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지난 겨울 베리가 많이 아팠다. 남편이 데리고 병원 다녀오더니 방광암이 의심된다는 거였다. 약물로 치료하되 나을 기약을 할 수 없단다. 힘겨워하는 베리를 안고 며칠 밤을 같이 지샜다. 얼마 못갈 것같아 울며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영정사진도 찍어야 하나 아득해하며 또 울었다. 힘든 약물치료보단 좋아하는 것 실컷 먹이며 여생을 보내게 하자 결정했다. 사람 나이로 치면 90 아닌가. 노령견에게 좋다는 저지방 사료에, 황태와 닭을 푹 고아 갈아 먹였다. 사골국물에 사료를 말아 먹이기도 했다. 마룻바닥엔 매트를 깔았다. 기저귀도 채웠다. 그렇게 정성을 쏟으며 겨울을 났더니 많이 나아졌다.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있고 기저귀가 벗겨지면 집안 곳곳에 오줌스팟을 만들긴 하지만 이보다 더 고마울 수가 없다. 코끝이 반들거리는 걸 보고는 건강해진 것 같아 안도해한다.

11년전, 4살의 베리가 왔을 때는 그야말로 까도녀였다. 까칠하고 도도하고 세련된 미니핀. 눈썹 위, 발목 부분의 노란 색을 제외하곤 온몸이 윤기나는 짧고 검은 털의 베리는 매력적인 도시여자같이 예뻤다. 유기견인 강아지를 보호하던 아들이 동물보호센터에 보낼 수 없다며 데려왔다. 똑똑하고 깔끔하여 배변 문제로 속 한 번 썩이지 않았다. 뭐든 너무 잘 먹는 게 단 하나 흠이었다. 처음 올 때 날씬하던 몸매는 2년만에 마치 까만 베개같았다. 산책 때 사람들이 뚱뚱하다고 입대면 미니핀 아니고 미니픽이에요 할 정도였다. 다이어트하면서 체중계를 내오면서 “몸무게”라면 달랑 올라앉았다.

그 식탐이 문제가 되었다. 아무거나 먹고는 탈이 낫고, 어김없이 응급실행. 병력도 화려하다. 입원 4번, 수술은 두 차례나 했다.

첫 기억은 지금도 아찔하다. 비 오는 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베리가 토하고 비틀댄다며 남편이 걱정했다. 119로 전화했더니 강아지는 안된단다. 남편이 아는 수의과 교수에게 전화해서 큰 병원으로 갔다. 병원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울었다. 장장 4시간의 검사에 치료를 한 후, 위기를 넘겼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다.

그 후에도 몇 차례 응급실을 찾았고 비용도 만만찮았다. 우린 종종 천만 베리라고 한다. 병원비가 천만 원 이상 든 때문이었다.

작년 여름, 또 한밤중에 병원을 찾았다. 췌장염으로 열흘이나 입원하였다. 코로나 시국이라 면회도 못해 전화로 상태를 전해 듣곤 하던 때였다. 우리집엔 베리말고 아키라는 갈색 푸들이 한 마리 더 있다. 5년전 베리 친구 삼는다고 아들이 키우던 애를 데려와 같이 놀던 베프다. 베리가 없자 아키가 식음을 전폐하고 시름겨워했다. 아무것도 먹질 않고 베리의 담요에 엎드려 꼼짝 않는다. 베리가 그리워 그러는 것 같았다. 병원에 전화하여 상황을 얘기하고 면회를 간청했다. 병원 측의 배려로 입원실 대신, 병원 뜰에서 둘은 상봉했다. 어쩜 그리도 애틋할까. 서로 몸을 부비며 즐거워하는 걸 지켜보는 우리 부부가 더 감격해했다. 집에 온 아키는 사료를 폭풍흡입했다. 90 노인 수발들 듯하는 요즘이지만 베리가 잘 먹고 신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뿐, 닥치지 않은 일은 미리 생각하지 않으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