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가 만났다
김범식 경북도 무형문화재 대목장

경북도 무형문화재 대목장 김범식씨.

금세라도 날아갈 듯 한껏 치켜 올린 처마, 한국 건축의 아름다움은 건축 자체의 조화에서 처마 끝까지 풍겨난다. 세계인을 놀라게 만드는 또 하나의 한류 문화다.

경북도 무형문화재 김범식 대목장은 평생을 목수로 살아왔다. 한국적인 아름다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어 건축으로 살려 내는 것을 사명으로 살아온 김 대목장은 “전통건축은 상품이 아닌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얼과 문화와 전통이 건축에 스며든 것이 전통건축이라는 것이다.

건축모형을 통해 우리의 전통 건축 기술을 지키고 전수하는 데 정열을 쏟고 있는 김 대목장은 “사람들이 장인을 이야기할 때도 목수만은 ‘목수양반’이라 불렀다”며 목수일에 대한 자긍심을 빳빳이 세운다. 조선 세종 때 숭례문 보수 총책임자였던 대목은 정5품이었고 성종 때 개축 공사를 맡은 대목은 정3품 당하관이었다고 했다.

 

“나무에 한국적 아름다움과 생명을 불어넣어 건축으로 살려낸 것이 전통건축

한국전통연구원엔 내외부 정교하게 재현한 남·북한 전통 건축모형 등 100여 점 들어차

문화재 수리는 외관 복원 뿐 아니라 건축물 원래 의도와 목적 이해 후 작업 수행해야”

-여전히 전통 건축 보전과 기술 전수에 왕성하게 활동을 하신다.

△지난해 영남대에서 건우정을 신축했고 청도 운문사의 죽림헌을 수리 보수했다. 올 3월 KBS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년 동안에는 북한의 평양 을밀대와 보통문, 개성 남대문 등 건축 모형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일 하는 것이 쉬는 것이다.

-지금까지 김 대목장이 수리 보수하거나 신축한 주요 건축물은 어떤 것들이 있나.

△(모두 열거하는 것은 지루하다는 듯 ‘연도별 실적 목록표’를 건넨다. 거기에는 1964년 김천 직지사 청풍료 신축에서부터 최근까지의 주요 문화재 보수와 전통건축 신축현황 200여 건이 빼곡하게 일목요연 적혀있다.)

-한국전통건축연구원에 전시돼 있는 모형들을 보니 김 대목장의 열성이 느껴진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작업들을 해왔나.

△(연구원에는 서울의 남대문과 동대문, 덕수궁 중화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안봉 봉정사 극락전, 대구 동화사 대웅전,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김제 금산사 미륵전, 밀양 영남루, 평양 을밀대 등 남북한의 전통 건축 모형 70여 점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리고 옆 건물에는 전통가옥과 한옥모형을 축소 제작한 모형 80여 점이 들어차 있다.)

△오래 전부터 한 점씩 만들어왔다. 후세들에게 우리 전통건축물을 이해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연구 교육 자료로 제작한 것이 지금은 100여 점을 훌쩍 넘겼다. 전통건축은 겉으로만 보아서는 내부 구조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부 모형 몰에서 천장과 내부 구조를 볼 수 있도록 지붕을 덮지 않은 것도 있다. 실제 축적의 10분의 1크기(전체 규모는 1천분의 1)로 제작했지만 문화재 수리보고서를 보고 정교하게 재현했기 때문에 재료가 적게 들었을 뿐 시간과 공력은 본 건물만큼 걸렸다. 작게는 3개월에서 숭례문 같은 대작은 1년이 넘게 걸렸다. 마치 손목시계가 큰 벽시계보다 품이 덜 드는 것이 아닌 것처럼.

-건축 모형에서 실제 건축물의 어떤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나.

