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를 마무리 하면서 정리하는 시간의 마지막 순서로 신라유적 가운데 경주 남산의 유적이다. 남산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지만, 동서로 가로 지른 길이가 약 4km, 남북의 거리는 약 8km에 40여 계곡이 있고 수많은 불교유적이 산재되어 있으며, 여러 전설과 설화들이 깃들어 있다. 최소 120여 곳의 절터와 60여 구의 불상, 60여기의 불탑이 산재해 있고, 지금도 불교유물들이 발견되고 있어 산 전체가 불교문화의 보고이자 야외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구름에 내려앉은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칠불암 뒤쪽으로 5분여 오르면 몇 사람 정도 겨우 설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앞쪽에 암벽이 있는데 이 암벽에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보살상이 새겼다. 이 보살상은 보살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듯이 만들어
답사기 정리 세 번째로 신라유적의 순서이다. 신라유적은 크게 남산 유적과 그 외 지역으로 나누어 정리하려 한다. 천년고도 경주는 전체가 유적으로 이뤄진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소개하도록 하려 한다. 신라-당군의 전쟁시기에 조성된 `안압지` 안압지는 경주박물관 29기 수업이 시작되고 처음 답사를 간 곳이었다. 평소에도 경주를 수없이 찾지만, 안압지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이었다. 그런 문외한에게 답사를 통해 설명을 들으며 새롭게 다가온 안압지의 본 모습은 큰 감동이었다. 지금의 안압지(雁鴨池)는 674년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정벌하고, 당군과의 막바지 전쟁이 한창인 시기에 조성됐다. 신라시대에는 월지(月池)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는데, 신라의 패망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
국립경주박물관의 박물관대학에서 다닌 1년여의 답사 기간동안 우리 지역을 제외한 곳의 단체 답사는 세 차례가 있었다. 그중 한번이 지난 회에 종합적으로 소개했던 고구려 유적답사를 갔던 해외 답사였고, 두 번은 거리가 멀어 개인적인 답사가 쉽지 않은 전라도, 충청도 지역의 백제 유적 답사였다. 답사기 연재 막을 내리면서 갖는 총정리 두 번째로 오늘은 백제 유적 가운데 개인적으로 큰 감동을 받았고,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큰 백제인의 흔적가운데 몇 가지를 다시 한 번 소개 하려한다. 장인의 숨결 살아 숨 쉬는 `금동대향로` 1993년 12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돼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문화와 백제 장인의 숨결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유적으로 그 가치도 이동이 가능
주몽·광개토태왕… 웅대한 민족의 기상 숨쉰다 지난해 3월부터 격주로 연재되었던 이용선기자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막을 내립니다. 앞으로 4회에 걸쳐 그동안 연재되었던 신라의 문화유산과 중국에 남아있는 고구려유적, 호남지방의 백제유적 가운데 대표적이고 인상깊었던 유적들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다시 한번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많은 관심과 조언을 보내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008년 북경올림픽의 열기로 지구촌이 뜨겁게 열광하고 있을때, 중국에 남아있는 우리의 문화유산, 하지만 지금은 중국의 눈치를 살피며 답사를 다녀야 할 처지에 놓여진 고구려유적 답사에 나섰다. 먼길을 떠나 힘들게 찾아간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단체사진을 찍는 것도 중국 관리인들의 눈치를 살피며 해야하는 서글픈 현
■오어사 신라 진평왕때 창건… `삼국유사`저자 일연도 머물러 고려범종·원효대사 삿갓 등 전시… 주변 등산로 `인기`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운제산의 동남쪽 기슭에 아담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주는 사찰이 있는데, 바로 신라시대 고승인 원효대사와 헤공선사의 일화로 절 이름이 바뀐 오어사(吾魚寺)다. 오어사가 자리한 운제산은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운제산과 오어사(창건 당시의 항사사)에서 수도하면서 구름다리를 타고 넘나들었다고 해서 `운제산(雲梯山)`이라고 했다는 설과 신라의 제2대 남해왕비인 운제(雲帝)부인의 성모단이 있어서 운제산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는데 어느 쪽이 확실한지는 밝혀진 바가 없고, 다만 후자의 설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579년~632년) 때 창건하여
언덕 위 절터에 5층 석탑 두 기·불상대좌만 남아 있어 사자상으로 표현된 `신수상` 신라석조예술 극치 보여줘 경주 불국사에서 시작되는 토함산 순환도로를 따라 석굴암에서 감포방향으로 가다 보면 계곡 건너편 언덕 위에 5층 석탑이 보인다. 지나면서 보면 탑신부만 보이는데 이 탑이 바로 국보 제236호인 월성 장항리 사지 서(西) 오층석탑이다. 도로 옆에 조성한 주차장 아래로 향한 돌계단과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 5층 석탑이 있는 장항리 절터로 올라가는 길을 만들었지만, 낙석이 계속 발생하여 지금은 비탈면 보수공사 중이다. 주차장에서 감포 방향으로 50여 m 정도 더 내려가면 임시주차장이 있는데 이곳에 주차하고 올라가면 된다. 장항리 절터는 토함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두 계곡과 만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93년에 발행한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편집자가 조건 없이 허락해준다면 감은사에 대한 답사기를 원고지 처음부터 끝까지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이렇게 쓰고 싶다고 하였다. 지금도 찾는 이들이 많지만, 대구-포항 고속도로가 생기기전에는 대구와 인근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바다 중의 한 곳이 문무대왕암이 있는 경주시 감포읍 봉길리 일대였다. 경주시가지에서 보문단지와 덕동 댐을 지나 봄. 여름에는 신록에 취해,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에 취해 산길을 달리다보면 어느새 곧게 뻗은 감포읍의 지방도와 만나게 된다. 시골에서는 보기 드물게 곧게 뻗은 도로여서 20대에 친구들과 이곳을 찾을 때는 우리끼리 `감포 아우토반`이
` 2대에 걸쳐 천자 배출` 천하의 명당 흥선대원군이 가야사에 불지른 후 석탑 부숴 묏자리 만들어 묘 옮긴후 7년뒤 `고종` 탄생… 완벽한 `배산임수` 최고 명당 명당(明堂)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에 썩 좋은 자리`, `풍수지리에서 후손에게 장차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는 묏자리나 집터`로 나와 있다. 이번 충남 지역 답사의 마지막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의 묘를 찾았다. 흥선대원군은 잘 알려진 대로 왕족에 대한 안동김씨의 감시와 멸시가 심해지자 파락호(破落戶)로서 궁도령(宮道令)이라는 비칭(卑稱)으로까지 불리며 안동김씨의 감시를 피하는 한편, 철종이 후사(後嗣)가 없이 병약해지자 조대비에 접근하여 둘째 아들 명복을 후계자로 삼을 것을 허락받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