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참아야 한다기에~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지난 15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오후 채옥순(83·남구 해도동) 할머니는 가수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을 부르며 흐르는 눈물을 휴지로 닦았다. 그는 “아유~ 요즘 눈물, 콧물이 내 맘대로 조절이 안 돼. 요 휴지를 손에 달고 산다니까”라며 “옛날엔 노래도 참 간드러지게 잘 불렀는데. 이제는 목이 많이 녹슬었제…”라며 너스레웃음을 보였다. 3평 남짓 방안은 `냉골` 발에 맞는 신발 없어도 폐지 모아 판 돈으로 3년간 수백만원 지원 `나보다 더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들을 돕자`는 일념 하나로 폐지를 모아 온 채옥순 할머니가 올해도 이웃을 위한 온정을 더했다. 2013년 포항시장학회 후원금 전달을 시작으로 지난해엔 홀몸노인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늘 고민합니다. 나를 통해 누군가 닮고 싶다라는 희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 자신이 가장 `촌스러워져야` 합니다” 모자를 눌러쓴 박원호 중앙상가 카페 `사랑싸개` 대표는 큰 눈만큼이나 손짓도 크고 웃음소리도 화통했다. 20대 점원들을 `친구`로 소개하며 서로 부등켜 안던 그는 “같은 비전을 갖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사랑한다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자주 꾸짖고 큰 소리도 내지요. 그래야 오랫동안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화해카페 운영하며 청소년 멘토로 활동 따뜻한 사람되고파 -하는 일이 많다고 들었다. 사람들이 뭐라고 불러야 하나. △정확하게는 `원장님`이라고 불러 주길 원한다.
취업난이 심각한 요즘 23대 1의 경쟁률을 뚫은 포항시 신규 공무원 29명이 지난 5일 임용식을 갖고 공직자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6일 오전 포항시 공무원으로 첫 근무를 시작한 포항 토박이 김현지(29)씨를 만나 향후 포부와 각오를 들어봤다. -공무원 임용시험 합격 소식을 접한 후 어땠나? △개인적으로 2년 동안 임용시험을 준비 했었다. 취업난이 심각한 가운데 포항시 공무원으로 합격하게 돼 개인적으로 상당한 성취감을 느꼈다. 그리고 합격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일반 시민의 입장이었지만 합격 소식과 함께 공무원으로서 책임성과 대표성을 띠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도 무거웠다. -포항 토박이 출신으로 당당히 임용됐는데. △대학생활을 제외하고는 포항에서 지냈다. 포항에 다시 올 수 있
“우리 땅 독도의 소중함을 전국에 알리기 위해서 저의 작은 재능을 기부하고 싶습니다” 경북 동해안의 등대를 지키며 스스로 습득한 능력으로 독도지킴이 활동을 펼치고 있는 등대지기가 있어 흐뭇한 미담이 되고 있다. 포항 호미곶등대지기 김현길(47)씨의 이야기다. 김씨는 지난 1999년부터 포항지방해양항만청 해사안전시설과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경북 동해안지역 등대를 지키고 있다. 올해로 만 15년째다. 기술직 공무원인 그는 1~2년마다 근무지를 바꿔야 하는 직업특성상 포항, 경주, 울진, 울릉에 위치한 6곳의 유인등대를 오가며 어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그는 그동안 거쳐온 여러등대 중 우리나라 최동단 독도를 수호하는 독도등대를 가장 기억에 남는 근무지로 꼽았다. 초임지였던 경주 송대말등
화려했던 프로축구 선수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축구꿈나무들을 키워내고 있는 인물이 있어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김종경(32)씨. 그는 “어린시절 자신을 축구선수의 길로 이끌어 줬던 코치 선생님처럼 좋은 지도자가 되는게 꿈”이라며 싱긋 웃었다. 그가 축구를 처음 시작했던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당시 축구명문 포항제철동초등학교 축구팀 감독이었던 코치선생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여느 사내아이처럼 운동장에서 뛰어노느라 정신이 없던 그는 정식으로 축구를 배워보겠느냐는 코치선생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처음엔 좋아서 시작한 축구였지만 점점 혹독한 훈련과 엄격한 선후배 기강 등으로 힘든 날이 늘어났고, 그럴 때마다 선생님을 떠올리며 꼭 유명한 프로축구선수가
“할머니 한 분 한 분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독거노인생활관리사 황정애(52)씨는 할머니들을 떠올리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동안의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는지 그녀의 눈은 반짝였고,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하나뿐인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중국으로 훌쩍 유학을 떠났다. 주위 사람들의 추천으로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위덕대학교에 07학번 늦깎이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야간 수업과 봉사활동을 병행하면서 독거노인생활관리사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황씨는 현재 해도동에 홀로 살고 있는 30여 명의 할머니들을 담당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가정방문을 하고 주 2회 전화를 걸어 할머니들의 안전을 묻는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그를 `수호천사`라고 부른다. 처음엔 할머니들과 친해지