△우리나라 사찰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답다는 예산 수덕사의 대웅전에는 소의 꼬리를 닮았다고 우미량(牛尾樑)이라 부르는 굽은 부재를 썼다. 그런데 대형 건축물이어서 거기에 꼭 맞는 굽은 나무를, 그것도 4면에 16개를 같은 크기로 찾아내 만들었는데 그걸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불국사 대웅전 포(包) 위의 돼지가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이곳 모형에서 돼지 조각을 어디에 어떻게 만들어 두었는지 찾아볼 수 있다. 밀양 영남루는 경사진 지형을 이용해서 주변 자연과 어울리게 건축물을 축조했는데 우리 전통건축이 자연과 주변에 조화를 이루며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다. 또 동화서 대웅전 모형을 보면 지붕 서까래를 잇는 연침과 추녀를 고정시키는 비녀잠을 확인할 수 있는데 모두 철제 못을 사용하지 않은 전통 건축의 원형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모형마다 이런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실제 그대로 정교하게 제작됐다.

-전통 건축과 문화재 보수로 60년을 살아왔다.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

△당시 기술은 도제식 전수였다. 스승인 김윤원 대목장은 당대 최고수인 김덕희 대목장의 아들이다. 김윤원 대목장은 특히 대자귀질과 도끼질을 잘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직지사 청풍료(현 박물관) 신축공사에 김윤원(5년 전 작고) 대목장이 도편수로 일을 했고 김윤원 대목장의 제자였던 내가 대패를 들고 현장에 뛰어들게 됐다. 옛날 목수들은 다양한 목공예 기술을 보유했다. 목재 가공과 조각, 연결 기술 등 다양한 기술을 숙달해서 전통 건축물을 정교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런 기술은 건축뿐만 아니라 가구, 문화재 등의 제작에도 적용됐다.

-소목장인 부친의 재주를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목수일은 재주가 중요한가.

△어릴 때부터 연장을 다루는 아버지에게서 배우기는 했다. 군 시절에 주특기(수송)를 무시하고 목공이 됐다. 그때 차량 바퀴에 피대(벨트)를 걸어 통나무를 켜는 재주를 발휘하기도 했다. 목수는 재주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수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전통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주변의 경치, 태양의 위치, 바람 등과 같은 요소를 고려하여 건축물의 방향성과 조망을 결정해야 한다. 풍수를 생각하면 쉽다. 특히 한국 전통건축은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중시하며 자연재료와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여 건물을 건축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한옥의 경우 간결한 형태와 내외부 공간의 유기적 연결을 통해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한국 전통건축이 중국이나 일본 건축과 다른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한국 전통건축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연과의 조화, 유연한 곡선미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중국 전통건축은 역사적으로 장대한 궁궐과 탑, 장식적인 요소들을 포함하는 복잡하고 화려한 건축양식으로 유명하다. 중국 전통건축은 대단히 다양한 형태와 장식을 가지고 있으며, 보다 웅장하고 화려한 느낌을 주는 것을 중요시한다. 일본 전통건축은 기능적이면서도 간소하고 정제된 디자인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기둥이나 석가래, 도리를 사각재로 쓰는 등 직선적인 형태와 단순한 장식이 특징이며, 습한 기후로 인해 개방적이고 통풍이 잘 되는 건축을 추구하고 있다. 일본 전통건축은 균형과 조화, 세련된 디자인을 강조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한다.

-문화재를 수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현대 건축에서 잘못하고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

△문화재 수리는 단순히 외관을 복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건축물의 원래 의도와 목적을 이해하고 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재는 그 시대의 사회 문화생활 방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특정한 기능과 의미를 갖고 있는 문화재들이 많이 있다. 따라서 문화재의 본래 의도와 목적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복원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재를 수리할 때는 원래 사용된 재료와 기술을 최대한 존중하고 활용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사용된 자재나 기술은 문화재의 역사와 특성을 반영하며, 그에 따라 건축물의 모습과 기능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가능한 한 원래 사용된 재료와 기술을 사용하여 복원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장에서 작업할 때 특별히 요구하는 금기 같은 것이 있나.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안전교육을 하고 지신제를 지내고 공사할 때는 금주와 금연을 특히 강조한다. 또 작업 공간은 항상 청결하고 깔끔하게 정리한다. 모두 안전을 위해서다.

