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근

강화에 와서 눈 덮인 벌판을 바라본다

간이역도 없는 마을에

웬일로 텅 빈 기차는 어둑하게

벌판을 달려가고

그때마다 길은 다시 끊기고,

나는 지나간 밤 여인숙 방에서 치던

낯선 여자와의 그 서툴던 화투판을

생각한다

나에게 집이 있었던가,

돌아보면 희미한 풍경으로

남아 있는 먼 데 마을

몇 채의 집들

눈벌판이 끝나는 곳에서는 또 갯벌이,

염하(鹽河)마저 얼고 있을 것이다

“텅 빈 기차”라는 이미지는 텅 빈 마을과 공명하면서 삶의 허허로움을 애잔하게 느끼게 한다. 삶은 이 외진 곳에서 무엇인가를 채우지 못한 채 텅 빈 기차처럼 지나가고 있다. 이 허허로움에 맞닥뜨리게 되면 삶의 목적-길-은 끊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터, 자신이 떠나왔던 집은 보이지 않고, 다만 보이는 것은 “몇 채의 집들”만 “희미한 풍경”일 뿐, 이제 시인은 “나에게 집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