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2주 전 관훈클럽이 방시혁 하이브 의장을 초청했을 때다. 포럼이 끝난 뒤 함께 식사하면서 그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라고 했을 때 저출산 문제를 얘기하고 싶었는데 못 했다”라고 말했다. 의외였다. 그는 세계 최정상급 방탄소년단(BTS)를 키운 아버지다. 대단한 사람인 건 알겠지만, 연예 기획사 대표의 최대 관심사가 ‘저출산’이라니.

당시 그는 국내 최대 연예 기획사인 SM 인수 경쟁에서 막 손을 뗀 때였다. 이미 4천500억 원을 집어넣고, 수천억 원을 더 던지려고 준비했다. 보통 사람은 아파트 한 채를 사고팔 때도 혼이 나간다.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함께 식사한 하이브 박지원 대표는 “내부에서 그 주제를 깊이 토론했다”고 말했다.

들어보니 그럴만했다. ‘한국에서는 BTS가 임영웅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부터 올 1월까지 유튜브 뮤직 차트를 보면 세계 기준으로 BTS는 79억7000만 뷰로 아이유(9억900만 뷰)나 임영웅(4억1900만 뷰)을 압도한다. 그러나 한국으로 한정하면 3억5200만 뷰로 아이유(4억4900만 뷰)나 임영웅(3억9000만 뷰)에 못 미친다.

인구 구조가 피라미드형일 때는 젊은 층이 가요 시장을 주도했다. 인구 구조가 오각형 모양으로 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래쪽이 뾰족한 역삼각형으로 변해간다. 가요 시장도 필자 또래의 베이비부머들이 쥐고 흔든다. 지난해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30대 이하(13~39세)에서는 BTS가 29.4%로 1위, 40대 이상에서는 임영웅이 33.0%로 1위였다. 40대 이상은 10위까지 모두 트로트 가수다. 가요계까지 휘저어놓다니. 저출산 고령화가 발등에 떨어졌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아이가 평균 0.78명이라는 뜻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비교가 안 되는 꼴찌다.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인 나라는 우리뿐이다.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젊은 층으로 갈수록 출산율이 더 낮다. ‘2022 한국의 사회지표’를 보면 만 13세 이상에서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절반이다. 20대 이하는 결혼해도 자녀를 낳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반을 넘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금 애를 낳는 사람은 바보”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 먹을 것이 없고, 숨을 곳이 없는데 새끼를 낳아 주체를 못 하는 동물은 진화과정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라면서 “진화생물학자인 제가 보기에는 (저출산이) 아주 지극히 당연한 진화적 적응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를 경제적·문화적 어려움 없이 키울 수 있어야 출산율이 올라간다는 말이다.

과거에는 다자녀였다. 살기가 수월해서가 아니다. 보릿고개를 겪던 시절 더 많이 낳았다. 주택비·교육비가 올라 아이 하나 키우기도 벅차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한 아이 정책을 하면서 아이들이 ‘소황제’가 됐다. 한 아이 키우기가 과거 서너 명 키우기보다 어려워졌다. 뭔가 잘못됐다.

2021년 경북의 합계출산율은 0.966명으로 전국 평균 0.808명보다 많다. 서울(0.626)이 가장 낮다. 그런데도 2019년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10분의 1의 땅에 사람이 계속 모인다. 이것이 생존 경쟁을 더 치열하게 만든다.

윤석열 정부 들어 수도권 규제를 대폭 풀었다. 첨단 반도체 단지도 허용했다. 이해는 간다. 미국과 대만 등은 전력을 다해 지원한다. 아차 하는 순간 세계 경쟁에서 밀려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반도체뿐이 아니다. 수도권이 아니면 우수 인력 유치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그런데도 포스코가 포항으로 본사를 옮긴 것은 이례적이고, 박수를 받을 일이다. 이러니 지방은 저출산 부담을 이중으로 떠안는다. 전국 시·군·구의 절반이 소멸 직전이다. 지방대학도 소멸하고 있다. 필자가 대학 갈 때는 서울대 다음은 지방 국립대였다. 이제 무조건 수도권 대학이다. 취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지방에도 산업·일자리가 절실하다. 시장·병원·문화시설이 필요하다. 국가든 지방이든,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