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 모여 읽기 좋은 책 세 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먹을 것이 풍요롭기에 생긴 여유가 마음의 양식을 찾기 때문이다. 더하여 한가위가 들어 피붙이들이 보름달 아래 모여 정겨운 답소를 나누기 좋은 시간이다. 올 한가위는 삼대가 모여 동화를 읽으면 어떨까. 각자 흩어져 휴대폰만 들여다본다면 피붙이가 한자리에 모인 의미가 퇴색된다. 어른은 어른을 위한 동화, 아이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 이에 읽을만한 동화책 세 권을 소개한다.

어린이의 마음속에는 동심이 흐른다. 그것은 지하수와 같아서 때 묻지 않고 맑다. 동심은 순수하고 천진하고 난만하다. 그렇다고 모두 동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 가슴 깊이 흐르는 아이다운 정서를 찾아 두레박을 내려야 한다. 동심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맑고 순수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어른도 맑은 동심 한 사발 마신 듯 갈증이 풀린다.

 

‘마카롱 먹고 온갖 걱정이 사라진 아이’
‘정말 지구가 둥근지 확인하려는 어른’
동심 우물서 길어 올린 순수한 이야기
연휴동안 마음 속 깊은 갈증 씻어내길

 

① 단편동화 ‘냄새폭탄 뿜! 뿜!’(박채현 글, 허구 그림)

‘냄새폭탄 뿜! 뿜!’에는 다섯 이야기가 실려있다. 모두 동심이 흐르는 길목에서 퍼 올린 이야기다. 작가는 동심이 휘돌고 굽이치고 출렁거리는 자리를 안다. 그 자리에 우물을 파고 두레박을 내려 소재를 퍼 올려 이야기를 짓는데, 서사만 나열하지 않는다. 아이들 특유의 행동과 심리를 문장으로 절묘하게 녹여 이야기마다 동심이 살아 숨을 쉰다.

‘너라도 그럴 거야’: 먹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용돈을 모아 병아리를 산 승표, 그런데 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가버린다. 승표는 며칠 동안 친구들과 고양이를 추적한다. 철거를 앞둔 집에서 고양이의 집을 발견한 승표는 아이들과 함께 간다. 회초리를 든 승표는 끝내 복수를 포기하고 만다. 이를 갈며 복수의 칼을 벼렸는데, 왜 승표는 회초리로 고양이를 때리지 못했을까. 그 이유를 알면 누구나 제목에 공감하게 된다.

‘나 좀 읽어줘’: 엄마가 마음을 몰라준다고 심통이 퉁퉁 불은 동아, 엄마를 따라 헌책방으로 가는데, 헌책방 골목에 들어서지 책들이 나 좀 읽어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헌책방이라는 현실이 판타지의 세계가 되고 동아는 그 세계 속에서 헤맨다. 판타지 속에서 무엇을 경험했으며 또 어떻게 될까.

‘냄새폭탄 뿜! 뿜!’: 학교에서 친구들의 놀림을 받아도 말 한마디 못 하는 금은파 이야기다. 은파는 벌을 따라 텃밭으로 가고, 텃밭에는 이런저런 생명이 자신을 지키며 산다. 대파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매운 냄새를 뿜는다. 대파는 은파에게 소리친다. “뿌리에서부터 냄새를 끌어 올려. 매운 냄새를 풍기라고. 줄기는 질깃질깃해야 살아남아” 은파도 대파처럼 씩씩하게 자기를 지킬 수 있을까.

‘바보 여우와 작은 씨앗’: 보리수나무 씨앗이 바람에 떨어진다. 떨어진 씨앗이 다시 바람에 실려 벌판으로 가고, 씨앗은 붉은꼬리여우 조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씨앗은 조의 똥에 섞여 다시 땅에 떨어진다. 싹을 틔운 씨앗은 여우의 보살핌으로 자란다. 늙고 병든 여우가 보리수나무로 아래로 찾아온다. 둘은 어떻게 될까.

