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카사블랑카’

영화 ‘카사블랑카’ 포스터.

1789년 프랑스는 구체제인 절대왕정을 무너뜨리는 시민혁명이 일어난다. 바로 프랑스 혁명이다. 그러나 절대왕정이 무너진 자리를 대체했던 정치체제는 쉽게 자리를 잡지 못했고, 세 차례의 입헌 군주정과 짧은 두 번의 공화정, 두 번의 제정 등 80년 간 여러 정치체제를 겪는다.

프랑스 혁명 이후 부침이 심했던 프랑스는 1870년에 들어와서 프랑스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이후 1940년까지 약 70년간 안정적인 공화정 체제를 구축한다. 이 시기 프랑스 혁명 때 사용됐던 구호인 ‘자유, 평등, 박애’가 국가이념으로 굳건하게 자리 잡는다.

1939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프랑스 제3공화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후 북유럽이 나치 독일에 차례로 함락 당하면서 전황은 시시각각 프랑스에 불리하게 전개되더니 마침내 독일의 프랑스 침공으로 속수무책으로 밀리게 된다. 1940년 6월 13일 수도 파리가 함락되자 당시 부총리였던 전쟁영웅 필리프 페탱이 의회 결의를 통해 전권을 위임받게 된다. 패탱은 독일에 정전을 호소하며 프랑스 전체 국토의 절반 이상인 북프랑스가 나치에게 넘어가게 되고 절반이 되지 않는 나머지 남프랑스 지역의 자치권을 확보하는 것으로, 협상 끝에 굴욕적인 조건으로 정전협정을 맺는다. 페탱의 직속 부하였던 샤를 드골은 이에 반발해 영국으로 망명해 ‘자유 프랑스’라는 망명정부를 세운다.

1940년부터 1944년까지 프랑스의 국가이념이었던 ‘자유, 평등, 박애’는 폐지되고, 새롭게 탄생한 ‘비시 정부’에 의해 ‘노동, 가족, 조국’이라는 새로운 구호가 등장한다. 혁명과 공화국을 상징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페탱이 구상하던 새로운 프랑스 건설의 기운이 나치가 일으킨 전쟁의 포화 속에서 일어난다. 분명한 것은 ‘비시 정부’는 프랑스 의회에 의해서 탄생한 합법적인 정부였다는 것이다. 비록 그 행보가 독일 나치에 협력하는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지만 당시 미국과 소련 등으로부터 프랑스의 합법 정부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 전 프랑스가 지배하고 있었던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식민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며, 독일도 이를 용인하고 있었다.

이 시기 카사블랑카는 프랑스의 해외 식민지였던 모로코의 최대 도시로 대서양에 면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전란을 피해 미국으로 가기 직전 마지막 기착지인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향하는 기항지였다. 비시 정부의 식민지 카사블랑카는 비시 정부의 경찰들과 나치 독일의 게슈타포와 이탈리아 경찰들과 반나치 활동가와 망명가, 밀수꾼과 스파이, 예술인, 지식인, 과학자들이 어우러져 탈출과 탄압, 자유와 억압, 희망과 좌절이 혼재된 곳이었다.

돈이 있는 사람들만이 리스본으로 향하는 비자를 얻어 그곳을 떠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과 세월을 탕진하며 비자를 얻기 위해 그곳에 머물게 된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배경인 1941년 겨울의 카사블랑카가 그러했으며, 영화 속 주인공 릭이 운영하는 ‘릭의 카페 아메리카’ 같은 곳에서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밀담을 나누며 전황을 살피며 도시를 빠져나갈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다양한 사연과 목적, 거대한 전란 속에서 현실을 도피할 다양한 욕망이 존재하는 복합적인 감정의 공간이었으며, 거대한 이념과 세력이 팽팽한 긴장감을 가진 채 마주하고 있는 경계지점이었을 카사블랑카. 드러낼 수 있는 것보다 감춰야하는 것들이, 기억해야할 것들보다 다가올 것들을 걱정하고 집중해야하는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해야하는 그 시대 실재했던 공간. 그 속에서 영화 ‘카사블랑카’는 과거를 선택한다.

잊혀졌던 사랑과 재회하게 되고, 잊고자 했던 기억 속에서 회한과 아쉬움, 서로의 선택 속에 남아 있던 감정을 확인한다. 과거에 머물렀던 기억과 감정은 다시 현재가 되고, 미래가 된다. 우연히 릭의 손에 들어오게된 비자에 누구의 이름을 적을 것이며, 누가 남고 누가 떠날 것인가의 줄다리기가 펼쳐진다.

멋진 대사의 향연과 잊을 수 없는 노래와 풍경, 그 풍경들을 집어삼키던 안개가 8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복합적인 감정의 공간이었던 카사블랑카로 이끈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Here’s looking at you, kid)” /(주)Engine42 대표 김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