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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뭅니다. 당신의 사랑은 올 한해도 과분했습니다. 십 년 만의 강풍에 뒷산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던 당신의 간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강풍이 아니라도 원래 산은 조금씩 변해왔겠지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구요. 어쩌면 거기 드높이 서 있는 산일수록 그 속은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고, 폭포수처럼 치솟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산은 변함없이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우리의 어리석은 믿음 때문에 그 흔들림을 쉬이 눈치 채지 못했을 뿐인 게지요. 실은 `통째로 흔들리는 산`을 보고 힘겨워 미치는 게 삶이라고 당신이 말을 걸어왔을 때, 속으로 조금 위안을 받았답니다. `누구나 그러하니 흔들릴 땐 크게 흔들려라`고 당신이 덧붙였을 땐, 마구 밑줄을 긋고 싶었더랬지요. 삶이란 깊고 드높은 산맥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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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12.27
게재일 201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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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아는 결국 마시멜로가 든 파이를 받지 못했다. 별 것 아닌 과자를 성아에게 주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다. 거친 말투로 다른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시비를 거는 성아. 참지 못한 나는 `성아, 너 나가!`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성아는 잠시 쭈빗대는가 싶더니 곧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게 아닌데 싶었다. 잘못했어요. 성가시게 굴지 않고 조용히 할게요. - 내가 원한 답은 그거였다. 하지만 성아는 그런 대답 대신 공부방을 벗어나 창밖에서 서성거렸다. 다른 착실한 아이들을 위해서 성아에게 소리를 질렀다고 핑계를 대보지만 실은 내 인내심에 한계가 왔던 것이다. 복도에서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 성아를 보고 금세 후회했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줄 걸. 2010 문학작가 파견 사업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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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12.13
게재일 201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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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집 근처에 갈 일이 있었다. 볼일이 끝나서야 혼자 계실 엄마 생각이 났다. 바쁘게 뛰어다닌 탓인지 목이 칼칼해지고 기침마저 돋는다. 당신 좋아하는 회를 사드리고 엄마집에서 한 숨 쉬고 가야지 하는 맘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 노구를 이끌고 멀리야 가셨겠나 싶어 일단은 들렀다. 혼자 사는 노인의 살림살이는 옹색하기 그지없다. 원체 바지런하고 정갈한 여인이었지만 늙으니 별 수 없구나 싶다. 다섯 남매 바지주름이 난초 뒷결처럼 날렵했다는 젊은 날의 엄마 자화자찬성 회고는 옛말이 되어버렸다. 씻어 엎어놓은 커피잔 바닥엔 물때가 끼어 있고, 금 간 밥공기엔 더께 낀 시간의 흔적이 선명하다. 다리에 힘 빠지고, 손놀림이 굼떠진데다 눈마저 침침한 당신에게 예전의 살림솜씨를 기대할 수는 없으리라.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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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11.29
게재일 201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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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 용어를 가장 강조한 이는 칼 구스타브 융이었다. 그에 의하면 누구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종류도 얼마나 다양한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외모 콤플렉스, 학벌 콤플렉스, 슈퍼우먼 콤플렉스, 온달 콤플렉스 등, 이름 붙은 세상의 모든 것에 콤플렉스라는 말을 접목시켜도 될 정도이다. 전문적인 심리학 개념을 떠나 어릴 적 경험, 사소한 습관, 주변 환경 등에 의해 생겨난 복합적인 소용돌이가 콤플렉스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인간 심리를 잘 이해해서일까. 융에 의하면 우리가 콤플렉스라는 말을 붙이길 좋아하는 것은 반드시 잘못된 것만은 아니란다. 간단하게 `마음속 응어리` 로 정의해도 무방할 콤플렉스는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상처를 덧키운다. 하지만 적당하면 에너지원이 되고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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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11.08
게재일 201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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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파란만장했다. 시험장으로 가야 하는 아들은 새벽부터 분주했고, 그런 아들을 태워줘야 하는 남편은 덩달아 바빴다. 나는 내 볼 일을 보고 오후에 합류하기로 했고, 딸은 나머지 세 식구를 기다리며 기숙사에서 대기 중이었다. 한나절 이별 뒤, 짜릿한 만남을 상상하면서 내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린다. 남편이다. 그새 보고 싶어서 전화를 했구나, 라고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일은 있을 리 없고, 준비물 중 하나를 아들녀석이 빠뜨리고 갔단다. 칠칠치 못한 데다, 건망증마저 심한 엄마이자 아내를 둔 탓에, 나머지 세 식구는 `뭔가를 챙겨야 하는 주부`로서의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 해서 다들 알아서 제 것을 챙기는 편이다. 하지만 덜렁대기가 제 엄마 저리가라, 격인 아들녀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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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10.25
