에 내 이름으로 되어있다. 내 글씨, 내가 보낸 엽서다. 어! 내가 언제 경주 외동휴게소를 갔었지? 이상하여 뒷면을 보니 휴게소 사진 옆에 간단한 글이 있다. ‘비 내리는 남해여행,
등산길에 뭔가 이상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데도 땅거미가 내릴 것 같이 주위가 시나브로 어스름해지니 말이다. 오후 네 시가 지났지만 하지라는 날을 고려하면 있을 수 없는 징표(徵標)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알아볼 마음을 먹지 않고 덤덤하게 넘어갔다. 밤에 인터넷에서 오늘 오후 부분일식이 있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숲속에서의 징표가 그 의미를 찾으며 의문이 풀렸다.부분일식 징표였는데 내가 너무 무심히 지나치고 말았다는 자각이 뒤따랐다. 어릴 때만 하더라도 시골에는 라디오도 흔치 않았다. 날씨예측도 징표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
코로나19 감염증 재확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인지 확진환자가 늘고 있다. 며칠 잠잠하던 코로나 관련 뉴스를 보면서 일상으로 돌아가려나 싶어 한껏 부풀었던 기대가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최초 환자 발생으로부터 4개월이 훌쩍 지나도록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평범한 일상은 더욱 기약이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이토록 간절한 일이 될 줄이야. 자유롭던 만남이 꿈결같이 아득하다.사람이 그리워 텔레비전을 켠다. 화면을 통해 만나는 사람이 반갑다.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을 즐기지 않는 내가 드라마를 챙겨보고 토
6월 초에는 집안에 큰일이 있어서 시골집에 자주 가지 못했다. 시골이라지만 포항시 북구 기계면 외곽에 마음의 쉼터로 마련한 조용한 한옥이다. 마당은 잔디가 곱게 깔렸고 담을 따라 아름드리 돌로 아름답게 둘러싼 작은 화단에는 많은 나무와 꽃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어저께 비가 온 후, 단오날도 다가오는지라 마음도 정리하고 집도 살필 겸 갔었다. 더위가 성큼 온 듯한 날씨에 읍내를 지나 작고 조용한 마을의 골목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은 잡초들의 환영이 눈에 띈다. 좁은 골목 끝 내가 손수 만든 나지막한 대문 앞에 서니 빨간
쪽지가 잘 나오지 않는다. 앞선 이들은 한 번에 잘도 집어내던데, 나는 그러지 못하다. 아마도 다른 쪽지들보다 깊게 꽂혀있거나, 약하게 뽑았을 것이다. 두 번째 당겨도 역시 마찬가지다. 당황스러워지며 뒤에서 기다리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왼손 엄지와 검지에 힘을 더 주어 뽑아낸다. 세 번 시도 끝의 성공이다.삼세번 당겨 손에 잡은 불혀 모양의 연녹색 성령칠은(聖靈七恩) 낱말쪽지…. 어느 은혜를 선택했을까 아니, 주어졌을까. ‘코로나 19로 모두가 어렵게 사는 지금 내게 긴요한 은총은 무얼까’하고 마음이 자문하지만, 미사 중
봄맞이 행사를 하는 동네 꽃집에서 화초를 골라보았다. 욕심을 내다보니 주인이 끼워준 꽃까지 합해 열 개가 넘었다. 발렌타인자스민, 스투키, 산세베리아, 크로톤 등 이름표 하나씩을 달고 꽃집 직원 품에 안겨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설레고 반가웠다.새 식구를 들이면서 베란다 터줏대감들을 구석으로 밀어냈다. 봄이 다 가도록 연분홍 꽃을 피우던 삼단 철쭉, 노르스름한 줄이 예뻐 자꾸 눈이 가던 관음죽, 한결같은 모습에 내가 특히 좋아하는 군자란도 예외가 아니었다.새로 들인 화초에 정성을 쏟느라 하루가 바빴다. 아침저녁으로 물때를 살피고 햇