 

② 중편동화 ‘걱정을 없애주는 마카롱’(성주희 글, 유경화 그림)

어른의 걱정은 생존에 관한 것이 많다. 어떻게 먹고 살까. 아이를 어떻게 공부시킬까. 묵직한 걱정이다. 어른이 보기에는 아이의 걱정은 무겁거나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소소한 걱정도 무겁다. 그 무게에 눌리면 동심은 더 무거워진다.

작가는 엄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이 자잘한 걱정에 휩싸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가도 어릴 적에 크고 작은 걱정에 시달렸기에 아이들 세계의 걱정을 들여다본다. 한 뼘 두 뼘 마음이 크는 과정에서 걱정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걱정에 사로잡혀 아이다움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타깝다. 그래서 작가는 걱정하는 마음을 토닥여주고 걱정이라는 먹구름 뒤에는 맑은 하늘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집에 도둑이 들어오면 어떡하지? 자다가 불이 나면? 갑자기 땅이 흔들리면? 걱정왕 ‘왕기우’는 온갖 걱정을 달고 산다. 심지어 요즘 유행하는 ‘걱정두병’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시달린다. 엄마 친구 아들인 ‘오해소’는 이런 기우를 걱정왕이라며 놀린다.

하루는 기우 앞에 묘한 유리병 하나가 나타난다. “당신의 걱정을 없애 드립니다” 일단 믿어보기로 한 기우는 병 안에 든 ‘걱정을 없애주는 마카롱’을 먹는다. 진짜로 온갖 걱정이 사라지고 기우는 모든 걱정에서 홀가분해진다. 그런데 기우가 놓친 게 있다. 걱정이 없는 날에도 걱정을 적어야 한다는 조건을 까먹은 것이다. 걱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걱정에 걸린 기우는 어떻게 될까.

아이들의 걱정을 판타지 기법으로 풀어낸 이야기다. 작가는 아이들이 마음껏 공상과 상상의 세계를 경험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성장하는 힘을 얻기 바란다고 말한다.
 

③ 어른을 위한 동화 ‘책상은 책상이다’(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이 책은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사고가 엉뚱하고 행동이 바보 같은 사람의 일곱 이야기다. 현실에 없는 이야기 같지만 나 또는 나와 가까운 데 있는 이야기다.

‘지구는 둥글다’는 정말 지구가 둥근지 확인해보려고 길을 떠나는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계속 똑바로 나아가면 이 책상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걸 안다. 알긴 하지만 믿을 수 없어서 남자는 길을 떠난다. 처음 떠난 자리로 정확하게 돌아오려면 어떡해야 할까. 어떠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까.

‘책상은 책상이다’는 반복되는 일상 때문에 무료함이 극에 달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 나이 많은 남자는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산책하고, 이웃과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고, 저녁이면 자기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달라져야 한다고!” 외친 뒤, 침대를 ‘사진’으로, 의자를 ‘시계’로, 책상을 ‘양탄자’로 부른다. 주변 사물의 이름을 다 바꿔 부르다 보니, 시간이 흘러 타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자신도 타인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다. 이 남자는 어떻게 될까.

‘아메리카는 없다’는 왕의 무료함을 달래려고 궁정의 광대를 자꾸 교체하는 이야기다. 광대는 왕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복종한다. 왕을 위한 땅을 발견해야 한다고 명령하자 콜롬빈이라는 광대가 뱃사람이 되어 대륙을 발견하러 떠난다. 시간이 지나 찾지도 않은 땅을 발견했다며 콜롬빈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확인하지도 않고 그것을 믿는다. 너무 먼 곳에 있어 확인할 길이 없으니까.

이외에도 ‘발명가’, ‘기억력이 좋은 남자’, ‘요도크 아저씨의 안부인사’, ‘아무것도 더 알고 싶지 않은 남자’가 실렸다. 모두 엉뚱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그 결말은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쓴웃음이 나기도 한다.

어른을 위한 동화를 다 읽고 나면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다. 엉뚱한 사람들이 이야기는 역설逆說이 되어 나름의 메시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 어딘가에 있는 바보 같은 남의 이야기 같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내 안에도 이러한 기질이 조금씩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김이랑 수필가·문학평론가