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추석 풍경을 담은 일기 소개
차례 모시는 장소·참여 범위·역할 분담
오늘날보다 더 유연하고 합리적인 모습
수확 기쁨 가족과 함께 나누며 조상 기려

조선시대의 추석 풍경을 담은 옛 성현들의 일기. ‘조성당일기’./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오는 10일은 추석 명절이다. 풍요롭고 즐거워야 할 명절이지만 명절갈등이라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대두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시대 추석 풍경을 담은 일기를 살펴보면 차례를 모시는 장소와 참여 범위, 역할 분담에 이르기까지 오늘날보다 더 유연하고 합리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우리는 조선시대의 추석 풍경을 담은 일기를 통해 형식에 치우친 차례 문화보다 조상을 기리며 함께 모여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는 추석의 의미를 되살려 가족 모두를 포용하는 추석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 갈등의 시작…명절

추석은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우리의 명절로 수확의 기쁨을 가족과 함께 나누며 조상을 기리는 날이다. 옛 어른들은 추석을 얘기할 때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할 정도로 추석은 풍요로움을 상징했다. 더운 여름이 지나 날씨마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이거니와 막 추수를 시작하는 시기다 보니 먹을거리도 풍족했다. 이런 저런 걱정이 없으니 인심도 좋아져 서로에게 나누고 베푸는 그런 명절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풍요로움은 더 해갔고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이 사라지자 더 이상 명절이라고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게 됐다. 오히려 명절이 가족 간의 갈등을 부채질 하고 이에 따른 사건사고가 뉴스를 채우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명절이 시작되기도 전에 많은 부부들이 갈등을 겪거나 주부들이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명절에는 유독 주부들의 할 일이 많아지고 시댁과의 갈등도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명절이 지나고 나면 많은 부부들이 후유증을 겪고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명절갈등이혼을 결정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아직 우리사회에 남아 있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명절 전·후 이혼율 11.5% 증가

실제로 예전에는 가부장적인 관념 아래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과 가사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보니 며느리가 명절에 시댁 찾는 것을 꺼리는 행동을 두고 전통적인 윤리의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법원이 남편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인 판례도 있을 정도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태도도 2000년대 들어 여성의 권리 신장과 가정 내 양성평등을 구현하는 쪽으로 많이 바뀌면서 시댁에 대한 일방적 양보와 희생을 강요할 수 없게 됐다. 요즘은 오히려 위 사례와 달리 이러한 것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이혼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더 많다. 배우자로서 신의를 져버렸다는 것이 이유다. 즉 남편과 부인이 동등한 위치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했는지 면밀히 따지는 추세로 변화한 것이다.

통계청의 최근 5년간 이혼통계를 보면 설과 추석 명절 직후인 2월과 3월, 10월 11월의 이혼 건수가 직전 달보다 평균 11.5%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명절 전후 갈등으로 인해 가족이라는 틀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는 젊은세대

이렇다 보니 요즘은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비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는 아직 차례 문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해 5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제4차 가족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5.6%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고 대답했다. 특히, 20대 응답자는 63.5%가 제사 폐지에 찬성했지만, 70세 이상 응답자는 27.8%만 이에 동의했다. 여러 문항 가운데 세대 간 동의 비율 차이가 가장 크게 나타난 문항이었다.

이처럼 명절 갈등의 원인은 조선후기 가례의 보급과 확산으로 양반 가문에 사당이 건립되고, 제례의 순서 및 제사상 음식의 조리법과 배치까지 정례화되면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신분제 동요와 재산상속 문제와 맞물려 더욱 보수화된 제례 문화가 현재까지 이어져 오면서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국학진흥원이 보유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추석 풍경을 담은 옛 성현들의 일기를 살펴보면 현대 사회가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변질됐는지 알 수 있다. 자료에는 차례를 모시는 장소와 참여 범위, 역할 분담에 이르기까지 오늘날보다 더 유연하고 합리적이었던 추석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추석 풍경을 담은 옛 성현들의 일기. ‘초간일기’.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초간일기’.
조선시대의 추석 풍경을 담은 옛 성현들의 일기. ‘초간일기’.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초간일기’.

△조선시대 산소에서 지내는 추석 차례, 차례와 성묘의 이중 부담 해소

경북 예천의 초간 권문해(權文海·1534~1591)의 ‘초간일기(1582년 (음)8월 15일)’에는 “용문(龍門)에 있는 선조 무덤에서 제사를 지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산소에 올라갔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안동 예안에 살았던 조성당 김택룡(金澤龍·1547~1627) 역시 ‘조성당일기(1617년 (음)8월 15일자)’에서 “술과 과일을 마련해 누이의 아들 정득, 조카 김형, 손자 괴를 데리고 가동(檟洞)의 선산에 올라 선영에 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고 했다. 또한 그 전해에도 “가동의 선조 무덤에 제사를 지내므로 직접 그곳으로 갔다”고 적어놓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추석 차례를 가족과 친척이 산소에 모여 지내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주의 청대 권상일(權相一·1679~1759)은 ‘청대일기(1745년 (음)8월 15일자)’에서 “시냇물이 불어나 건너기 어려워 산소에 성묘하러 갈 수가 없었다. 해가 저문 뒤에 손자 복인과 아우 상기가 술과 포를 조촐하게 갖추어 성묘하고 돌아왔다”고 적어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간소한 제물로 성묘를 지낸 모습도 보여준다.

△친가, 외가, 처가의 구분 없는 조선시대 차례문화, 함께하는 추석

김택룡의 ‘조성당일기(1616년 (음)8월 15일자)’에는 “가동에서 합제(合祭·여러 사람에게 함께 제사를 지냄)를 지냈는데, 영해(寧海)의 외조부모도 함께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다음 해 추석에는 산소에 가기에 앞서 집에서 외조부모의 제사를 지냈고, 선조의 무덤에서 차례를 지낸 후에는 “제물을 나눠 영해의 장인 에게도 절을 올렸다”고 기록돼 있다.

안동 예안의 계암 김령(金坽·1577~1641)은 ‘계암일기(1621년 8월 15일자)’에서 “먼저 외가의 추석 차례를 지낸 후, 집의 사당에서 추석 차례를 올렸다”고 적어 추석 차례에 참석하는 친족의 범위가 지금과 달랐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대구의 모당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모당일기(1601년 (음)8월 15일자)’에서 “오후에 조부 및 부친의 묘에서 돌아왔다. 동생 희로가 두 사위를 데리고 와서 참석했다”고 적었다.

△같이하는 추석 준비, 모두가 행복한 명절 지내기

김택룡은 1617년 성묘에 생질이 함께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김택룡 일가는 추석 준비도 함께했다. “조카 김형을 시켜 수록동(水錄洞)에 있는 조부의 묘소를 벌초하고 음식을 올리도록 했다(1616년)”, “누이의 아들 정득의 무리가 수록동에서 벌초했다(1617년)”와 같이 친가와 외가의 후손이 번갈아 산소의 벌초와 차례를 맡았다.

또 음식 마련도 서로 도왔다. “가동의 제사에 범금과 임인이 술을 가지고 와 올렸다(1616년)”, “포태(泡太·두부를 만드는 데 쓰는 콩)를 보냈다. 내일 누님이 가동의 선조 무덤에 가려하시기 때문이다(1617년 (음)8월 13일자)”는 기록은 형편껏 역할을 분담해 서로 도와가며 추석을 지낸 모습을 담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형식에 치우친 차례 문화는 명절의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이다. 조상을 기리며 함께 모여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는 추석의 의미를 되살려, 가족 모두를 포용하는 추석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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