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가 만났다
손동근 세무사

손동근 세무사 .
손동근 세무사 .

세금,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세금이었다. 현실에서건 작품에서건 세금을 다루는 세리는 늘 악역을 담당했다. 그러나 납세가 국민의 의무로 규정됐을 만큼 세금은 피할 수 없으니 최대한 아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더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조세 전문가는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됐다. 40년 세무 행정을 담당했고 지금도 납세자의 세금 문제를 도와주고 있는 손동근 세무사. 그는 세금을 피할 수 없다면 세무사를 가까이 하는 방법이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세금에 대한 국민의 불평불만, 공평과세가 무너지는데서 오는 것이 가장 크다고 생각”

“세법이 바뀌는 것은 우리 경제 규모가 커지는 만큼 당연… 현실에 맞는 세법 개정 필요”

“양도소득세법, 다양한 세법 특례 조항을 시기·사례 맞춰 적용하기 때문에 특히 어려워”

-국민들의 세금에 대한 저항이 항상 있는 것 같다.

△그건 어쩌면 당연하다. 금전을 지불할 때는 개별적인 보상이 따르기 마련인데 세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국민들이 세금의 필요성을 인정할 만큼 납세 의식도 많이 개선됐다. 또다른 불만은 과세의 공평성 문제일 듯하다. 1970년대만 해도 모든 것이 수기(手記)였다. 지금은 첨단 컴퓨터와 빅 데이터 등 과학기법을 이용해 전 국민의 자산과 소득, 비용 등을 파악해 전산화하고 있으니 공평과세에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불평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속설처럼, 공평과세가 무너지는데서 오는 불평불만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소득을 줄여 세금을 덜 내려는 시도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본능 아닌가.

△대구의 대형 재래시장에서 화재가 났을 때다. 상인들은 피해액이 엄청나다고 주장했다. 장부를 정확히 기재하지 않아 매출이나 재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보험회사에서도 사업규모나 손해액 사정을 위해 국세청에 자료를 요구하는데, 신고된 자료가 없거나 소액으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평소에는 절세 차원에서 매출액을 축소 신고했다가 막상 재난을 당하면 그때는 부풀려 피해를 하소연하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주변에는 판매가 6천원인 자장면을 ‘현금가 5천원’이라고 적어 놓은 가게도 있더라.

△매출을 줄이기 위해 과표를 누락하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1977년 7월 시작된 부가가치세는 당초 연매출 2천400만원 미만이면 면세했고 지금은 연매출 8천만원까지는 세율을 낮춰 적용해준다. 간이과세자 제도이다. 일반사업자는 공급가액의 10%를 부가세로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금 결제를 간접적으로 유도하는 선을 넘어 노골적으로 현금가를 차등 적용한다고 버젓이 광고하는 것은 세무조사를 받는 등 페널티를 적용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세법이 너무 어렵고 또 복잡해서 세법 전문가인 세무사조차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는데.

△세법이 바뀌는 것은 우리 경제 규모가 커지는 만큼 당연한 것이다. 5·16 혁명 후 박정희 정권에서 이낙선 당시 국세청장은 국세 수입규모 7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차번호를 700번으로 했다고 하더라. 그러던 우리 경제 규모가 올 세수 목표가 400조원(2022년 세수 396조원)을 넘을 만큼 규모도 커지고 형태도 다양해졌다. 경제현상에 따라 새로 생겨나는 현상들을 세법의 테두리에 가둬 반영하기 위해서는 세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했던 것이다. 마치 앞에 도망가는 도둑을 경찰이 뒤쫓아 가는 형국에 비유할 수 있다.

-정치적인 문제는 없나.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문재인 정권의 세금 문제가 불거졌다.

△세법이 바뀌는 이유 중 하나는 정권의 문제라기보다는 선거를 떼어놓을 수 없을 것이다. 조세감면법이라 비난받는 조세특례제한법이 대표적인 예다. 세법은 세목별로 과세 대상, 과세기간과 과세표준이 있고 거기에 맞춘 세율과 납부기한 방법 등 고유 체계가 있는 것이 정상인데 여기엔 그런 것이 없다. 말 그대로 특례다. 각종 직능단체나 이익단체들이 민원성 감면조항 신설을 요구하면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수용을 하는 쪽으로 유혹을 받을 것이다. 지역구의 민원을 해결한다는 순기능도 있겠지만 너무 많은 감면 조항들이 무질서하게 나열되어 있다 보니 세법이 어렵게 된 것 같다. 세법 제목이 그럴듯해도 들여다보면 특정 사안에 대한 특별 예외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 많은 사례를 모두 뒤져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있나.