게재일 201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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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히 여민지 신드롬이다. 그 소녀에게 자꾸만 관심이 간다. 내가 축구를 잘 알고 좋아해서가 아니다. 십대 소녀라고는 믿기지 않는 그 정신력과 긍정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여민지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우승컵과 골든볼, 골든부트까지 좀처럼 나오기 어려운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 여민지 덕분에 나는 골든볼(MVP)과 골든부트(득점왕)를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이번 경기 우승 덕분에 여자 축구도 월드컵 대회가 열리고, 연령별로 세분화 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역시 좋은 기량을 보여준 지소연 선수와 함께 한국 여자축구를 이끌 양대 희망봉이 될 거라고 매체들은 연일 보도한다. 그들 환상 듀오가 속한 앞으로의 경기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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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10.04
게재일 201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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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마늘 찌났다.(찌어 놓았다). 필요하면 가져가고 안 그라만 이웃들 나나(나줘) 주께.” 엄마의 전화 목소리. 김장철이 한참이나 남았는데 웬 김장 타령인가 싶지만 나는 그 맘을 안다. 차례 지낸다는 핑계로 추석에 못 만난 딸년에게 엄마는 미끼를 툭 던져 보는 것이다. 엄마 식 표현대로 살림에 `게실러빠진` 나는 그 실용적인 미끼를 덥석 물 수밖에. “알았어요, 엄마. 박서방 하고 오후에 잠깐 들를게요. 마늘 딴 사람 주지마.” 엄마식 자식 사랑법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 나는 짐짓 마늘이 아쉬운 척한다. 당신 손수 사서 까고 찧은 마늘이 엄마집 냉동실에서 기다린다는 사실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팔순 엄마에겐 아직도 손이 가야할 막내딸년이 있는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효녀는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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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09.29
게재일 201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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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가까워온다. 짬날 때마다 명절맞이 집안 청소를 해왔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차례는 우리집에서 지낸다. 제사나 차례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큰형님의 제안으로 삼 년마다 한 번씩, 추석은 나머지 형제들 집에서 지내기로 한 것이다. 여자로서 형님의 그런 심정을 백 번 이해한다. 아직까지 명절은 여성들에게(특히 며느리에게) 좀 더 가혹하다. 진심이 사라진 차례 상, 의무만 남은 식구들은 제수(祭需) 높이만큼의 마음 부담을 느낀다. 누군가 이건 아니야, 라고 외칠 용기가 없기 때문에 저마다 가면 하나씩을 쓰고 조상 앞에 엎딜 뿐이다. 명절이 고달픈 건 육체적 노동 때문이 아니라 심리적 불온을 조장하는 저 명절 지내기 방식의 여러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모순을 느끼는 그 누구도 쉽게 답을 내지 못하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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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09.13
게재일 201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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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에 나오는 나무가 부러졌다. 폭풍우 지난 뒤였다. `안네의 일기`(문학사상사, 1995)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작품 중 하나이다. 그러다 보니 안네에 관한 소식이라면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외신이 전송한 사진을 들여다본다. 밑둥치에서 일 미터 정도에서 부러진 나무는 허연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채 널브러져 있다. 150년이나 된 아름드리나무였다. 안네가 은신처 뒤뜰을 내려다보며 자연의 소중함과 행복한 미래를 얘기하던 그 나무였다. 사실 이번 폭풍우가 아니더라도 머지않아 쓰러질 나무였다. 곰팡이와 이끼로 이미 몸통의 절반이 썩어가고 있었다. 쓰러질 경우 주변 건물을 덮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에 베어질 운명에 처했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와 안네 프랑크를 상징하는 산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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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09.06
게재일 201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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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포항시립도서관이 정한 원북(One Book)은 권비영 작가의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다산책방, 2010)이다. 포항의 원북 행사는 2006년에 시작되었다. `한 권의 책, 하나의 포항`이라는 슬로건 아래 해마다 시민들이 읽을 만한 대표도서를 시민들의 추천을 받아 선정위원회에서 결정해왔다. 일반 시민들의 독서 생활 확산에 기여하고 문화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원북 행사는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이했다. 지난주에는 원북 행사의 일환으로 독서공개토론회가 열렸다. 시립도서관 소속 연합 독서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시민들과 함께 소설 덕혜옹주에 대해서 토론했다. 토론회장 분위기는 소박하나 진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경술국치 100주년,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올해 덕혜옹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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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08.30