-전통 건축물, 한옥의 경우 미관은 좋은데 냉난방 등 효율이 떨어지고 생활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한복을 생각해보면 된다. 개량한복은 아름다우면서도 생활에 편리하다. 우리 한옥도 그렇게 시대에 맞게 개량해 나가고 있다. 한국전통건축연구회가 표준형 한옥 모델을 제작 전시하고 있는 것도 한옥의 보급을 위해서이다.

-아파트나 대형 주택 등 현대 건축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현대 아파트는 대량 생산과 표준화를 통해 건설되기 때문에 일정한 형태와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개성과 독창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다. 전통적인 한옥의 디자인 요소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거나, 전통 건축의 조형적인 특징을 현대적인 건축물에 적용하여 고유한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다.

-시멘트는 전통 건축 재료가 아니다. 그런 공법으로 시공한 문화재가 있나.

△대구 만촌동의 영남제일관을 복원할 때(1979년)다. 당시엔 나라 사정이 외화가 부족해서 외국에서 목재를 수입해 올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기둥에서부터 서까래까지 90%를 목재가 아닌 콘크리트로 만들었고 심지어는 성문까지도 콘크리트로 복원했다. 목재 다루는 솜씨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결국은 눈속임이고 그 자체로 역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나라 형편이 좋아지면 언젠가는 목재로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전통 건축이 현대 건축에 밀려나고 있는 것 같다.

△건축비가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 약점이긴 하다. 그러나 사람이 건강하게 살려면 전통 건축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하고 전통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과 건축비에 맞춰 건축을 하다보면 작품이 아닌 상품이 되고 만다. 그래서 건축 모형을 만들어 후세에 건축 기법을 전하려는 거다.

-문화재 보전과 건축에서의 목수 위상으로 볼 때 정책적인 제안을 한다면.

△정부가 전통 건축 보전과 전승에 좀 더 관심을 갖는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문화재의 보호와 보전 정책, 전통 건축 관련 기관의 지원과 장기적인 계획과 프로그램까지 포함한다. 전통 건축을 하는 목수들은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교육과정 및 인증 시스템을 강화해 줄 것을 요구한다. 제도를 통해 목수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지원해주면 좋겠다.

-무형문화재 대목장으로서 앞으로 할 일은 무엇인가.

△대목장은 목수의 우두머리이자 책임자이다. 전통 건축을 하는 목수로서 무형문화재 대목장 칭호를 얻었다. 경북 최고장인으로 인정받았으니 열심히 산 것 아니겠나. 이제는 전통을 제자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내게 남은 소명이다. 건축 모형 작품들을 대중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장을 만들려는 것도 그래서이다.

 

□ 김범식(金範植·80)

충남 서산.

전통건축연구원장. 경북무형문화재 대목장.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화재과 수료.

한국전통건축연구원 대표.

전 (주)정동종합건설 대표.

경북도 최고장인.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 37호 대목장.

1964년 김윤원 대목장 입문.

1977년부터 전통건축, 문화재 200여 건 수리, 복원, 신축.

교육용 전통건축 모형 140여 점 제작.

2012년 대구문화예술회관을 시작으로, 경주엑스포, 대덕문화전당, 경산시민회관, 아양아트센터, 수성아트피아 등에서 개인전 52회. 초대전 60여 회.

2017년 베트남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7 전

시, 2017년 프랑스 기메박물관 한국문화재 재현전,

2018년 미국 LA 가이아 갤러리 등에서 경북 최고장인 작품전, 중국 연길 두만강 국제투자무역박람회 등 해외전시 5회.

전통목조건축 관련 특허 14개, 교육용 건축모형 디자인등록 42개, 실용신안 1개.

비계기능사, 온수온돌기능사, 건축도장기능사 등 자격증 7종.

한식목공, 목조각공, 드잡이공 문화재수리기능자.

신지식인 국회의장상.

그의 평생 소망인 교육 및 건축 모형 전시관 건립 지원과 논의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모두 무산됐다고 했다. 특히 그의 재주를 아끼고 실력을 인정해 준 김관용 전 경북도지사가 전수관을 지원해 주기로 했으나 도청 신청사 건립으로 미루어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경우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