△꼭 선거 시기에 입법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상가건물 장기 임대 사업자 세액공제, 소형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액감면, 장기 임대주택 등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 미분양 주택의 취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 특례 등의 규정은 비슷비슷한 조문들이 거미줄처럼 난해하게 열거되어 있고 00년 세계 00선수권대회에 대한 과세특례, 00박람회용 물품에 대한 소비세 면세규정과 같이 일회성인 경우도 있다.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을 조세 측면에서 지원하는 방안으로 입법이 되었겠지만 들여다보면 포퓰리즘 세법이라 할 이런 특례 규정들이 선거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니 세법이 더 어렵고 복잡해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종합부동산세도 국민을 화나게 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금언을 정면 배반하는 미실현소득에 대한 세금은 국민을 열 받게 만들었다.

△1세대 1주택, 평생 월급쟁이로 살면서 남은 게 집 하나뿐인데 공시가가 올랐다고 세금을 올려버리니 국민들 속이 터지는 것이다. 세율은 고정됐지만 과표가 해마다 오르면서 20, 30만원 정도 용돈 규모의 재산세가 150, 200만원의 뭉치돈으로 올랐으니 서민들이 풀쩍 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동산에 대한 개념에서부터 정치권에 따라 인식의 차이가 있는데 어쨌든 그건 세무행정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부의 조세 정책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긴 하다.

-개인이 이해관계가 높은 세법 중 양도소득세법이 특히 어렵다고 한다.

△인터넷과 온라인 서비스에 익숙한 젊은 세대라면 혼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국세청 홈텍스에서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그래서 앞으로 사라질 전문직 중에서 세무사가 꼽히기도 한다. 그런 반면 세무전문가인 세무사조차도 양도세는 어려워 아예 ‘양포사’(양도소득세 포기 세무사)라는 자조 섞인 신조어도 나오고 있을 지경이기도 하다.

-왜 그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운가.

△경제현상만큼 다양한 세법 특례 조항들을 시기와 사례에 맞춰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다 소급 적용은 않지만 이 법은 ‘00년 00월 00일부터 적용한다’는 시행 단서를 잘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반적인 1세대 1주택의 양도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를 비과세하다가 2003년부터 6억원 초과, 2008년 10월 이후에는 9억원을 초과, 2021년 12월 8일부터는 12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을 고가주택이라 하여 비과세를 배제하고 세액계산특별규정이 생겼다. 또한 2020년 1월에는 2년 이상 보유조건에 2년이상 거주요건이 세액계산 특례요건으로 추가되었다. 1년 4%씩 10년 동안 소유하고 실거주하면 양도차액에서 40%씩 총 80%의 장기보유 특별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개정되어 2021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수시로 변하는 이런 다양한 조건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세법을 잘못 적용해 상당한 금액의 보상을 해 준 세무사도 있고, 그런 위험에 대비한 세무사 대상 보험 상품도 생겨났다.

-양도세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양도세가 어려운 것은 양도차액의 산정 때문이고 이는 매도가보다 취득가액의 산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납세자는 세금을 적게 내려는 심리에서 매입 당시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가 매도하면서 이를 실거래가나 그 이상으로 부풀려 양도차액을 책정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나. 2006년 이후 매매는 등기부에 기재된 금액을 매입가로 적용하지만 그 이전에 취득한 부동산은 당시의 취득가 산정을 위해 토지등급, 공시지가 등 토지의 여러 형태에 대한 규정에 따라 토지 취득가격을 계산해야 하고 사업용 비사업용 토지 여부를 따져야 하는 등의 문제 때문에 전문가도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언제 세무사가 필요한가.