연간 7만4천여명의 사망자를 유발시키고 8천명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하고 있는 국내 사망원인 1위인 암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있다. 수술과 항암치료로 새로운 삶을 얻기도 하지만 암세포가 퍼져 회복가능성이 사라지고 기대수명이 예측될 경우 `말기 암환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우리 사회 저편으로 멀어지게 된다. 9년째 `말기 암환자` 돌봐 간병인서 상담사역할까지 환자들에 더 많은 것 배워 각종 수술과 항암치료로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던 이들이 최종적으로 향하는 곳이 호스피스 병동. 삶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죽음은 두려움 혹은 공포가 아닌 아름다운 한 장의 추억이라는 것을 전하는 이가 있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포항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9
필리핀 출신 한국인으로서 포항지역 결혼이주여성의 올바른 한국사회 적응을 돕고 있는 이가 있어 화제다. 고민상담사 역할 `톡톡` 고국가족 아프거나 사망땐 회원들이 모은 돈으로 지원 지역 이주여성 대모로 불려 주인공은 10여년전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인 남편과 결혼에 골인, 이제는 한국인 주부로 살아가고 있는 황릴리벳(45·여·포항시 남구 연일읍)씨. 필리핀에서 사업체를 운영할 정도로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한 그녀는 지난 2000년 국내유명기업인 S기업의 직원으로 입사해 한국땅을 처음 밟았다. 당시 서울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필리핀과는 너무도 다른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한국기업에서 2년간 근무한 뒤 퇴사한 그녀는 힘든 한국생활을 이어갈지 아니면 고국으로 돌아가
포스텍 한 교직원이 졸업생들의 이름을 아로 새긴 이색 조형물을 설치해 화제다. 주인공은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직원 이경수(47)씨.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직경 70cm 크기의 4개 서각(書刻)지구본에 2010학년도부터 2012학년도 졸업생까지, 모두 3년 동안의 졸업생 236명의 이름을 촘촘히 새겨 기계공학과 구성원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제5공학관 계단 통로 벽면에 설치했다. `포스텍 ME, 세상을 밝히는 빛`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지구본 서각은 학과 고유의 조형물을 통해 소속감을 높이고, 자긍심을 키우고자 하는 의도로 지난해 3월부터 본격 작업에 착수, 1년 넘게 걸려 제작한 것. 이 씨의 서각작업은 이번에 두번째. 2년 6개월여 전에도 가로 5.4m×세로 3.2m 크기의 세계지도 모
하루 700~800통 전화 받아 감사편지 한달 10여통 답지 취객 억지불만땐 가장 곤혹 “대낮에 술취한 민원인이 억지불만 털어 놓을 때가 가장 곤혹스럽습니다. 하지만 친절하게 도와줘서 고맙다며 감사전화가 올 때에는 쌓였던 피로감도 눈 녹듯이 사~르르 녹습니다.” 포항시 민원콜센터 김윤정(41)센터장은 콜센터 상담사들의 고충과 애환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지난 2012년 포항시 민원콜센터가 생기면서 센터장으로 근무를 시작하게 된 그는 민원인들에게 첫째도 친절, 둘째도 친절이라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지난 8월 대구에 사는 김모(78)씨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김씨는 차량문제로 포항시에 전화를 하게 됐는데 일면식도 없는 민원콜센터장이 너무 친절하게 안내를 해줘 일을 말끔하게 처리하게 됐
지난 2010년 4월 최영만(67) 전 포항시의회 의장은 중견배우 현석씨와 함께 복요리를 먹고 복어 독(毒)에 중독돼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현석씨는 3일 만에 깨어났으나, 최 전 의장은 한 달이 넘도록 의식 불명 상태에 빠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었다. 그는 입원 내내 곁을 지켜준 가족의 헌신으로 입원 45일 만에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하지만 가까운 사물조차 인지 못할 정도로 시력을 잃었고, 거동하기조차 힘들어 하는 등 복어독 후유증이 심각했었다. 그동안 건강과 관련, 이런저런 말들이 나돌기도 했으나 4년이 흐른 지금 그는 예전못지 않은 건강을 되찾았고, 표정도 무척 밝아 보였다. 눈 뜨면 아령으로 하루 시작 지인 도움으로 봉사활동도 시민상·中 명예시민증 받아 -복어독에서 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