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시간 여행, `연오랑 세오녀의 원류 추적-신화속의 SEA-ROAD를 찾아서` 는 두 개의 화두를 두었다. “일본 간 연오랑과 세오녀는 무엇 때문에 갔으며”, “영일만에서 일본의 시마네현으로 연결된 해양 루트는 철의 문명을 전파한 지름길이었나?” 하는 것이었다. 이 생각의 바탕에는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으로 갔다고 표현된 삼국유사에서 아달라왕 4년(서기 157년)이라고 분명히 밝힌 시기와 일본에서 왕이 되었다는 연오랑과 이즈모국을 건국하는 스사노 오미노고토와는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분명하지 않은 고대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방법은 같은 시대의 인근 역사서, 유적·유물·지명유래, 언어 등의 연구와 고찰들을 통하여 그 문명의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프롤로그 경북동해안지
신라 아달라왕 4년(157) 포항에서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왕이 됐다던 연오랑 세오녀 신화속의 지역이 바로 이즈모다. 이즈모시에도 우리의 연오랑 세오녀 신화와 비슷한 내용의`스사노 오노미고토`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일본에서 `꿈같은 신화의 무대`로 유명하다. 포항 영일만에서 일본열도 이즈모까지는 약 300㎞로 계절풍과 해류를 타면 며칠 안에 바로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연오랑 세오녀 원류 추적` 조사단은 이 지역 주변에서 발굴된 고대 유적과 유물을 보면서 많은 유물이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포항과 이즈모는 고대부터 오랜 교류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이즈모 시는 2005년 3월 22일에 구 이즈모 시·히라타 시·히카와 군 다이샤 정·고료 정·다
이즈모에 고대왕국을 건설했다는 신 `스사노 오노미고토`가 신라국에서 건너왔다는 신화가 일본에 있으니까 이즈모의 고천원(高天原·일본 신들의 고향)이 아마 포항이 아닐까 생각된다” 경북매일신문 창간 20주년 특별기획취재 `연오랑 세오녀 원류 추적` 조사단이 지난 5월 21일 이즈모 시청에서 만난 히데토 나가오카 시장은 이즈모와 포항과의 고대 역사적인 교류를 언급하면서 자유스러운 왕래 속에 시대를 뛰어넘은 민간차원의 실질적인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길 기대했다. -일본에서 연오랑 세오녀는 어떤 의미인가. △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으로 건너와 제철, 직조, 농사짓는 선진기술을 전해 주고 고대 왕국을 건설했다는 신화에 대해 일본인 대부분은 모르고 있다. 일본의 신화를 보면 시마네반도 일부가 한반도
경북매일신문 창간 20주년 특별기획 `연오랑 세오녀 원류 추적` 조사단이 이즈모지역 일대에서 발굴된 유적지와 출토 유물·박물관 등을 현지 조사한 결과, △고진다니 유적 △가모이와쿠라 유적 △ 이즈모 야요이모리 박물관과 서곡분묘군 △이노메 동굴유적 등에서 연오랑 세오녀와의 역사적인 연결 고리를 찾아볼 수 있었다. 삼국유사에서처럼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에 제철기술을 전한 최초의 실존 인물이라면, `고진다니 유적`에서 한꺼번에 358점이 출토된 동검(청동검)과 `가모이와쿠라 유적`의 동탁(청동 방울)은 선진 제철기술을 전수받아 일본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이즈모 풍토기에 황천의 혈로 전해지는 `아노메 동굴유적`은 연오랑 세오녀 신화의 `신화`라는 부분만 빼면 그 당시 포항에서 누군가가 해류를
우리 박물관에는 연오랑 세오녀 신화와 관련된 역사적인 자료는 없습니다.”경북매일신문 창간 20주년 특별기획취재 `연오랑 세오녀 원류 추적` 조사단이 지난 5월 21 이즈모시에 있는 시마네현 현립 고대 이즈모 역사박물관 관장실에서 만난 쥬니치 노무라 관장은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에 제철기술등 선진 문물을 전했다`는 한국의 신화에 대해 부인했다. 그러나 일본 고고학계와 각종 사료에는 연오랑 세오녀와의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반도 계열 문화재·신라 토기모방 유물 출토 “연오랑 세오녀 관련 구체적 유물은 아직 없어” -연오랑 세오녀와 관련된 발굴 유물이나 유적은 있는지. △이즈모시에도 연오랑 세오녀 신화와 비슷한 신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만 우리 박물관에는 연