△동대구세무서장으로 있을 때 대구 유명 예식장 양도세 사건이 있었다. 당시 건물주는 대구시내 2개 세무서에 210억원 정도 체납됐고 일선 구청에도 4천만원의 지방세가 체납돼 있었다. 그는 예식장 매매로 408억원을 받았지만 은행 대출금과 체납세금을 제하면 한 푼도 손에 쥘 수 없었다. 그가 예식장을 매도할 당시 매입자는 세무사 외에도 변호사와 회계사 법무사 등 7명의 전문가를 대동했지만 그는 아무런 주위 도움 없이 혼자 와서 매매계약 하는 걸 봤다. 그 과정에서 매입자 소유의 다른 지역 처리 곤란한 건물을 매수해 주는 조건으로 예식장을 매입하겠다고 하니 건물 매입대금 20억원을 체납액 충당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세법상 불가능함을 통보했다. 매매대금으로 개인재산을 취득하는 행위는 세금 납부 이후라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줬다. 그가 왜 진작 세무사와 상의해서 세금을 줄이는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개인과 법인에 따라 세금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법인이 반드시 유리한가.

△회사 설립을 하면서 개인회사로 할 것인지 또는 법인으로 할 것인지는 숙고해야 할 문제다. 사실 개인사업자의 소득세는 최고 45%지만 법인세는 훨씬 낮다. 그래서 작은 회사를 법인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반드시 유리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법인이라면 반드시 공개하고 배당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형식만 법인으로 만들고 실지로 개인 소유의 중소기업 경우 소득세 대신 법인세를 내서 재미를 보더라도 잉여금을 처리하면서 배당 소득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는 적자를 보면서도 은행 거래 등을 이유로 분식회계를 했을 경우 이익을 주주에게 배당하면서 많은 세금을 물어야 한다. 사전에 수시 배당하는 등의 절세 방법을 세무사와 의논하는 것이 현명하다.

-세무서장을 여러 곳 거쳤다.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사연은 없나.

△대구국세청 개인납세1과장 시절 가짜 양주를 단속한 사건이 있다. 양주 박스를 인쇄해 가는 업자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직원들이 추적을 시작했다. 오랜 시간 추적과 잠복 끝에 일당을 검거한 사건이었다. 사건 해결과 동시에 비디오 필름 보도자료를 지역 언론사에 직접 배포했다. 그랬더니 일당 검거에 동원됐던 경찰에서 난리가 났던 기억이 난다. 그 뒤 경찰에 몇 차례 화해를 요청해도 응하지 않아 결국 서먹하게 관계가 끝났다. 주류 거래는 전용 카드만으로 결제해야 하는데 이를 위반한 업주를 면허를 취소한 사건이 있었다. 상급자가 잘 알고 있었지만 선처해 줄 수 없었고 취소 이후에 지역 목욕탕에서 만나 당황하고 미안했던 적이 있었다. 행위는 법을 위반했지만 면허정지까지 시킬 수밖에 없었음을 설명했지만 인간적으로 두고두고 미안했다.

-여가시간에 따로 하는 운동이나 취미생활은 무엇이 있나.

△취미로 등산을 했다. 1996년부터 등산을 시작해서 한때는 1년에 40~50회 산행을 할 정도로 산에 미쳐 있었다. 매월 가는 고교 산악회는 회장을 맡기도 하고 산악회 정기등산만도 200여 차례 다녀오기도 했으니 친구들이 산신령이라고 놀리기도 했었다.

□ 손동근(孫東根·68)

칠곡 출신. 경대사대부고 졸.

1973년 세무서기보로 세무공무원 출발, 이후 대구지방국세청 법인세과 징세과 부동산 조사담당관실 근무, 1996년 사무관 승진 이후 구미서 부가세과장, 북대구 법인세과장, 대구지방국세청 징세과장 개인납세1과장을 거쳤다. 대구지방국세청 세원분석국장과 영덕 수영 동대구 서대구 세무서장 등 역임,

홍조근정훈장과 대통령표창 받다.

2013년 7월 세무사 개업.

평생을 세무공무원으로 지냈으나 얼굴은 이웃집 선한 아저씨다. 부모님 권유로 공무원이 됐고 국세청에 발령난 것이 평생 직업이 됐다. 국세공무원 업무는 성격에도 맞지 않아서 너무 힘들어 모친에게 ‘그만 두겠다’고 여러 번 투정을 부리며 10년을 보냈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면서 평생을 견뎌냈다. “항상 배우는 마음으로 듣고(學心聽)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자(深思熟考)”라는 자세로 살아왔다. 마음은 맑고 신체는 깨끗하게 늙고 싶다. 노후는 고향에서 부모님의 대를 이어 땅에 기대어 살아가려 한다.

/이경우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