아파트 생활을 하다 보면 편리한 점이 많다. 매달 우편함에 꽂혀있는 관리비 명세서를 가져와서는 거의 내용을 살펴보지 않고 모아 두지만 관리비는 자동이체되어서 이제는 거의 무관심에 이르렀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나대로의 가계부를 정리하며 생활에너지 사용에 대한 부분만 살펴보고 있다.가계부에는 아파트관리비 부분이 있고 그 항목에는 전기, 수도, 가스 및 통신료 등이 있다. 우리 집의 생활에너지 사용 추이를 알아보겠다는 것인데 전기는 전력량(KWh)과 요금, 수도는 사용량(t)과 요금, 가스료와 통신료는 금액만 적어나가고 있다.그중에서
마르첼리노….오월을 어떻게 지내고 있나. 삼월인가 했더니 눈 깜짝할 새 사월이 가고, 오월도 하순에 접어들고 있다. 연녹색 나무가 순식간에 신록으로 변해 눈앞에 넘실댄다. 자연은 예나 다름없이 묵묵히 제 길을 가고 있다. 그런데 나의 오월은 어디를 걷고 있는지 헷갈린다.가만히 올봄을 되돌아본다. 내 봄은 별과의 만남으로 시작되었지 싶다. 춘분이 한 달가량 남은 날이었지. 가로수 보호대 사이를 비집고 올라와, 사뿐히 내려앉는 별을 보듬고 세상을 비추는 새 생명을 만난 거야. 대낮 땅바닥에서 하얀 별빛을 온 누리에 비추는 앙증스러운 존
마늘을 얻었다. 김장철도 지났고 햇마늘이 날 때도 아닌지라 잠시 망설이다가 받았다. 한손으로 들어도 빈 바구니 같았다. 푸석푸석 먼지가 나는 마늘 한 접을 집으로 가져와 베란다에다 두고 며칠 밤을 지냈다. 빨래를 널고 청소를 하면서 눈에 띌 때마다 근심덩어리였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갈무리를 해 두어야만 될 것 같았다. 미루어두면 버려야 할 형편이 될 일은 뻔했다. 친정어머니가 생각났다.어머니는 김장철이 되면 집에서 가꾼 마늘을 틈이 날 때마다 햇살이 잘 드는 마루에 앉아 장만하셨다. 깐 마늘을 수북하게 모아 두었다가 김장양념장을
석가모니 부처가 태어나고 예수가 부활한 성령의 달이라 해도 코로나에 묶여버렸던 ‘잔인한 달 4월’은 지나갔다. 시인 엘리엇은 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는 4월’을 잔인하다 했을까? 봄비에 깨어난 뿌리의 힘으로 라일락 꽃향기 퍼드러진 앞뜰에는 계절의 여왕 오월이 화려한 옷을 입고 왔는데….나뭇잎은 어린아이의 손과 같이 부드럽고 하늘은 가끔 빗줄기를 뿌려 대지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형산강변에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고 초하의 들머리에는 농부가 밭을 갈고 씨 뿌리는 계절, 여름을 준비하라는 입하가 있고 보리 이삭이 누렇게 익어
마스크를 쓰고 철길 숲 산보에 나섰다. 봄을 타는지 몸이 나른해서다. 늘 가던 코스 따라 초등학교를 가로지르려 열린 문을 들어섰다. 교사(校舍) 앞 화단에 선 매실나무는 열매가 토실토실 도토리만큼이나 컸다. 옆의 능금나무에는 하얀 꽃잎이 자태를 뽐내며 일부 꽃은 지고 있다. 어느새 봄이 매우 짙어졌다.저만치 떨어진 주차장에 승용차 한 대만 외롭다. 사람이라곤 그 앞으로 쓰레기 정리하는 분 한 명뿐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휴일이면 제법 많은 이들이 운동장을 걷거나, 녹지의 쉴 곳에서 삼삼오오 이야기꽃이 피어나곤 했었다. 이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