게재일 201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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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나부끼는 세상이다. 집 나서자말자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각종 깃발일 정도이다. 대로변 사거리, 전봇대나 가로등 기둥 사이를 가로지르는 형형색색의 플래카드들. 볼 살 확 빼드립니다 - 경락마사지를 권유하는 문구부터, 뼈다귀 해장국집 신장개업 안내를 지나, 스포츠 댄스 회원 모집에 이르기까지 펄럭대는 깃발은 현대인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과연 제멋대로 휘적대는 저 깃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 가진듯한 유명 여성 산악인도 그 깃발 끈에서 자유롭지 못한가 보다. 붉은 깃발 하나가 영웅시된 그 산악인의 발목을 잡아당기고 있으니. 8000m이상 히말라야 14개 봉우리를 거침없이 정복해 국민적 희망으로 떠오른 그미를 둘러싼 의문이 공중파 방송을 탔다. 14좌 중 적어도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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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08.23
게재일 201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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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망설이고 주저할 때 누군가 `이 한 권의 책`을 권해 준다면? 그리하여 읽고 났을 때 한낮의 무더위 속 소나기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면? 권한 이도 읽는 이도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얼마 전 한 젊은 동화작가의 소박한 강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어린이 독서클럽 회원들과 그 작가를 만나러 갔다. 부산스런 한두 아이가 설사라도 난 것처럼 번갈아 강연장 안팎을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애가 쓰인 나는 집중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날 얻은 가장 값진 선물은 한 일본 작가를 뒤늦게 알게 된 일이다. 그날 동화작가는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북하우스, 2004)라는 소설을 가장 감명 깊은 작품으로 소개했다. 동화책을 답으로 준비할 것 같았던 내 예상을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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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08.16
게재일 201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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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순간마다 마음의 평정을 깨뜨리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불안을 초래하는 이 사건들은 죄책감, 공격적 욕구, 미움, 원한 등의 감정을 낳는다. 겉으론 웃고 있어도 속으론 눈물바다를 헤맨다. 나아가 혼란을 불러일으킨 대상을 향한 안경렌즈는 왼쪽은 악마의 것이고 오른쪽은 천사의 것이 되기도 한다. 정신과 전문의 이무석의 `정신분석에로의 초대`(도서출판 이유, 2003)는 근래 내가 산 책 중에 가장 흥미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기초이론을 저자의 입맛에 맞게 해설하고 있는데, 풍부한 그림과 다양한 실례로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예의 안경렌즈 부분도 책 속 그림 중 하나인데 자아의 방어기제 중 `분리`에 해당한다. 분리는 자기와 남들에 대한 이미지나 태도가 전적으로 좋은 것과 전적으로 나쁜 것이라는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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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08.09
게재일 201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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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을 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책을 챙긴다. 약속 시간보다 내가 이르게 도착하거나, 늦는 상대방을 기다려야 할 때 책보다 나은 친구는 없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문학동네, 2006) 은 그런 경우를 대비해 읽기 좋은 책이다. 중편 정도 되는 분량이라 잠깐 시간을 달래야 하는 경우 안성맞춤이다. 오늘도 약속 시간에 도착해보니 삼십분이나 남았다. 내심 즐거웠다. 언제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결심만 하면서 미뤄둔 책을 집어 든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에르노식 감정을 20대 이후로는 잃어버렸다. 따라서 그녀의 `단순한 열정`이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로 읽히지만은 않는다. 집착이자 욕망, 무모함이자 감정 낭비로 비칠 뿐이다. 육체와 영혼의 주체적 건강함이 전제될 때 온전한 사랑이라 말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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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08.02
게재일 201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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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보는 것보다 읽는 게 낫다. 이 말은 내게 유효할 때가 많다. 말하자면 영화를 작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텍스트로 읽는다는 뜻이다. 영화가 한 권의 책과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것이다. 취향에 맞는 책을 만났을 때처럼, 영화관을 나설 때 눈 즐거운 것을 넘어, 맘 느꺼워져야 안심이 된다고나 할까. 인위적인 에피소드가 생략되어도 좋으니 좀 더 현실을 반영할 것, 과장된 휴머니즘이 아니어도 좋으니 솔직할 것, 큰 얘기보다는 내면의 울림이 배어나올 것 등등, 내 영화 취향은 책과 마찬가지로 현실 지향적이다. 이왕주의 책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효형출판, 2005) 역시 영화를 텍스트로 읽은 경우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와 사귄다는 건 `영화를 작품work이 아닌 텍스트text로 만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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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07.26