글 싣는 순서 프롤로그 경북동해안지역의 소국 일본속에 숨쉬는 역사적 진실① `신화의 고향` 이즈모의 유적들 문화전파의 바닷길 있었나 에필로그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면, 일본 어느 곳에 정착하였을까? 이 화두를 풀기 위해서는 일본에 있는 신라계 신사들의 내력을 빼놓을 수가 없다. 포항과 마주 보는 시마네현 이즈모는 일본 신화의 고장이다. `신들의 고향`으로 알려진 이즈모에는 연오랑 세오녀와 관계있는 신화가 있을까. 이즈모는 매우 오래전부터 일본에서 문명이 시작된 곳이며 다른 곳과도 문명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른 시기부터 문명이 시작되고 문명 집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그와 관련되는 유적과 유물이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일본의
“시마네현에서 한국관련 유물이 많이 출토되다 보니 연오랑 세오녀 신화에 관심이 있는 일부 민간단체가 있다고 듣고 있으나 고고학적인 측면에서는 검증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경북매일신문 창간 20주년 특별기획취재 `연오랑 세오녀 원류 추적` 조사단과 1박 2일간 동행해 조사에 참여한 가쿠다 노리유키 시마네현 현립 고대 이즈모역사박물관 전문연구원은 일부 민간단체 중심으로 연오랑 세오녀 신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조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개인적으로는 이번 조사단의 방문을 계기로 한일 양국에서 본격적인 신화 연구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오랑 세오녀 연구회 조직이 구성돼 활발한 활동을 한다고 하던데 △이즈모지역은 한국과 관련된 유물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연오랑 세오녀가 왜 일본에 갔느냐?`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단서는 연오랑 세오녀에 대한 내용이 수록된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 기이 연오랑 세오녀 조에는“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 즉위 4년(서기 157년) 정유(丁酉)에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가 바다에 나가 해조(海藻)를 따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가 나타나더니 연오를 싣고 일본으로 가 버렸다.” 이것을 본 그 나라 사람들은 “이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다.” 하고는 연오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세오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이상히 여겨 바닷가에 나가 찾다가 바위 위에 벗어 놓은 남편의 신을 찾아냈다. 세오가 그 바위 위에 올라갔더니 바위는 또한 전처럼 세오를 싣고 일본으로 갔다. 그 나
연오랑 세오녀는 신화다.신화는 한민족·한문명권으로부터 전승돼 다양한 문화를 파생시켰고 건축 문화 예술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단어에까지 자취를 남긴다.연오랑 세오녀 신화는 과연 지역에 무엇을 남겼을까. 그 뿌리를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삼국유사에 남겨진 237자 10행 남짓의 문맥만으로 연오랑 세오녀의 신화를 증명해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연오랑 세오녀는 살아 있는 역사다.역사는 실증과학이고 시간의 과학이다.연오랑 세오녀의 역사를 실증하는 연구가 시급하다.일각에서는 연오랑 세오녀와 일본 천황시조의 연계성을 주장하고
연오랑 세오녀신화의 체계적인 학문적 연구가 시급하다. 본지가 창간 20주년을 맞아 특별기획한 `신화속의 SEA ROAD를 찾아서-연오랑 세오녀 원류 추적`취재결과 일본 현지에서는 연오랑세오녀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본신화의 천국인 이즈모시(出雲市)의 경우 연오랑세오녀신화와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접근이 뒷받침되지 않아 증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체계적인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고고학계 등에서 나오고 있다. 이번 취재결과 연오랑세오녀가 일본을 선택한 것은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한 자의적인 이주였던 것으로 보인다. 격변기였던 당시 시대상황으로 인해 연오랑세오녀는 평소 교류해왔던 일본 이즈모시(出雲市)를 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