게재일 201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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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다닥, 할당된 영어 문항을 풀어 젖힌 아들 녀석, 문제집을 던지듯 밀쳐놓는다. 얼렁뚱땅 주어진 목표치를 해치우고 `개그 콘서트`를 쳐다보며 낄낄댄다. 세상 근심일랑 일찌감치 잊은 표정이다. 그래. 의무 방어전으로 해치우는 공부보다야 웃음 주는 개그 프로그램이 백 번 흥미 있지. 학원 도움 받지 않고 독학하려는 그 태도라도 높이 사야지, 하면서 풀어 놓은 문제집을 살펴본다. 어라차, 그럼 그렇지. 얼마 가지 않아 오답이 나온다. 살짝 문항지를 봤다. 녀석의 오답과 상관없이 제법 흥미 있는 내용이다. 행복해질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무엇인가, 라고 묻고 있다. 수 년 간의 연구를 통한, 현명한 사람들이라면 택해야 할 그 확실한 방법이 지문 안에 들어 있다. 어느 정치학자가 다국적 대학생들에게 각자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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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07.19
게재일 201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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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이 진다. 떨어진 꽃잎들 켜켜이 익어간다. 순결하고 고고한 생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저 상처의 무덤. 오점 하나 없이, 소리 소문 없이 깨끗한 생을 마감할 것 같은 붉은 꽃들도 결국은 흉물스런 흔적을 남긴다. 꽃 떨어진 골목을 지나칠 때면 영화 매그놀리아가 떠오른다. 매그놀리아(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2000)는 목련꽃을 말한다. 하지만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세상의 모든 상처 입은 꽃을 뜻하리라. 포스터 속 활짝 핀 꽃은 자세히 보면 누렇게 타들어 가고 있다. 수많은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로즈니, 릴리니 하는 꽃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이 많은 것도 이 상처의 키워드와 무관하지 않다. 아무리 화려하고 향기로운 꽃도 지고 나면 흉물스런 상처를 남긴다. 생의 이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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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07.12
게재일 201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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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피곤한 게 인간관계이다. 핸드폰이 수갑이나 족쇄처럼 보이고, 잡은 약속은 무거운 거름더미 지게가 되어 어깨를 짓누르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은 이러한 관계의 피로감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만만찮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된다. 그것이 두려워 될 수 있으면 불필요한 만남을 미루고, 웬만하면 오해의 여지가 있는 소통에는 끼지 않으려 한다. 혼자인 자유는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가. 등받이 깊숙이 몸을 묻고, 배달된 책을 순서 없이 읽거나, 베란다에 나가 풀죽은 로즈마리 화분에 물을 주는 것. 짧지만 짜릿한 쾌감을 보장하는 이런 순간은 사람 사이에서 부딪히는 소소한 상처를 충분히 위무하고도 남는다. 접대용 멘트도 필요 없고, 정돈되고 규격화된 언행으로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아도 되니 이보다 더한 기꺼움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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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07.05
게재일 201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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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 시험기간이다. 사위가 쥐죽은 듯 고요하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단지 내 버스정류장에도 한낮의 적요만이 감돈다. 주말이면 간편 복장에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시내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던 학생들 모습은 간 데가 없다. 지금 저들은 저마다 열공(?)의 동굴 하나 파서 들어앉은 게 분명하다. 중3인 아들녀석도 예외는 아니다. 오롯이 주말을 시험공부 모드로 바꾸긴 한 것 같은데, 몸과 맘이 영 따로 논다. 십 분이 멀다하고 의자 뒤로 물리는 소리를 내더니 냉동실 문 열기에 바쁘다. 목이 탄다며 한입 가득 얼음을 털어 넣다 못해 숫제 냉장고로 들어갈 기세다. 유독 열 많고 땀 많은 체질이라 요즘 같은 여름이면 하루에 속옷을 두세 벌씩 적셔내긴 하지만, 이건 체질 문제라고 이해해주기엔 무리가
기획ㆍ특집
등록일 2010.06.28
게재일 201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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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호불호는 사람마다 다르다. 심금을 울린다고 광고하는 책도 내겐 데면데면하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고, 무슨 재미로 읽는지 모르겠다고 남들이 말하는 책도 내겐 흥미를 끄는 경우도 흔하다. 경험 다른 게 사람이니 공감의 진폭도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따라서 책 한 권에서 느끼는 감동 지수가 사람마다 다른 것은 `취향`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최근에 다시 꺼내든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범우사, 2000)도 딱 내 취향이다. 처음 읽었을 때처럼 주책없이 눈물 나진 않지만, 찔레 순을 씹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 나도 모르게 장면 장면을 곱씹게 된다. 간결한 문체와 소박한 이야기. 별 것 없는데 별 것으로 다가오는 것은 작가네 가족의 거짓 없는 인품 덕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시종
기획ㆍ특집
등록일 2010.06.21
게재일 201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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